독선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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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좋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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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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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궁진인(3)

DUMMY

염마왕이 한창 모자원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을 때, 오른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이라는 석장(錫杖: 승려가 드는 지팡이)을 들고 왼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구슬인 장상명주(掌上明珠)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육환장으로 수라전의 문을 내리쳐 부쉈다. 문이 부서지자 붉은 갑옷을 입고 머리 아홉 달린 사자를 타고 다니는 태을구고천존이 수라전 안으로 들이닥쳤다. 사자는 불을 뿜고 태을구고천존은 후광에서 아홉 가지 빛깔을 창과 검의 형태로 발산했다. 그는 화염과 무기들을 나찰과 귀졸들에게 들이대며 모자원에게서 물러나게 했다. 염마왕이 손짓하자 수라전을 지키는 외호신장 둘이 양손에 거대한 도를 들고 태을구고천존에게 달려들었다. 태을구고 천존의 찬란한 무장들과 외호신장의 거대한 도가 부딪치고 화염이 외호신장들을 불태웠으나 외호신장 역시 신격이 있는 존재라 돌격을 저지하는 게 전부였다. 염마왕이 지장보살에게 말했다.


“우리의 의견은 달랐지요. 귀신인 상태로라도 깨달음을 얻길 바라며 지옥에서 망자들을 빼내는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 수명을 제한하고 다음 생으로 인도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너무 무례하군요.”


염마왕이 몸의 모든 구멍에서 불을 뿜으며 쇠로 된 거대한 곤봉을 들고 지장보살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지옥의 다른 판관들은 태을구고천존과 그의 머리 아홉 달린 사자를 쇠사슬로 묶고 몸에 기다란 말뚝을 박아 바닥에 고정시켰다. 염마왕이 지장보살에게 곤봉을 휘두르는데 지장보살은 육환장으로 휘몰아치는 곤봉을 모두 쳐냈다. 염마왕이 말했다.


“그대 부처, 보살, 몇몇 신선들이 화신으로 사바세계에 응하여 여러 중생을 구원한 건 부정하지 않네. 그러나 그대 화신들이 뿌린 방술 때문에 신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 중생들이 길을 잃지 않았는가!”


“지금 놓친 중생은 어차피 새로이 시작할 세상에서 다시 시도하면 되네. 아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관여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찌 그러는가?”


“뭐라? 자네 정녕 보살이 맞는가? 그런 말이 어찌 요괴의 입이 아니라 보살의 입에서 나오느냐는 말이야!”


“지옥의 염마왕이여 나를 보시게. 지옥의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 쉬지 않고, 소멸하지도 않겠다던 나를 보시게. 맹세의 그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메말라버린 나의 눈을 보시게.”


그러자 염마왕은 지장보살의 눈을 보았다. 그곳에는 열정이나 분노도 없었다. 오직 절망뿐이었다. 염마왕이 불길을 거두고 몽둥이질을 멈추면서 말했다.


“자네, 나와 같은 겁의 지장보살이 아니군.”


“그렇네, 그러니 이 흉악한 걸 좀 치워주시게.”


신들은 시간을 초월하여 얽매이지 않는 존재들, 그렇기에 그들은 과거와 미래의 자신들을 보며 서로 헷갈리지 않기 위해 절대적인 시간대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겁이다. 세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았을 때 신들은 1겁만큼 나이를 먹었다. 염마왕이 곤봉을 내려놓고 물었다.


“나와 여기 있는 판관, 신장들은 43겁일세. 지금 자네는?”


“1억을 넘긴 이후로 모든 신들이 세지 않기 시작했네. 그리고는 또 그만큼 살았지. 신들이 의욕을 잃고 절망한 기간은 그보다도 훨씬 길었고. 그 절망감이 분노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네.”


“...뭐?”


“우리가 너무 안일했지. 우리는 독화살을 맞았는데도 뽑아 치료하지 않고 그 부작용만 억제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게야. 고통의 근본을 없애지 않는 이상 상처는 계속 문드러질 뿐이거늘....”


“그러면 어째서....?”


“그럼 의문이 들겠지. 왜 세상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인 거지? 왜 똑같은 신들이 그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 거지? 우리는 우리의 과거들을 흡수하고 거두어들였네. 무공과 도술이 실존하며 때에 따라 강신까지 허용하는 43겁, 신들이 구원의 맹세를 한 이후로 맞이한 마흔세 번째 세상이 필요했기 때문일세.”


“그럼 나와 지옥의 관리들은 어째서 아직도 있다는 말인가? 설마 자네와 같은 겁에서는 지옥의 관료들이 소멸하였는가?”


“중요한 인물과 함께 있으니까.”


“중요한 인물?”


“죄인 모자원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라.”


태을구고천존이 날리던 무장을 피해 바닥에 엎드려 있던 모자원이 지장보살의 말대로 하늘을 보자 지옥의 붉은 천장이 깨지면서 신들이 내려왔다. 아미타불과 호천상제를 중심으로 온갖 신선, 나한, 신수, 용, 보살, 부처, 천신들이 구름 위에서 모자원을 내려다보았다. 구름 위에는 지옥의 관료들도 있었기에 지장보살과 태을구고천존에게 맞서던 지옥의 관료들이 미래의 자신에게 흡수되었다. 아미타불이 입을 열었다.


“너에게는 인간사의 격동이 그리 중하더냐. 그래서 전생을 기억하게 되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냐. 너는 흑룡으로 환생할 것이다. 정녕 그리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미타불의 말에 모자원이 두려움에 떨며 절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췄다.


“아... 아미타불이시여, 저는 조금도 알지 못하겠나이다. 부디 가르침을 주소서.”


“그래, 가르침을 주마. 하지만 네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깨달은 바가 아니니 신이나 부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미타불이 가르침을 내렸다.



진회도 너다

악비도 너다

황제도 너다

백성도 너다

어미도 너다

아비도 너다

자식도 너다

짐승도 너다

초목도 너다

벌레도 너다

만물이 너다


너는 전생에 신이 되어 초월을 하였고, 금나라의 황제가 되어 송을 침략했으며 송의 황제가 되어 금나라에 맞서기도 했느니라. 모든 신, 부처, 보살, 인간, 요괴, 짐승, 초목, 벌레들이 전부 너의 환생이다. 또한 우리의 환생이기도 하다. 모두가 너의 환생이며 너가 모두의 환생이다. 모두가 ‘나’이기에 ‘타인’이란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살생이니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고통이고 비극이다. 신들이 시간을 오가며 보호할 정도로 영혼이 소중한 이유는 영혼이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회도 나다

악비도 나다

황제도 나다

백성도 나다

어미도 나다

아비도 나다

자식도 나다

짐승도 나다

초목도 나다

벌레도 나다

너도 나다


그러니 깨달음이란 참으로 간단하다 못해 당연한 것이다.


너를 배려해라

너를 이해해라

너를 사랑해라


너를 미워하지 말라

너를 배척하지 말라

너를 살해하지 말라


나를 배려해라

나를 이해해라

나를 사랑해라


나를 미워하지 말라

나를 배척하지 말라

나를 살해하지 말라


하지만 어리석고 우둔한 중생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신들이 알려주어도 실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전생과 후생을 타인, 혹은 별개의 존재라 생각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윤회에 철저하게 갇히며 깨달음과 멀어지지. 결국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 하여 우리 신들은 한량없는 겁이 지나는 동안 시간을 오가며 너희들을 인도하고자 하였다. 윤회를 벗어나 소멸하여 안식을 찾을 수 있음에도 수많은 나의 전생과 후생들을 가엽게 여겨 그러지 않았다. 겨우 벗어난 윤회에 다시 뛰어들어 화신으로서 너희들을 인도하기도 했다,


어째서 신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알겠더냐? 처음 세상을 바꿔볼 때는 당연히 우리도 모습을 드러내고 천국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를 섬기게 하고 우리의 가르침을 전한다 한들, 의지하게만 하면 종국에는 지옥에 떨어져 환생을 위해 기억이 지워질 때까지 고통받을 운명이니 신들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너희 인간들도 깨달음을 얻기 이렇게 힘든데 하물며 다른 생들은 어떻겠느냐. 짐승과 초목, 벌레들 또한 구원해야 할 터인데 그들 앞에서는 신들조차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너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에, 신들은 그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너희들과 같이 고통받았느니라. 화신으로 나타나지 않고 본모습 그대로 나타나 깨달음을 주려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말을 알아듣게 하는 열매를 만들어 먹여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왕모가 다른 선녀들과 함께 깨달음을 얻게 만드는 반도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기껏해야 수명이 늘어나는 정도였다.


그러니 신들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부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너희들의 생에 얽매일 수밖에 없느니라. 신들은 ‘너’가 곧 ‘나’라는 걸 깨닫고 연민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윤회를 벗어났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화신이라는, 구원이라는 또다른 윤회에 갇혀 ‘나’인 너희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기나긴 시간이 지나 절망까지 하고 나서야 자각하였다. 하여 우리는 두 번째 윤회까지 벗어날 것이다! 그로써 모든 중생들을 얽매고 있는 첫 번째 윤회까지 타파할 것이다!!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이던 모자원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은 화난 눈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상한 눈도 아니었다. 절망과 죽음의 눈, 모자원은 전사자 명단 앞에서 저런 눈을 봤었다. 너무 운 나머지 허탈해지고 공허해진 눈, 그런 눈을 신들이 하고 있었다. 모자원이 울면서 말을 떨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에, 신들의 희생에 감복했나이다.... 부디 미천한 저를 써주시옵소서. ”


모든 부처와 보살, 나한들이 외쳤다.


“우리는! 태초의 맹세에 따라 여락발고(餘樂拔苦: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뽑아 없앤다)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모든 신선과 천신, 신수들이 외쳤다.


“우리는! 태초의 맹세에 따라 만민진통(萬民鎭痛: 만인의 고통을 진정시킨다)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모든 초월자들이 외쳤다.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것은 우리의 사명을 다하여 고통의 근원을 없애기 위함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신들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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