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2

새의 머리를 한 아쿠르데메스. [‘형태[形態]의 신’] 땅 아래 그의 공간.
[정오]
정오가 되자 하프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진다. 책을 읽고 있던 새 머리를 한 남자가 고개를 든다. 땅 경계 아래에 뻗은 사과나무줄기마다 꽃이 피어난다.
보라, 분홍, 연두, 붉은색(등) 여러 가지 색색의 꽃들이.
새와 벌, 나비가 날아다니고, 작은 손발이 달린 요정들이 작은 붓을 들고 여기저기 바쁘게 날아다닌다.
[오후 세시]
바람이 없는 공간에 바람이 불더니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다시 책을 읽고 있던 새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본다. 꽃잎은 떨어져 사라진다.
[저녁 여섯 시]
색색의 사과 열매가 열렸다. 열매를 요정들이 달려들어 소중히 딴다.
[밤]
조용한 식탁 위에 허슙이 앉아 있다. 초록 사과를 집어먹던 허슙이 인상을 쓰며 내려놓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형태의 신 아쿠르데메스가,
[초록사과는 풀잎과 흙, 아침이슬의 맛과 안개향이 나지. 하하, 너의 입맛에는 맞지 않나 보군.]
이틀 전 깨어났지만 지금껏 떠나지 않고 여기 머물고 있는 허슙. 그를 보는 아쿠르데메스의 마음이 좋지 못했다.
[가야 하지 않느냐]
그 말을 할 때면 못 들은 척 자리를 뜨곤 했다.
[무엇이 두려워 밖을 나가지 못하나···]
[······.]
시간이 흘러,
밤의 향기가 옅어짐을 느낀 아쿠르데메스가 나무뿌리에서 자신의 몸을 분리해 떨어져 나온다. 허슙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민다. 허슙이 망설이다 그의 손에 올라탄다.
-팟
아쿠르데메스의 등에서 크고 탄력 있는 큰 날개가 쫙- 펼쳐진다. 위에 땅이 열리고 허슙을 안고 높이 날아오른다. 멀리 동이 트고 있다. 아주 높은 산 위까지 허슙과 함께 날아온 그가 허슙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아름답지 않으냐?]
[······.]
[꽃을 보고, 하얀 눈을 보고, 저 해를 보고, 또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생명이 있지.]
허슙이 고개를 돌려 아쿠르데메스의 까만 눈을 바라본다.
[그것은···인간이다.]
그 말과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한동안 둘 사이에 말이 없다. 아침 해는 점점 떠오르며 분홍색과 주황색이 구름에 물든다.
[욕심이···났겠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오래 있고 싶은 욕망이 나쁘다 말 못 하겠구나.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도 말이지.]
사과나무 아래에서 허슙과 대화를 들었던 형태의 신 아쿠르데메스.
“나는 거부한다. 다시는 그렇게 새겨져 기다리고 싶지 않다. 나는 신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신이 아니겠는가?”
[보지 않으려 했건 것인가, 보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잘 숨어 있어단 말인가!]
해가 완전한 모습을 보이기 전 둘은 다시 돌아왔다. 아쿠르데메스가 알이 굵은 안경을 끼고 한참을 뒤적뒤적 뭔가를 읽고 찾기를 반복하던 끝에. 꿀 차를 마시며 앉아있는 허슙에게 말려져 있는 종이 하나를 건네준다.
[기록의 신 기록자 듀링을 찾아가 보거라. 진실을 보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후 해결 방안을 찾아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며칠을 더 머물고··· 허슙이 떠나기 전.
[태어날 때부터 혼뿐인 너의 모든 모습을 본래의 형태로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 공을 들여 허슙의 일부분인 날개를 복원시켜 주었다. 그것은 형태의 신 아쿠르데메스 그에게도 조금은 버거운 일이었다. 푸른빛의 날개.
[너의 날개를 보아 물의 속성을 지녔구나]
허슙은 날개를 보며 기뻐한다.
[너의 몸속엔 효능이 뛰어난 나의 사과 즙이 가득하다. 다시는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날개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알고만 있거라.]
사과 씨앗이 담긴 작은 주머니를 허슙에게 건넨다.
[기록의 신 듀링에게 주면 좋아할 것이다. 잘 가거라]
땅이 열리며 푸른 날개로 날아오르던 허슙이 아쿠르데메스 형태의 신을 향해 손을 흔든다. 요정들이 일제히 아쿠르데메스의 주변으로 몰려나와 함께 손을 흔들어 준다.
허슙을 보내고,
[생각해 보면 너희용은 인간보다 불쌍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
현재.
여관 이층 첫 번째 방. 창가에 삶은 옥수수 두 개를 놓아두고 깊이 잠이 든 벤게로스. 허슙이 옥수수를 그냥 지나쳐 잠든 벤게로스 배 위로 살포시 앉는다. 벤게로스의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누워 잠이 든다.
아침이 오고 여관 주인 남자가,
“조심히 가십시오”
“잘 쉬었다 갑니다.”
“부탁하신 감자와 달걀을 마차에 실어드렸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똑똑
이층 방문을 치코가 열고 들어온다.
“형. 얼른 내려오래요.”
“응. 가자”
창가에 올려둔 옥수수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다.
‘이 녀석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건지.’
새벽에 돌아와 잠들었던 허슙. 자신의 배 위에서 자고 있던 허슙을 보고 다시 잠이 들었었다. 허슙의 모습이 또 보이지 않는다. 치코는 마차 속이 답답했는지 나귀 등에 올라탄다.
폴이.
“어? 팔 괜찮아?”
“네. 자고 일어나니 멀쩡하네요. 약간 뻐근한데 괜찮아요.”
아침에 묶어둔 천과 나무판자는 침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자면서 간지럽고 답답한 나머지 풀었던 벤게로스. 마차를 정비하며 멀리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개럿이,
“건강해 보이니 좋군. 자 출발하자고!”
그들은 여관 주인과 네 명의 일꾼들의 마중을 받으며 그곳을 떠나고 있다.
[그 후, 10일의 기록]
두 번의 마을을 더 거쳐서 힘든 산길을 사일 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산짐승 늑대의 공격이 한차례 있었고, 노상강도를 두 번이나 연달아 만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베네피네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더러 아는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움도 받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10일이 지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팻말을 마주한다.
[베네피네 -왼쪽, 몽드가트-오른 쪽]
“모두 오랫동안 고생하셨어요.”
드리글스의 말에 모두 웃는다.
“아직 아닙니다.”
개럿이 긴장이 풀린 듯한 모두를 향해 말을 던졌다. 드리글스가,
“여기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첫 번째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이틀을 더 걸어 들어가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하나 넘으면 완전한 베네피네로 갈수 있어요.”
“저 작지만 험난한 산이 위험하지요.”
그들의 말에 따르면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베네피네가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산 앞 작은 마을은 주로 음식점, 술집, 여관 등이 즐비해있다고 했다. 그곳엔 용병이나 잡상인, 목재상들이 주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개럿이 걱정하는 것은 저 작고 험난한 산에 강한 마법의 힘을 가진 ‘원 데이 헥스’ 들이 숨어 살고 있다는 것과 식인 개미 때문이다.
“저 산을 지날 때 아이들을 한 마차에 다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래야지요.”
개럿과 드리글스가 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폴이 벤게로스 가까이 다가와,
“식인 개미가 진짜 개미가 아니고 사람이래. 하하.”
“네?”
“주로 어린[원 데이 헥스] 사람고기를 먹는데. 우-엑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끔찍하네요.”
벤게로스가 당나귀 위에 앉아있는 치코를 부르며 다가간다. 치코 손에 허슙이 들려있다. 허슙을 한번 쳐다보다가,
“치코. 지금부터는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해.”
“왜?”
“위험하대. 어른들 말 잘 듣고 알았지?”
“응. 형. 허수아비랑 같이 가도 돼?”
“안 돼. 이리 줘?”
치코는 입을 삐죽 내밀며 허수아비를 벤게로스에게 건넨다. 치코가 마차에 타고 노부부도 함께 마차에 올라탄다. 자신의 후드 모자 속에 허슙을 집어넣는다. 다시 움직이는 마차. 폴은 앞서가는 개럿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벤게로스는 나귀를 끌며 나란히 마차와 조금 거리를 두고 혼자 걷고 있다.
-폴짝.
모자 속에서 허슙이 뛰어내려 몽드가트 표지판 아래에서 섰다. 뒤돌아 본 벤게로스가 마차를 따라 느리게 걸으며,
“허슙. 가자. 이리 와”
-절레절레
‘저 녀석 무슨 생각이 있나? 여기서 갈라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벤게로스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마차를 바라본다. 노부부와 치코와 눈이 마주친다. 손짓으로,
‘저 갑니다. 안녕히 가세요.’
마음속으로 읖조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노부부와 치코가 처음엔 놀란 얼굴을 하다 이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뒤돌아 나귀를 끌고 허슙에게로 간다.
“그래 가자. 어차피 우린 처음부터 몽드가트로 가려던 거니까!”
그렇게 둘은 그들과 작별 인사 없이 그렇게 헤어졌다.
몽트가트로 향하는 길. 처음 갈라진 길은 마치 오솔길처럼 길이 좁다랗고 풀이 무성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은 듯 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 길은 점점 넓어졌다.
넓은 길은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더니 해가 살짝 기울 무렵 세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바닷가로 가는 길(중앙). 마을로 가는 길(왼쪽). 몽트가트 해안절벽(오른쪽)]
“허슙. 오늘은 저기 해안절벽에 가서 하루 쉬었다 가자. 몽드가트 항구가 한눈에 들어올지도 몰라. 좋지?”
-끄덕끄덕
둘은 함께 몽드가트 해안 절벽을 향해 걷는다.
한참 만에 폴이 돌아와 벤게로스를 찾는다.
“저기 드리글스님 이뎐이 안 보입니다.”
“워워워”
마차를 급히 멈춰 세운다.
“설마 저희를 놓친 건가요?”
마차 끝 쪽을 향해 걸어와 정찰병에게 묻는다.
“어찌 된 일이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마차 옆에서 걷느라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지금 할 소린 가요!”
드리글스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저어기서 벌써 전에 갔어요.”
치코가 말했다. 노부부 중 여자가,
“원래 가기로 했던 거 아닙니까? 갈림길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던데···.”
드리글스를 포함해 모두가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인사라도 하고 가지···.’
“확실합니까?”
개럿이 재차 되묻는다.
“네.”
노부부가 동시에 대답을 했고, 치코도 뒤이어 다시 대답을 한다.
“이만 가시지요. 더 늦기 전에”
개럿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그들은 걸어 해가지기 전 첫 번째 마을 베네피네 입구에 당도한다. 첫 번째 마을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폴은 그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을 느낀다.
마을 입구를 지나쳐 좀 더 들어간 폴. 길 위에 걸어 다니는 용병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칼과 복장은 화려했고 모습에선 강인함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봐 왔던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것 같아! 분명’
폴은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멋지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마다 저녁 손님을 붙잡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자자 어서 오세요. 오늘은 불에 구운 계단 뿔 사슴고기와 오랫동안 쪄서 맛있는 왕 벌레 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서들 오세요!”
---------
한 마리의 철조 형상이 멀리 벤게로스를 보고는 빠르게 날아 어디론가 사라진다.
“뭐라고?”
모트멜즈가 벤게로스가 베네피네로 오지 않은 사실을 듣고는.
“내가 가면 되지.”
이미 베네피네에 와서 머물고 있는 그녀는 오늘 밤 열 명 정도의 힘을 뺏어 벤게로스와 허슙을 죽이러 갈 계획을 세운다.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 전단지는 베네피네에는 없다.
“여기에 온통 ‘원 데이 헥스’ 들 뿐이야. 나를 왜 여기로 보냈는지 알겠어.”
모트멜즈는 거울을 통해 젊고 예뻐진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기다려 꼬마 허수아비야. 내가 곧 너에게 갈 테니”
- 작가의말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