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날개, 오징어 만찬

몽드가트 해안 절벽 가까이 와서 주변을 살핀다. 생각보다 주변에 나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허슙 여기 있어. 가서 불 피울 잔가지를 모아 올게”
벤게로스가 지나쳐 왔던 나무가 많았던 곳으로 서둘러간다. 멀리 노을 진 바다를 바라보고 선 허슙이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고 날개를 펼친다. 얼굴 가까이 자신의 날개 당겨 구석구석을 흩어본다. 아주 흡족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형태의 신 아쿠르데메스. 그가 오직 황토로만 만들어진 항아리를 꺼낸다. 뚜껑을 열고,
[버드나무 잎과 줄기]
[닭의 뼈]
[말린 초록색 무화과 열매]
[과일박쥐의 날개]
재료를 찾아 넣고 후, 아쿠르데메스 두 손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듯 가린 후 고개만 돌려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간다.
“오래간만에 하려니 힘이 드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허슙이 그를 바라본다.
“예전엔 이 책을 다 외웠었는데 요즘엔 보고 또 봐도 자꾸 잊어버려 하하”
그렇게 말을 하며 책을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그가 나무뿌리를 이용해 뒤쪽 땅을 파고선 작은 유리로 만든 호리병 병 두 개를 땅에서 꺼낸다.
[하얀 안개]가 담긴 유리병과[태양의 모래 알갱이] 가 담긴 가루를 항아리 속으로 쏟아붓고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우
항아리에서 사람 입을 닮은 주둥이가 생기더니 쉴 새 없이 뜨거운 증기를 뿜어낸다. 그들이 있는 공간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 주둥이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뚜껑이 한번 달그락하더니 잠잠해 졌다.
“다 되었나 보다. 빠르지?”
허슙은 그것을 받아들고 한 번에 들이켰던 그때 기억이 나는지 어깨를 치켜 올리며 고개를 부르르 떤다. 효능에 비해 맛은 좋지 못했던 것이다. 맛과 달리 나무와 풀로 만들어진 자신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던 그때를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등이 간질간질. 허슙의 짧은 팔이 등에 닿지 않아 괴로워했던, 하지만 그것 또한 잠시였었다.
-뿌드득
앙상한 나뭇가지같이 날개 뼈만 먼저 등에서 나오더니 양쪽으로 쫘-악 펼쳐졌다. 잠깐의 실망이 무색하게 수 천 만개의 푸른 점들이 막을 이루며 뼈 주변으로 촘촘히 박히며 달라붙더니, 마침내 그 점들은 아름다운 푸른빛 날개를 완성시켰다.
[너의 날개를 보아 물의 속성을 지녔구나].
그 말을 떠올렸나. 벼랑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던 허슙이 무심하게 벼랑 아래로 몸을 던진다.
쫘-악
붉은 노을을 품은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를, 장애물 없이 탁 트인 바다를 자유롭게 날아간다.
절벽 빈 공터에 나무를 잔뜩 모아들고 나타난 벤게로스가,
“허슙”
을 불러본다.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네.’
바닥에 한 아름 들고 온 나뭇가지를 던지듯 내려놓고 멀리 노을을 바라본다. 발 아래
바닥. 외로이 나뒹굴고 있는 허슙의 망토를 집어 먼지를 털고 자신의 후드 속으로 넣는다.
‘산에서 보던 노을과는 또 다르다’
노을을 등지고 육지 저 멀리서 갈까마귀 떼가 우는 걸까. 까마귀 우는소리가 들려온다. 바다 위 노을을 한동안 넋을 놓고 보고 섰다.
[밤]
염소는 키 작은 소나무 아래 앉았다. 졸음이 오는지 두 눈을 감고 있다.
-꼬르르.
배가 고픈 벤게로스는 바닥에 누워 별을 보며 배고픔을 잊으려 노력한다.
‘음식 좀 챙겨 오는 건데.’
여관을 떠나오기 전 마차에 실었던 감자와 계란이 눈앞에 떠오른다.
이 시각.
벤게로스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푸른 날개의 강한 힘을 느끼며 자신의 비행에 심취해 있다. 날수 있다는 것은 허슙에게 신나고 즐거운 일인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의 몸 아래 가까이 난데없이 멸치 떼가 보인다. 허슙의 눈이 멸치가 아닌 저 아래 오징어에게 가서 멈춘다.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짠 기가 가득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닥불 옆에서 두 눈을 감고 잠에 살며시 빠져있는 그때, 몇 개의 물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비다!’
서둘러 눈을 떠 몸을 일으킨 그때 허슙이 오징어를 잔뜩 물고, 들고 공중에서 날고 있다.
“허슙!”
허슙이 들고 있는 오징어는 일부분, 언제 그렇게 많이 잡아 왔던 건지 벌써 절벽 위에는 열 마리는 족히 넘어 보이는 오징어가 가득했다.
멀쩡한 나뭇가지를 골라 이반과 이안 그들이 챙겨준 작은 칼로 나무껍질을 벗긴다.
-뿌직
허슙은 날것 그대로 오징어가 쏘는 먹물과 물을 맞으며 오징어 몸통을 잡고 질긴 다리를 씹어 먹고 있다. 그 모습이 벤게로스 눈에 우습고 귀엽게 보였다.
“허슙, 이리 가져와 구워줄게”
먹던 것은 그대로 입에 물고 자신의 몫으로 챙겨둔 오징어를 벤게로스에게 가져간다. 잘 벗겨진 나뭇가지에 오징어를 꽂고 땅에 박는다. 나뭇가지를 비스듬히 불 가까이 기울이고는 익기를 기다리는데 배가 너무 고픈 벤게로스의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익어가는 오징어의 향이 인내심을 자극한다. 벤게로스가 노르스름 익은 오징어 하나를 들고 후후 불며 먹는다.
-화들짝
허슙이 생으로 먹고 있던 오징어를 급히 땅으로 떨어트린다. 다리 사이 오징어의 단단한 이빨이 허슙의 손을 물었던 것이다.
팍팍팍
미친 허수아비가 달이 뜬 밤, 절벽 위에서 날뛰고 있다. 오징어를 응징하듯 미친 듯이 죽어라 밝고 또 밝는다. 오징어의 모습은 흐물흐물해져 흙이 잔뜩 묻고서야 끝이 났다.
-휙
먹지 않고 절벽 아래로 오징어를 던져버리고는 불앞에 익은 오징어를 집어 들고 거침없이 먹는다.
‘성질도 참······저녀석 뜨겁지도 않나 보군’
“너 날개 어디 갔어? 숨긴 거야?”
날개는 어느 순간 몸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있다. 벤게로스는 조금 전 봤던 허슙의 날개를 보고 잠깐 ‘설마 이 녀석 혹시 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뒤늦게 박쥐를 떠올리며 생각은 마무리되었다.
“아- 배부르다.”
만족한 듯 자신의 배를 두 번 두드리고는 달이 뜬 하늘을 보고 돌아눕는다. 허슙도 곁에 오징어를 들고 와서 앉는다. 허슙을 보고 다시 일어나 앉는 벤게로스가,
“이제 어쩌지? 아직 두 달은 있어야 배를 탈수 있어.”
[질겅질겅]
“그래 내가 너한테 물어 뭘 얻고자 할까 하하. 우리 여기서 두 달만 더 살까? 네가 매일 잡아다 주는 오징어 먹으면서?”
괜찮은 생각이다 생각한다. 아직까지 세상 밖에 나와 험한 일을 겪어 보지 않은 벤게로스는 이 순간 자신의 앞날은 꽤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달이 흘러오는 구름에 살짝 가려지다 다시 내밀기를 반복.
둘은 오랫동안 은빛 바다를 보며 함께 앉아있다. 바닷바람은 잦아지고 뜨문뜨문 들려오는 풀벌레 우는소리를 들으며 허슙은 벤게로스 다리 위에서 잠이 든다. 허슙 편히 잘 수 있게 자세를 고쳐준다. 달빛이 번진 바다를 보며,
‘아버지는, 위쇼 형은 잘 지낼까?’
성에서의 일과를 떠올려 본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말 타는 것을 배우고, 간단한 마법을 익히고, 책을 읽고···. 넓은 바다를 보며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잠깐은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잠시였다. 자신을 아들처럼 돌보아준 이안과 이반을 뒤늦게 생각하며,
‘흣. 나도 참 나쁘다. 그분들 생각은 하지도 않고···’
시간이 넘쳐나서 그럴까? 깨어 있는 지금 이 순간 잡다한 생각들이 파도처럼 다가와 머릿속으로 밀려왔다 쓸고 가곤 한다.
‘앞으로 두 달, 나는 열일곱 살이 되고···배를 탈 수 있게 된다.’
‘십육 세나 십칠 세. 뭐가 다르단 말인가?’
벤게로스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꿈틀꿈틀.
자는 허슙의 작은 등을 토닥여 준다. 처음 베네피네로 떠나올 때 영혼은 사라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던 처음 만든 허수아비. 두 노인 집에 맡겨 두고 왔었다. 갑자기 그 허수아비에 가서 생각이 머문다. 고개를 숙여 잠든 허슙을 내려다보며,
‘너는 왜 계속 살아 있는 거지? 몸에 어떤 혼이 들어 간 거야?’
예전에도 물었던 질문. 질문과 동시에 생각은 이상한 쪽으로 급물살을 타더니 곤히 자는 허슙이 거대 지네처럼 괴물이 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대로, 다 잘 될 거야.’
벤게로스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으며 큰 돌과 잔잔한 돌을 손으로 치우고 쓸며 자신의 잠자리를 살피고 눕는다. 오징어가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가 고파온다.
더 배가 고프기 전에 잠이 들어야 겠다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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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월의 아침 해는 아직 모습을 들어내기 엔 이른 시각.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트려는지 옅은 푸른빛이 하늘에 감돈다. 둘이 잠이 든 절벽 위로 모트멜즈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다. 스무 살의 여자.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미(美)야 말로 신이 주신 진정한 무기, 최고의 권력이 아닐까?
사람의 외모와 몸의 아름다움은 모든 이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 같은 것.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되느니라]
인간 중에 깨우쳤다 하는 그들이 세상에서 늘 이런 말을 가르치려 들지 않던가? 그러나 아름다운 것에 쉽게 현혹되게 만들어진 인간을 탓할까? 아름다운 것을 쫓는 것이 죄가 될까?
지난밤. 열 명이 넘는 사내가 모트멜즈에게 기가 빨려 죽었다.
모트멜즈의 아름다운 그 모습은 다른 여자들을, 그보다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데 미끼로 쓰기 아주 딱 좋았던 것이다. 모트멜즈가 남자였다면 여자들을 사로잡기에 딱 이지 않았을까?
[미끼를 물어야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일까?]
사람 사는 곳에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모트멜즈가 하늘에 대고 손짓한다. 철조 형상 두 마리가 재빠르게 하강하며 내려와 들고 있던 창으로 벤게로스를 동시에 찌르려는데 그때.
잠들어 있던 허슙이 벤게로스 가슴 위에서 두 개의 창을 잡고 막아섰다.
[너희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이지.]
창 끝을 가볍게 꾸부리고는 뺏어 던진다. 허슙이 자신의 푸른 날개를 꺼내어 날아오른다. 긴 목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날개를 펄럭이고 있던 철조 형상이 허슙의 뒤를 따라 구름 위 하늘높이 날아오른다.
늦게 잠이 들어 아직 깨어나지 못한 벤게로스. 모트멜즈가 벤게로스에게 다가간다.
-응헤에에에
당나귀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염소 비슷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모트멜즈는 발길을 돌려 당나귀에 다가가 목을 잡고 쉽게 비틀어 버린다. 땅에 맥없이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던 당나귀는 이내 숨을 거두고.
모트멜즈 그녀가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더럽다는 듯 두 손을 털어버린다.
잠든 벤게로스의 몸에 두 다리를 벌리고 살포시 앉는다. 벤게로스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듯 조금씩 힘을 가하며 누른다.
-콜로 콜록.
잠결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고 발버둥을 치며 힘겹게 눈을 뜨는데.
“죽어줘야겠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벤게로스의 두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누구···크억”
얼굴에 혈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자 급히 벤게로스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 작가의말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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