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還)-막내

돛을 단 [황금 송충이 호]범선(캐럭)은 몽드가트 항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배 위에서 멀어져 가는 해안가를 바라보는 벤게로스의 심정은 복잡했다. 그 복잡한 마음에 약간의 흥분도 함께였다. 자신이 배를 타고 육지와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끼룩-끼룩
하얀 배를 보이며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갈매기들. 그 갈매기를 보며 깊은 숨을 내쉰다. 자신을 얽매고 있던 무거운 운명의 쇠사슬이.
-짱 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육지가 멀어질수록 마음은 편안해져 간다.
‘다신 돌아오지 않겠어!’
그는 완전히 이곳을 잊으리라 생각을 하며 작아져 가는 몽드가트 마을과 하얀 탑에 시선을 두고 한참을 서있다.
“뭐해!”
벤게로스 뒤에서 덩치가 큰 코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가까이 다가온 코오가,
“그래 배를 타는 건 처음이라고?”
“네”
“걱정이군. 자네와 함께 탄 다른 사람 셋은 배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규칙 외엔 더 알려줄게 없어.”
벤게로스의 복장을 보고,
“그런 멋쟁이 옷은 여기선 쓸모없어. 편하게 입어. 바다에서 그런 옷을 입는 사람은 선장 한 명이면 충분해(웃음) 그래 이름은?”
“······.”
“이름 하나 말하는데 뭘 그리 꾸물거리나”
“그냥 벤이라 불러주세요”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벤게로스에게 덩치와 어울리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벤. 잘 듣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행동이 느려서도 안 되고 눈치도 빨라야 해. 아무튼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듣게. 배 생활? 그거 버티면 익숙해져, 하지만 배 사람들과 잘 섞여서 지내기는 어려운 법. 뭐 육지라고 다르진 않겠지만 말이야.”
단체 생활을 해온 벤게로스는 그 말뜻을 잘 이해했다.
“여긴 육지와 달라. 배 주변으로 아무것도 없지. 꽉 막힌 또 다른 세상이라 생각하면 편해. 명심해. 그냥 묵묵히 자네 할 일 하면서 본 것도 못 본 척, 들은 것도 못 들은 척, 그렇게 그냥 있어. 그렇게 지내면 큰일은 없을 걸세.”
벤게로스를 데려다 곳곳의 선원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막 육지를 출발한 배의 분위기는 좋았다. 날씨도 쾌청하고.
“우리 배에서 제일 막내가 되는 건가? 하하, 그래 이름이 뭐야?”
“벤이야. 벤이라 불러”
코오가 대신 대답했다. 또 다른 선원이 밧줄을 정리하고 있는 민머리의 자르마의 뒤통수를 갈기며,
“이젠 밤에 잘 자겠어!”
배에 선원은 많지 않았다. 벤게로스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 마지막으로 코오가 데려간 곳은 주방이었다. 세 명의 남자가 분주히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저기 주방장. 새로 들어온 막내 벤이네”
주방장이라는 남자 콜르븐. 심하게 마른 체형에 머리와 눈썹이 희끈희끈. 나이는 오십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머리숱은 마른 몸과 다르게 풍성하다. 뒤 쪽으로 깔끔하게 묶었다.
-힐끔.
인사도 반응도 없다. 다른 선원 두 명도 반응이 시원찮다.
“다들 인사 좀 해.”
두 명의 남자들은 주방장의 눈치를 보는지 말이 없다. 벤을 보고 고개만 까딱한 후, 일에 집중한다. 채소를 써는 둘의 손은 분주하다. 주방장 콜르븐이,
“거 보니 얼마 못 가서 내릴 사람. 뭣 하러 힘 빼며 소개시키나?”
“거참, 사람 무안하게 식사나 맛나게 준비해 주십시오. 우린 이만 갑니다.”
벤을 데리고 서둘러 나오는 코오는,
“기분 상해 말게. 저 주방장이란 사람 원래 그래. 말수도 없고. 그냥 뭐 앞으로 크게 부딪힐 일도 없으니 됐고, (혼잣말로) 선장은 따로 안 만나 봐도 되려나?”
망설이며 고민한다. 새로 들어온 세 명은 제외하고 코오는 벤만을 데리고 선장실로 향한다.
-똑똑똑.
“들어오게”
선장의방은 낮인 밖과 달리 어두웠다. 책상 위 램프가 전부. 선장의 옷에 송충이는 보이지 않는다.
“선장님.”
코오는 자신이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듯 우물쭈물 서있다. 선장은,
“그래. 유칼이 자네를 잡으려는 이유가 뭔가?”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벤의 모습을 보며.
“훗”
그냥 웃어버린다. 선장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날렵한 턱 선은 꼭 그의 성격과 닮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무슨 일을 맡기기로 했나?”
“가축 돌보는 일을 맡겨볼까 합니다”
“음. ···나쁘지 않군.”
[나를 불에 던져 줘!]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움찔하는 벤게로스. 검은색이던 송충이가 모습을 들어내며 선장의 망토를 기어 올라가더니 선장 왼쪽 어깨에 자리를 잡고 몸통 절반을 들어 꿈틀꿈틀 댄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 나를 불에 넣어줘]
아무도 듣지 못하는. 선장조차 송충이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걸 모르는 벤게로스는,
“저기···저”
벤이 송충이를 가리키자 코오가,
“왜 그러나?”
“저기 저 송충이가···”
벤의 팔을 강제로 끌어내리며,
“송충이 처음 보나(하하). 저건 선장님이 데리고 다니는 송충이라네.”
표정 변화 없이 선장은,
“규칙은 다 알려 주었나?”
“네. 선원들에게 인사도 시키고 다 했습니다.”
“좋아. 이만 나가보게”
선장 방을 나오며 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코오.
“벤. 송충이에게 관심을 갖지 말게. 선장이 싫어해”
선장실을 나온 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들 듣지 못하는 거야? 선장도?’
“자네 듣고 있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닙니다.”
“잘 듣게. 여기 규칙은 간단해.”
[맡은 일은 책임을 다한다]
[싸우지 말 것]
[여자는 태우지 않는다]
“그리고 끝으로 이건 선원들끼리 규칙”
“막내는 식사를 가장 마지막에 하고, 밤 자정부터 해가 뜰 때까지 보초를 서네.”
벤게로스는 삼각돛이 달린 머리 부분을 바란 본다.
“거기가 아냐, 저기 저 가운데 가장 큰 기둥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야하네”
벤게로스는 고개를 들어 기둥을 쳐다본다.
“자네 당장 오늘 밤부터 저 위에서 지내야 될 걸세. 밤에 배 주변 감시를 해야 하거든.”
벤게로스는 속이 울렁거려 오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뱃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이런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저 위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쩝. 알아두게 저녁밥은 적게 먹고 술은 입에도 대지 말게.”
코오는 벤의 어깨를 두 어 번 토닥인 후 빠르게 선장실 가까이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벤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보초를 서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퍽퍽퍽
오늘도 배 가장 깊은 아래 칸에서 사정없는 발길질을 당하는 벤. 자신의 머리를 두 팔로 감사며 버티고 있다. 민머리 자르마와 다른 동료 두 명은 첫날보다 발에 힘이 더 실려 있다.
“이럴 거면 배를 왜 탄 거야?”
멀미로 인해 적응을 하지 못하던 벤. 잘 먹지도 자는 일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 민머리 자르마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일행과 함께 결국 벤을 폭행하고만 것이다. 벤은 날로 말라갔고 얼굴과 몸엔 멍이 가시는 날이 없었다. 푸른 멍이 노랗게 나으려면 다시 폭력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돼지 밥을 챙겨 먹이고 닭에게 사료를 준 후, 수통을 들고 처음으로 해가 진 저녁 그는 갑판 위로 나왔다. 민머리 자르마. 그가 기둥을 오르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이 보인다. 그런 자르마를 피해 기둥에 박아둔 나무를 밝고 벤이 기어 올라간다.
암막 천이 달린 작은 창. 암막 천을 재끼고 밖을 내다보는 선장.
‘훗. 보기와 다르게 고집 있군.’
선장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벤의 처지를 알지만 모른 척 눈을 감은 것이다. 그것은 선원들과의 약속 같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다.
배 아래.
모두가 럼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데 민머리 자르마가 들어오자 자르마를 향해,
“왜 돌아와?”
“그··· 녀석이 올라갔어요.”
[하하 하하 핫] 모두가 웃는다.
“녀석 비실비실해 보이던데 버텨내는군. 그 위에서 떨어져 죽지 않으면 다행이고.”
다시 선원들은 럼주를 마신다.
“보기보다 벤 그 자식 대단한데?”
다른 선원 하나가 놀리듯,
“그래 이제 그 발은 쓸모가 없어져 어쩌누? 하하핫”
벤을 밝는데 쓰던 다리를 비꼬며 놀렸던 것이다. 자르마는 내미는 술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자리로 가서 눕는다.
‘재수 없는 새끼!’
밤은 깊어가고 하나 둘 만취해 나가 떨어져 갈 때쯤. 앉아있던 코오가 일어나 갑판 위로 나간다. 살집보다 근육이 더 있는 체형으로 덩치와 다르게 맘은 여린 그가 저 멀리 벤을 향해.
“베엔-밤엔 멀미가 덜 할 거야. 어지럼증이 그거 말이야(딸꾹) 눈 때문에 발생하는 거거든. 멀리 봐 멀리. 어지러울 땐 저 수평선 멀리, 그 끝을 봐.”
벤을 대견하게 생각하며 코오는 몸을 비틀비틀하며 배 아래로 다시 돌아들어갔다.
바다는 잔잔하고, 옅은 바람. 조각조각 구름 사이 다이아몬드를 쏟아부어놓은 것 같은 별들. 배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벤의 속이 뻥 뚫리듯 상쾌했다. 예전에 산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 벤은 혼자 앉아있는 지금 이 위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진작 올라올 걸 그랬나.’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기둥에 밧줄을 걸고 그 밧줄을 배에 감는다. 고요한 바다와 하늘. 그 모든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배를 탄지도 곧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황금 송충이 호]는 무사히 첫 번째 장소 작은 섬나라 ‘퐁퐁’으로 향하고 있다.
가끔 자르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었지만 벤게로스는 잘 적응하며 맡은 일을 해냈다. 배 사람들은 낮에는 각자의 일을 하고 밤에는 늘 술을 먹으며 놀았다.
저녁 시간.
주방에서 저녁 대신 기둥 위에서 먹을 빵과 육포를 챙겨 나가는 벤에게 주방장 콜르븐이 다가오며,
“춥지 않은가?”
“네. 괜찮습니다.”
“···기다려 보게”
주방장 콜르븐은 구석에서 뭔가를 힘들게 꺼내었다. 작은 나무통에 담긴 그것은 꿀이었다.
“가져가 먹게.”
“아닙니다.”
“받아!”
벤은 받아들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돌아서려던 벤에게.
“그건 보통 꿀이 아니야. 아주 귀한거지. 가브브스섬에 칼리오페벌새가 있는데 그 새가 뱉어낸 꿀이야. 기력 회복에 탁월하지. 가져가 먹게.”
“감사합니다.”
주방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을 묵묵히 일을 한다. 벤은 꿀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챙긴 음식을 싼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기둥을 오른다.
며칠간 심한 폭우가 쏟아졌고 저녁이 되면서 비는 멎었다. 선장은 밖으로 나와 선원들을 보고 서있었다. 노을을 보며 갑판 위를 청소를 하는 선원들. 그들의 표정이 갠 하늘같이 밝다.
그때! 귀를 때리는 소리. 그 소리가 벤의 귀에 날아와 꽂힌다. 뇌를 흔드는 찢어지는 듯한 소음.
[피애애애애-피애애애애]
멀뚱히 서 있는 선원들 사이로 벤 혼자 두 귀를 막고,
“으···윽···”
나무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괴로워한다. 격하게 몸부림치던 벤이 귀를 막고서 고개를 튼다.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선장을 쳐다보며.
“그만해!”
악을 쓰며 외친다.
선장 왼쪽 어깨 위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며 소리를 지르던 송충이는 입을 다문다. 멈춰진 소리에 벤은 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아-하아-.”
빨라진 숨을 고르며 바로선 벤.
배 위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벤을 향하고 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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