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게임 프로그래머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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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ch
작품등록일 :
2022.05.1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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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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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9시 30분에 출근했다. 그리고 어제 만든 MiniAnimator를 테스트했다. MiniAniamtor 툴은 문제없이 잘 작동했다.

9시 50분이 되자 민희 씨의 메신져가 온라인 상태가 됐다. 그래서 나는 툴 파일을 민희 씨에게 메신져로 보내두고 4층으로 올라갔다.


“민희 씨 파일 받아 봤어요?”

“네. 지금 압축 풀고 있어요. 이게 뭐예요?”

“어제 민희 씨가 물어본 거예요. 그걸 그냥 툴로 만들었어요.”


나는 간이 의자를 가져와 민희 씨 옆에 두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아···?”

“MiniAnimator 툴 실행시켜보세요.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드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툴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다행히 그녀는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고마워요 진수 씨! 역시 진수 씨는 짱이에요!”

“테스트 말고 실제로 한번 써보세요.”


나는 민희 씨 옆자리에 계속 앉아서 그녀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툴이든 게임이든 코딩의 결과물은 누군가가 이용하라고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장공건설 시절 근육맨 실장님을 위해 만들었던 월급 계산기를 만들 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프로그램은 제작자인 내가 아니라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는지 체크는 필수라는 것이다.

역시나 사용자인 민희 씨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툴을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녀는 파일이 아닌 폴더를 통째로 툴에 등록하려고 했다.


“왜 파일이 아니라 폴더를 통째로 넣으려고 해요?”

“저는 애니메이션별로 폴더를 정리해두고 있어서, 폴더 안에 있는 이미지 파일이 한 번에 다 등록되나 해봤어요. 이렇게 쓰면 안 될까요?”

“안될 거 없죠. 민희 씨가 그렇게 쓰고 싶으면 툴 기능을 그렇게 바꾸면 돼요. 잠시만요.”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폴더를 툴에 바로 넣을 수 있게 작업했다. 파일이 아닌 폴더를 툴에 등록하면, 그 폴더에 있는 이미지 파일들을 이름순으로 정렬해서 모든 이미지를 한 번에 등록시키게 기능을 추가했다.

그리고 민희 씨에게 다시 파일을 보내고, 다시 민희 씨가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민희 씨 이제 폴더도 등록될 거예요. 다시 한번 해보세요.”

“저는 진수 씨가 잠시만요 라고 말 하면 설레요.”

“왜요??”

“진수 씨가 잠시만요 라고 말하면 항상 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거든요. 미믹게임즈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네요. 히히”


나는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재빨리 3층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오늘은 기획 파트에서 들어온 요청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SVN 로그를 훑어봤는데, 커밋되는 코드가 별로 없어서 볼 로그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딱히 더 할만한 것을 떠올리다가 민희 씨에게 만들어 준 MiniAnimator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4층으로 올라갔다.


민희 씨는 나를 보자 가지런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진수 씨 4층엔 웬일이세요?”

“MiniAnimator 툴에 문제는 없나 하고 보러왔어요.”

“저는 아주 잘 쓰고 있어요! 저 말고 다른 디자이너 분들 한테도 공유해줘서 저희 팀원들도 모두 다 잘 쓰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혹시 더 개선했으면 하는 것들 있나요?”


그때 뒤에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트 팀 팀장인 임아린 팀장님이 나와 민희 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진수 씨? 요즘 4층에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에요?”

“아···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건 없고, 또 민희 씨 보러 온 거에요?”


내가 당황해하자 민희 씨가 나 대신 말했다.

“아니에요 팀장님. 진수 씨가 전에 만들어 준 툴 문제없나 한번 보러 온 거에요.”

“아~ 그 민희 씨 이름 따서 만든 MiniAnimator요?”


내가 대답했다.

“민희 씨 이름을 딴 것은 아니고··· 그냥 기능이 단순해서 Mini라고···”

“호호호 괜찮아요. 둘 다 청춘인데 이해해요.”


민희 씨가 대답했다.

“진수 씨라면 진짜 제 이름 딴거 아닐거에요···”

“이름이야 뭐라고 짓든 상관없어요. 그나저나 그 툴 저희 팀원들 모두 잘 쓰고 있어요. 고맙단 말도 못 했네요.”

“아닙니다. 생각보다 만들기 간단한 툴이에요.”

“에이~ 겸손은~ 진수 씨가 민희 씨한테 툴 만들어 줬다고 민희 씨가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프로그래머 친구 없는 사람은 서운해서 살겠어요?”

“혹시 임 팀장님도 필요한 프로그램 있으면 말씀하세요.”

“어머~ 정말요?”

“네. 지금 딱히 바쁠 때가 아니라서 시간 날 때마다 주변에 도움 될만한 툴 만들고 있어요.”

“보통 프로그래머들은 툴 만들어 달라고 하면 싫어하던데? 진수 씨는 특이하네요?”

“왜 툴 작업을 싫어하죠? 툴만큼 사용자의 반응이 빠르게 오는 것도 없는데··· 툴 만들고 사람들이 그 툴을 잘 사용하면 보람 있잖아요. 그런데 왜 싫어해요?”

“역시. 민희 씨가 평소에 진수 씨 칭찬을 달고 사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 그 성실한 모습 마음에 들어요.”


갑작스러운 칭찬이었다. 임아린 팀장님이 말을 이었다.

“그럼 아트 팀에서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혹시 괜찮으면 좀 봐줄래요?”

“네. 지금 시간 괜찮습니다. 무얼 봐드리면 될까요?”


나는 그렇게 4층 디자이너분들에게도 툴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주로 아트 팀에서 사용하는 툴에 대한 편의성 위주의 보조 기능들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남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은 장공건설 시절의 월급 계산기였다. 그 월급 계산기로 인해 근육맨 실장님은 조금이나마 야근을 덜 할 수 있게 되었고, 근육맨 실장님이 내가 미믹게임즈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나는 툴의 소홀히 생각하지 않는다.

스킬 외에 다른 클라이언트 개발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내 툴로 인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 그래서 나름 만족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기획파트와 여러 스킬들을 개선하고 아트 팀의 여러 가지 툴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프로그래밍 관련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간혹 이원하 대리님과 민희 씨를 만나 술을 마셨다. 다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잘 지내는 동안 원래 여름쯤 오픈하겠다던 우리 팀의 프로젝트 일정은 어영부영하면서 계속 미뤄졌다.

그러던 가을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팀 주간 회의 날이다.

각자의 주간 보고가 끝난 후 팀장님이 공지가 있었다.


“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팀장님을 주목했다.

“저희 게임 사내 테스트 날짜가 잡혔습니다. 여기서 결과가 좋으면, 실제 유저를 대상으로 CBT(Close Beta Test)를 진행합니다.”


사내 테스트란 우리가 만든 게임을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만 오픈해서 테스트하는 것을 말한다.

CBT란 실제 게임이 오픈하기 전, 일부 유저에게 게임을 먼저 오픈해서 유저의 반응이나 게임의 문제 등을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다. 일반적으로 CBT를 한다는 것은 게임이 곧 오픈한다는 뜻이다.


메롱님이 물었다.

“사내 테스트는 언젠가요?”

“네, 이미 서버팀이랑 클라이언트 쪽에서 준비는 대부분 끝냈고, 이제 사내 개발망이 아닌 모바일 환경에서도 접속할 수 있도록 세팅만 하면 됩니다.”


팀장님의 약간의 동문서답. 그리고 재차 질문하는 메롱님.

“그래서 언제 해요?”


“이번 주까지 서버 세팅 끝나고 다음 주 월요일에 시작합니다.”

서버 파트장님과 클라이언트 파트장님은 준비에 문제가 없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반년 만에 다시 클라이언트 오전 티타임에 참석했다. 여전히 이들은 낚시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낚시가 아니었다.


“파트장님 아까 팀장님 얘길 들어 보니 모바일에서 게임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서버를 세팅한다고 하셨는데··· 저희 게임 모바일로 빌드해 본 적은 있나요? 여태까지 PC 환경으로만 테스트해봤잖아요.”


어제 본 낚시 예능프로그램에 대해서 깔깔대며 떠들던 이영식 파트장님이 대답했다.

“네. 당연하죠. 태훈 님이 지난주 내내 테스트해봤어요.”


나는 태훈 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 핸드폰에도 설치해볼 수 있을까요?”


신입이나 다름없는 클라이언트 2년 차 개발자 김태훈 님이 말했다.

“지금은 안 돼요.”

“네??”

“지난주에는 설치해서 다 테스트해봤어요. 근데 지금은 안 돼요.”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원인은 파악됐나요?”

“아니요. 아직 왜 안 되는지 모르는데, 제가 오늘 수정할 거예요.”


나는 클라이언트 파트가 너무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시 낚시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내가 대화를 막았다.


“당장 다음 주 테스트인데, 모바일 환경에서 설치도 안 되면··· 다음 주 테스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이영식 파트장이 태훈 님을 감싸듯이 말했다. 아니면 나를 비꼬았던가.


“지난주에 태훈 님 스마트폰으로 다 테스트 해봤다잖아요. 아마 옵션 몇 개만 바꾸면 다시 잘 될 거예요.”

“아니요··· 그래도 모바일 환경은 제조사마다 그리고 OS 버전마다 실행 환경이 많이 달라서, 태훈 님 스마트폰 하나로만 테스트한 거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진수 님. 진수 님만 모바일 게임 출시해본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스킬 쪽이나 문제없게 준비하세요.”


그의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니 나는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SVN 로그를 관찰한 결과 모바일 빌드를 위한 준비를 하는 듯해 보이긴 했지만, 출시 준비는 모바일 출시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에 가까운 태훈 님 혼자 준비할 만큼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완강한 파트장님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도 남은 이틀 동안 내가 맡은 부분에서 사내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타티임 중간에 일어나 내 자리로 왔다. 그리고 내 스킬 코드를 훑었다.

우선 메롱님을 위해 만들어 둔 플레이 중 사용되는 개발용 치트키와 성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는 데미지 로그들을 Editor 환경 즉, 개발할 때만 사용할 수 있게 바꾸었다. 사내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이게 게임 출시에 필요한 첫걸음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틀 동안 이 스킬 저 스킬 써가며 테스트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팀은 왜 QA 파트가 없을까? 큰 회사는 모두 QA 조직이 별도로 있던데.

나는 이렇게 메모했다.


“QA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게임의 퀄리티뿐 아니라 팀의 전체적인 효율도 함께 올라간다.’’


사내 테스트 전 주 금요일 오전.

다행히 모바일용 빌드는 나왔고, 정상적으로 스마트폰에 설치가 됐다. 내 기우로 인해 괜히 태훈 님을 얕잡아 본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그 미안함도 잠시였다. 게임이 설치는 됐지만 간헐적으로 로그인이 안됐고, 운 좋게 로그인이 됐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확률로 서버에서 튕겼다.

팀장님은 서버 파트와 클라이언트 파트 모두를 소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팀 전체에게 화를 냈다.


“당장 다음 주에 사내 테스트인데, 로그인도 안 되면 어떡합니까? 이거 오늘 내로 못 고치면 전체 주말에 출근할 각오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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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주영과 최적화 1 +1 22.06.16 295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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