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와4사이월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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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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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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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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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5. 내 옆에 계속 있어

DUMMY

어둠이 방울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땅에 부딪힌 큼직한 방울들은 산산이 부서지며 불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투둑


때늦은 비처럼 덧없이 내리는 어둠이었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둠이 제 몸에 떨어져 내릴 때까지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마음 속 일말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지독한 집착이었으며.

고요한 침탈이었다.


"끄아아악!"


어둠에 몸이 젖은 누군가의 비명이었다.

고통인지 공포인지 모를 이유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눈물이고 침이고 질질 흐르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그는 주변 동료를 향해 제다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를 보며 직감했다.

이것이 시작이라고.


하나로 시작한 비명은 곧 수십으로, 수십은 곧 이백에 달하는 사람 전체에게로 퍼져나갔다.

잠시 멈췄던 마법이 다시 재현되기 시작하며 혼돈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로를 찌르고 태우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누군가는 목이 잘렸고 누군가는 불에 탔으며 누군가는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이게 무슨 용같은..."


빛의 검에서 흘러 넘치는 힘에 의도치 않게 자신과 쓰러진 듀시아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어둠을 막아낸 넷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광경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뒤늦게 침묵 마법을 펼쳤음에도 작은 용이 흩뿌린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에 젖은 것은 비단 정규군 뿐만이 아니었다.

예고도 없이 내린 어둠에 혁명단 역시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규군 부대와 다르게 반응이 곧바로 오지 않았다.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리긴 했지만 그들은 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 시기, 질투, 공포, 고독 등의 감정들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공포에 먹히지 마라! 분노에 몸을 맡기지 마라!"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오르디나 이레는 자신이 해야할 말을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는 말이었고 동시에 자신을 향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끔찍한 기억들이란 기억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하나로 이어졌다.

연합전에서 잃은 동료들의 죽음의 순간들이 강제로 되살아나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용의 숨결로 녹아내리는 동료들의 몸뚱이가.

고통에 가득찬 그들의 표정이.

그녀 눈에 하나하나 아로새겨졌다.


-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까?

- 이 세상에 이리도 거대한 악을 남기고 방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당신이 만든 세상이 거대한 악에 무너지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 권능자여! 당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내 물음에 답해 보란 말입니다!


비극 속에서 홀로 울부짖는 어린 시절의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 그녀 주위로 당시 그녀가 느꼈던 지독한 분노가 그녀를 집어삼키려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이레가 분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불처럼 끓는 감정 속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어.'


으드득


이를 악문 이레가 다시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파편의 얕은 수에 넘어가지 마라! 기껏해야 우리네 상처를 들쑤시기나 하는 좀생이같은 녀석일 뿐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이보다 훨씬 큰 이니 마음을 담대히 하거라!"

"나보고 좀생이라니. 하여튼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


눈을 깜빡거린 그 짧은 틈에 작은 용은 이미 이레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것의 크게 벌어진 주둥이가 이레의 머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둥이는 끝내 닫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작은 용은 제 주둥이를 다물 수 없었다.


"우리 꼰대 나이 들어서 별로 맛 없으니까 다른 데로 꺼져. 이 빌어먹을 놈아."


이센 부대장이 운동 마법으로 양 손에 힘을 줘 작은 용의 주둥이를 붙들고 있었다.

어둠에 젖어 쓰러졌던 그는 이레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난 참이었다.

그는 주둥이를 붙잡은 상태로 찢어버릴 기세로 두 팔을 벌렸다.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딜람의 성벽 마법으로 힘이 넘치는 상태였다.


으지직


"...! 비겁... 하게."


전조도 없이 맺힌 붉은 광선이 이센의 두 팔을 앗아갔다.

귀찮은 벌레를 쫓든 작은 용이 앞발을 휘적이니 땅에서 바위 가시가 이센의 몸을 꿰뚫기 위해 솟았다.


"적의 공격을 생각을 했어야지. 이 바보같은..."


바위 가시가 그의 몸을 뚫기 직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이레가 힘겹게 짜낸 힘으로 이센을 데리고 작은 용에게서 벗어났다.

곧바로 따라붙는 작은 용.

그런 작은 용 주변으로 불꽃이 솟아 오르며 이레를 향한 추격을 저지하였다.

율레 부대장이었다.


"꼬마들. 다시 올 때까지 죽지말거라."

"뭘 다시 와요. 노인네 그 몸으로 와 봤자 도움도 안돼요."


불길을 가볍게 흩으며 날아드는 작은 용에게 이번에는 이트나가 물줄기를 쏟아냈다.

오히려 불길보다 물줄기가 더 매서웠는지 작은 용이 잠시 주춤거렸다.


"율레 치료사님. 부탁 좀 할게요."

"네."


그러면서도 그는 뵈나 율레 치료사로 하여금 이레 대장을 따라가게 하였다.

죽음의 숲에서 배운 치료 마법은 당장 쓰지 못해도 본래 치료 마법에 뛰어난 자이니 그녀는 뒤에서 부상자를 돌보는 것이 맞았다.


"하..."


한숨을 쉬며 멈춰선 작은 용의 앞발에 새까만 집광체가 맺혔다.

검은 빛이 사방으로 공기처럼 잘게 흩어지자.


쿠우웅


순식간에 무거운 것이 얹힌듯 몸이 무거워졌다.

이센을 안고 날아가던 이레가 도중에 추락하여 떨어진 것은 물론 검은 어둠이 내리는 공간 안에 있는 자들의 몸이 모두 짓눌렸다.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내리누르는 힘을 이겨내며 몸을 일으켰지만 그럴때마다 작은 용은 힘을 더해 모든 사람들을 기어코 바닥에 찍어눌렀다.

이어서 무릎 꿇은 사람들의 머리 바로 위로 붉은색 집광체가 맺혔다.

작은 용이 앞발만 까딱해도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을 판이었다.


불길한 빛을 흩뿌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붉은색의 빛덩이들 아래.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자들은 더 이상 서로를 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 몸을 잠식하는 어둠이 되살리는 기억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비명.

절규.

신음.


그 모든 소리를, 장면을 음미하듯 훑은 작은 용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넷이었다.

모두 쓰러진 와중에 홀로 일어서 있는 넷 말이다.


"옛말의 아이야. 이걸 보렴. 다 너를 믿고 따랐던 자들이야."


빛의 검에서 터져나오는 힘은 비처럼 내리는 어둠도 막아냈을 뿐 아니라 내리누르는 힘 역시 없애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다 죽는 거야. 소감이 어때?"

"그거 앞발 아니었어?"

"... 이 와중에도 농담이 나오나보지?"


일단 태연한척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구석에 몰린 상황이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참상.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듀시아로 인해 잠시 잠깐 망설인 대가가 이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대현자에게 칼을 겨누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달랐을까?


적어도 지금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걸고 도박을 벌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당장 빛의 검을 이용한다면 넷은 작은 용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아마도, 현재 빛의 검에서 흘러 넘치는 힘을 생각하면 벨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 빛의 검을 저것을 베는 데에 써야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작은 용의 마법을 정화시킬 수 있는 빛의 검으로 이 일대를 정화시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맞을까?

시간에 맞춰 모든 사람을 구한다고 장담도 못한다.

설령 구한다고 하더라도 용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며 같은 마법을 두 번 못 쓴다는 보장이 없었다.


득실을 따져보면 어느 모로 보나 사람들을 잃더라도 용을 노리는 것이 맞았다.


그러니까.


칠번대 정규군 대원들.

정규군의 대장 전원.

트리아트 가문.

혁명단.

저기서 어둠의 비는 막았지만 내리 누르는 힘은 막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 딜람과 세슈람.

마지막으로 옆에서 죽어가는 듀시아까지.


이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빛의 검을 용을 죽이는 데에 쓰는 것이 현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라는 뜻이었다.


머리 속에서 이미 수차례 결론을 낸 일임에도 그녀는 차마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 넷. 조용..히. 듣. 기만."


옆에서 쓰러져 있는 듀시아가 그녀를 불렀다.


"한... 번. 가능해."


어느 틈에 준비한 것인지 배를 움켜쥔 그의 손에 집광체가 맺혀있었다.


"꼭... 베."


씨...

속에서 욕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나한테 이런 역할을 맡기는 거야..."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혁명단을 잃고 싶지 않았고.

최근에 사귄 친구들을, 딜람도 세슈람도 잃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으며.

그 누구보다.


"듀시아."


모두에게서 미움을 받으며 살던 삶이다.

그런 그녀에게 그는 제일 처음으로 일어났던 기적이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흐..."

"이 와중에 좋다고 웃음이 나와! 이 멍청아!"


그의 웃음 소리에 넷의 표정이 기어코 허물어졌다.

터져나오는 눈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크크큭. 그래. 그 표정이지."


작은 용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지켜봐. 너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네가 사랑하는 자들이 죽는 것을 말이야!"


지휘를 하듯이, 장난을 치듯이, 작은 용이 앞발을 치켜 들었다.


"지...금!"


듀시아가 집광체가 맺힌 손을 넷에게 뻗었다.

그의 손에 맺힌 환한 빛이 넷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미안 듀시아."


퍼어엉


빛무리를 피해 넷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손에 쥔 빛의 검이 사방으로 퍼져나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쏴아아아


처음으로는 삶을 집어삼키려 몸을 부풀리던 붉은 광선이 사그라들었다.

다음으로는 무겁게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이윽고 몸에 눌어붙은 오물같은 어둠이 녹아 없어졌다.


다행히 그녀의 우려와 달리 사방으로 퍼진 빛의 효과는 즉각적이었고 강력했다.

적어도 작은 용의 숨결로 죽은 이가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다.


검날을 따라 휘돌던 빛무리가 사라진 빛의 검.

넷은 그런 검을 들고 작은 용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멍청한 년! 검은 머리의 말을 들었어야지!"




발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작은 용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흐아아아!"


넷이 휘두른 빛의 검과 작은 용의 발톱이 부딪혔다.


카아앙


무지막지한 작은 용의 힘에 넷이 튕겨져 날아갔다.

빛이 작은 용의 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것은 넷이 날아가는 방향에 나타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어."


넷을 향해 휘둘러지는 발톱이 그녀의 몸을 가르기 직전.


콰과아아아


대지를 거칠게 가르며 솟은 거대한 나무 줄기가 작은 용을 하늘로 날려 버렸다.

세슈람이었다.


아까 열매를 만들어 줄 때 힘을 다 쏟았던 거 아니었어?

넷의 이런 의문은 이트나 학교장을 보고 해소되었다.


이트나의 몸 주변으로 구름이 만들어져 하늘 높이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물의 기둥을 세우는 자.

모든 것을 태울 것만 같은 폭염 속에서 단비를 내리는 자.

지친 자들에게 다시금 걸어갈 힘을 부어주는 자.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 조각이 세슈람에게, 딜람에게, 듀시아에게, 혁명단의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우우우웅


이트나에게서 힘을 받은 딜람의 성벽이 한층 더 밝은 빛을 밝혔다.


파삭


작은 용의 단단한 흑빛 비늘이 잘게 진동하며 금이 갔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용에 마법에 억눌려있던 마법사들의 공격이 다시 이어졌다.


"성가신 것들."


자신을 하늘로 밀어낸 나무 줄기를 거칠게 뜯어낸 작은 용이 다시금 사방으로 검은 비를 뿌렸다.

몸에 닿기 전까지 그 어떤 소리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저 어둠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미 깨달은 마법사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막아내려 했다.


"흥."


작은 용이 발톱을 까딱거리자 그들의 마법이 모두 침묵하였다.

검은 비를 막아줄 것이 사라짐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절망으로 물드는 가운데.


화륵


검은 비를 증발시키며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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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4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4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5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7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6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5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6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6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6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0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7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8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7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9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7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7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6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6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6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215 215.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24.01.29 6 1 11쪽
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9 1 12쪽
213 213. 함정 24.01.24 7 1 12쪽
212 212.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24.01.23 8 1 11쪽
211 211. 진짜 나다운 게 뭔데 24.01.22 7 1 11쪽
210 210. 고고고 고집쟁이 24.01.19 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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