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차) 무진은 쌍둥이
빛을 발광하는 크리스.
“난, 상위 나프타 크리수스. 이번 일은 지금 모인 별들의 힘으로는 풀어낼 수 없지. 지구의 흐름과 시절에 따라 선택된 한 문명을 찰나적으로 선택해 세우고 채웠어. 그러나 이번은 달라. 선택된 문명의 번영과 약속에 흐름까지 맞물렸지.”
베제로와 뮤라뉴는 크리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 무진을.
“이분은 우주 제2 경전 말미 99절에 나오는 크리수스 님이시네.”
둘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우리, 이제 어떡해.”
무진이 손을 놓자 크리스가 눈을 뜬다.
“내가 누구였고 무엇이었든 난 지금 여기에서 집중해 힘을 모으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이전처럼 대해주면 안 될까··· 요. 형님들.”
베제로가 용기를 내 크리스 손을 잡고 흔든다.
“그 그러지··· 요. 까지껏, 위아래 따지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가라고 요!”
뮤라뉴는 크리스의 손등을 쓸어내리며 윙크한다.
“실리 님이 미천한 우리 곁에 보낸 큰 별이라 다르긴 달라.”
크리스가 보리 한 줌을 들어 가리키며.
“무진 형님과 난 우마리를, 형님 둘은 이스타를 돕는 게 좋겠어요. 무진 형님과 손잡을 때 보았어요. 이스타가 절규하며 도와달라는 신호를 봤어요.”
뮤라뉴의 호응.
“좋아! 그렇게 하지. 그런데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될까. 뭘 도울 수 있을지가 걱정이긴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자 크리스가 덧붙인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위해 서둘러 무진 형님의 쌍둥이 형을 찾아야 합니다.”
“사진 속 인물이 무진이 형이었어?”
베제로 말에 크리스가 무진에게.
“우마리 도움을 받으세요. 리타 가문에 루피 섬 모래와 자갈은 여기 아지트처럼 그곳을 보호하려는 것이니까.”
“옳지, 그걸 몰랐네.”
뮤라뉴의 감탄에 베제로가 손톱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그런데 말이야, 이 시점에서 문뜩 궁금하지 않아.”
크리스의 눈이 커지며.
“뭐가 요?”
“태초의 신 옴의 아들 데제로스는 우주 경전 1장에서 갑자기 사라졌고 사멸했잖아. 그리고 바로 무무의 시절이 되었다고 쓰여 있다고. 데제로스 님이 맞다면 실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일 텐데. 어떻게 막중하고 중요한 일에 작은 별 우마리에 평범한 별들로 구성했다는 점이 이상하잖아. 크리스는 빼고 아, 무진도 있구나.”
베제로의 말에 다들.
“······”
잠시 정적이 흐르고 무진이 입을 연다.
"크리스 말처럼 지금 여기에 집중하세. 이 번일은 에너지나 별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럼, 뭐가 중요한 것인가."
뮤라뉴가 따지듯이 무진에게 빈정거린다.
"사랑!"
이 말에 뮤라뉴가 쑥스러운 듯 흩어진 보리를 주머니에 담는다.
"사랑에 대해 다들 어떤가, 난 짐심 동의하네."
크리스가 목청을 높여 옆에 앉은 베제로를 보면서.
"동의 정도가 아니죠. 맞는 말이죠."
치근덕 거리는 크리스를 베제로가 불편해하면서 버찌 모양의 단추를 만진다.
"사랑, 어렵지만 인정하네."
뮤라뉴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거울에 손을 덴다. 엄청난 속도로 거울이 무언가를 보여주자. 크리스가 바로 홀로그램을 켠다.
“별들도 여러 계층이 있고 차원이 다른 나프타들이 있어요. 나프타들도 계급이 있고 그중 최고 상위 나프타는 최고 서열로 우주 에너지 힘은 암흑과 견줄 수 있지요. 그 위에 태초의 신, 옴과 무무의 시절을 끝내고 인간인 실리가 나타났는데 우주 자체가 되었죠.”
무진이 크리스 말을 이어받는다.
“실리께서는 옴이 유언으로 남긴 시험과 나프타들의 시험, 그리고 우주 암흑의 시험까지 통한 진정한 흐름이며 우주 그 자체지.”
베제로가 무진의 어깨를 감싸며.
“우주에서 실리는 어머니로 통하잖아. 심지어 여러 은하계를 쥐고 흔들며 온갖 말썽을 부린 최고 나프타 무카시도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뮤라뉴가 홀로그램을 보며 박수를 친다.
“듣고 보니, 우리가 부름을 받고 지구에 와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군.”
***
우마리는 리앨퀀 근처 아담한 디저트 가게로 들어간다. 창가 자리에 앉은 그녀는 시계를 보며 테이블 중앙 이미지를 선택한다. 디저트 주문 입력을 마치고 길가 인도에 인공 숲처럼 설치된 대형화분 식물들을 탭 줌인으로 확인한다.
“정향풀이랑 등심붓꽃, 조팝나무 그리고 방풍나물, 층층이꽃에 벵갈 고무나무도 있네. 초롱꽃과 레몬 밤, 아스타까지···”
딸랑 딸랑 딸랑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모자를 눌러쓴 신사가 구석진 곳에 앉는다.
그녀가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로봇이 가져왔다. 주문한 디저트는 딜레이 시킨다.
“올 때가 되었는데.”
로봇이 10인 분이나 되는 디저트를 트레이에 담아 모자 쓴 신사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우마리의 시선이 화초에서 신사의 테이블로 향한다.
“노골적으로 쳐다보기도 그렇고 저 많은 디저트를 혼자 다 먹는다고. 포장이겠지?”
신사가 모자를 벗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세상에 저걸 다 먹을 작정인가 봐.’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시야를 확보하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검은 고양이! 분명 혼자 들어왔는데 엇! 디저트를 고양이에게 먹이고 있어. 게다가 베리 가든 디저트는 포도가 들어있어서 먹으면 위험한데.”
그녀가 조용히 일어나 신사에게 다가간다.
“실례합니다.”
우마리 인사에 음료를 마시며 고개를 드는 신사.
"?"
“오빠!”
오빠라는 말에 신사는 사래가 걸리고.
켁, 켁, 켁
“미안해, 설마 날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이런 거야. 충분히 놀랐거든. 디저트 카페로 오라고 할 때부터 수상하더라니. 이렇게 놀래 켜 줄지 상상도 못 했네.”
그녀가 신사 앞에 앉아 턱을 괸다.
“인정해 줄게요! 무진 오빠 정말 의외네. 신부님 옷은 어디서 구했어.”
신사는 말도 못 하고 잔기침을 계속하며 우마리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누, 누구. 누구세요?”
“알았어요. 오늘 신부님 콘셉트으로 가시겠다면 할 수 없지. 제가 지은 죄가 있어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려합니다.”
우마리가 신부님 옷을 빼앗을 것처럼 손이 움직인다.
딸랑 딸랑
“우마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돌아가고.
“······!”
그녀가 바로 앞에 남자와 무진을 번갈아 보며 일어난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무진이 놀란 표정을 즉시 고치고 남자를 보며 천천히 다가온다.
“형!”
무진이 부드럽게 형이라 부르자 남자는 주섬주섬 디저트를 모자에 쓸어 담아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뛰쳐나간다.
“어, 어! 달아났어요.”
“그냥 둬. 또 만날 거야.”
“무진 오빠.”
“설명하자면 긴데. 나도 지금 멍해서 우선 앉아. 음료수라도 좀 마시고?”
“그, 그래요. 주문은 해놨으니까.”
딜레이 한 디저트와 음료수가 나오고 생각이 많은 얼굴로 무진이 창밖을 본다.
“혹시나 했는데.”
“으응.”
우마리, 우선 이것만 알아둬. 조금 전 만난 사람, 쌍둥이 친형이야.”
“쌍둥이 형, 무진 오빠 쌍둥이였어요.”
무진이 갈증이 났는지 음료수를 다 마셔 버린다.
“나도 최근에 알았어.”
“이게 무슨, 그럼 혹시 아니지? 여기서 처음 대면한 거 아니지···”
빈 유리잔을 보는 무진.
“첫 대면이야. 처음 내 눈으로 확인한 첫 대면.”
“그래서 오빠 형님이 놀라서 달아났구나. 그럼 여기 다시 올 수도 있겠네요.”
“모르겠어. 하지만 우마리 주변에 계속 나타날 거라고 크리스가 그러더군.”
“내 주변에요. 왜?”
“그건 나도 모르지. 말하자면 긴데 형을 빨리 찾아야 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거든.”
우마리가 고개를 숙인다.
‘그럼 아까 내가 봤던 검은 고양이가.’
그녀가 고개를 더 깊이 숙여 테이블 바닥을 둘러본다.
“무진 오빠, 쌍둥이 형이라는 분이 앉아 있는 의자 뒤로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어요.”
그가 되묻는다.
“검은 고양이?”
디저트를 그녀가 포크로 가리킨다.
“형이라는 분이 고양이에게 디저트를 먹였어요. 게다가 주문한 디저트가 10인분은 되었고 그래서 내 시선을 끌었고.”
“크리스 말이 맞는 것 같아. 빨리 찾아야겠어.”
근심 가득한 그의 이마 주름이 씰룩거린다.
“뭘 그렇게 고민해요. 내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우마리.
“어머니 친정집이 천주교와 인연이 깊어요. 예전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외할아버지는 개인적으로 따로 뵐만큼 각별하다고 들었어요. 외할아버지 무릎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동화처럼 재미있었고. 또 재희 이모가 바티칸 여러 자료들을 구해줘서 좀 안다고 할 수 있죠.”
“그래, 형이 계속 신부님 옷을 입고 있어서.”
우마리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친다.
“그거예요. 쌍둥이 형님은 정확히 신부님이 맞아요.”
“아니던데, 크리스가 찍은 영상을 들고 천주 교구를 찾아가 물었지. 그런데 아무도 모르더라고 옷을 보고는 되려 캐릭터 의상이라고 했어.”
딸기 치즈 케이크를 그녀가 한 입 베어 문다.
“형님분께서 입고 계신 끌러지 옷 문양을 보았어요. 금색 은색 열쇠는 가는 은사와 금사로 거의 드러나지 않게 박았지만 붉은 매듭은 확실하게 봤어요.”
디저트 접시를 그녀에게 밀며.
“그 문양 상징이 뭐지?”
“바티칸! 형님이 입은 끌러지 옷은 일반 신부님들이 입는 옷이 아니에요.”
“그럼, 누가? 설마 교황.”
“아니요. 교황도 입을 수 없어요.”
포크를 내려놓는 우마리.
“그건, 그 이상의 존재가 입는··· 말하자면 복잡한데 암튼 형님분은 바티칸에서 오신 게 분명해요.”
“바티칸!”
“한국에 있다면 명동대성당부터 가봐야겠죠.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오늘도 모자를 눌러쓰고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셨어요.”
“어떻게 하지.”
그녀가 손등을 떨며 무진을 보고 웃는다.
“이럴 때야 말로 리베라타 가문이 나서야겠죠.”
무진이 화답하듯 빙그레 웃는다.
- 작가의말
딸랑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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