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회차) 이스타의 놀이터 사북
우마리를 보자마자 수지가 달려가 안아준다.
“뭘 그렇게 꾸물거리니. 다수결의 원칙 4대 1,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야지.”
“그래서 이렇게 내려왔거든. 내가 주제를 모르고 임산부님을 몰라 뵙고.”
마순이 키득거리며 현관문 쪽으로.
“얘들아 어딜 가려고? 나 지금 어지러울 정도로 바쁘다니까.”
“용용이한테 다 들었어. 분신술을 써야 할 만큼 바쁘다는 것 말이야.”
“알면서 이러는 거야. 마순아, 수지 좀 말려주라.”
“오늘 수지랑 한 패인데 곤란해.”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젓는 우마리가 다리에 힘을 뺀다.
“그래 알았어. 점심이나 같이 먹자. 비서실에 연락 좀 하고.”
마순이 우마리 손을 허리를 잡는다.
“비서실에는 이미 연락해 뒀으니 걱정 말고 가자.”
“너희들 단단히 준비하고 왔구나.”
표정이 좋지 않았던 수지가 눈물을 보인다.
“내가 너만 생각하면 정말··· 행복하다가도 운다고, 나만 누리는 것 같아서.”
마순이 수지를 진정시키다 울음이 터진다.
“어쩌다 천하의 우마리가 거울은 보고 다니는 거야. 웃자 그리고 같이 숨 쉬자.”
“나 괜찮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이러는 거야.”
축축한 눈물이 우마리 손에 스치면서.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우정이 불편하다. 안과 밖이 시끄러워 마음 졸이며 하루가 일분, 하루는 일 년처럼 애를 태우던 날. 제일 먼저 눈물이 마르고 감정은 쩍쩍 갈라진 마음은 마른 샘이 되었어. 거칠게 드러난 아픈 상처에 땀을 뿌리며 우정까지 쓰라리게 할 만큼.'
기사가 나와 자가용 문을 활짝 연다.
"내가 변했어."
"우마리,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내가 먼저 타고."
수지가 들어가고 우마리 뒤로 마순이 차에 타자 우마리는 참았던 슬픔을 참지 못했다. 칸막이가 설치된 자가용이 세 여자가 흘린 출렁거리는 눈물을 싣고 달린다.
여의도 드론 비행장.
“갈아타야지. 우마리, 수지 내려.”
퀀텀 자가용 드론이 이륙하고 잠시 어색한 정적을 우마리가 깬다.
“좌표를 보니 강원도 사북? 30분 거리고 얼마나 대단하길래.”
세 여자의 눈썹에 마르지 않은 눈물이 처마에 걸린 무지개처럼 깨끗하다.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몰라서 묻는 건데.”
마순이 수지에게 눈치를 주자 우마리가.
“뭐야, 마순아, 감추지 말고 이렇게 둘만 알고 있기야. 섭섭하네.”
“아이러니해서··· 퀀텀 삼 형제가 자주 모이는 장소이고 나랑 수지도 몇 번을 다녀왔거든. 거긴 이스타 큰 아주버님이 만든 가족 전용 공간인데 어떻게 된 거야.”
수지와 마순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나, 화가 치밀어 올라. 어떻게 너를 한 번도 그곳에 데려가지 않은 거야. 그럼 지배인이 말하는 여자가 우마리가 아니라 혜리인지 해태인지 하는 여자였던 거야. 오마나!”
수지가 생각 없이 나온 혜리라 이름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뱉고 말았다.
“그랬구나. 난 일에 쫓기다 보니 놓치는 것이 많았네 이스타가 가자고 몇 번 졸랐는데 다음에 가자고 미뤘어. 사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네.”
“정말! 이스타가 가자고 했어.”
“그럼, 가족인데 당연한 거잖아.”
“그것 봐. 수지야. 괜한 걱정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한시름 놓았네.”
수지가 넉살 좋게 살짝 나온 배를 만진다.
“나, 거기서 요즘 태교 하잖니.”
“수지야, 태교라기보다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지.”
"마순아, 태교가 뭐 거창한 줄 알아. 엄마가 편안하면 그게 태교야."
스크린을 보던 우마리 목소리 톤이 높다.
“도착 3분 전이라고 뜨는데.”
수지가 우마리 어깨 위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우마리도 동심으로 돌아가겠지.”
"나도 아이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녔는데 과연 우마리도 그럴까?"
마순 말이 끝나자 드론이 푸른 잔디에 안착했고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우마리가 주변을 둘러본다.
'푸른 잔디와 야생화, 해바라기가 만든 노란 빛은 햇볕을 향한 그리움 같아.'
4륜 수소 카트에 오르고 자율주행으로 내달린다. 수지가 가슴을 내밀고 숨을 길게 들이켠다.
“난 여기 오면 제일 좋은 게 이 냄새야.”
마순은 두 팔을 벌리며.
“맞아, 다양한 야생화와 풀냄새 그리고 흙냄새가 이렇게 청량감을 주는지 몰랐어. 우마리는 어때?”
그녀는 이미 눈을 감고 가슴을 펴고 팔을 벌려 숨을 마시고 있었다.
“소나무 향과 더덕향 그리고 허브향이 적당히 섞인 차를 코로 마시는 기분이야.”
수지와 마순이 그녀의 말을 듣고 손을 꼬옥 잡아준다.
“우마리. 만약에 네가 모든 운을 다 써버리고 없다면 내가 절반을 툭 잘라서 줄게.”
마순이 머리를 우마리 어깨에 놓으며.
“같이 행복하자. 나 역시 그래.”
입구에 내리자 제복을 입은 소장 한 명과 직원들로 보이는 아홉 명이 줄을 지어 인사한다.
“어서 오십시오. 퀀텀 사북 추억 체험관입니다. 바로 음식디미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수지가 주방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부탁한 강원도 음식도 있죠.”
“네! 들어가시죠.”
“우마리 너 오늘 허리띠 풀러 야할 거다. 여기 음식 다른 곳이랑 맛과 형이 달라 아주 끝내 줘.”
마순이 앞장을 서고 수지가 우마리 손을 잡고 따라간다.
“집들이 갔다가 리타 가문 주방장 솜씨에 놀라긴 했지. 근데 여긴 강원도 산지 식재료라 다르더라."
마순이 돌아보며.
"입맛 까다로운 우마리가 직접 먹어 보고 뭐라고 할지.”
점심을 마치고 강원도 옥수수 차와 피나무 꿀 그리고 야채 스틱이 놓인 테이블에 마순과 수지는 배를 만지며 하품한다.
“원래 이렇게 많이 먹지 못했는데 임신하고 왜 이렇게 입맛이 당기는지 몰라. 배도 크고 쌍둥인가?”
“수지야, 의사가 아니라고 했잖아. 우마리 음식은 어땠어?”
“토속적인 음식들 특히 나물들이 슴슴하고 향을 그대로 먹는 것 같아 너무 좋았어. 숲을 통째로 먹은 것 같아.”
수지가 발을 구른다.
“그래, 그거야. 음식 본연의 향이 그대로지. 간도 적당하고 맛도 좋고 말이야. 그래서 그런가 여기서 먹은 음식은 소화도 잘돼.”
“정말 속이 편안해서 좋더라. 그나저나 30분만 씨에스타 갖고 음직이면 안 될까. 수지 너는 안 졸려.”
“아~ 아함. 너무 졸려. 우마리 임산부랑 다니면 이런 고충은 알아줘야 한다고 진짜 30분만 눈 좀 붙이고 신나게 돌아다니자.”
“나도 식곤증이 오는지 나른하네. 그러자 잠시 쉬고 움직이자.”
수지와 마순이 낮잠을 자기 위해 객실에 올라갔다.
우마리는 야외 가든을 거닐다 벤치에 앉는다. 분갈이를 하는 로봇들을 보다 가든을 가로질러 해바라기를 보며 혼잣말을 한다.
“해바라기를 얼마나 심은 거지”
“100만 송이입니다.”
로봇이 우마리의 말을 듣고 대답을 했다.
“고마워, 강원도가 해바라기로 유명한 곳이었던가?”
“이스타 님께서 해바라기 정원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이곳에 자주 오나.”
“죄송합니다.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분을 호출했습니다.”
“아니, 그러지 마. 그냥 궁금해서···”
로봇은 일하던 위치로 돌아간다.
“여기 IT 개발자 보통이 아닌데 업그레이드가 잘 돼 있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마리 님. 저는 IT팀장입니다.”
그녀가 일어나 로봇들을 가리킨다.
“로봇 업그레이드가 잘 되어 있네요."
"최근 리앨퀀 전략 S 멤버분들이 오셨습니다. 타스 님과 크리스 님이 최근 버전으로 전체 점검해 주셨습니다.”
의자를 쓰다듬는 그녀.
“매우 흥미롭네요."
'컴퓨터를 그것도 직접 업그레이드라니. 목에 칼을 들이대도 자기 일 아니면 절대 하지 않는 분들인데.'
팀장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시선이 분산된다.
“저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못 견디는 일이 발생했군요.”
“어떻게 그걸···?”
“특히 크리스가 그렇죠.”
그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을 자꾸만 뒤로 돌린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팀장이 크게 웃고 나서 침착해졌다
“우마리 님은 모두가 상상하고 생각했던 그대로 시네요. 오늘 오신다는 연락받고 직원들 모두가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기대가 크셨다면 실망도 크겠네요. 전 영문도 모르고 와서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전혀 몰라요. 하지만 양면성이 강한 것은 확실하네요."
“실망이라뇨. 모두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생각 없이 왔지만 잘 온 것 같아요. 오랜만에 여러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느껴요.
“잘 오셨어요. 다들 언제쯤 오실까 했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예상한 첫 손님이 될 거라 여겼는데···”
“아쉽군요. 그럼, 첫 손님은 누구였죠.”
“퀀텀 형제분들 그리고 사모님들이셨습니다. 이후에는.”
우마리가 정색하면서.
“그만! 거기까지만··· 들을 게요.”
“일일이 제게 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와 타스가 답답해서 직접 작업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면 재미있고 궁금하네요.”
“이곳은 예전에 카지노 클럽이었습니다.”
“카지노라면 현재 가상세계로 모두 이전했지요. 현실에서는 사업성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팀장이 전동 보드에서 탭을 꺼내 보여준다.
“폐업된 카지노를 이스타 님이 구입하셔서 하나하나 손을 보셨습니다.”
“지금과 너무 다르네요. 으음, 여기는 관측소에 사회 환원적 연구 복합단지네요.”
“영상 뷰만 보시고 어떻게? 아무런 설명도 드리지 않았는데 전부 파악하셨습니다.”
그를 보는 우마리의 표정이 진지하다.
“팀장님은, 이곳을 찾은 이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니요. 우마리 님처럼 전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신 분은 처음입니다."
"제가 처음은 아니죠, 이스타가 제안한 일인데."
"회장님께서는 관측소만······"
우마리가 그의 말을 자르듯 일어나 걷는다.
“첩첩산중 적막한 곳. 옛날에는 도를 닦는 도사들이나 살 법한 곳에, 카지노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네요. 오면서 보니 주변에 마을이 있었던 흔적도 보이던데.”
- 작가의말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우정이 불편하다······ 거칠게 드러난 아픈 상처에 땀을 뿌리며 우정까지 쓰라리게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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