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갓겜의 고아를 주웠다

소녀는 날 향해 적의를 보였다.
“이름을 몰라서.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의외네요. 어른들은 사과하는 거 모르는 줄 알았는데.”
“너흴 구하러 왔잖아. 착한 어른인 게 당연하지.”
“뭘 원해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어린 애치곤 당돌하네.
좋다. 나도 얼른 해치우고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너흴 키워준 사람을 찾고 있어. 어디 갔는지 알아?”
“왜요? 아저씨도 그 사람 죽이려고요?”
“그건 아니고, 이거 때문에.”
나는 소울 브링어를 흔들었다. 다른 애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소녀만큼은 스태프를 알아봤다.
“그건··· 카리나의···”
“고아 수집가 이름이 카리나인가보네? 그 사람이 전당포에 이걸 팔고 사라졌어.”
“종종 있는 일인데요?”
“근데 이게 보통 물건은 아니거든. 그 사람은 이거에 대해 아는 게 있나 해서.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아?”
고민하던 소녀는 아이들을 자기 주위로 모았다. 아이들은 원을 만들어 서로 속삭였다. 나름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회의는 금방 끝났다. 소녀가 대표로 나섰다.
“카리나가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대신 찾을 방법은 있어요.”
“그걸로 충분해.”
“알려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정보를 대가로 거래라. 고아 수집가한테 못된 것만 배웠구만.
“첫째, 저희한테 음식, 잠자리, 옷 등 생필품을 제공해주세요. 최소 1년동안.”
첫 조건치곤 크지만 들어줄 만했다. 붉은 두건에게 보내면 되니까. 미래를 위해 아이들이 필요한 붉은 두건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둘째, 카리나를 찾으면 우리한테도 알려주기.”
이건 두고봐야 알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고아 수집가에게 악의를 품고 있진 않으니까. 별 문제 없겠지.
“마지막, 저희 과거는 묻지 마세요.”
“왜?”
“아픈 기억 다시 꺼내는 건 지쳤거든요.”
상관없다. 애들 개인사정까지 궁금하진 않았으니. 갈포드한테만 조심하라고 얘기해둬야겠다.
“알았어. 거래하자.”
나는 소녀에게 악수를 건넸다. 소녀는 꼬질꼬질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럼 앞으로 잘해보자. 넌 이름이 뭐야?”
“소피아예요. 성은 없어요.”
소피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 조심하라며 걱정하는 것이 날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달랐다.
고아 수집가 카리나. 자기 애들을 두고 홀연히 사라진 소울 브링어의 원주인.
그녀의 정체에 한발짝 더 가까워졌다.
***
“그거 건드리지 마!”
쨍그랑!
그러나 병은 깨지고 말았다. 갈포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다.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술집을 휘젓고 다녔다.
누구는 술병 깨먹고 누구는 친구랑 싸우고 누구는 몰래 술 마시고.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애들을 다 여기로 데려오면 어떡해!”
“그럼 어디로 데려가요. 보육원 꽉 찼다면서요.”
나는 날 탓하는 갈포드를 쏘아붙였다. 그러게 공사 좀 빨리빨리 하지.
내일쯤이면 3구역의 보육원의 확장 공사가 끝난다. 붉은 두건의 소유로 브랜든이 팔려던 아이들이 살고 있는 보육원이었다.
갈포드가 나름 투자를 해서 오늘 데려온 애들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 그러나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오늘만 여기서 재우기로 했다.
덕분에 갈포드가 고생 좀 하겠지만, 내 일은 아니니까.
“고아 수집가 그 양반은 얘들을 어떻게 관리한 거야···”
한탄을 들은 소피아가 갈포드를 째려봤다. 아버지뻘인데 가차없는 눈빛이었다. 갈포드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너무 그러진 마라. 그 사람 이름 아는 사람 몇이나 된다고.”
“누가 붙였어요? 고아 수집가란 별명.”
“낸들 아나.”
고아 수집가에 대한 괴담은 내가 칼리나르에 올 때부터 존재했다. 누가 그 별명이 붙였는지 나도 모른다.
칼리나르 토박이 갈포드도 말없는 걸 보니 그냥 소문을 타다보니 생겼나보다.
“아무튼 달라는 건 다 줬으니 너도 줄 건 줘야지?”
나는 바에서 주스를 꺼내 한 잔 따라줬다. 적당히 맞는 원피스를 갈아입혔지만 소피아는 여전히 말라보였다. 이런 거라도 먹여야지.
“주스 마실 나이는 아닌데요.”
“뭐래니. 그냥 마셔.”
소피아는 주스를 받아 마시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리나가 사라진 건 이 주 전이에요.”
소울 브링어를 전당포에 넘기러 왔을 때로부터 일주일 전. 당시 인상착의를 보아 그 때까진 쫓기느라 바빴나보다.
“카리나가 사라지고 나서 집에 어른들이 들이닥쳤어요. 전 정신이 없어서 애들만 데리고 겨우 도망쳤죠.”
“집이 어디있는데?”
“칼리나르 외곽 숲에 있어요. 말해도 모를 걸요.”
숲에 딸랑 집 하나 있다라. 애들을 보니 고아 수집가가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지만 여전히 미심쩍긴 했다.
“다음 날, 먹을 거라도 찾으러 돌아가보니 카리나 물건이 몇 개 없어져 있었어요.”
“뭐가 없어졌는데?”
“낡은 검이랑 일기장이요.”
일기장? 바보도 아니고 자기 일생이 담긴 일기장을 두고 갔다고?
그간 정체를 꽁꽁 싸매온 고아 수집가다. 야반도주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흘릴 리는 없었다.
“카리나의 일기장, 한 번 몰래 본 적 있는데 무슨 암호 같은 걸로 쓰여있었어요.”
그러면 알아보기 어렵긴 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다.
아무리 암호로 썼다해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은 있다. 해독법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바꿔말하면 해독법을 아는 이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나도 괜찮다는 뜻. 의도적으로 남겨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검은 뭐야? 그 사람 검도 쓸 줄 알아?”
“아뇨, 근데 신줏단지 모시듯 관리하긴 하더라고요. 애들이 검 근처도 못 오게 했어요.”
이건 진짜 모르겠다. 고아 수집가한테만 의미있는 평범한 검일 수도 있고. 뭔가 비밀이 있을 수도 있고.
듣기만 해서는 둘 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눈에 띄는 점도 없고.
그러나 내가 보면 뭔가 보이겠지. 감정이 있으니까.
“그래서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
“여려 명이었는데 한 명만 기억나요. 대머리고 얼굴에 큰 상처가 있었어요.”
대머리에 상처. 솔직히 이것만으로 사람 찾는 건 불가능하다. 흔치 않은 수준의 외모니까.
그러나 상관없다. 이미 확신은 섰으니까.
“갈포드, 나갔다 올게요. 애들 좀 부탁해요.”
“뭐? 나 보고 죽으란 거냐? 가긴 어딜 가!”
“아직 빚 청산할 게 남아서.”
대머리에 상처. 얼마 전 갈포드의 빚을 갚을 때 상환을 도와준 사채업자였다.
브랜든도 말했었지. 사채업자 상사의 명령으로 고아 수집가를 쫓는 중이었다고. 인상까지 일치하니 그 놈 뿐이었다.
분명 갔을 때 놈들은 압류한 장물들도 보관중이었다. 고아 수집가의 물건까진 기대않지만 행방은 알 수 있을 거다.
갈포드의 애원을 뒤로하고 나가려는데 소피아가 날 붙잡았다.
“저희 집에 처들어온 사람한테 가는 거죠? 같이 가요.”
“위험해. 여기서 애들이나 봐.”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소피아의 눈에서 맹렬한 복수심이 보였다. 난생 처음 얻은 집과 가족이 풍비박산 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분명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다. 아까의 습격은 정말 의외였으니까. 소질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소피아는 며칠을 굶은 소녀일 뿐. 데려가봤자 짐만 된다.
“나중에. 지금은 몸조리나 잘해.”
소피아는 가느다란 자기 팔뚝을 보곤 납득했다. 물론 기분은 분한지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
또래에 비해 성숙하긴 했지만 결국 애는 애다.
나는 술집을 나왔다. 안에서는 애들 웃음 소리와 갈포드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애들인데. 설마 진짜 죽기야 하겠어?
***
사채업자 크리스는 창밖만 바라봤다. 어느덧 뉘엿뉘엿 지는 해.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다. 인신매매 큰 손 로지어 때문이었다.
빚도 있는 놈이 도박으로 돈을 다 날려먹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했다. 팔려던 애들이라도 내놓으라 했더니 그마저도 털려서 얼마 없단다.
일전의 갈포드처럼 노예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게 이길 게임에만 걸었어야지. 오늘 일 때문에 탈모가 더 심해졌다.
손님도 끊겼겠다, 정리하고 퇴근하려는 찰나. 손님이 들어왔다. 크리스는 싫은 티를 팍팍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에 갈포드의 빚을 갚으러왔던 손님, 감정사이자 마법사인 헨리였다.
빚을 갚았던 그날, 브랜든을 반 죽여놨다고 들었다. 어차피 브랜든은 언젠가 처리할 놈이었으니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대출 상담하러 오셨나요?”
“그건 아니고 물건 좀 가지러 왔어요.”
“압류된 물건이요? 대출 상환하셔야 드리죠.”
헨리는 한숨을 쉬었다. 말이 안 통한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크리스도 같은 마음이었다.
“제 물건은 아니고 다른 사람 물건이거든요. 빚도 없는데 뺏겼다고 들어서.”
“참 나, 누굴 도둑놈으로 아시나. 그 분이 누구신데요?”
“이름은 잘 모르고요, 고아 수집가라고 말하면 아시려나.”
“아, 그 분이요?”
당황한 기색을 비치지 않기 위해 표정을 숨겼다. 크리스는 책상을 두 번 쳤다. 뒤 창고에 있는 동료들에게 보내는 비상 메시지였다.
고아 수집가를 쫓고 있다는 정보는 누설됐을 거라 예상했다. 브랜든이 술술 불었겠지.
근데 고아 수집가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를 텐데.
그 집은 깊은 산골짝에 있었다. 목격자는 없었다.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없는데 왜.
“조금만 기다리시죠. 가져올 테니까.”
크리스는 뒤에 있는 작은 사물함에서 검을 꺼냈다. 등을 돌리고 꺼내서 헨리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헨리를 우습게 볼 생각은 없었다. 브랜든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상대가 마법사라 한들 기습에는 장사없다.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찌르면 게임 끝이다.
창고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멎었다. 동료들은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타이밍이다.
“멀었어요?”
“네, 갑니다 가요.”
크리스는 등 뒤에 검을 감췄다. 일단 아무거나 보여주자. 주의만 끌면 된다.
크리스는 다른 빚쟁이한테 압류했던 목걸이를 가져갔다.
헨리는 의심의 눈초리 없이 목걸이를 받았다. 제아무리 감정사라 해도 누구 물건인지는 알 수 없을 거다.
헨리가 목걸이를 유심히 보는 지금. 크리스는 검을 빼들었다.
쐐액!
순간 바람 칼날이 날아와 크리스의 손목을 그었다. 힘줄이 끊어져 크리스는 검을 놓치고 말았다.
소문보다 강한 위력은 아니었다. 손목이 날아가진 않았으니.
하지만 크리스를 제압하기엔 충분했다. 재빠른 반응 속도와 짧은 사이 힘줄을 노리는 정확도. 기습따윈 아무런 소용 없었다.
목걸이를 보던 헨리는 어느새 크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헨리는 바람 칼날로 크리스의 아킬레스건 마저 베어버렸다.
크리스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고통이 크진 않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크리스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은 동료들이 창고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쓰러진 크리스와 멀쩡한 헨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새끼가!”
크리스는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동료들의 숫자는 여덟. 지금이라도 소리치면 한둘은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끄아악!”
바람이 더 빨랐다.
***
나는 마지막 놈까지 포박했다. 놈들의 손목 발목에서 피가 흘렀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역시 재능은 있다니까. 마나만 아니면 벌써 마법 두어 개는 더 배웠을 텐데.”
옆에서 구경하던 안젤라가 아쉬움을 표했다.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평가질은.
이번에는 안젤라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워낙에 쉬운 상대였으니 연습도 해볼 겸, 익혀둔 바람 칼날을 사용했다.
위력은 기대 이하였지만 숙련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흘 연습한 정도로 이런 정확도와 속도라니.
안젤라 말대로 마나 문제만 해결하면 웬만한 마법사들은 금방 따라잡을 거다.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 물어볼 것부터.
“고아 수집가 집, 너네가 털었지? 일기장이랑 검, 지금 어딨어?”
“말해줄 것 같냐?”
어디 하나를 잘라놓질 않으니 쉽게 불질 않는다. 나는 바람칼날로 놈의 다리를 난도질했다.
다리가 덜렁거릴 쯤에 놈은 대답했다.
그러나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다.
“레이먼드 폰 갤러웨이! 됐냐?”
“레이먼드 폰 갤러웨이? 그게 누구야?”
100년 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 칼리나르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름이다.
레이먼드 폰 갤러웨이.
칼리나르 뒷골목의 지배자.
“넌 이제 좆된 거야.”
포박된 놈이 낄낄대며 날 비웃었다.
그래, 확실히 내게 불리한 상황이지. 근데 그게 너랑은 관계 없거든.
나는 뒷정리를 하고 나왔다. 내가 떠난 곳에는 침묵 뿐이었다.
- 작가의말
어제 7화는 그냥 기분 좋아서 올렸습니다. 딱히 독자분들을 위해 올린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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