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갓겜의 미궁에서 죽을 뻔했다

미궁의 천장은 푸른 혜성이 쏟아지는 듯한 풍경이었다. 눈으로 쫓아갈 수 없는 속도. 시작점에는 헨리가 있었다.
“저것도 마법이에요?”
마법 제어 장치의 사정권에서 나온 안젤라에게 소피아가 물었다. 소피아는 호흡을 통해 체력을 수복하는 중이었다. 안젤라가 가르친 귀멸검의 연공법이었다.
“아니, 마인화라는 거야. 마나가 폭주하면 신체에 과부하가 오면서 잠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헨리는 가디언을 압도했다. 그야 가디언이 원체 느리기도 하고, 저격형인 만큼 근접전에는 취약했다. 타고난 내구력으로 공격을 버티는 중이었다.
헨리의 신체능력은 소피아, 아니 웬만한 기사들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상승됐다. 그게 마나가 가진 진정한 힘이니까.
마나는 일종의 방사능 에너지와 같다. 평소에는 조금의 에너지를 일정하게 발산하지만, 몇몇 작용을 거치면 겉잡을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마인화도 그 중 하나. 마법 억제와 강력한 마법이 충돌하며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특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마인화한 마법사는 대부분 사망한다.
강력한 마법이 폭주해 나타나는 현상. 보통은 몸이 넘치는 마나를 버티지 못한다.
신체능력 강화는 마지막 불꽃과 같은 것. 더 넘칠 마나가 없어지면 마나로부터 보호받던 훼손된 신체가 바람조차 견디지 못한 채 사라진다.
‘저 녀석은 워낙 마나가 적어서 몸이 견디겠지만.’
마인화의 부작용은 마법사의 마나 총량에 비례한다. 마나가 적은 만큼 방출되는 에너지 역시 약하기 때문.
마인화가 오래가지도 않을 테니 무사할 거다.
안젤라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정확히는 의문이었다.
‘어떻게 마인화를 아는 거지?’
마인화는 평생을 마법에 몰두해도 목격하기 힘든 현상이다. 아까 말했듯 마인화한 마법사는 무조건 사망한다.
게다가 마인화에 이를 상황이라면 대부분 위기 상황. 항상 사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목격자조차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칼리나르 출신 감정사가 마인화에 대해 안다고? 그것도 원래 마법도 쓸 줄 모르던 사람이?
갈포드나 주변 인물의 언행으로 헨리가 칼리나르 토박이가 아니란 건 알았다. 칼리나르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건 고작 몇 개월 전.
그 전에 헨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어쩌면 헨리가 평범한 감정사가 아닐 거란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걸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크윽···”
이제 슬슬 피부가 따가운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마나가 적어 마인화의 부작용을 덜 받는다 한들 없는 건 아니니까.
부작용이 심해진다는 건 곧 마인화도 끝난다는 뜻.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다행인 건 가디언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쾅!
나는 다시 한 번 가디언의 가슴팍을 노렸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흉갑에 드디어 균열이 생겼다.
흉갑 뒤에는 가디언의 코어가 숨어있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코어는 빛을 내며 열심히 가디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한 번. 한 번만 치면 떨어져나갈 터. 그럼 가디언도 끝장이다.
그러나 내 몸을 감싸던 마나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제 마나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역시 내 마나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이 정도라 살아있는 거긴 하지만 아직 버텨야 하는데.
슉!
그 순간 소피아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온몸의 핏줄이 터질 듯이 돋아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미궁 돌파 끝에 소피아는 체력이 떨어져 이미 리타이어. 그러나 신진대사를 억지로 강화시켜 찰나의 사이에 조금의 체력을 짜낸 것이다.
귀멸검의 연공법. 부작용이 오래 가긴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거 신경쓸 상황이 아니지.
소피아는 흉갑에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검이 부러짐과 동시에 흉갑은 가디언 가슴팍에서 떨어져 나갔다. 형체만 보이던 코어는 이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모든 힘을 쏟아부은 소피아는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코피가 터져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피아의 안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마지막 기회를 잡을 때였다.
나는 코어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 마나에 오래 노출된 몸으로는 견딜 수 없는 속도였다.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정확했다.
마인화된 나의 몸은 코어와 함께 가디언의 가슴을 관통했다.
“코어 파손. 기능 정···지···”
동력이 사라진 가디언은 그대로 축 늘어져 기능을 정지했다.
가디언의 등을 뚫고 추락하는 순간 마인화가 풀렸다. 온몸이 쓰라렸다. 전신화상이었다. 당분간 누워있어야겠구만.
그러나 휴식도 안전한 곳에서 해야 휴식. 나나 소피아나 지금 당장 제대로 된 치료부터 받아야하니 힘을 내 일어났다.
“무식하게 마인화라니. 꼴이 이게 뭐야?”
“더 좋은 방법이 없었잖아. 이게 최선이었어.”
안젤라가 툴툴댔다. 화났기보다는 걱정이 섞여있었다. 제어 장치 역시 멈춘 덕에 안젤라가 우리 쪽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출구 쪽으로 가면 순간이동 장치가 있어. 그거 쓰면 바로 브리턴으로 돌아가니까 조금만 힘내.”
“그것마저 멀쩡하다면 말이지.”
가디언까지 배치했는데 순간이동 장치가 남아있을까. 조금은 걱정됐다.
“일단 챙길 것부터 챙기고.”
“그 몸으로 뭘 챙겨! 얼른 나가기나 하자.”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잊었어?”
미궁에 온 목적. 대마법사 후계자, 카리나 로웬델의 첫 시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체 왜 마나를 잃고 마탑에서 쫓겨나 고아 수집가가 됐는지.
몇 시간 동안 미궁을 헤메며 찾은 단서는 하나. 검은 늑대와 함께 동행했다는 점. 그리고 단원 몇이 죽었고 그 후로 원한이 생겼다는 점.
그 원한의 빌미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함께였던 카리나 로웬델이 유력했지만,
아까 듣고 긴가민가한 점이 있었거든.
나는 쓰러진 가디언의 코어를 살폈다. 코어는 이미 망가져 복구불능 상태. 건질 건 얼마 없었다. 기껏해야 등록 번호가 작게 써져있는 정도.
보통 사람 눈에는 그 정도만 보인다.
‘감정’
[가디언의 코어]
[가디언의 동력이 되는 마나 코어. 적의 마나를 흡수해 반영구적이다. 등록번호는 S-E1-022. 충전상태 487%. 수리 시 재가동 가능.]
코어는 동력원과 동시에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가디언은 장착된 코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등록번호 S는 Sniper. 저격형이라는 뜻. 그 뒤에는 코어의 소속을 나타낸다. 어디의 몇 번째 가디언 코어.
022는 스물두 번째 코어라는 뜻. 일단 가디언 코어를 스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곳이 흔치 않고.
결정타는 가운데 번호. E1. 제국 마탑을 뜻하는 번호.
미궁을 재설계해 대마법사의 후계자를 죽이려 한 건 제국 마탑이었다.
제국 마탑은 다른 마탑과는 성질이 다르다. 단순 연구보다는 국익에 치중된 마탑. 당연히 제국에 해가 될 마왕 부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겠지.
근데 그걸 막을 대마법사의 후계자를 살해 시도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제국 마탑에 마왕의 수하가 있다. 하나는 대마법사의 후계자는 마왕보다 더 제국에 해가 되는 존재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정치를 잘 알지는 못해서. 다만 하나는 알겠다.
제국 마탑 놈들 때문에 마왕이 성공적으로 부활한다는 것.
<슬레이어즈2> 트레일러에 부활 장면이 나왔으니 확실하지. 마왕 부활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만 알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나는 안젤라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다.
“제국 마탑이야. 그놈들이 네 후계자를 죽이려 한 거야. 첫 시험에서.”
“뭐? 말도 안 돼. 어떻게 알아?”
“코어 등록 번호가 제국 마탑 소속으로 돼있어. 확실해.”
등록 번호를 알려주니 안젤라는 그제야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까 가디언이 가동할 때 안젤라도 들었으니.
“어떤 새끼가···”
“몰라. 배신자인지 다른 속셈이 있는지도 모르고.”
“뭐가 됐든 별 시답잖은 이유겠지. 100년 전에도 그랬으니까.”
“100년 전?”
안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빠득빠득 가는 게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하고 내 후계자를 건드려? 가만 안 두겠어.”
안젤라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분노를 내뿜었다. 게임 내에서도 몇 번 느끼지 못한 정도의 분노. 마왕과 싸울 때도 이런 분노는 표출한 적 없었다.
“코어 챙겨. 증거가 없으면 발뺌할 놈들이니까.”
“그래, 이걸로 오해도 풀어야지. 쓸데도 있고.”
검은 늑대는 제국 마탑의 의뢰를 받아 카리나 로웬델을 납치했다. 그러나 자기네 단원이 죽은 원인이 의뢰인에게 있다면 상황이 또 달라지겠지.
그리고 이게 또 귀한 물건이거든. 전쟁 병기의 동력원이니까. 조금만 다듬으면 쓸모가 있다.
나는 코어를 챙기고 바닥에 엎어진 소피아를 살폈다. 의식을 이미 잃었다. 억지로 기량을 끌어올렸으니 한동안 누워있겠지.
미궁에서 너무 힘을 뺀 탓에 마지막 말고는 도움이 안 됐지만, 없었으면 그대로 당했을 테니. 제값은 해줬다.
나는 쓰러진 소피아를 업고 미궁 출구로 향했다. 다행히도 안젤라가 말한 순간이동 장치는 여전했다. 마나의 흐름을 보니 브리턴과 연결돼있었다.
우리는 다시 브리턴으로 돌아갔다.
제국 마탑의 숨통을 조일 증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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