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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6:16
최근연재일 :
2022.06.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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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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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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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seal ep 02 -2

DUMMY

법대를 선택한 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가 있냐고.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혹시라도 걱정할까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세상의 뼈대이자

규칙이라고 생각해서요.


그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건강만은 잃지 말거라.




그가 군대에 가서

한참을 힘들어하던 시기에

그의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졌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 번은

아버지와 함께 면회를 오던 그녀가

4주째 면회를 오지 않았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언가 이상을 느꼈다.


5주 만에

그녀가 무척이나 어두운 얼굴로

면회를 와서 심각하게 말했다.


"아저씨가

내가 실습하는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심장 쪽에 큰 이상이 생겨서

지금 많이 안 좋으셔.


중환자실로 옮기신지 2주됐어."




그의 아버지는

매우 위독한 상태였다.


부대에 허가를 얻어

급히 아버지를 찾아간 그는

어이없게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했다.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가깝게 지냈던

동네사람들 몇몇만이 빈소를 지킨

쓸쓸하고 적막한 장례식이었다.




마지막 순간,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으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조리한 일을 겪게 되면,

결코 참지 말거라.


복수를 할 수 있다면,

꼭 내 손으로 복수를 해.


이 애비처럼

속으로 참고 억누르다가

후회만 남기지 말고...


어떻게든 그 놈을

내 손으로 죽이고

네 엄마 곁으로 가고 싶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


네 엄마에게도,

지호 너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복수조차 못해준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하지도, 잊지도 말아다오."


아버지의 한 서린 유언은

그에게 뚜렷한 각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으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결코 잘못 살지 않으셨다는

확신을 꼭 얻고 싶었어요.


그런데...그런데...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저 혼자 이렇게 남겨 놓고 가시면...

전 어떡해요...”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다시 부대로 복귀한 그가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덕분이었다.


그녀는

강원도 산골로

거의 매주 면회를 와서

그를 챙겨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녀의 정성과 애정으로

그는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가 제대를 하고 복학했을 때

그녀는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살짝 조바심이 났지만,


그에겐

해결해야할 자신의 문제가

산더미 같았다.


등록금문제, 생활비문제,

아버지 병원비와 수술비로

융통해서 쓴 집의 대출금과

기존의 융자금 상환문제 등등


생활인으로서 그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결국 그는 학교를 1년 휴학하고

주변정리에 들어갔다.


집을 처분하여

작은 원룸으로 거처를 옮기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인생을

사회적으로 정리하면서,


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건강하지 못하면 큰돈이 든다.


여유가 없이

빠듯하게 버는 사람이

큰 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가난해진다.




아버지가 평생 벌어 장만했던

조그마한 집은,


집을 살 때

융자를 얻었던 대출금과

병원비로 추가 대출했던 돈,

양도세나 상속세 같은

세금들을 제하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원룸 하나 장만할 돈만

겨우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현재 위치에 걸맞게

삶의 환경을 정리한 그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뛰었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동기들보다 2년이나 늦게

졸업을 했다.




그러고 나니

또 하나의 문턱이 남아있었다.


로스쿨 진학문제였다.


법관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이었다.


법관의 길을 포기하고

고시나 공시, 취직준비를 하며

진로를 수정한 동기들의 문제도

결국 로스쿨의 비싼 비용 때문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를,

지원해주고 북돋아준 사람은

이번에도 그녀였다.


어느새 사회에서 탄탄히 자리 잡은

그녀의 지원덕분에

그는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다.




로스쿨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그에게 마지막 시련이 닥쳐왔다.


이번엔 그녀의 아버지가

난치병에 걸려 쓰러졌다.


딸이 일하는 대학병원에

급히 입원한 아버지는

뇌에 관련된 난치병 판정을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췌장에서 자라고 있던

악성종양까지 발견되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입원과 함께

그녀의 아버지는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모든 불운이 한꺼번에 닥쳐오듯,

그녀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가장 급한 것은

췌장 쪽의 수술이었고,


그 다음이 난치병에 관한 치료,


그리고 마지막이

치매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버티던 그녀에게

결정타를 먹인 것은,


언제까지 써야할지도 모르는

난치병치료제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술비와 입원비,

치매치료비만으로도 벅찬데,

치료제의 비용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경제적 곤란을 보면서,

그는 또 다시 움츠러들며

자책에 빠졌다.


아직 변호사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로스쿨 졸업예정자일 뿐인 자신은,

사회에서 아무 인정도 받지 못했고,


그녀에게

어떤 현실적인 도움도

줄 수가 없었다.




괴로워하던 그녀의 곁을

조심스럽게 맴돌던 그의 눈에

누군가가 우연히 들어왔다.


마치 자신과는

모든 것이 반대처럼 보이는,


잘나고 부유하고

능력까지 넘치는 어떤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열렬히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다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난정씨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수술도, 치료비도

그리고 치매치료도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랑하는 여자의

유일한 가족이신걸요.


설령 제 짝사랑으로 끝나도

상관없습니다.


이러려고 제가

의사가 되었나보죠.”


그 사내의 너무도 멋져 보이는,

자신은 결코 해줄 수 없는

그 해결방법에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사내에게 고맙다고,


이 은혜는

살아가면서 꼭 갚겠다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그는 결국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병원을 나서던 그는


그녀에게 전해주려던

식어버린 붕어빵이 담긴

초라한 종이봉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차가운 겨울의 풍경 속으로

초라하게 사라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준의라는 그 잘난 사내 덕에

목숨을 건지고

안정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기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그는 갑자기 연락이 되질 않았다.


어제까지 통화했던 그의 번호가

존재하지 않는 번호로 안내되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주말에 그의 거처로 가보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그가 살던 원룸도 처분되어

주인이 바뀌어있었다.


졸업식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하여

찾아가보았지만,

그는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그와 연락이 끊겼고,


그 상태 그대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가 사라진 시간동안,


그녀는 결국

그 사내의 열렬한 구애에

무너지고 말았다.


치매전문병원으로 옮긴 아버지는

이젠 딸인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했고,


혼자 남은 그녀는

철저히 외로웠다.


그런 그녀의 곁에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고 태어난

잘난 사내가

계속 머무르며,


분에 넘칠 정도의

마음과 정성을 주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가 어린 시절에 걸어놓은

첫사랑의 마법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강력한 주박은,


결국 그 사내가

자기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자신의 가족에게

절연까지 선언하며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지

4년이 지난 어느 봄날,

결국 그녀는 그 사내와 결혼했다.




그녀의 곁을 떠나

모든 것을 처분하고

신림동의 어느 고시원에

들어간 그는

공부에만 매달렸다.


괴로움과 자괴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법대 동기이자

지금은 공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 준한만이

그의 옆방에서 지내며

유일한 말상대, 술상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처량한 어느 저녁,

둘이 술을 마시다

그가 친구에게 물었다.


"난, 어릴 적

어이없는 억울한 사고를

당한 후부터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어.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나쁜 짓도 하지 않았지.


그런데 왜 난

아무 것도 얻지 못했을까?


왜 사랑마저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을까?"


그의 비애가득한 표정과

울분이 쌓인 목소리를 위로하듯

준한이 대답해주었다.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것과

사랑을 포함한 무언가를 얻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


내가 친구로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너의 선택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거야.


넌, 아무 잘못이 없어.

그저 운이 없었을 뿐."


친구의 말을 들은 그의 눈에서

갑자기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1년 후,

그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검사시보로 발령받았다.


되돌아보니

참으로 길고 어려웠던 길이었다.


그는 그렇게

길고 긴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여러 해의 계절이 바뀐

어느 봄날이었다.


결혼한 이후 휴직을 신청하여

일을 쉬고 있던 난정은,


눈처럼 떨어지는

여의도의 벚꽃을 보며

심난한 마음을 달래려

노력하고 있었다.


세상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남자와 결혼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건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어째서인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 그가

지워지질 않았다.


삶의 작은 부분 속에서도,

일상의 무난함 속에서도

가끔씩 송곳처럼

그와의 추억들이 되살아나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쌓여온

시간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야멸차게

연락을 끊어버리고 잠적한

그에 대한 증오 때문일까.


그 어느 쪽이든 간에,

그녀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차이나는 결혼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가족과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모두 물리치고 자신과 결혼해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녀는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남편 몰래

피임을 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 이런 상태로는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과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저런 복잡한 심경 속에서

심난함을 잠시라도 잊으려

홀로 나온 산책이건만,


아름답게 지고 있는 벚꽃은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욱 흔들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앞쪽으로

3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마주보며 걸어오는

세 명의 직장인들이 보였다.


처음엔 그저

점심을 먹고 꽃을 보러 나온

근처의 회사원들인가 싶었지만,


그들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가슴은

마구 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익숙한 얼굴,

익숙한 발걸음,

익숙한 체형...


그녀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셋 중 하나는


5년 전

그녀의 곁에서 증발하듯 사라진

그였다.




그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고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버린 그녀를,

그도 알아보았다.


놀람, 미안함, 회피, 우물쭈물...


아주 짧은 시간동안

그의 얼굴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둘은 잠시 그렇게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5년만이었다.


벚꽃이 둘의 재회를 감싸듯

눈처럼 아름답게 떨어지고 있었다.


슬픈 풍경이었다.




그가

자신의 일행들에게

먼저 들어가라 말하고

홀로 남자,


그녀가

천천히 걸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앞에 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지그시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의 표정에

난감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더 이상의 침묵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그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그녀의 오른 손이

벼락같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그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입에서

매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그랬어. 나쁜 새끼야."


그를 질책하는 그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꽉 껴안았다.




잠시 그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기던 그녀도

팔을 뻗어 그의 몸을 껴안았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둘의 뜨거운 입맞춤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둘의 재회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날로부터

위험한 불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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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eal ep 09-2 22.05.28 41 8 11쪽
19 seal ep 09-1 22.05.26 41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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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seal ep 03 -2 22.05.16 54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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