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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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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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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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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seal ep 05 -1

DUMMY

seal ep 05 노준의 (3)


서해안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노준의는 트럭을 멈췄다.


밤을 새워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또 세 시간을 운전했다.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보다는,


생소한 세계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비현실적인 이질감이

그를 무척이나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대로 잠이 들어

밤이 될 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잘 잤어? 자, 한 잔 마셔."


막 잠에서 깨어난 그에게

김민성이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를 받아들며 그가 물었다.


"제가 얼마나 잔거예요?

지금 밤 인거 같은데."


"한 10시간쯤?


너무 곤하게 자기에

일부러 안 깨웠어.


컨디션은 어때?"


"푹 자서 그런가 아주 가뿐해요."


"그래. 다행이네.


커피 한 잔 마시고 잠부터 깨.


신선한 활어회 좀 사왔어.

이따가 밥 대신 소주나 한 잔 하자."


"네. 선배."




한 시간 후,

둘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김민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네 선택은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것부터

미리 알려주마.


그 놈들을 고쳐준 순간,

이제 넌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


이쪽 세계에서

우리 같은 고급인력은

아주 귀하거든.


절대 놔주려하지 않아.


물론,

다른 이유도 몇 가지 더 있지만..."


"다른 이유요?"


"일단 제일 큰 건, 비밀유지.


걔들이 왜 그런 큰돈을 내고

우리에게 와서 치료를 받겠어?


드러나선 안 되는 일을 하다

떳떳하게 병원에 갈 수 없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야.


우린 그놈들에게

아픈 곳을 고쳐주는

고마운 의사이기도 하지만,


그놈들의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불편한 사람이기도 해.


고마우면서도 껄끄러운...

아주 미묘한 위치지."


"...네. 이해가 가요."


"또 다른 이유 중에 중요한 건...


우리는

그놈들의 동료를

살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놈들의 적을

살려줄 때도 있다는 거지.


난,

이 일을 하면서

생명을 살리고 돈을 받는다.


이 원칙 한 가지만 지켜.


다른 어떤 것도

고민하거나 고려하지 않아.


그런데

나를 찾는 놈들은 그렇지가 않지.


치료가 잘못된 거 같다고

위협하는 놈들부터


내 손을 빌려

적이나 동료를 제거하려고 하는

야비한 놈들도 있었어.


물론 모두 거절했지만...


아마 수락했으면

일이 끝나고 나도 죽였겠지...


우리 같은 존재는,

이쪽 세계에서는 항상 불안정해.


유혹도 많고, 위험도 많고...


생명의 무게는 모두가 똑같지만,

인간의 무게는 모두가 다르거든."


"아...그렇겠네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 단단히 먹어.


아까처럼 일반 환자 대하듯

그놈들을 대하면,

한 순간에 잡아먹히고

철저하게 이용당해.


항상 냉혹할 정도로

확실한 선을 유지해.


너를 지키기 위해서."


"네. 명심하겠습니다."


노준의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자,

김민성이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소주 한 잔을 목으로 넘긴 뒤,

노준의가 물었다.


"선배,


아까 그 사람들 말로는

동료가 한 분 더 계셨다던데...


여자 의사분이셨다고...혹시?"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 맞아."


"그럼 죽었다는 사람이

연희 선배라는 거예요?"


"응. 맞아.

내 연인이자 네 의대선배.


유연희."


거기까지 말한 김민성이

소주를 털어넣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상념에 빠진 표정의 그를 보며

노준의는

쉽사리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넌,

네가 왜 병원을 그만두고

이렇게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냐?"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저

의료사고가 나서

면허가 박탈됐다고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의료사고가 아니고

안락사를 시킨거지. 내가...."


"예?"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의외의 고백에

깜짝 놀란 표정의

노준의를 바라보며

김민성이 말을 이었다.


"5년 전에,

연희가 병원을 떠나게 된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지?"


"...네.


마약에 손대셔서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연희는...

의사를 하기에는

너무 인간적이었어.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너무 뛰어난 것도

의사로서는 결격사유야.


우리가 하는 일이

생명을 다루는 건데,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언제나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네...


연희선배는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죠.


환자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한달까..."


"난,


걔가

전공의도 정말 잘못 선택했다고 봐.


소아외과라니...


그렇게

마음이 여린 애가 감당하기엔

그쪽은 특히 더 잔혹하지."


"....."


"연희가 망가진 건,

백일이 갓 지난 아기의 수술에서

실수를 했기 때문이야.


병원 측에서는

아기의 부모에게

진실을 조작해 은폐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재빨리 돈으로 합의했지만,


그 수술을 집도한 연희는

잘 알고 있었지,


자신의 미숙함 때문에

아기가 죽었다는 걸..."


"아...그래서..."


"처음엔 연희도

마음을 다지고 잘 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안 된 거야.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손이 마구 떨렸대.


외과의사가

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지.


정밀검사도 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고,

원인은 정신적인 문제였어.


그때부터였어.


조금씩 몰래,

마약에 손을 댄 것이.


처음엔 괜찮았어.


손 떨림도 멎었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아지고...


아마

자기가 잘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


"하지만, 결국 망가졌지.


두 번째 아기가 죽은 건,

연희 잘못도 아니고

그저 그 아이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야.


응급으로 실려 왔을 때

이미 가망이 없었거든.


그냥

그 아이의 불운이었을 뿐이었어...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연희의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났고,


자책이 다시 시작됐고,


손 떨림이 심해졌고,


약에 대한 의존성이

급속도로 높아졌지...


그리고 결국 석 달 후엔..."


"그간 불법으로 유용한

마약들이 발각되었죠.


선배도

마약중독으로 판정이 나서

면허를 박탈당했고."


"난 내 연인이기도 한 연희가

그렇게 처절히 망가질 동안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어.


바쁘다는 핑계로

비겁하게 피하기만 했어.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연희가

의사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자기 힘으로

고통을 극복해야만한다고

내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지.


하지만 그건 정말,

내 오만한 생각이었어.


결국

힘들고 지치고 외로웠던 연희가

기댈 수 있었던 건

마약이었어.


내 어깨가 아니라..."


"....."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소주를 들이키는 소리와

무심한 담배연기만이

둘의 간극을 메웠다.


그 무겁고 답답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김민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연희가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지. 내 잘못을...


난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질 못했던 거야.


그저 기술만 가진,

돌팔이였던 거지.


그런 후회와 고민들이

내 속에서 시작될 무렵에

그 환자를 만났지."


"그 할머니 말씀이시죠?

선배가 의료사고를 일으켰다는..."


"내 담당으로 입원하긴 했지만,

사실 뭘 더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도통 판단이 서질 않는

아주 심각한 상태였어.


의사로서

그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의미 없는 연명치료정도였지."


"아...그랬군요."


"그래서 과장님하고 상의를 했지.


그냥 호스피스 병원 같은 곳으로

지금이라도 보내드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 과장님이 그러시더군.


민성아,

요즘 우리 병원,

특히 우리 과가 실적이 안 좋다."


"....."


"보호자들한텐

내가 설명해서 동의받을 테니

중환자실로 옮겨서

네가 케어해라.


혹시 모르잖아?

기적이 일어날지도.


이것도

의사로서 꼭 필요한 경험이야.


너, 내 자리까지 올라와야지.


그러려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다 경험해 봐야해."


"과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응...


근데 더 비참한 건,

나 역시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 말에 따랐다는 거야.


그 당시에

여러모로 힘들고 복잡했거든,

경제적으로도 가족적으로도,

그리고 연희 문제로도...


그렇게 시작되었지.

할머니의 연명치료가..."


"....."


"처음엔 통각을 차단하고,


그 다음엔 산소 호흡기를 달고,


그 다음엔 마약을 쓰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이미 의식도 없는

그 할머니의 생명을

억지로, 조금씩, 의미도 없이,

그저 이어가고만 있었지.


그렇게 2년 동안

그런 짓을 했어."


"많이 힘드셨겠네요."


"아니,


난 그때

이미 망가져있었어.


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내 이기심을 강화하고...


나중엔 그냥

둔감해지는 것을 택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난 쓰레기였어."


"....."


거기까지 말한 김민성이

씁쓸한 얼굴로

소주잔을 들었다.


그의 목을 타고

몸 안으로 넘어간 술이

그의 얼굴을

서서히 붉게 물들여갔다.


담배를 하나 태워물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김민성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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