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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6:16
최근연재일 :
2022.06.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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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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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seal ep 07-1

DUMMY

seal ep 07 청부업자 G (1)


서해의 어느 작은 항구,

해무(海霧)가 자욱한 어느 새벽,

컨테이너가 실린 배 한 척이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두꺼운 안개를 뚫고 조심스럽게

항구에 도착한 배는

접안에 성공하자

엔진을 끄고 닻을 내렸다.


새벽시간이긴 했지만,

항구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안개마저 무성해

배의 전조등이 꺼지자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았다.


싸늘한 칼날 같은

바닷바람 한 줄기가

매섭게 불었다.


잔잔하던 파도가

갑자기 일렁이자

시커먼 바다 위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와

차갑게 반복되는 파도 소리 외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태고(太古)의 침묵과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처럼

음울한 항구의 풍경은,


저 먼 어딘가의 나라의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입구에 있다는

심연의 동굴을 떠올리게 했다.




암흑과 적막

그리고

안개로 뒤덮인 풍경을 뚫고

조그마한 빛 한 줄기가 보였다.


잠시 후,


안개의 틈에서

사람 하나가

후레쉬를 들고 나타나더니

배 앞에 서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의 불빛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스킨헤드에 뱀문신을 새긴

험악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담배를 문채 배에 올라

컨테이너 쪽으로 다가가더니

굳게 잠겼던 문을 열어젖혔다.


사내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고

들고있던 후레쉬를 들어

컨테이너 안을 비췄다.




중국 밀입국조직

사두(蛇頭)중 하나인,

'비단뱀'이 운용하는

이 배의 컨테이너 안에는


삼십 명의 밀입국자들이

화물로 위장해 실려 있었다.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더러운 컨테이너 안에는


마치

비좁은 닭장안에 갇힌 닭들처럼


밀입국자들이

불편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서로에게 몸을 바짝 붙인채

불안에 떨고있었다.


밀입국자들의 지친 몸은

죽은 나무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어 보였고


그들의 초점없는 눈엔

그저 두려움만 가득했다.


이 비밀스러운 항해가

얼마나 고되고 비참했는지,

그들의 망가진 모습이

잘 알려주고 있었다.




마지막 담배 한모금을

깊이 빨아들여

허공을 향해 길게 내뿜은 사내가

바다를 향해 담배를 튕겼다.


사내는

마무리를 하듯

가래침을 바다에 뱉더니

천천히 후레쉬를 움직여

컨테이너 안의 상태를

구석구석 유심히 살폈다


오랜 시간동안 어둠 속에 갇혔던

밀입국자들은

갑작스런 빛의 공격에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천천히 안을 살피던 사내가

어느정도 확인절차가 마무리되자

후레쉬를 껐다.


컨테이너안에서 밀려나오는

심한 악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자신의 코를 손으로 부여 잡고

인상을 구기며

사내가 짧게 말했다.


"나와"




동북지방 억양이 강한 중국어가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힘들게 신음을 내며

밀입국자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굳었던 관절들이 펴지는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삼십 명의 사람들이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천천히 컨테이너 밖으로 나와

오랜만의 신선한 공기를

폐속으로 깊게 들이마셨다.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주의깊게 숫자를 세던 사내가

언짢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무언가

숫자가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스물 여섯, 스물 일곱...


에이...씨발...

왜 안 나와. 짜증나게"


사내는 다시 후레쉬를 켜고

컨테이너 안을 비췄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텅빈 컨테이너 안에는


누워있는 사람 하나와

그 옆에 앉아있는 여인 하나


그리고 그녀의 딸로 보이는

소녀가 남아있었다.




후레쉬에 비춰진 여인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 했다.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발견한 사내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컨테이너 안으로

코를 막은채 들어갔다.


사내가 몸을 숙여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의 코에

자신의 손가락을 대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또 뒈졌네...씨발..."




누워있는 남자의 숨은

이미 한참 전에 끊어진 것 같았다.


죽은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그 여인은


이미 차가워진

남편의 딱딱한 손을 꼭 잡고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딸임이 확실한

다섯 살쯤 되어보이는 소녀는


아빠의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


순진한 얼굴로 연신

'아빠 일어나'라는

중국어를 되네이며

그의 시신을 흔들고 있었다.




사내가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켜

슬픔으로 가늘게 떨리는

여인의 등에

후레쉬를 비추며 소리를 질렀다.


"이미 뒈졌어!


빨리 나와! 할 일이 많다고!"


사내의 고함에

깜짝 놀란 소녀가

겁먹은 얼굴로

엄마 품에 파고들자


여인은 그제야 잡은 손을 놓고

아이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그치려 애썼다.


사내가 다시금 투덜거리며

그녀를 향해 재촉했다.


"빨리 나가라고...


청소도 해야하고

물건도 내려야하고...


할 일이 많다고"


사내의 말에

여인이 잠시 침묵하다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편의 시신은 어떻게..."


여인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비웃듯 말을 잘랐다.


"왜? 장사라도 지내주게?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따가 버리든 태우든

우리가 알아서 치울거니까,


넌 애 데리고 얼른 나가."


"죽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이런 법이...어딨어요..."


여인이

다시금 두려움을 억누르며

용기를 내봤지만,


겁을 잔뜩 먹은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사내의 표정이 확 구겨지면서

거친 욕설만 튀어나왔다


"이 쌍년이 진짜...


니네 배 탈때부터

다 알고 탄 거잖아!


중간에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도장 다 찍어놓고,

이제와서 뭐 어쩌라고!"


사내의 위협에

여인의 입은 다시 다물어졌고


여인의 품에 안긴 소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여인이 아이를 꽉 안았다.


사내가 다시 거칠게 윽박질렀다.


"당장 안나가면,

둘 다 피볼줄 알아라."


사내가

금방이라도 때릴 기세로

손을 치켜들자


여인은

겁먹은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얼른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엄마 품에 안긴 소녀가

떼를 쓰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빠랑, 아빠랑 같이 가야지."




여인이 소녀를 달래듯

자신의 두 팔에 힘을 주며

오랜만의 바깥공기를 맡았을 때,


조직원으로 보이는

마스크를 쓴 사내 셋이

청소용구와 비닐,

약통 같은 것들을 들고

그녀 옆을 스쳐 지나갔다.


사내들은

여자와 아이를 흘낏 보더니

무덤덤한 눈빛으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모녀를 윽박지르던 사내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온 셋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더니

배의 기관실로 향했다.


잠시 뒤,


기관실 창문을 통해

무언가를 상의하는 듯한

두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컨테이너 천장에 매달려 있던

백열등 다섯 개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백열등 아래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 셋이

익숙한 몸짓으로

컨테이너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냄새를 잡아주는 용도의

화학약품을 여기저기 뿌리고,


피와 오물이 가득한 구석구석에

양동이로 물을 뿌리고,


대걸레와 빗자루를 이용해

여기저기를 닦아냈다.


기관실을 나온 스킨헤드의 사내는

그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스킨헤드 사내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죽었냐? 이번엔 몇 개냐?"


스킨헤드의 사내가

얼른 몸을 돌려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목소리의 주인에게 입을 열었다.


말끝이 흐려지는 걸로 봐선

사내의 입장이 난감한 것 같았다.


"이번엔 남자 한 명 뿐인데...

문제가 좀..."


스킨헤드의 사내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목소리의 주인이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사내가 얼른 허리를 세워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라이터의 불빛에 비친

목소리의 주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긴 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넘긴,


매섭고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사내가

담배에 불이 붙자

숨을 깊게 빨아들였다.


양 어깨와 팔이 다 드러난

민소매 옷을 입은 탓에


그의 왼뺨부터

왼쪽 어깨와 목을 거쳐

왼팔 전체에 새겨진 뱀문신이


라이터의 불빛에

잠깐동안 비춰졌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뱀문신의 중년사내가

스킨헤드의 부하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


스킨헤드의 사내가


뱃머리에 서서

그들의 눈치를 보며

덜덜 떨고 있는 모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중년사내에게 대답했다.


"저 여자 남편까지 서울로 넘겨야

잔금이 나오는데...


좀 곤란하게 되었..."


부하의 말에

시선을 돌려 모녀를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은

중년사내가

덤덤한 얼굴로 말을 잘랐다.


"넘기기로 한 물건이 두 개지?"


스킨헤드의 사내가 얼른 대답했다.


"예, 죽은 남편과 저 여자입니다"


중년사내가

엄마 품에 안긴 소녀를

묘한 시선으로 훑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갯수만 맞춰줘.


마침, 딸도 있잖아"


스킨헤드의 사내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렇게 되면...그게...."


중년사내가

스킨헤드의 사내를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그게 뭐?"


중년사내의 짧은 물음에

겁을 먹은 듯,


스킨헤드의 사내가

잠시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일 하기엔

저 애는 너무...

어리지않을까요?


기껏해야

네다섯살정도로 밖엔

안보이는데..."


뱀문신의 중년사내가

다 피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바다에 튕겨버리며

대수롭지않다는 듯 말했다.


"어쩌면 저 애가

지 애비보다 더 비쌀수도 있어.


이 나라엔

독특한 취향을 가진

구역질나는 놈들이 꽤 많으니까..."


자신과 딸을 쳐다보는

중년사내의 싸늘한 시선과

묘한 뉘앙스의 말에


소스라치게 겁을 먹은 여인이

소녀를 꽉 껴안았다.


딸을 안은 그녀의 팔이

두려움에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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