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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6:16
최근연재일 :
2022.06.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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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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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seal ep 09-4

DUMMY

다음 날 오후,


양지호는

또 다시 부산행 KTX에

몸을 싣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옷은

움직임이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신발은

가벼운 운동화를 신었다.


마치 독감에 걸린 환자가

병원에 들렀다

집에 돌아가는 것 마냥,


편안하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기차에 올라탄 양지호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자신이 자신의 모습에

잘 적응되지 않는,

그런 묘한 기분이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셔츠 위에

말끔한 차림의 정장을 걸치고,


목을 넥타이로 단단히 조인 후

날카로운 느낌의 안경을 끼고서

거울 앞에 서는 것이,


그의 출근 전 아침 풍경이었다.


자신의 외양에

흐트러짐이 없는지

확실히 점검한 후에야


신발장에서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정갈한 구두를 꺼내 신었다.


차가운 인상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나서야,

마음 편히 집을 나서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요 며칠 사이 이렇듯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차려 입고

먼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열심히 잡으러 쫓아다녔던,

지명수배전단에 나오는

범죄자들의 도피행각 같았다.


사실 그는 지금 딱히

‘사회적’으로

죄를 지은 상태도 아니었다.


굳이 ‘사회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임무 중에 실종된

그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려


사건현장에서

애타게 수색작업까지 벌이고 있는

자신의 회사에

사흘이 넘도록 연락을 안했다는

직무유기 정도일까?


‘사회적’으로

그가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던

평상시의 몸가짐과 태도로만 보면,

정말 그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불법을 저질러야만 하는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던

‘실종으로 조작한

노준의 살해사건’ 이후,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러

부산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저지를 살인은,


법적으로도 확실하게

사회적 용인의 기준선을 넘어서는

대규모 살인사건이 될 예정이었다.




그날 밤,


부산의

어느 한적한 주택가 뒷골목에

양지호가 나타났다.


여전히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천천히

어느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갔다.


평범해 보이는 건물에

평범한 가게들이 입주해 있는

이 5층짜리 빌딩 지하실은,


범진파의 마약보관창고 중 하나였다.




이곳이

범진파의 창고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가 1년 가까이

수사에 매달려 얻어낸

고급정보였다.


소량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는

마약사업의 특성상,


상품을 숨기거나

보관하는데 있어

거대한 설비나 두터운 보안은

전혀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창고는

그 외양으로만 보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가건물이었다.




마약을 보관하는 방식은,


이 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반 이상을 다루고 있는

업계 1위 용진이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듯,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잠금장치가 달린 검은 가방에

두툼한 약봉투를 넣고 다니는


그런 조직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평범함을

행동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그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 대학생,

회사원, 가정주부 같은 모습으로


100g 이하의

극히 적은 양만 가지고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녔다.


양지호도

함정수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약유통의 최고 말단에서

가장 큰 위험을 무릅쓰고

고객들에게 물건을 팔러 다니는

조직과 엮인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점을 찾을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첫 함정 수사 때,


마약을 팔러 나온

수수한 느낌의 여대생을 보고

양지호를 비롯한 수사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범죄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그 여대생은,


30g의 마약이 담긴 조그만 비닐을

중독자로 위장한 수사원에게

돈을 받고 전달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지만,


역시 그들의 예상대로


중요한 정보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말단 판매책이었다.




그 여대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여대생들과 구별되는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녀 자신이

마약중독자였다는 것이었고,


재수생 시절

극심한 입시 스트레스에

미칠듯이 시달리다


고등학교 동창이 건넨

물뽕이 섞인

박카스를 마신 후부터


자신의 지옥이 시작되었다고

울면서 진술했다.


이렇듯 그들은 대부분

그들 자신이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었고,


약의 판매와 구매를 동시에 하는,

조직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객인 동시에 영업사원이었다.




양지호가 지금 잠입한

5층짜리 빌딩에는,


100kg이 넘는 양으로

대규모의 북한산 히로뽕이

은닉되어 있는 장소였다.


중독자들에게

속칭 ‘아이스’라 불리는

북한산 히로뽕은,


일본과 한국에서 유통되는

마약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찾는 이들이 많은,

소위 ‘전통의 강자’였다.


코카인이니

암페타민이니 하는,


남미 쪽에서

생산된 마약이나


북미나 유럽에서

많이 찾는 마약들도


요즘엔 이태원을 중심으로

조금씩 유통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히로뽕’의 지위를 밀어낼 만큼

그런 새로운 약들은

국내에서 많이 돌지 않았다.


아무래도

밀수루트와 가격,

보관과 유통망 같은

‘자본주의적인 요인’들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렇게

범진파의 마약창고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건물이었다.


1층에 세탁소가 있고,


2층에는 태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간단한 시술을 하는

피부 관리실,


3층에는 요가학원,


4층과 5층에는

고시원이 입주해있었다.


그 건물 지하에는

세탁소에서 운영하는 세탁공장이

24시간 체제로 돌아가는데,


마약은

그곳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양지호도 수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1층의 세탁소는

세탁물을 배달하는 차량에

마약을 숨겨

딜러들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도매상이었고,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생긴

세탁소 주인 이호준은,


범진파의 중간보스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4층과 5층의 고시원에는

공부를 하러 들어온

학생들이나 공시준비생들이 아니라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들을 관리하는

조직의 칼잡이들이 머물고 있는

일종의 숙소 개념이었고,




피부 관리실과 요가학원은

신규고객이 된 사람들 중

여성고객만을 추려서 관리하는

속칭 ‘벌통’이었다.


범진파에 의해

마약에 중독된 여자들이


피부 관리를 받거나

요가를 배운다는 핑계를 대고

거짓회원으로 등록해


그곳에서 몰래

마약을 맞거나 흡입했고,


모자란 약값을 충당하기 위해

고리로 돈을 빌리고,


정말 급할 때는

출장매춘까지도 강행하는

막장의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조직원들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발 벗고 나서

신규고객들도 계속 물어왔는데,


그녀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마치 다단계 시스템처럼,


신규고객을

많이 데려오면 데려올수록

자신의 약값이

점점 싸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연과 구조를 가진

범진파의 창고 중 하나인

이곳에서,


양지호는

건물의 지하로

한발 한발 내려가며

다시금 계획을 점검했다.


첫 번째,

오늘의 가장 큰 목적인

‘약탈’을 위해


조범진을 꾀어낼 미끼로 쓸

이호준만은

부상을 입힌 상태로 놓아준다.


힘 조절을 잘못하거나

침착함을 잃어서

그자를 죽여서는 절대 안 된다.


두 번째,

이호준을 제외한

건물 안의 모두를 확실히 죽인다.


나와 이호준 말고는

생존자가 아무도 없어야 한다.


그들이

손님으로 온 중독자든

조직원이든

외국인 노동자든 상관없다.


피해규모가 크면 클수록

조범진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무조건,

예외를 두지 않고 모두 죽인다.


세 번째,

반드시 전사의 능력을 써서

죽여야만 한다.


조직간 항쟁처럼

흔히 있는 평범한 습격이 아닌,


전사의 능력으로 죽인 것이

확실하게 표시가 나도록

신경써서 처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계획을 복기한 양지호가

드디어 지하실 철문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양지호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에서

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에

두 대의 CCTV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전사의 칼이

강렬한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양지호는 준한과 연습한대로

공방의 능력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상태로

몸안의 에너지를 조절했다.


그의 전신을

붉은 오로라가 뒤덮고,


모든 준비가 끝난 그가

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강하게 철문을 내리쳤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지하실의 철문이 반으로 갈라졌다.


양지호의 검이

할퀴듯 지나간 자리엔


마치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처럼,

강렬한 불꽃이

철문을 서서히 녹이고 있었다.


양지호는 한 번 더,

이번엔 처음과는 반대방향으로

철문을 베었다.


다시 한 번 폭발음이 들리고

엑스 자 형태로 갈라져

녹아내리기 시작한 철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운데에 큰 구멍을 내며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고,


그에게

지하실안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럽게

철문을 부수고 나타난

독특한 침입자를 본

공장 안의 사내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본 광경이

‘현실이 맞나?’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온몸에서 붉은 빛을 발하며,

손에는 빛나는 붉은 검을 쥔

양지호가

천천히 세탁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특이한 장식이 달린

코등이를 가진,


카타나 비슷한 형태의

‘매의 검’은

마치 양지호의 몸과

혼연일체가 된 듯 보였다.


날카로운 참격을

첫 번째로 날릴 적들을

칼이 스스로 고르는 것처럼,


시뻘겋게 달궈진 칼날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작은 불꽃들이

환풍기 바람을 타고 날아가

사내들의 앞에 여기저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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