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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작품등록일 :
2022.05.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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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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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5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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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eal ep 10-2

DUMMY

그날

한 달 만의 ‘손님’을 맞으러,


노준의는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오늘의 손님은,


칼에 배를 찔렸다는

30대 남자로

강원도 어느 도시의

조직폭력배라고 했다.


강원도 쪽에서 손님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노준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전화를 한 남자에게 물었다.


이 번호를

누구에게, 어떻게 받았냐고.


그러자 수화기 저편으로

그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리운 이름이 흘러나왔다.


‘김민성 선생님 아니십니까?


예전에 한 번 뵈었는데요.

강릉에서’


민성의 이름을 들은 노준의는,

더 이상 아무 의문을 갖지 않고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속초 인근의 모래야적장으로,

미시령 고갯길을 빠져나오면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강원도로 통하는 고속도로들이

여기저기서 개통한 이후,


예전에는

휴가철만 되면 붐볐던

미시령 고갯길은

이젠 아주 한적했다.


산 정상에 있었던 휴게소도

어느샌가 없어진 것을 보고


노준의는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져

담배를 하나 태워 물었다.


김난정과

막 사귀기 시작할 무렵,

첫 드라이브를 왔던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사람도, 장소도, 추억도,

그의 불운한 세월과 함께

그의 삶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에겐

빛바랜 추억마저도 없군...


외롭다. 정말...


일하기도 싫은데

그냥 몇 달 쉴까...'




김민성이 죽은 이후,

그는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는

그 이후 들어온 몇 건의 의뢰를

혼자서 처리하면서

황당하고 언짢은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


금방 죽을 것 같이 아플 때는

그가 구세주이겠지만,


고통을 없애주면

빚쟁이 대하듯 껄끄럽게 대했다.


욕설과 주먹다짐이 오갔던

몇 번의 충돌 이후,


노준의는

그들을 더 이상

환자로 대하지 않고

손님으로 대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치료를 해야,


그들이 자신을 어렵게 대하고

고마워하게 되는지

그 요령을 깨달았다.


김민성이 자신에게 충고했던

‘저들과 확실히 선을 그어라’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생명을 살리는 것에

연연하지도 않았고,


응급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죽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어쩌겠나.


이렇게 된 것도

이 자의 자업자득이고

운인 것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주자.


이들에게

내 감정을 소비할 필요가 없어...'


그것이 그 즈음 일을 대하는

노준의의 심경 변화였던 것이다.




'동료는 아니더라도

조수라도 하나 구했으면 좋겠다.


일은 나 혼자해도 되니까

같이 밥이라도 먹고

같이 지낼만한...


안 될 일 인건 알지만, 그래도...'


의사로서의 자긍심이나

사명감이 없어진 지금,


그에게 남은 건

뼈저린 외로움과

지독한 권태감뿐이었다.


사실,

1년 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은 이미 충분했다.


그러나 그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김민성과 마지막에 약속한

‘매달 고아원에 기부하는 일’이

가장 컸고,


부차적으로는

의사로서의 감과 기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다였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덧 노준의는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모래가

큰 산 높이만큼 가득 쌓여있는

약속장소인 야적장에


그가 도착한 시간은

노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이른 저녁이었다.


국도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이라고는,


사업주가 관청에 허가를 맡아

개인적으로 만든

좁은 포장도로 하나뿐이었고,


그 흔한 가로등마저 없는

음산한 곳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지만,


야적장은

허가요건 자체가

외부에서 보이면 안 된다고

한 것 같았는데,


그런 특성 때문인지

야적장 주변의 풍경은

모두 산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거대한 모래의 산이 자리 잡은

그 독특한 모습은,


꼭 인적이 없는

고요한 모래호수 같았다.




컨테이너 트럭의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노준의가

담배를 하나 입에 물자


사내 하나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길도 불편했을 텐데

먼 길 와줘서 고맙소.


강릉에서 사업하는

강정호라고 하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상대가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건넸음에도,


노준의는 굳이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처음부터 철벽을 치고

짧게 용건만을 말했다.


강정호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가

많이 머쓱했는지

인상이 확 구겨졌지만,


아쉬운 것은 자기 쪽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환자는

지금 애들이 옮기는 중이고...


김선생님은 어디 계시오?

수술실에 계신가?”


“죽었습니다. 육 개월 전에...


지금은 제가

이 일을 물려받아 하고 있지요.”


노준의의 대답에

강정호의 얼굴이

더더욱 찌푸려졌다.


그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김선생이 돌아가셨다고? 왜요?”


“수술에 실패했다고,

배와 목에 수차례 칼질을 하더군요.

환자의 부하가...”


“........”


“그러니,

궁금하신 것이 많아도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입에 담기도, 떠올리기도 싫으니...”


노준의의 말을 들은 강정호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아까 왜 그 얘기를 하지 않았소?”


“당신이 누군 줄 알고

그 얘기를 합니까?”


“이봐요. 선생...그건 아니지.


난 서로 신뢰관계가 있는

김선생이라서

이 일을 의뢰한 것이고,


당신은 나와 지금 처음 봤잖소.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이런 일을 맡긴다 말이오?”


“그럼 의뢰를 철회하시지요.


이 일을 하는데 있어,

그런 신뢰관계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죽은 김선배에게 듣기론,

철저하게 비즈니스로만

이 일을 대하라고,


난 배웠습니다.”


“......”


“아쉬운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오.


환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 어디에선가

계속 생기고 있을 것이고...


난,

일을 골라잡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으니.”


노준의의 강력한 대처에

강정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노준의는 마치

그 사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듯이,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태연하게 연기를 내뱉었다.


“...좋소.

일단 애부터 살리고 봅시다.


치료를 부탁하오. 선생.”


“환자를

수술 테이블에 올려놓고,

컨테이너 밖으로 모두 나가시오.


안 그럼 일 안합니다.”


노준의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강정호에게 말했다.


강정호가

여전히 인상을 구긴 채,

아무 대꾸 없이

부하들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

노준의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문부터 잠갔다.


자신이 있는 곳을

외부와 차단하는 것이


김민성의 죽음 이후,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두 번이나

자물쇠를 확인한 노준의는

수술 테이블로 다가가

손님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배와 왼쪽 허벅지,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에

세 번의 칼을 맞은

젊은 사내였다.


어설프지만

어쨌든 응급처치는 되어있었고,


지혈제를

얼마나 많이 뿌려놨는지


붕대로 감아놓은 배가

붉은색도 누런색도 아닌

이상한 색으로 변색되어있었다.


“피가 그렇게

많이 유실된 것 같진 않은데,


정신을 잃고 있는 건...

마취제를 놓아서 그런 건가?”




노준의는 일단

그의 배에 감겨진 붕대를 잘라내고

상처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배와 허벅지는

그리 상처가 크지도 않았고

지혈제를 뿌려놓은 덕에

피도 멎어있었으나,


옆구리가 문제였다.


칼이 깊숙이 파고들어 장기를,

특히 간을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칼에 찔린 간에서

내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처를 자세히 살펴본 노준의가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쉽지 않겠는데...어떡해야 하나...”




노준의가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살려낼 확률은

30%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조치도,

아무 노력도 안한 티가

너무 나면


돈을 못 받는 건 물론이고,

불필요한 시비가 걸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음...난감한 상황이군.’


5분이 넘게 고민하던 노준의는

결국 메스를 들었다.


살리진 못하더라도

노력한 티라도 내자는 방향으로

결심을 한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을

너무도 태연자약하게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노준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변화라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삶이란 때론, 너무 구질구질해.’




한 시간 후,

결국 그 젊은 남자는 죽었다.


노준의가

숨이 끊어진 환자를 바라보며

강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력했지만...

살릴 수 없었습니다.


옆구리의 상처가 너무 깊었소.”


“.........”


“시신을 모셔 가시죠.”


“....알았소.”




전화를 끊은 노준의는

침대 밑에 숨겨 놓은

시퍼런 칼 한 자루를 꺼내

허리춤에 찬 후

옷으로 가려 잘 숨겼다.


이미

전사의 능력을 각성한 그에게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던 때문인데,


그날의 변신 이후

그는 한 번도 스스로

그 능력을

발현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날처럼 몸이 변하는지도,


어떤 과정을 거쳐야

그런 능력이 생겨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일 자체가

거칠고 사나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어쩌다 우연히 한 번 경험해본

그 힘은,

그에게 더더욱 간절해졌다.


그러나 그는

김민성이 죽던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 힘을 스스로 꺼내보질 못했다.


그나마 어린 시절부터 단련한

격투기 실력이라도

몸에 배어있기에


어찌어찌 주먹다짐까지는

버텨볼 수 있었지만,


칼을 꺼내들거나

무기를 든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정말 대책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컨테이너 곳곳에


칼이나 봉, 금속 너클,

쇳가루가 들어간 팔다리 보호대,

전기 충격기 같은

다양한 무기들을 숨겨놓았고,


아직까지 구하진 못했지만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불법적인 물건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총과 실탄이었다.




몸에 칼 한 자루를 숨기고

시체를 인수해가길 기다리고 있던

노준의의 귀에


잠시 후

컨테이너의 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준의는 천천히 걸어가

잠겨있던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운동복 차림의 젊은 사내 둘이

문 앞에 서있었다.


노준의는

아무 말도 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두 사내가 안으로 들어와

시체의 팔과 다리를 잡아

밖으로 들고 나갔다.




“선생, 잠깐 나와 보시오.”


아까 강정호라고 본인을 소개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 옆에서 들려왔다.


노준의가 대답했다.


“나갈 필요 없소.

돈만 문안으로 던지시오.”


“......”


잠시 사내의 침묵이 지나가고,

가방 하나가 툭 하고

컨테이너 안으로 떨어졌다.


노준의는 얼른 가방을 집어

안의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가방 안에는

5만원 권 지폐 한 묶음이

달랑 들어있었다.


200만원 정도 되어 보였다.


노준의가 발끈하며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약속한 금액이 아니잖소!”


“애가 죽었잖아...

그런데 다 받아가려고?”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강정호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로 바뀌어있었다.


“민성선배를 아는걸 보면

당신도 이 일이 처음도 아닐 건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환자가 죽든 살든

내가 받는 치료비는 똑같소.”


“그렇게 억울하면,

나와서 직접 받아가던가.


왜? 자신이 없나? 겁나나 보지?”


“...........”


노준의는 또 다시 결심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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