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얼굴이 많은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오히려좋다
작품등록일 :
2022.05.11 18:22
최근연재일 :
2022.05.18 15:1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462
추천수 :
41
글자수 :
46,296

작성
22.05.12 13:02
조회
52
추천
6
글자
13쪽

방랑자의 요람(2)

DUMMY

“시끄럽다. 잠 좀 자자.”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경비병이 뒤를 돌아봤다.


롱소드를 맨 젊은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용병인게 분명했다.


경비병이 코웃음을 쳤다.


“해가 중천인데 잠은 무슨 잠.”

“당신도 교대 근무의 고통을 잘 알텐데.”

“···날 아나?”


경비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직업 상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 얼굴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강한 특징이 있거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면 모를까.


“성문에서 몇 번 봤지.”

“알면 꺼져. 지금 업무 수행 중이니까.”

“요즘 경비병들은 양아치 업무도 겸하나 보군.”


경비병의 얼굴이 욹으락붉으락 해졌다.


무릎을 굽힌 유진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놀가죽을 집었다.


“좋은 가죽이군. 무두질을 잘했어.”

“좋긴 시발, 검끝만 조금 갖다대도 종이처럼 뚫리더만.”

“그따구로 체중을 실어서 찔러대면 트롤 가죽도 찢어진다. 믿기지 않으면 네 허벅지에 칼침 좀 놔볼까?”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경비병이 주먹을 들어올리기가 무섭게, 유진은 그의 낭심을 힘껏 걷어찼다.


경비병이 끄르륵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뭍에 나온 물고기 마냥 파들파들 몸을 떨다가 어느순간 움직임이 멎었다.


유진은 경비병의 혁대에 묵여있던 돈주머니를 풀었다.


‘많이도 모았군.’


은화가 예순 닢이나 들어 있었다.


일개 경비병이 들고다니는 금액치고 너무 컸다.


분명 어제의 유진처럼. 그리고 지금의 저 노인처럼 누군가에게 돈을 갈취한 것이리라.


유진은 낭낭한 돈주머니를 챙기고 여전히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놈이 지금처럼 행패를 부릴려고 하면 필립이란 병사를 찾아가시오. 놈의 직속상관인데다 사람이 꽤 좋거든. 이 놀가죽은 내가 사는걸로 하지.”


유진은 노인에게 은화 열 닢을 건넸다.


노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유진이 떠나는 방향을 향해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유진은 다른 여관에 방을 하나 잡았다.


여기서 한숨 자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원래 머물던 여관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약자를 외면하지 말아라. 그것이 귀족이다.’


문득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있던 유진이 쓸쓸하게 웃었다.


“일단 저부터 살고 봐야겠습니다.”


세상을 집어삼킨 화마와 함께

록슈타인 백작가가 멸문 당한 날.


유진은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당한 만큼 배로 돌려준다.’


그게 농노가 됐든, 경비병이 됐든,

제국의 황태자가 됐든.


* * *


유진은 해질녘 즈음 눈을 떴다.


맘 같아선 새벽까지 자고 싶었지만, 이전 수면 시간과 텀이 짧아서 정신이 너무 맑았다.


그는 미리 담아뒀던 쟁반물 앞에 앉았다.


호리호리한 이목구비를 한 30대 남성의 얼굴이 수면에 일렁인다.


그는 유진과 척을 진 사람으로부터 살인 의뢰를 받았다가, 되려 자신이 당한 이류 암살자였다.


등받이 없는 싸구려 목제 의자에 앉은 유진. 그는 어제의 일을 곱씹어보기로 했다.


“처자식도 있다라···.”


탈주 기사 가레스.


그를 처음 수배서에서 봤을 때, 유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가레스는 유진의 살생부에 있는 리처드 남작의 기사였으니, 크든 작든 록슈타인 멸문에 관여되어 있었을테고, 그를 죽이면 작게나마 처음으로 복수를 이룸과 동시에 그동안 간절히 바래왔던 기사의 몸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기사란 본디 홀로 다니지 않는다.


종자 서넛을 끌고다니는 건 기본이거니와, 영지의 병사들까지 대동하고 다니기도 한다.


홀몸으로 움직이는 유진에겐 기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진은 지난 3년간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탈주 기사.


그것도 유진의 가문을 멸문시킨 리처드 남작의 기사.


가레스 남작은 혼자 영지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주위에 종자나 다른 부하들이 없다는 것만해도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게다가 도망 생활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음식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을 테니 분명 몸이 많이 약해졌을 터.


기사를 잡으려면 지금이 적기다.


한데.


처자식을 내던지고 도망을 갔다는 게 계속 거슬린다.


“흐음.”


유진이 침음을 흘렸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뻐한다. 그게 인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도대체 뭘 들고 도망쳤길래···.”


유진은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명쾌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듣거나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혼자서 망상을 하는 것과 다름 없으니.


유진은 생각하기를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도시는 이제 막 황혼에 잠기고 있었다. 새벽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여관 방. 다른 이라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산책이라도 나가겠지만, 유진은 시간을 죽이는 아주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유진은 수 하나 없는 밋밋한 손수건을 꺼내 롱소드의 날을 정성스레 닦았다.


“이안 라이이온하트, 로랑 라블롱, 로버튼 보든, 리처드 오웬, 수잔 벨 버넬, 샤를 드레이크, 조나단 아이븐, 로저 스크러턴, 얼리샤 마코바······.”


기도하는 성직자처럼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한 시간, 두 시간.


여섯 시간동안 흘러나왔다.


여관의 판자벽 너머로 코고는 소리들이 가득 넘어오고, 유진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귀신처럼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원래 묵었던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뜬눈으로 일출을 기다린 뒤,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몸은 다른 몸들보다 비교적 체구가 작다. 그래서 유진은 얇은 옷을 두겹 더 껴입고 깔창을 깔았다.


앞이 넉넉한 신발 치수는 종이로 채워 막았다. 깔창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맞게 왔군.”


싸구려 술집으로 위장한 정보 길드,

「방랑자의 요람」


길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 유진을 맞았다.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걸세. 높으신 분들이 왔거든.”


높으신 분들?


늙은 직원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동안, 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직원의 말대로 문 너머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둘이 아니었다. 최소 넷 이상.


유진은 지부장에게 기사급 실력자를 소개시켜 달라 했다.


그리고 그 인원을 한 두명 정도로 생각했다.


유진의 지갑 사정도 문제지만, 기사급 실력자가 용병들처럼 길가에 널린 것이 아니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여겼다.


하나 그런 유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다수의 시선이 유진에게 꽂혔다.


마치 도축장에 나온 돼지를 보듯, 유진을 품평하는 눈길이었다.


꺼림찍했지만 유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면 속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소파의 상석에 앉아 있는, 중무장한 젊은 남자. 그 잘생긴 얼굴이 너무 낯이 익었던 것이다.


‘아서 구스타프?’


북방의 수호자, 구스타프 변경백의 첫째 아들.


사교회에서 한 번 마주쳤던 그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귀 옆에 심장이 달린 듯, 그 소리가 너무 컸다.


구스타프 변경백은 전통적인 중립파다.


북부를 지키는 것 말고는 중앙 정치에 일절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변경백의 자제가 단단히 무장한 채 병력들을 이끌고 제국의 중앙까지 내려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진은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에서 크게 안도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얼굴 표정이 죄다 읽혔을 것이다.


“자네가 까마귀인가?”


금박을 입힌듯한 황금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아서.


그의 벽안에 유진의 전신이 맺혔다.


“듣던데로 검은색 일색이구만.”


아서는 무릎 위에 팔을 얹고 깍지를 꼈다. 그 위에 턱을 괸 아서의 주위론 네 명의 로브인이 시립해 있었다.


로브로 가려졌지만 굵은 선이 드러나는 것이 안에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진이 마른침을 삼킬 적에, 옆 소파에 앉아있던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인사 드려. 당신을 고용하고 싶어하는 분들이야.”


일이 굴러가는 걸 파악한 유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벙어리 행세를 하는 유진 대신 지부장이 설명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유진이라는 용병입니다. 별명은 까마귀. 임무에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으면서 이곳 지리를 매우 잘 압니다. 제가 소개시켜드릴 수 있는 용병 중 가장 신뢰할만한 자입니다.”


아서는 그 말을 듣더니 잠시 침묵을 지켰다.


“유진··· 내가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군.”


동요하는 심장을 다스리며 유진이 지부장 옆에 앉았다.


소파 뒤에 서있는 자들에게서 칼날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허튼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목을 잘라버릴 태도다.


“뭐, 흔한 이름이긴 하지.”


반면 아서는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빤히 유진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재미있는 걸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혹시 가면 한 번 벗어줄 수 있나?”


갑작스런 요청에 유진이 얼굴을 굳혔다.


심장 박동이 더욱 빨라졌다.


유진은 저런 류의 주문을 수 도 없이 많이 받아왔다. 그리고 전부 거절했다.


얼굴을 까고 다니는 것이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지키는 데 하등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무대포로 나오며 가면을 들추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 이죽거리는 이빨들을 서너개 뽑아주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아서에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변경백의 아들이자 대륙에서 촉망받는 젊은 기사였다.


주먹을 뻗는 건 둘째치고,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목이 잘릴 가능성이 컸다.


복잡해진 유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서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금화 한 개면 어떤가. 꽤 괜찮은 제안 같은데.”

“···.”

“두 개.”

“···.”

“열 개?”


유진이 가면에 손을 가져가자, 아서가 황급히 오른팔을 저으며 사과했다.


“미안. 사실 그만한 돈은 없네. 아직 용돈 받고 사는 입장이라.”


유진은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서를 봤다.


뭐지 저 양반?


“그래도 어느정도 믿음은 생겼어. 뒤가 구렸으면 끝까지 안 벗으려고 했겠지.”


아서가 눈처럼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옆에 있던 지부장은 낮게 탄성을 흘렸다.


유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면을 벗는 시늉을 낸 것은 유진으로서도 큰 도박수였다.


하지만 그리 해야만 했다.


저 금액을 듣고도 가면을 벗지 않으려 하면 분명 아서에게 의심을 살 테니.


유진이 손을 뻗어 탁자 위의 깃털펜을 쥐었다. 이 몸은 마법사의 몸과 달리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 손으로 직접 글을 써야 했다.


[죄송합니다. 어릴 적 심한 화상을 입어서 남한테 보여주긴 너무 흉한 얼굴입니다.]


정갈한 필체. 아서는 물론이고 뒤에 있던 호위들의 눈썹까지 들썩였다.


“글을 알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이렇게 잘 쓸 줄은 몰랐군.”


글자라는 건 지성있는 귀족의 상징이지만, 평민 중에서도 글을 아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상인 집안이거나 중간 관리로서 출세하고 싶은 자들은 열심히 글을 익히기 마련이니.


그러나 좋은 글선생들은 귀족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거라, 독자적으로 글을 익힌 평민들은 보통 악필이기 마련이다.


안 좋은 습관을 교정받지 못해서다.


하나 유진은 달랐다.


어휘도 훌룡했고, 선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필체들도 매우 유려했다.


“혹시 서자인가?”


아서의 물음에 유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귀족 자제란 것들은 허파에 바람만 가득 차서 곧 죽어도 용병 짓은 안 하지. 방랑 기사라면 또 모를까.”


말을 끝맞힌 아서가 품안에 손을 넣었다. 돌돌 말린 무언가가 탁자 위에 펼쳐졌다.


유진은 그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근방의 지도였다.


“의뢰를 설명하기 앞서, 자네 혹시 독도법을 아나?”


독도법. 지도를 읽는 방법.


지휘관들이나 배우는 고급 지식이다.


유진은 독도법을 배운 적은 없지만 정확히알고 있었다. 그가 죽인 사람 중에는 초급 지휘관도 있었으니.


유진이 머리를 끄덕이자, 아서가 놀란 듯 자신의 호위들과 잠깐 눈을 맞추곤 다시 유진을 바라봤다.


“보면 볼 수록 대단한 친구구만.”

“···.”

“난 하나도 모르는데.”

“···?”


지부장의 황망 어린 눈이 아서를 향했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얼굴이 많은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초반 부분 조금 수정을 했습니다. 22.05.17 17 0 -
9 가레스(1) 22.05.18 14 1 12쪽
8 황제의 기수(3) +3 22.05.17 37 3 11쪽
7 황제의 기수(2) 22.05.16 39 3 11쪽
6 황제의 기수(1) 22.05.14 48 4 12쪽
5 방랑자의 요람(3) 22.05.13 43 5 11쪽
» 방랑자의 요람(2) 22.05.12 53 6 13쪽
3 방랑자의 요람(1) 22.05.11 54 5 11쪽
2 수배서(2) 22.05.11 68 6 11쪽
1 수배서(1) 22.05.11 106 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