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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5.11 18:22
최근연재일 :
2022.05.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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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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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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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황제의 기수(2)

DUMMY

리처드 남작은 말단 병사부터 시작해 황제의 기수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음유시인이 온종일 노래를 불러도 매마르지 않는 수많은 전공.


콧대 높은 귀족들조차 한 수 자존심을 접게 만들 엄청난 무력.


야망 있는 제국의 병사들은 리처드 남작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고, 촌뜨기 농노들조차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몰래 기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만큼 리처드 남작이 평민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그는 근 50년간 평민에서 남작이 된 유일한 사례이니.


그 반대로, 대부분의 귀족들은 무척이나 그를 껄끄러워했다.


그들에게 있어 리처드 남작은 평민의 빨간 피와 귀족의 푸른 피 사이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혼종에 불과했다.


“정찰 좀 갔다 온 사이에 내 부하들이 죄다 죽었군.”


귀족이 그를 싫어하는 만큼, 리처드 남작도 귀족들을 끔찍이 싫어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 버러지 놈들, 그게 귀족에 대한 리처드 남작의 평가였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북부의 개새끼들아, 설마 이게 너희들의 짓은 아니겠지?”


리처드 남작이 광오한 눈매로 유진과 아서 일행들을 훑어봤다.


“개새끼라뇨. 늑대라는 좋은 이름을 냅두고 어찌 그런 상스러운 말을.”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그 입 닥쳐라.”


으르렁거리듯 말한 리처드 남작. 그를 보며 아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은 이전부터 수집한 정보나 첩보들을 통해 서로가 작센 백작령에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군요. 저희는 남작님의 부하들을 해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온몸이 피칠갑인데?”


유진과 아서 일행은 어제부터 제대로 씻지 못했다. 고블린의 피로 전신이 끈적끈적 했지만, 손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머리카락을 벅벅 닦은 것이 끝이었다.


강이나 개울 같은 것이 야영지에서 꼬박 하루는 가야 있기 때문이었다.


“보면 다 마르지 않았습니까. 검에도 피 하나 묻어있지 않고.”


아서가 검자루를 살짝 잡아당겼다. 햇살을 반사한 검면은 아주 매끄럽게 빛났다.


“논거가 좀 빈약하구나.”

“빈약하다뇨. 저 시체만 봐도 인간의 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는데. 게다가 저희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왜 없나. 내가 의심하면 그게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증인인데.”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궤변이지만, 리처드 남작에겐 무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일 힘이 있었다.


“남작님의 무위는 북부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거 같군요.”


아서는 입술을 끌어올리며 검자루를 부드럽게 쥐었다. 유진도 따라 쥐었다.


리처드 남작은 가문의 원수다. 안 그래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실력 차이가 확연해 간신히 참고 있었다.


하나 아서가 먼저 날뛰어준다면 반갑게 그 기회를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다.


“그래서 말인데,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귀족이란 놈이 명예도 모르는구나.”

“괴물을 잡는데 어찌 명예를 들먹이십니까.”


이마에 핏줄이 돋은 리처드가 뭐라 하려고 하던 찰나.



꺄하하하학────!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그들의 귓바퀴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활에 맞은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지며 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이 터져라 귓가를 눌러댔으나, 그 괴성은 보란 듯이 손바닥을 통과해 그들의 뇌를 둥둥 울려댔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려오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코앞에 있는 것 같기도,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구슬픈 여자의 목소리 같기도,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또 자세히 들어보면 다 죽어가는 늙은이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며 이제 막 태어난 아이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끄으으윽—”


모두가 신음하며 바닥에 주저앉은 가운데.


‘···뭐지?’


유진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했지만, 유진은 미간을 좀 찌푸린 것이 전부였다.


‘그 정도는 아닌데.’


유진도 저 괴이한 웃음소리가 굉장히 거슬렸다.


바퀴벌레처럼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할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시끄러운 걸로 따지면 가도를 행진하는 군악대가 훨씬 시끄러웠다.


뭔가 이상하다.


종자야 그렇다 치고, 오러를 다룰 줄아는 아서와 소피아, 리처드 남작까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분명 오러를 끌어올려 귀를 보호할 텐데 말이다.


유진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처참하게 찢겨 죽은 기사의 시체. 상처엔 벌레 하나 꼬이지 않았고 구더기 알도 보이지 않는다.


죽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간상, 이 학살을 벌인 범인과 웃음소리의 주인은 같을 것으로 보인다.


몬스터는 아니다. 유진은 이 근방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종류를 줄줄 꿰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가레스.’


혹은 그와 연관된 무언가.


그는 대체 뭘 들고 달아났길래 변경백의 아들과 황제의 기수 같은 거물들과 엮이게 된 걸까.


유진이 혼자 생각해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그에게 주어진 어떤 단서도 없으니.


허나 실마리 하나 없어도 이 괴상망측한 사건의 전말을 알아낼 방법이, 유진에게는 있다.


유진의 축복이자 저주. 죽인 사람의 신체와 기억을 빼앗는 것.


유진은 천천히 리처드 남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매타작을 맞는 거지처럼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땅에 처박힌 머리는 코앞까지 다가가도 들어 올리지 않을 것 같았다.


유진이 천천히 검자루를 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맥동했다.


동공이 커지고 흰자엔 핏발이 가득 들어섰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유진이 그런 확신에 찼을 때였다.


“!”


리처드 남작의 목이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마치 고장난 목각인형처럼.


유진을 담은 그의 붉은 눈동자가 지진이 난듯 흔들렸다.


유진은 온 세상이 정지한 듯한 괴이한 감각을 느꼈다.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고, 엉킨 시야는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그러길 한참. 사방에 가득하던 웃음소리가 멎었다. 한순간에 뚝.


고요가 찾아온 숲은 인간들의 앓는 소리만 가득했다.


“하아, 하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나 리처드 남작이었다.


그는 숙취에 괴로워하는 술고래처럼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남작 다음은 아서와 소피아였고, 할리란 이름의 종자는 아예 입에 개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할리!”


소피아가 제 종자를 돌보러 갈 적에, 리처드 남작이 유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워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서가 오른 손바닥을 내밀며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귓속에서 삐— 이명이 울리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나와라, 해치려는 게 아니니.”


좀 전에 죽일 기세로 투창을 날린 사람이 하는 얘기치곤 퍽 웃긴 얘기다. 아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나 리처드 남작은 진심이었다.


“이러면 됐나.”


남작은 손에 쥔 투창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마치 귀찮은 물건을 치우듯이.


아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단, 검은 강하게 꼬나쥐었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입니다. 허튼 짓 하지 마십시오.”


아서의 말에 일언 대꾸도 하지 않고, 리처드 남작은 조용히 유진을 내려다봤다.


키 차이가 워낙 커 어른과 아이 같았다.


유진이 작은 건 아니다. 리처드 남작이 워낙 거구였던 탓이다.


유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게.


리처드 남작쯤 되는 기사면 무기 없이도 언제든 유진을 죽일 수 있다.


개미 눌러 죽이는 건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듯이. 긴장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응?”


아서의 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리처드가 아서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다. 곰발 같은 손바닥엔 커다란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


“좀 전에 창을 던진 건 미안하게 됐다. 워낙 수상쩍게 생겨서 말이지.”

“···?”

“그래도 내 잘못이니 합당한 배상을 해주마. 그대의 화를 녹여줄 만큼 아주 큰 배상.”


아서가 제 두 눈을 세차게 비볐다.


세상에.


사제에게도 주먹을 날린 그 리처드가 일개 용병한테 사과를?


* * *


유진은 원수에게 악수 요청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해봤다.


게다가 자신은 조금 전에 리처드 남작에게 살기를 흩뿌렸지 않았는가. 그것도 한참동안이나.


그가 당황하는 차, 리처드 남작의 팔이 살짝 움직였다.


“손이 허전한데. 계속 이대로 둘 건가?”


이걸 받아야 하나···, 유진은 속으로 갈등했다. 그에겐 스스로 정한 몇 가지의 규칙이 있다.


타인과 일절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 것도 그 규칙 중 하나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지키기 더욱 용이하지 않겠는가.


허나 유진은 이번엔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이건 기회다.’


같은 지역에 살아 종종 마주치는 용병, 상인들과 달리 리처드 남작은 유진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몸을 숨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다.


아니, 많았다 하더라도 유진은 그 운명을 비틀어 버릴 것이다.


‘놈을 죽인다. 최대한 빨리.’


허나 지금 당장은 남작을 죽일 방도가 없다.


그는 황제가 직접 임명한 기수.


이류 용병 따위가 정면으로 달려들어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훗날을 기약하고 남작의 호의를 사는 편이 좋다.


자신의 칼이 저 두터운 목을 파고들 순간을 위해, 유진은 원수의 손을 기꺼이 잡았다.


‘저 놈은 날 원한다.’


잠시 머리를 굴린 유진. 그는 확신했다.


리처드 남작은 사교회에서도 포악하기 소문난 남자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유진에게 굽히고 들어올리 없다.


‘그 괴성이 들려왔을 때, 모두가 괴로워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리처드 남작은 자신의 그런 부분을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진의 추측을 증명해주듯, 리처드 남작이 말했다.


“널 고용하고 싶다. 저 북부의 개새끼가 제시한 돈의 다섯 배를 주지.”




* * *


산 정상. 피칠갑의 남자가 사위를 오시하고 있다.


절벽에 위태롭게 선 그의 얼굴엔 빨간 가면이 씌여져 있었다.


원래는 하얀색이었으나 인간과 몬스터들의 피로 빨갛게 물든 것이었다.


“키킥.”


사내가 웃음을 흘렸다.

성별과 나이를 특정하기 어려운 괴이한 목소리였다.


“재밌는 게 왔네.”


현재 상황이 만족스러운 사내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얼굴 근육 대신, 가면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사내는 등을 돌렸다. 그의 뒤에는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서 있었다. 그 수는 족히 수백 마리에 달했다.


“이번엔 너희들이 가라.”


남자의 말에 질질 침을 흘리고 있던 놀들이 발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는 일체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이지를 상실한 마약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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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레스(1) 22.05.18 15 1 12쪽
8 황제의 기수(3) +3 22.05.17 37 3 11쪽
» 황제의 기수(2) 22.05.16 40 3 11쪽
6 황제의 기수(1) 22.05.14 49 4 12쪽
5 방랑자의 요람(3) 22.05.13 44 5 11쪽
4 방랑자의 요람(2) 22.05.12 53 6 13쪽
3 방랑자의 요람(1) 22.05.11 54 5 11쪽
2 수배서(2) 22.05.11 69 6 11쪽
1 수배서(1) 22.05.11 10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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