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선생님! 측정결과는 어떤가요?”
길동은 거북목을 하고는 구미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음! 힘 25, 민첩 100, 체력 29, 뇌능력 46이야. 평균 50, 어떻게 딱 50점이 나올 수 있지. 완전 턱걸인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초인 중에서 가장 낮은 레벨이 F급인데 지수가 50 이상 100 미만까지야.
만약 50을 넘지 못하면 초인이라고 할 수 없어.
그 경우에는 테스트에 떨어진 셈이라 곧바로 퇴소해야 하거든.
야! 딱 50이라 너 운 좋은 줄 알아!”
“아! 감사합니다.”
길동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강의실로 가기 위해 혼자서 복도를 걷고 있다.
“칠성아! 뭔가 께름칙한데, 혹시 네가 수작 부린 거 아니야? 아까 이상한 기운이 계속 맴돌던데.”
[ 큭큭! 맞아. 너도 기감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 대충 넘기는 법이 없네. ]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 실은 아까 강신형이 테스트할 때랑 기계가 할 때 모두 내가 손 좀 봤지.
뇌능력은 몰라도 신체기능은 이미 너도 장길산처럼 200이 훨씬 넘을 거야. C급(200~500) 레벨 정도는 되는 거지. ]
“야! 그냥 놔두지 그랬어?
[ 넌 최대한 네 능력을 숨겨야 한다고 했잖아. 지금쯤 일루젼에서도 네가 라온의 후손인 걸 알 거야. 주시하고 있을 거라고.
네 능력치를 이렇게 철저히 검증하려는 것만 봐도 알잖아. ]
“그래도 50이 뭐냐?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아!”
[ 실은 떨어지게 할까 하다가, 네가 꼭 일루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고민하다 양보한 거야. ]
“어이구, 말이나 못하면. 그나저나 신체능력보다 뇌능력이 낮은 이유가 뭐야?”
[ 넌 전사 스타일이야, 라온처럼. 그래서 신체능력은 빠른 속도로 무한 성장하지만 뇌능력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딘 편이지.
연수는 너와 정 반대고. ]
“아까 뇌능력 46은 어느 정도 수치야?”
[ 보통 인간 중에서 멘사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그러니까 상위 2% IQ로는 대략 150 이상인 사람이 저 측정을 하면 15 정도밖에 안 나와. 그러니 46도 결코 낮은 게 아니지. ]
“하아! 위안이 안 된다. 연수는 S급이니 도대체 뇌능력이 얼마나 된다는 거야?”
[ 아마 S급이라면 3,000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신체능력은 거의 바닥 수준일 테니까 말이야. ]
“와! 내가 그래서 연수에게 끌린 건가? 초인끼리 통하는 뭐 그런 거 아닐까?”
[ 흐흠, 네가 초인으로 발현한 건 이제 고작 이틀 된 거 잊진 않았겠지? ]
“아, 알았다고. 기분 좋게 상상 한 번 해본 건데 바로 메스를 들이대는구나.
넌 역시 인간의 마음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
[ 허허! 너도 언제쯤 내 마음을 이해하려나! ]
길동이 씩씩거리며 강의실 앞에 다다랐다.
그때 뒤에서 연수가 어깨를 툭 친다.
“혼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오는 거야?”
“아, 들었어?”
“막 화를 내는 거 같던데.”
“아! 그게 아니라. 실은 간신히 테스트를 통과했거든.”
“그래? 수치가 얼마나 나왔는데.”
“그, 그게.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에이! 이야기 해줘엉!”
연수가 길동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살가운 눈웃음을 친다.
녹는다, 녹아!
“그, 그게 좀 창피해서.”
“괜찮아. 얼마나 나왔어?”
“실은 나 50 나왔어.”
“아, 그래. 너무 낙담하지 마. 여기서 하는 측정이 이상한 것 같아.
난 너무 잘 나와서 못 믿겠어.”
“그래? 넌, 어땠는데?”
“난 여기서 뇌능력에 대해선 측정불가래!
뭐, 내가 다른 종류라나 어쩐다나, 아무튼 엄청 능력이 세서 측정을 못 한다고 하더라고.”
“와, 그 정도야!”
“그런데 난 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고작 꿈꾸는 정도고 그것도 날마다 꾸는 게 아니라 가끔 아주 가끔 있는 일이라.”
“아직 제대로 발현되지 않아서 그러겠지. 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거야. 앞으로 네 역할이 무척 중요해질 것 같아.”
길동은 연수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위로와 격려를 했다. 연수도 뭔가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다.
그때 강의실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놀라 길동과 연수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장길산과 어느 호리호리한 청년이 앞발을 맞대고 한 손을 움켜잡아 미는 손 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놈! 내가 널 이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해 왔는지 아느냐?”
장길산이 큰소리로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넘어뜨리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는 가녀린 몸에서 도대체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음, 저 사람이 길산이 말했던 전우치인가 보구나!
이름 대로라면 도술이 주특기일 텐데, 저렇게 힘까지 세단 말인가? 대단한데.'
길산의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입회원들은 ‘장길산!’을 외치며 힘을 북돋우고 있다.
하지만 이미 판세는 뒤집기 어려운 형국.
길산은 상당히 지쳐 있는 데 반해, 전우치는 미소를 띨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진작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길산을 테스트하기 위해 마냥 지켜본 듯하다.
“자! 이제 마무리해볼까?”
역시나 전우치가 그 말을 끝으로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팔을 휘젓자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장길산이 옆으로 크게 내동댕이쳐졌다.
저 큰 몸뚱이가 날아 떨어진 통에 여러 의자와 책상이 부서지고 말았다.
꼴이 우스워진 길산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그때 전우치가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끌며 다독인 후 말했다.
“난, 너희 2년 선배인 전우치다.
일루젼에서 여러 임무를 맡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쓸만한 녀석을 찾아내는 거지.
여기 길산이도 내가 데리고 온 거나 마찬가지야.
처음 만났을 땐 힘만 세고 발전이 더뎠는데, 지금 보니 꽤 레벨업 했어. 역시 동기나 목적이 뚜렷하면 성장하기 마련이란 말이지.”
장길산을 애처럼 다루는 걸 봐서는 굉장한 실력자인 게 분명하다.
“장길산의 힘은 이미 C급 레벨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수치로는 벌써 200을 넘어가니까 말이야.
이 레벨이라는 게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커. 한 단계 레벨업을 하는 순간 성장 속도에 가속도가 붙게 되거든.
다들 중요한 시기니 열심히 하길 바래.”
한 녀석이 궁금해 못 참겠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잠깐만요. 선배님은 도대체 힘이 어느 정도길래, 그렇게 웃으며 괴력을 낼 수 있는 거죠?”
“나? 난 80 정도.”
“에이, 80이면 고작 F급 레벨인데, 말도 안 돼. 장난하지 마시고요.”
“하, 참! 진짜야. 내가 왜 신입생들 앞에서 농담하겠어. 나, F급 맞아. 힘에선 말이야.”
F급 레벨이 C급 레벨을 쉽게 제압한다고?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내 전공은 파워가 아니라 뇌능력이야. 이걸 총동원해서 기계를 다루지.
너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난 항상 기계종과 하나가 돼 움직이거든. 자 보여줄게!”
전우치가 들고 있던 부채를 펼치며 주문을 외자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에 널따란 언덕과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향긋한 꽃향기가 퍼지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었다.
'정말 이런 게 도술이란 말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애들이 신이나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우치가 버럭 소리를 친다.
“애들아, 멈춰! 이건 홀로그램일 뿐이야.
우린 강의실에 있는 거라고. 크게 움직이다간 책상이나 벽에 부딪혀 다칠 수 있어.”
다시 전우치가 펼쳐진 부챗살을 접으며 주문을 외자, 어느새 다시 강의실의 모습 그대로다.
“너희가 본 건 내가 데리고 있는 기계종이 시현한 홀로그램이었어.
자, 보시라!”
전우치가 다시 부채를 펼치자 갑자기 그가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목소리는 여전히 허공에서 크게 들렸다.
“내가 안 보이지. 그렇지만 내가 이곳에 없을까?
그건 아니거든. 이 역시 홀로그램이야.
투명인간이 이런 테크놀리지로 가능한 거지.”
순간 다시 전우치가 나타났다.
'영락없이 도술인데, 이게 홀로그램이란 거구나.
투명인간도 될 수 있다 이거지.
큭큭! 기대되는데. 나도 언젠가!'
“크게는 반경 1km 주변을 모두 홀로그램으로 가득 채워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착시효과를 낼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은 이게 도술인 줄로 아는데, 실은 과학문명이 만들어낸 테크놀리지일 뿐이야.
이런 기계종을 다루려면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이 필요하지.”
그때 한 녀석이 다시 물었다.
“선배님! 기계종이 정확히 뭔가요?”
“지금 과학자들이나 대기업에서 AI 기술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런 기계종의 초기 형태에 불과해.
외계인들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이 기술을 발전시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하나의 기계 종족을 만들어 낸 거지.
이 기계종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우리와 협력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적을 선택하기도 해.”
“그럼 그 기계종이란 거는 어떻게 생겼어요?”
“기계종은 우리 몸의 세포처럼 기본 형태를 가지고 있어.
이것들은 이합집산이 가능해서 뿔뿔이 흩어져 움직이다가 필요하면 서로 뭉쳐서 거대한 개체를 이루기도 하지.
가장 강력한 기계종은 중력기술을 이용해 혼자서도 무한한 힘을 내기도 하고 말이야.”
'아! 이 녀석이 칠성이까지 알고 있구나!'
< 칠성아! 저 선배 말이 맞는 거야? >
[ 응, 대체적으론. 하지만 쟤도 모르는 게 많아. 그저 피상적인 것만 아는 수준이라고 보면 돼. ]
< 음, 넌 그럼 지구인이나 아리인에게 우호적인 기계종이란 말이지? >
[ 그렇지. 내 성향 자체가 인류와 어울린다고 할까?
기계종도 진화하면서 다양한 인격을 가지게 되는데, 주로는 함께 살아온 종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
< 그렇구나. 그럼 넌 누구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거야? >
[ 그거야 물론 너희 할아버지 라온이지. 내 주인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
< 다행이다. 너처럼 강한 녀석이 내 친구라니 말이야. >
그때 전우치가 ‘촤르륵!’ 부채를 펼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자, 여러분! 내 친구를 소개할게. 초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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