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예상치 못한 잡음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파엘의 병세를 아는 건 나뿐인데 자꾸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구나. "
" 친척들과 가신들을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머니를 예민하게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
" 모르겠구나. 이제 막바지에 도착해서 마음이
조급해진 것인지도 그래도 모를 일이니 새로
들어오는 사용인들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해라. "
" 걱정 마세요.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리안과
산파가 제 날짜에 도착할 수 있게 그 자의
곁에 두었고 로아는 아직도 의식불명이니
혹여 깨어났다 한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자의
말을 누가 귀담아 듣겠습니까? 파엘은 당분간
유모에게 맡기고 메어리를 살피세요.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유리할 테니. "
조만간 제국령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숙부와
핏셔가의 가신들 그리고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 곳에서 모자는 메어리의 입적을
확정지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토록
지켜왔던 것이 완전해질 수 있다.
라올은 현재 궁지에 몰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선 결단코 물러설 수 없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어머니를 다독인 뒤 저택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을
불러 세워 돌아보니 던컨의 그였다.
" 밖에서는 아는 체 하지 않기로 했을 텐데? "
" 뭐 지나가다 마주치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아 보이는데. "
“ 용건이 뭐야. ”
“ 길 위에서 나누기에는 좀 그렇고 검은
골목에서 보지. “
어머니의 말씀대로 능구렁이 같은 자다. 해결
했다고 말을 할 때는 언제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이번에도 뜯어내기 위한 수작일지
모르나 어머니에게 장난이라도 치고 있다면
경고를 해야겠단 생각에 일을 끝낸 뒤
곧장 검은 골목으로 들었다.
“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
"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거슬려서 말이야. “
“ 어차피 소문은 억측에 불과해. 고작 그런
일로 바쁜 날 부른 거야? “
“ 고작이라... 들어보지도 않고 단정 짓는 거
섣부른 판단이라 생각 들지 않아? “
" 무엇이 되었든 우리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은 믿지 않는 게 좋아. "
" 그렇지만 꽤 신빙성이 있어서 말이지. "
그의 손에 의해 정보상과 세작이 정리 되어
정보가 새어나갈 게 없는 데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이냐 받아 치려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어 우선은 무엇인지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혹여 정보상이 마지막에 이 자에게만 무언가를
전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에.
"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
" 백작부인께서 빈 병상을 지키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 "
" 누군가 헛소리라도 지껄이나보군. "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
인사를 하기 위해 파엘의 방으로 갔을 때도
분명 누워있던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계셨다.
" 대체 어디서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오늘 아침에도 난 분명... "
" 동생의 숨소리만 들었을 테지. "
“ 그야... ”
" 자네는 언제부터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된 거지? "
그 자가 말을 하기 전까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병상을 오래 지킨 데다 어머니와
유모 외에 바깥출입이 잦은 이들에게서 약한
동생을 격리해야 했기에 자신조차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도 그랬고
커서도 병으로 인한 거리로 인해 사이가 각별
하지 않아 대면 대면했기에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기분에 그 자리를
박차 곧장 저택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 아니 시간이 걸릴 거라더니 벌써 온 것이야?"
" 파엘에게 가봐야겠습니다. 확인할 것이
있어요. "
" 그..그.. 무슨.. 파엘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너도 알잖니 조금이라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균은 그 아이에게 치명적이야. "
" 그 자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반드시 확인
해야 합니다. 비키세요. "
" 안 된다. 절대 안돼~ "
동생의 얼굴만이라도 확인하겠다는 것을
끝까지 막아서는 어머니의 행동이 더욱
더 의심을 불러일으켜 라올은 어머니를
거칠게 뿌리친 뒤 파엘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창 예민해져 있는 우리를 흔들 요량으로
괜한 말을 던진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이라 생각하며 병상의 동생을 확인하는
순간
" 아...아..아니.. 넌? "
병색이 짙어져 상하였다고 하여도 질병으로
인해 눈동자 색까지 바뀐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파올과 비슷해 보이는 체형에 나이대,
멀리서 봤다면 모를까 가까이에선 분명
다른 이였다.
" 유모~~ 주변을 물려요 어서~!! "
다급한 부인의 말에 유모는 가까이에서
몰려오는 사용인들을 재빨리 물린 뒤
서둘러 방문을 걸어 잠궜다.
"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
" 그..그게 라올 내가 설명을 할 테니.. "
" 도대체 언제부터입니까. 그리고 파엘은 "
"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기대어야 했단
너 마저 외국에 나가있던 때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돌아왔을
때라도 말씀을 하셨어야죠. 이게 대체... "
" 경황이 없는데다 너에게 설명을 하려
할 때마다 일이 생겨 시기를 놓친 것일 뿐
오해 말거라. "
" 우선은 이것보다 이 같은 사실을 그 자가
알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
" 아니.. 어떻게.. "
" 갑작스럽게 내쫓겼던 주치의선생인지,
또 다른 세작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자는 어머니가 빈 병상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
" 그럴 리가 없다. 이 일은 유모와 나 말곤
알 수가 없어. "
* 2 년 전 그날 밤
" 유모~! 유모~!! "
" 으음.. 아니 마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
" 나.. 나 좀 도와줘.."
한밤중에 찾아온 마님의 손에 잠옷차림으로
얼결에 붙들려서는 작은 도련님 방으로
들어갔다.
" 작은 도련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아니 그러면 노만 선생님을
부르셔야죠. “
" 죽었어. "
" 무슨... 마님 죽다니요. 대체 무슨 말씀
이신가요. "
" 파엘이 잠든 걸 확인하려고 들어왔을 땐
이미 늦은 뒤였어. 아무리 흔들어대도
일어나지 않아 확인하니 숨을 쉬고 있지
않았어. "
" 이... 이 무슨~!! 제가 빨리 노만선생님을
모시고 올께요. "
" 안돼~!! "
" 마... 마님? "
" 이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이 아이가 받게 될 유산이 없어질
거야. 절대 아버님이 이 일을 알아선 안돼. "
자식의 죽음 앞에서 계산이라니..
경악스러운 주인의 행태 앞에서 정신이 번쩍
뜨인 유모였다. 하지만 결코 드러내서는 안
되었기에 조용히 침묵해야만 했다.
실상은 이랬다.
자식들의 조부인 핏셔가 전대 백작의 유언엔
유산을 상속 받으려면 반드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거나 홀로 죽게 될 경우 유산상속권이
무효화 되어 남겨진 유산은 핏셔가의
친가 쪽으로 귀속되게끔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 유모. "
" 네 마님. "
" 파엘의 유일한 친구였지. 게일이. "
갑작스럽게 자신의 아들이야기를 꺼내는
마님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던 유모는
그저 초조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오늘 밤 게일은 원인모를 병으로 급사했네.
내일 아침 동이 트는 대로 바로 장례 치를
준비를 하도록 하게. "
" 아니.. 그 무슨.. "
" 파엘은 살아 있어야만해. 반드시. "
유모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마님의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할지를 찾으려 애썼지만 이미
한배에 밀려 타버린 지금 뜻을 저버린다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그렇게 길고도 긴 밤이 지나갔다.
“ 그렇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마저 파산위기에 내몰렸다는 말에... “
" 우선 다시 그자를 만나야겠습니다. "
" 그저 떠볼 심사로.. "
" 아닙니다. 그 자는 분명 아는 눈치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한 백작부인은
어떻게든 난관을 뚫어야만 한다. 우선
라올에겐 그자의 의도를 파악하되 말을 길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한 뒤 가신들 중 자신의
편에 서 있는 이들에게 기한을 앞당겨 서둘러
제국 내로 와 달라는 서안을 급히 작성했다.
부인이 저택에서 일을 할 동안 라올은 다시
검은 골목으로 돌아가 그 자를 대면하며
짐짓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
" 어떻게 직접 눈으로 확인은 해보았나? "
" 아무리 몇 년을 외국에서 보냈다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 얼굴을 못 알아보겠나.
자네가 무얼 잘못 들은 모양이야. "
" 그런가? 그렇다면 이것 또한 내가 잘못
본 거겠지. "
" 무얼 말이지? "
" 아니 신경 쓰지 말게. "
좀 더 밀어붙일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게 더욱 더 수상했다.
" 무얼 보았단 것인지 말하게. "
" 어차피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닐 텐데 알아서
무에 쓰려고? "
" 잡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
" 그렇게 궁금하다면야 허나,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자네가 원해서 나오는 것임을 고로,
당연히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지. "
* 새벽녘 핏셔가의 백작 저
어두운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와 주방으로
향했다. 식사시간 전에 돌아와야 했기에
서둘러 나서려는 데 순간 누군가의 손에
어깨가 낚아채져 돌아서니
" 어.. 어... 크..큰 도련님.. "
"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나서는 거지? "
" 그.. 그게.. "
" 내일 있을 일로 오늘까지 분명 바깥출입을
금한다 내 직접 알렸을 텐데. "
도둑고양이마냥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던 이는
다름 아닌 유모였다.
" 도련님 제발 다른 사람 눈에는 절대 띄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 무슨 일로 나가는 건지 물었어. "
" 게일이 많이 아픕니다. "
그랬다. 파엘은 여전히 살아있었기에
노만선생에게 약을 그대로 처방받았다.
병세를 확인하기 위해 약물까지 주입 된
상태에 이상함을 눈치 챈 노만이 확인을
하려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에
두려웠던 부인은 곧장 그의 치료에 파엘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노만을 쫒아낸 것이 1년 전.
하루 이틀도 아니고 6개월 가량을 멀쩡한
게일에게 먹이고 주사한 탓에 되려 게일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마저 잃게 될까 두려웠던
유모는 남몰래 위험한 외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 내일이면 사람들이 다 모이는 중요한 시점에
이런 위험한 행동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
" 도련님~ 한번만 도와주세요. 게일이
어제부터 헛소리를 하는 것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데다 약까지 떨어진 상태에요.
제발... 도련님~~ "
" 하루 참는다고 당장 죽지는 않아.. 우선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고 돌아가. "
" 도련님... 제발...."
" 어서 돌아가래도~! "
울며불며 매달리는 유모를 억지로 떠밀어
올려 보낸 뒤 라올은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
졌다. 반신반의하며 들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 자가 말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라올은
애꿎은 주방도구를 집어던지며 분을 삭였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고요한 밤이 주는 기운은 하루의 고단함을 쓸어내립니다.
오늘도 사과c는 밤에 몰래 끄적끄적 거리며 작가님들의
눈과 귀에 오래오래 남으려 해보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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