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산파의 산실
" 아니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
" 그게 도대체 무에 중요하다고 내 공간엘
이리 무식하게 쳐 들어와 이 난리를 피워~ “
" 할멈한테는 별게 아닌지 몰라도 내겐
중요해. "
" 왜? 이제 와서 지키기라도 하게? 씨부럴
일 없으니 어여 돌아가~! “
산파는 엉망이 된 산실을 정리하며 리안을
내쫓으려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저절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 아? 아니 자네는? "
" 할머니~~~ 겨우 찾았네요. 저 그 약 좀
더 주세요 제발요~ 약효가 떨어져 가는 데
의사선생님을 불러주시지 않으세요.
제발~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
" 거참~ 나는 산파야. 의사가 아니라고~
아프면 의료원으로 갔어야지. 내게 오면
어쩌누~ “
"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알고 있던
선생님까지 연락이 되질 않아서.. "
" 그렇다고 무턱대고 날 찾아오면 어떡
하자는 게야 말했듯이 내가 준 건 어린
아기들 꺼라 기껏해야 하루정도 버티는 게
고작이야 진짜 선생을 찾아가. "
" 버틸 수만 있으면 되요. 제발.. "
" 하 이거 참. 자네 그리고 리안이라고 했나?
두 사람 다 도대체 내게 왜 이리 매달리는
겐가. 이런다고 내가 자네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
" 그..그건.. 휴우 "
" 쯧쯧쯧. 도대체가 놓치고서 후회할 생각
인건지. 자네들이 정말 원하는 게 무언가?
이리 내게 매달릴 만큼 절실한 그게 무엇
인지부터 생각을 해봐야지 나를 붙잡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잖은가. "
그랬다.
산파의 말대로 이미 그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다 침묵으로 변명했고
눈빛으로 산파에게 구걸했다. 그런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산파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다 노기서린 눈으로 둘을
크게 꾸짖은 뒤 바깥으로 쫓아내다시피
밀어냈다.
" 난~! 분명 얘기해주었고 기회까지 만들어
줬어. 이제부터 선택은 자네들의 몫이야~!
더 이상 날 곤란하게도 귀찮게도 하지 말고
다신 이 근방 얼씬도 말게 알겠는가~~!! “
역정을 내는 산파에게 결국 떠밀리다시피
쫓겨난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 바닥이 뚫어져라
바라보던 리안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먼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유모 역시
결심을 굳힌 듯 발길을 급하게 돌렸다.
* 크렌백작이 묵고 있는 별실
[진실을 알고 싶으시다면 검은 골목 안 단도
두 자루가 그려진 건물로 찾아오십시오.]
" 훗~ 재미있군. "
" 백작님 설마 이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을 신경 쓰시는 건 아니시죠? "
이른 아침 자신의 방으로 날아 들어온 의문의
전서구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누가 장난질을
했나 슬쩍 펼쳐보았다가 곧장 눈빛이
호기심으로 바뀌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 휴는 괜한 일에 휘말릴까 걱정되어
노파심을 드러냈다.
" 뭐어~ 오랜만에 제국에 왔는데 지루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 "
" 몇 년간 그 어떤 말도 언급이 없다가
갑작스레 후계문제로 모두를 제국으로
불러올리셨습니다. "
" 그거야 파엘의 상태가 악화되어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야 할 판이니 속이 탔을 테지. "
"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이지만 진작부터
찾았더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언질이
조금씩은 있어야하는데 급작스럽게 진행
되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
" 안 그래도 어제부터 쓰지도 않던 머리를
굴리려니 깨질 듯 한데 이쯤에서 좀 식힌다
생각해. "
" 하지만.. "
" 갈수록 아비를 닮아 가는 것이냐~ 걱정은
잠시 접어둬.
어차피 하루 만에 결정될 일이 아니니까. "
그렇게 나선 제국의 거리. 오랜만이지만
낯익은 풍경이 가득했다. 집안문제만
아니라면 계획에도 없는 유희를 위해
잠시 내릴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시간이
있음에 휴식을 뒤로한 채 검은골목 앞에
도착했다.
여긴 마치 제국과는 별개라는 듯 조용한
것이 더 음침한 기분이다. 그렇게 좀 더
들어가다 못이 빠져 덜걱거리며 흔들리는
간판을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아직 장사 전 인지
의자들이 거꾸로 올려져 있고 카운터에
아무렇게 널 부러져 있던 한 사내가
인기척을 느끼고 부스스 일어나다
크렌백작을 마주하곤 곤란한 표정으로
" 어이쿠 이를 어쩌나 저의 영업시간은 오후
4시부터인데. 헛걸음 하셨수다. "
" 아닐세. 난 그저 진실이 알고 싶을 뿐일세. "
" 아~ 예약하신 분이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
눈치 빠른 사내의 안내를 받아 따라 들어간 곳엔 가면을
쓴 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나를 부른 것이 자네인가?"
" 혹시나 했었지만 이리 빨리 찾으실 거라곤
예상 밖이군요."
말은 그러하다면서 드러난 가면 아래 입매가
한껏 호선을 그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백작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슬슬 구미가 당기는 것을
애써 숨긴 채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 질질 끄는 이야기는 흥미가 없어서 말이지.
이왕이면 재밌는 게 더 낫지 싶어서 말이야. "
"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지금의 상태에선
호기심을 자극 할 만한 이야기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
"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
" 전 보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나 할까요? "
" 하~ 그런 능력이라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군. "
" 후후 그렇다면 구태여 이곳으로 모시지
않았겠지요. 어디 구구절절은 백작님의
취향이 아닐 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핏셔가의 망나니 크렌.
핏셔가의 돌연변이답게 말장난에 관대하다.
하지만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긴 서사시를
읊는다면 관 뚜껑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곡예 탈 테니 분위기를 맞춰 확실하게 낚아
채야한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그가 원하는
대답을 추렸다.
"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 중
어떤 것을 먼저 듣고 싶으신지요? "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
당연히 보이지 않는 것이 대가가 크겠군.
그만큼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될 테니. "
역시...
어차피 보이는 건 메어리가 파엘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것은 리안이라는 자와
함께 있었다던 자의 부재와 마지막 백작의
질문을 예상 못한 리안의 실수로 인해
50%이상의 확률이 되었다.
다만 파엘의 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팽팽하게 맞설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쪽이 더 궁금해 미치기 일보직전인 크렌은
곧장 대답했다.
" 좋아, 보이지 않는 진실에 걸어보지. "
" 역시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판은 이미
짜여 졌으니 준비된 말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실 지는 백작님께서 결정 하시면
됩니다. "
" 이런~이런 시작부터 번거로운데~ “
" 설마 길들여지신 건 아니시지요 레드 크렌 "
철없을 시절의 친구들이 붙여준
망나니 크렌의 애칭.
이 자는 이미 자신이 누군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재밌는 이를
만났다.
" 설마? 내가 그렇게 늙다리 영감으로 보이는
건 아니겠지? "
" 후후 설마요. 그렇다면 우리의 계약이 성립
된 것으로 보고 첫 번째 팁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자식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원하시는 대답을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제일 쉬운 단서는 리안이다.
백작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 리안은 잠시
당황하다 대충 얼버무렸다. 그것에 대해
라올은 몰라도 백작부인만큼은 크렌백작의
질문에 함정이 있음을 눈치 챌 줄 알았는데
해명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 만큼 나의 덫이
튼튼했다는 얘기가 된다. 확실하다고 믿은
유모에게서 배신을 당했다 생각하는 순간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해야만 하는
초조함이 실수를 만든 것이다.
‘ 그리고 그 초조함과 불신이 유모에게
트리거가 되어 유모 역시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게 되었으니 실로 재미있게 됐군.
과연 이걸 당신은 눈치 챌 수 있으려나? ‘
" 실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군. 좋네~
우선 여기서 계약금의 절반을 지불하도록
하지. 나머지는 결과가 만족스럽게 마무리
된 시점에 마저 치르도록 하지. “
" 충분히 흡족할 결과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는 자의 말에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쫄깃한 기운이다.
귀족이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갑갑하게
세월을 보냈던 가 한순간 방탕함을 즐기다
결국 돌아온 울타리에서 깨작거리던 백작은
아무려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계약를
성사시킨 뒤 백작이 나가기 무섭게 그가
들어왔다.
" 여어~ 제대로 백작을 구웠군. "
" 난 다리를 놓았을 뿐이니. 나머지는 당신
몫이야. 분명 리안과 유모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었을 테고 둘 중 성격이 급한 리안은 이미
도착했을지도 모르지. "
" 유모는 부하에게 맡겨두었으니 난 그럼
리안에게 떡밥을 던지면 된다는 소리군.
이거 너무 거저먹는 기분인데. "
" 내가 말했지. 당신이 생각하는 꼬맹이가
아니라고 "
" 그건 두고 봐야지. "
음흉하게 웃는 저 미소.
소름끼치도록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계약 건으로
그가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물고 늘어질
나의 능력에 대한 진실을 묻어버릴
생각이다. 여전히 내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놓치지
않는 한 절대 이 자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저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이 자와는 담판을
짓는다 반드시.
* 정보상 저택
" 리안입니다. 로아를 만나게 해주세요. "
말도 없이 들이닥친 리안을 마주한 자린은
경계서린 눈빛으로 단호히 말했다.
" 주인님은 외국을 나간상태라 허락할 수
없네. "
" 잠시면 됩니다. 할 말이.. 할 말이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막무가내로 들어오긴 하였으나 로아가 쓰러
졌을 당시와는 사뭇 다른 태도라 머뭇거리긴
하였으나 여전히 미심쩍은 자린은 계속 해
주인님을 핑계로 거절했다. 그런 자린의
태도에 좀 더 공손한 말투로 허리를 더 깊이
숙여 간절히 부탁했다.
" 저번에는 제가 경솔했습니다. 로아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잠시 이성을 잃어 앞뒤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잠시면 됩니다.
로아의 얼굴을 보고 곧장 나오도록 할 테니
제발 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
" 자린. 저렇게 간곡한데 한번쯤은 믿어 봐도
되지 않을까. "
" 선생님 여태 난폭했던 자입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그 책임을
어쩌시려고 "
" 그건 내가 지겠네. 늙은이의 촉을 한번
믿어보게나. "
도리스까지 나서서 리안을 변호하며 자린을
설득하니 결국 문 밖에 가드를 대기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그렇게 로아가 누워있는
방문을 열어 머리맡에 앉은 리안은
조심스럽게 로아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처음 고백했던 때를 회상했다.
상처투성이 곰손 가득 수선화를 들어
그녀에게 안겨주며 서투른 마음을 전했을 때
말없이 미소만 지었던 로아.
그걸 바보같이 답이라고 굳게 믿고 기다렸던
리안.
" 그때는 정말 내가 많이 노력하면 그 자식을
더 이상은 기억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더 화가 났었나봐.
그래서 바보같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해댔고. 자꾸 당신이
우기니까 나중엔 진짜 하나도 닮은 게
없다고 느껴졌었어. 멍청하지...
화가 나면 오른쪽 눈썹만 치켜 올라가는 거,
세 번째 발가락이 두 번째보다 긴 거,
누구보다도 고집 세고 급한 성격까지 전부다..
전부.. "
그랬다. 파엘을 잊지 못하는 그녀를 파엘보다
더 많이 시간을 함께하며 더 많이 사랑하면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거라는 기다림을
메어리가 태어나면서 확신했던 리안이었지만
망상에 사로잡혀 끝끝내 자신을 메어리의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 로아의 변하지 않는
시선에 결국 분노한 그는 모든 것을 아이의
탓으로 돌렸었던 것이다.
" 그래서 말이야. 메어리한테 죽을 때까지
미움 받더라도 찾아와야겠어.
그 자식한테 못 줘. 누워만 있는 놈이 뭘
해줄 수 있겠어?
나는 사랑한다고 말도 해줄 수 있고,
목마도 태워주고,
아.. 이젠 커서 안 되려나 그건 하하..
어쨌든 내가 더 많이 해줄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진짜로 열심히 살 거야.
집도 다시 고치고 일도 해서 메어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메론 사탕도 실컷 사줄 거야.
당신이 좋아했던 수선화도 집이 가득 차도록
사와선 두고두고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니까 꼭 일어나야 돼 알았지? "
로아에게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툭툭
내뱉은 뒤 투박한 손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낸 그는 그길로 던컨의 그를
찾아갔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풀벌레소리에 흔들리던 머리가 맑아집니다.
내일의 일을 위해서 일찍 잠을 청해야 하는데
엉뚱한 사과c의 이야기는 밤이 되어서야 쏟아지니
녀석들의 소리가 선명해지는 이 순간을 길게 길게
늘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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