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비밀을 드러내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아이.. 씨.... 너.. 너.. 라쿤패거리들
만난거야? ”
" 안된다고 돌려달라고 했는데도 깐죽
대잖아. 내가 어떻게 해서 모은 건데. "
“ 야 이 바보야~ 그렇다고 그냥 두들겨
맞고 있어~ 어차피 뺏길 거 그냥 줘
버리지 뭐 하러 덤비길 덤벼~!!! ”
“ 흐..흑.. 어떻게 그래. 그럼 레이
어쩌구.. 내가 오늘 창틀만 몇 개를...
아니.. 흑.. 얼마나 열심히 일해서
모은 건데.. 그걸 그렇게 줘... 나쁜...
흐흑... ”
입술이 더 부어오르는지 말을 제대로
못하면서 아픈 것보다 뺏긴 것에 대한
분노를 눈물과 함께 가득 뱉어내는 걸
듣던 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아이들에게 루이와 레이를 맡긴 뒤
곧장 몬스터에게로 갔다.
" 대장.. 도와줘. "
" 야야.. 무슨 일이기에 앞뒤 말도 없이
도와달래. "
" 파이 너한테 얘기하는 거 아니니까
빠져. "
" 야 이 기집애가~ "
" 놔둬. 도와달라니 무슨 소리지? "
" 라쿤일당들이 대장 돈을 뺏어갔어.
루이가 그거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다 많이 다쳤어. 특히 얼굴이 많이
망가졌어. 그 자식들 일부러...
오늘 루이가 많이 벌은 거 자기가
직접 대장한테 가져다 줄 거라고
엄청 좋아했는데... ”
" 라쿤 구역도 구분 못할 정도로? "
" 발트호수에 다녀왔었어. 오늘 아가씨를
꼬시는 부잣집 아저씨를 만났거든. 우리
예쁘다고 팁을 많이 줬어. "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건지.
의심부터 하는 건지 대꾸가 없어서
급해진 나는 소리치려다가 숨을 크게
한번 내쉬며 참았다. 내 성질머리대로
해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었냐고
루이가 옆에서 잔소리 하는 것 같아
최대한 차분하게 루이에게서 전해들은
말에 토시하나하나 주옥같이 덧붙여
말했다.
" 첫 상납금 치곤 성의가 부족한데?
너네 대장 능력이 겨우 이 정도라니
이거 실망인데. ”
" 그리고.. "
" 으음.. "
" 좋은 말 할 때 뜸들이지 말고 빨리
대답해~~ "
" 파.이. 너는 그만 나대고 그 다음에
뭐라고?"
" 내 밑에 기어들어오고 싶은데 눈치
보이면 한 대 맞고 뻗은 척만 하고
있으라고 알아서 데려 갈 테니.
라..고.. “
" 야~이 미친... "
물론 덧붙인 한마디는 라쿤에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머지않을 미래에 몬스터를
제대로 뭉갠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좀
미리 얘기했을 뿐. 이에 제대로 열 받은
파이가 라쿤구역으로 먼저 출발했고 나
역시 몬스터를 대동하여 따랐다.
라쿤무리들이 신이 나게 떠들어대며
마시다가 우리를 발견하곤 곧바로
라쿤에게 연락을 취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들먹거리며 팔자걸음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 나왔다.
" 저거야~ "
우리가 올 거란 걸 예상 했었던 것인지.
반쯤 흘러내린 바지춤과 허리 사이에
있던 주머니가 씰룩거리는 라쿤의
과장된 엉덩춤에 의해 짤랑 짤랑 요란
하게 흔들렸다. 재수 없는 몸동작이
자연스레 펼쳐진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말아 쥐게끔 했지만 아직
몬스터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데다
섣불리 움직여봐야 나만 손해이기에
라쿤이 제대로 몬스터를 자극해주길
숨죽여 기다렸다.
" 휘유~ 여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친히 납셨대~ "
" 돌려받을 게 있어서. "
" 크큭.. 부족한 건 알았나보네.
그러게 처음부터 좀 두둑이 넣지.
역시 조무래기들하고는 다르네.
뭐 딱히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또
다른 주머니를 만들어 와~
예쁘게 받아 줄 테니 "
" 터진 입이라고... 저 새끼가~~!! "
" 파. 이... “
그냥 파이가 먹이가 되서 라쿤
체력을 떨어뜨리게 놔두지 녀석을
저지하는 몬스터의 행동으로 라쿤과
불필요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라쿤이 먼저
선제를 하기 전이라면 난 그들의 팽팽한
싸움 위에서 최대한 집중하여 약점을
끌어 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게 위험한 생각으로 라쿤의 머리를
헤집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라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설마 했던 그때는 그냥 더러운
성격이라고만 느꼈는데. 녀석의 건들
거리는 걸음걸이와 헤벌쭉 모자란 듯한
키득거림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모두 다
가짜다. 어쩜 몬스터보다 진짜 한수 위
일지도.
" 대장. 저 주머니 안에 든 거
돈 아냐~ ”
" 뭐? "
그렇게 몇 마디를 보태려고 대장의 시선을
내게 돌리는 순간 성격 급한 파이가 허락
받지 않는 싸움을 시도했다. 그렇게 말릴
새도 없이 달려든 멍청한 또라이는 처음엔
우세해지는 듯 하다 금세 라쿤에게 제압
당한 뒤 패거리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정말 답이 없는 녀석이다. 하지만 제 발로
먹이가 되어 우리를 더 얕보게 될 테니
오히려 잘된 일일수도
" 야아~ 오죽 못났으면 부리는 녀석이
들고 일어나냐 크크.. 아~~! 혹시 너보다
낫다는 걸 내게 일부러 보여준 건가?
크하하하~~~너네 볼짱 다 봤구나.
이렇게라도 해서 배신하려는 걸 보면
어떻게 이런 걸 오른팔이라고 데리고
다녔나 몰라 안 그러냐 얘들아? ”
라쿤의 말에 여기저기서 들으라는 듯
비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에 몬스터가
눈을 번뜩이다 내게 말했다.
" 저기에 든 게 돈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어? ”
" 어. 짤랑거리는 소리에 속을 뻔 했어.
안에 든 건 돌이랑 동전 몇 개가 다야.
저걸 가지곤 빈틈이 안 될 테고....
으음.... 그래! 오늘 오후에 사고 친 게
있는 것 같아. 그걸 큰 건으로 부풀려
볼 테니 지금부턴 내게 맡겨줘. ”
" 저 녀석이 뭘 했는지를 어떻게 알고? ”
" 파이처럼 힘으로는 안 되지만 녀석과
달리 난 머리가 비진 않았어. 한 번
믿어줘. ”
확신에 찬 눈빛으로 애원하듯 말하자
한번 몬스터는 해보라는 듯 한발 물러
났다. 몬스터가 뒤로 빠지기 무섭게
아까부터 라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집중하던 것이 선명해질 수 있게
정면으로 라쿤을 노려보자 제 딴에는
얼빠진 계집애가 도전이랍시고 째려
보는 것으로 여겨 재미있었는지
흥미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했다.
그런 라쿤의 모습에 난 만만하게 보여
야지만 머릿속을 더 환하게 넓힐 테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금 노려보며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내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습에 만만하다 못해 불쌍
하게 보여야 한다. 자칫 실수했다간
가면 뒤에 숨겨놓은 잔혹성이 곧바로
내 멱살을 잡을 테니.
" 작고 귀여운 분홍장미가 가슴팍에
가득 하게 수놓아진 노란드레스에
어깨까지 구불 거리는 붉은 머리를
질끈 묶은 푸른색 리본.... "
무언가를 묘사 하는듯한 나의 말에
저쪽 패거리들은 뭔 헛소리를 지껄
이냐며 웃어댔다.
하지만
귀엽다며 바라보던 라쿤의 얼굴이
굳어짐과 동시에 입꼬리가 일자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난.
" 대장. "
" 말해. "
" 나 얼마 못 버텨. 곧 쓰러질 거야. "
" 하~ 주먹 한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기에 눌려선 헛소리나 지껄인다 했더니. "
" 벽난로 불 못 피우는 게 하는 거
땔깜 아까워서가 아니라 중간에 숨겨둔
시가에 불이 붙어버리면 약이 다 날라
갈까 봐 서지? "
순간 몬스터의 안색도 굳어져서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기에
" 나는 남들과 달리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어. 원하지 않아도 말야.
기억이든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든
불 피우려다가 파이에게 혼날 때
파이에게서 읽은 기억이야. ”
“ 무슨 말도 안 되는.. ”
“ 파이가 그런 중요한 사실을 제일 싫어
했던 내게 말할 리 없다는 거 정도는
추측 가능하잖아.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닌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고. “
“ ..... ”
“ 진짜~!! 거짓말 아니야. 내가 만약 단
한번이라도 대장을 속이려 했다면 모노
보다 먼저 버려졌을 테지. 안 그래?
그러니 한번만 믿어줘. 지금 당장 증명
할 순 없지만 이번 일이 끝난 뒤 창고
두 번째 선반 호두상자 열어봐. 절반이
빌 거야. 파이에게만 열쇠를 주었으니
우리는 엄두도 못 낼 그 곳에 유일하게
들어간 녀석이 대장 껄 손댔어. ”
“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
" 저 녀석의 약점을 파고들 그림이 눈에
보여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내가
우습게 보인다면 쉽게 마음이 무너질
테니 그때를 노릴 거야. 그리고 나서
그 뒤가 문제야. ”
“ 공격을 한다면 내가 앞장서야 한다는
건가? ”
“ 아니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거야.
쓰러진 날 업고 그냥 여길 빠져나가죠.
싸움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
“ 무슨 말 같잖은.. 저 녀석에게
등을 보이라는 거야~!!! ”
“ 제발 부탁이야. 지금은 등이든 뭐든
보여서 라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줘.
지금부터 내가 지껄일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게 그저 불안할 정도로만
만들면 돼. 그럼 내가 녀석의 기억을
이용해서 대장이 라쿤을 쓰러트릴
열쇠를 줄게. 반드시 약속 지켜.
내가 건방지긴 했어도 단 한순간도
대장에게 거짓을 말한 적 없잖아.
그래서 여태 날 곁에 붙여둔 거고
아니야? ”
오래 전 몬스터에게 신임을 얻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던 중 얻어낸 사실이다.
말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생각까지
끄집어내자 단 한번이라는 말만 내뱉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정말 제대로
집중할 때다.
" 작고 귀여운 공주님한테 어울리는 하얀
레이스가 가득한 양산을 들고 있었어.
라쿤 기억하지? 며칠 전 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인데. 발트호수에서. "
" 잡. 아.. 잡으라고~!!!! "
내 입에서 더 말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던
것인지 더듬거리듯 내뱉은 말에 패거리들이
내달려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난
그길로 대장에게 넘어졌다.
" 우.... 으..음.... "
" 일...일.. 일어났어~!! 일어났다고~!
루이언니~!!!!! “
아직도 머리가 아프고 눈앞이 뿌옇다.
몇 번이고 깜빡거리니 앞에서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화를 내는 루이와
울먹이는 아이들이 그제야 겨우 보였다.
" 우..우..에...에엥... 끅... 누나...
아펠...누..나.. 히끅.. "
“ 우..리.. 울보 쥐똥.. 안녕.. ”
" 야이 시키~ 너무하네~ 나 쥐어터진
건 안 보이고 멀쩡하게 눈만 감고 있던
아펠만 보이냐? ”
“ 흐..흐끅 루..이.. 누나..는 무서..워..
미안.. ”
“ 우리 쥐똥 다행이네.. 나아서.. ”
" 이 시키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더 달라고는 겁이 나서 말 못하고 옆에
떨어져 있던 감자를 주워 먹었는데 그게
싹이 난 거였더라고... 하아...
야이~~~ 또 아무거나 막 주어먹고
그~래~라 앙~!! "
가볍게 레이에게 딱밤을 준 루이는 내
상태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 대박 사건이었잖아~!! 대장이 파이는
버리고 널 선택했다고~~ 그것도 자기도
다리를 다쳐놓고선 끝까지 널 업고
왔더라니까~ ”
' 훗.. 라쿤 녀석이 거슬리긴 많이 거슬
리나 보네.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날 선택한 걸 보니. ’
" 지금 대장 어딨어? "
" 창고에 있는데? "
" 창고는 왜... 서..설마.. 크.. 크..하하하~ "
" 야 너 라쿤한테 들이밀었다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
" 크..큭 아니 아무것도 아니...
우프하하하~~~~ ”
의외의 모습에 난 아픈 것도 잊은 채 바닥에서
몇 번을 구르다가 겨우 진정한 뒤 창고로 갔다.
" 흠흠.. "
" 답은 "
" 라쿤은 어제 혼자 발트호수에 간 것
같은 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내가 그 녀석 속을 본 그대로 들려
주니 바로 그 자식 얼굴이 사색이
된 걸 보면 가슴에 귀여운 분홍장미가
수놓아진 노란드레스를 입고 붉은
머리를 파란색리본으로 예쁘게 묶은
아이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이가 소리치는 모습이 보이다가 라쿤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음에
여자아이가 물에 빠지는 걸 봤어. ”
" 그래서 아이의 인상착의를 말하니까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소리를 친 거군. "
" 내가 말했잖아. "
" 언제부터지..? "
" 정확한 건 몰라. 기억을 할 수 있었을
때부터니까 "
" 라쿤 그 자식 반짝거리는 걸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사람도
거기에 속할 거라곤. "
" 사람도 박제하려고 할 거야. 그 자식은
미친놈이니 "
" 어쨌든 그 여자아이가 귀족이라도
된다는 거야? "
" 우선 알 수는 없지만 평민들이나 우리
같이 거지같은 애들이 입을 만한 옷이
아니었어. 그리고 붉은 머리는 흔하지도
않고 분명 제국치안대에서 수비대들을
동원해 수색을 펼칠 거야. 방도 붙을
테니 그때 확인해서 녀석을 제대로
압박한다면.. "
" 네가 알아와. "
" 뭐? "
" 제대로 증명해. 너의 능력 여태껏
잘도 숨겼나본데 이제 알게 된 거 확실
하게 보여봐. 그럼 네가 원하는 거
하나는 들어주지. "
" 알았어. 그런데 파이는 어쩔 생각이야? "
" 난 개한테 던진 먹이를 회수한 적 없어. "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그때는 어려서 그게 무기라고 생각했다.
치명적인 도구로 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의 독이
되었다. 그건 도구가 아니라
저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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