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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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던건빵
작품등록일 :
2022.05.12 08:47
최근연재일 :
2022.05.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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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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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3화.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


패천이 탁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탁상이 크게 흔들리며 접시들이 엎어졌다. 술잔이며 음식들이 뒤섞여 난장판이 된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보게 패천, 군단장께서도 계시네. 자중하게. 게다가 그저 소문이 아닌가."


백권이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패천은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였다. 그는 목에 시뻘건 핏대까지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소문의 출처가 관(官)이라고 하지 않소!! 어명을 거역했다니!! 받은적도 없는 어명을 어찌 거역한단 말인가!! 대체 무슨 개뼈다귀 핥아 먹는...!"


"이보게 패천!!"


백권이 이번에야말로 한마디 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호범이 술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찰랑거리는 독주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조용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조정을 꿰차고 앉은 문관 놈들의 짓이 틀림 없소이다. 그놈들은 언제나 우리 무관들을 천대하고 경멸하지 않았소이까. 분명 전하의 옆에 달라붙어 간신배의 혀를 놀렸을 테지. 그동안 수많은 전공을 쌓았음에도 전하께 냉대를 받은 것도 모조리 그놈들 짓이 틀림 없소이다."


그 말에 패천의 눈이 뒤집어졌다.


"역시 그 선비 놈들의 짓거리가 분명하오!! 군단장, 지금 당장 수도로 상경하여 놈들 모가지를 죄다 뜯어버립시다. 그런 뒤 성문에 효수하여 천하 백성들의 본이 되게 합시다!!"


"그럽시다. 이번에야말로 그놈들을..."


호범까지 나서서 동조하려던 그때.


쾅!!


탁상을 내려친 권 노인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작작들 못하겠는가!!"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부릅뜬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던 권 노인이 호통을 쳤다.


"군왕의 장수라는 자들이 고작 저잣거리의 소문에 어찌 그리 경거망동하는 게야!!"


직급상으로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아래인 권 노인이었지만 감히 그를 함부로 대할수 있는 자는 없었다.


군부.


계급과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 만큼이나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바로 선후배 관계였다.


그런만큼 한참 위의 선배인 권 노인에게 쩔쩔매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흠흠, 송구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성을 잃고 설치던 패천도, 조용히 분노하던 호범도 꼬리를 말고 얌전히 좌석했다.


그러자 권 노인도 더는 뭐라하지 않았다.


그 난리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흘만에 소문이 퍼졌다.'


이곳 대명성에서 수도인 평원성까지는 최소로 잡아도 사흘 거리다.


오고가는데는 엿새.


여해가 탈출한 날은 사흘 전이니 이제 막 도착하거나 아직도 가는 길이어야 맞다.


'그런데 사흘이라..'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한가지.


여해가 생각보다 빨리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군단장."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권 노인이 술잔을 홀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권 부관."


"그저 노파심에 묻는 것이오만."


그의 눈빛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혹여 어명을 거역한적이 있소이까."


정적이 감돌았다. 장군들과 부관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하나같이 설마하는 얼굴들, 나는 차분히 그들을 마주했다.


'여기서 인정해버리면 모든게 끝이다.'


명분을 잃어버리고 장수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역모죄로 몰려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겠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등뒤로는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나는 덤딤한 얼굴로 권 노인의 눈을 마주보았다. 얼굴 가득한 세월의 흔적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게 보이는 듯 했다.


"단연코 없습니다."


부정(否定).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었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에.


권 노인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홀짝일 뿐이었다. 장수들 역시 그럼 그렇지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금 고성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민감한 주제와 흥분한 장수들, 거기다 술까지 합세하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과열되었다.


고성 사이로 간간히 들리는 욕설.


그나마 차분한 백권이 어떻게든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권 노인도 고개를 저으며 포기해 버린 마당에 그라고 별 도리는 없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나는 탁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얼굴을 붉히며 고성을 내지르던 장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듯한 자세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다시 얘기 하시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장수들이 모두 기립했다. 혼잡한 상황에서도 지킬건 지키는 것이 과연 뼛속까지 무장 다웠다.


막사로 돌아와 간단히 세안을 마치고 침상에 누웠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자 그제서야 노곤한 피곤이 몰려왔다.


며칠 새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군왕과 친우에게 배신을 당하고, 회귀하고, 어명을 거역하고, 전란을 종식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역적까지 되었으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별볼일 없는 무장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장수로 살아온지도 어언 이십 삼년 째.


전란을 겪으면서 군단장으로 고속 승진을 했지만 늘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라와 백성, 그리고 군왕을 위해 진정으로 충심을 바쳤다.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그런 내가 지금은 어명을 거역하고 역도가 되기를 자처하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간이 커져도 너무 커졌구나.'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내가 가야할 길.


그 길은 끝없이 펼쳐진 가시밭 길이기에.



****



[원국 수도 평원성]



"그거이 사실이당가?"


"뭣이 말이오?"


어디서나 볼수 있는 흔히디 흔한 주막.


이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은 농민들이 시덥잖은 수다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 그 왜 요새 떠도는 소문 있잖는가. 명진 장군께서 반역을 일으켰다는..."


"어허!!"


옆에서 조용히 국밥을 말던 노인이 탁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감히 뉘를 모함하는게야!! "


깜짝 놀란 농민이 노인의 눈치를 보며 친우를 나무랐다.


"그래 이 사람아, 그분이 어디 그럴 분이신가?"


"누가 믿는다던가? 소문이 도니까 그냥 해본 말이지."


"안봐도 훤하지. 무능한 군왕과 어리석은 신하들이 꾸민 짓 아니겠는가. 그분의 충심이야 천하가 아는 사실인데.


"내 말이 그 말이여. 그동안 조정놈들이 우리 장군님을 을매나 괴롭혔던가? 그것만 생각하믄 아주 속이 맥혀 속이!!"


"이 사람들아 조용히들 처먹어, 조용히들. 괜히 입 잘못 놀려서 곤장에 피떡 되기 싫으면."


노인의 일침에 농민들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입을 다물었다.


식사를 마친 농민들이 자리를 뜨고 얼마지나지 않아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던 죽립의 사내가 조용히 일어났다.


그는 동전 몇개를 꺼내 값을 치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주모가 상을 치우러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다.


"뭐여, 맛이 없었나?"


다 식은 국밥이 손도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



"그래, 저잣거리의 민심은 어떠하던가."


대전의 가장 높은 곳, 왕좌에 좌석한 군왕 명조가 물었다. 그러자 그 앞에 시립한 젊은 사내가 공손히 읍소했다.


주막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사내, 다름아닌 여해였다.


"전하, 민심은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나흘 전 대명성의 명진 군부에서 탈출한 여해는 우여곡절 끝에 사흘만에 수도로 귀환할수 있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은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자상을 통해 알수 있음이었다.


명조가 재차 물었다.


"민심이 어떠하던가."


"..."


그럼에도 대답이 없자 명조의 이마에 미세한 주름이 졌다. 그는 왕좌의 팔걸이를 툭툭 치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고(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


"송구합니다. 그저 우매한 백성들의 말에 신경쓰실 필요가 없을 듯 하여."


"그것은 고가 판단할 일이다."


여해는 깊게 심호흡을 쉬었다.


대전을 가득채운 습하고 탁한 공기가 폐부를 깊게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고개를 꺾어야만 볼수있는 왕좌와 그마저도 똑바로 쳐다볼수 없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자신의 사이에 놓인 거리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보시게 공조판서, 전하께서 하문하시지 않는가."


내관의 재촉에 여해는 말문을 열었다.


"민심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명진 장군의..."


쾅!!


명조가 팔걸이를 거세게 내리치며 노호성을 떠트렀다.


"역도의 무리를 이끄는 역적이다!! 호칭을 바로하라!!"


깜짝 놀란 내관이 황급히 다가와 살피니 얼마나 세게 쳤는지 손바닥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내관이 호들갑을 털자 명조는 되었다며 손을 휘저었다.


여해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차분히 정정했다.


"역적 명진공의 전공을 기억하는 백성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전란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터라..."


군왕의 노여움 앞에서도 담담할수 있는 배포를 가졌으니, 과연 최연소의 나이에 정3품 판서직에 재수될만한 그릇이었다.


"각 지방의 관청에서 역적이라 선포했거늘, 여전히 그 정도라는 말인가."


명조의 목소리에 지독한 씁쓸함이 뒤섞여나왔다.


한때는 분노에 흽쌓여 살아온 그였지만 이제는 지치고 병들어 그저 회의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간간히 따오르는 분노는 촛불마냥 쉽게 꺼지고는 했으니 그저 부질 없었다.


"명성은 하루아침에 쌓을수 없듯,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걷어가야 합니다."


"교지는 보냈는가."


"가장 빠른 파발마를 통해 보냈습니다. 오늘 밤 내지는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어찌 나오리라 보는가."


군왕의 물음에 여해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곧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명전공이라면 왜구를 박멸하는 즉시 전하께 죄를 청해 올 것입니다."


"그대가 아는 명전공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여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수십년을 전장에서 보낸 장수의 그것과 같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군왕을 마주했다.


"역적이 되어 수도로 진격해 오겠지요."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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