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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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던건빵
작품등록일 :
2022.05.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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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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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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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6화




드넓은 초원 위에 덩그러니 놓인 언덕 하나.


그렇게 가파르지도 높지도 않은 이 조그만 언덕 위에는 어중간한 규모의 벽돌성이 자리했다.


백년도 전에 축성 되어 단 한번도 함락 된적이 없다는 고대의 성.


경포성이다.


경포성은 남부에서 동부 또는 서부로 우회하지 않고 최단 시간안에 수도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다.


"경포성주 원보가 항복을 거절했습니다. 군왕의 장수로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겠답니다."


부관의 보고에 나는 의아함을 감출수 없었다.


그동안 만나온 장수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한번 살아보겠다고 성문을 열고 군대를 헤체하고 군량미를 바치고.


그들에게 충성심이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한심한 작자들 뿐이었다.


그런 만큼 경포성주의 결단은 꽤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한번 만나 얘기라도 나눠보고 싶었다.


'장수 대 장수로서.'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적으로 만났으니, 적으로 상대할뿐.


나는 매화봉을 치켜들었다.


"공성을 시작한다."


북이 울렸다.


개시는 화포였다.


경포성은 언덕 위에 위치하여 지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때문에 본격적인 공성을 시작하기 전에 조금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화포가 줄줄이 세워지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가 올라왔다.


나는 곧장 명령했다.


"발포하라!"


병사들이 심지에 불이 붙혔다. 치직하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가던 얇디 얇은 심지가 마침내 그 끝을 보이는 순간.


- 콰쾅!!

- 콰쾅!!


도합 백문의 화포가 불을 뿜었다.


찢어지는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포탄들이 성벽 위로 빗발쳤다.


- 콰콰콰-!!!

- 콰콰콰-!!!


이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성벽이 터져나가며 크고 작은 파편들이 비산했다.


폭발과 함께 치솟은 불길이 일정 범위 내의 모든 것들을 흽쓸어버리며 뻗어나갔다.


사람이라고 무사하지 무사할수는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수조차 없게 터져나간 병사들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들은 최소한 고통 없이 즉사했을 테니까.


하지만 어중간하게 살아남은 병사들, 사지가 찢기고 비산하는 파편에 전신이 꿰뚫린 병사들은 죽지도 못한채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끔찍할수록 위력적이라고 했던가.


그런면에서 화포의 위력은 가히 굉장한 것이었다.


아득한 비명소리가 수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후방까지 들려올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건 전쟁이었고 자비는 사치였다.


"계속 발포하라!!"


화포들이 쉬지 않고 불을 뿜어댔다.


그렇게 얼마나 쏴댔을까.


성벽 위에 고요한 적막감이 찾아왔을 무렵, 나는 돌격 명령을 내렸다. 마침 포탄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제1군 전진."


기수가 적색의 깃발을 휘날렸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요란한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패천 장군이 이끄는 제1군, 3만의 병사들이 언덕을 겹겹이 포위한 채 전진하기 시작했다.


"방패 앞으로!!"


성벽 위에서 화살이 날아왔지만 화포로 초전박살을 내놔서인지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일뿐, 수천발은 족히 되었다.


그마저도 선두의 방패병에게 가로막혀버리니 쓰러지는 병사들은, 역시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사다리!!"

"사다리를 걸쳐라!!"


순식간에 성벽 앞에 당도한 제1군이 사다리를 걸치기 시작했다.


경포성의 병사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사다리를 미쳐내려 했지만 아무리 밀쳐내고 밀쳐내도 사다리는 끊임없이 올라왔다.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곧이어 패천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승리가 코앞이다!! 성벽 위로 올라가 적을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


승리라는 말에 흥분한 병사들이 벌때같이 달라붙었다. 수천의 병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니 경포성은 곧장이라도 함락될듯 위태롭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커흙!!!"

"화살이다!! 화살이야!!"


성벽 위에서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좀전의 힘없이 내리던 가랑비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몰아치는 장맛비였다. ㅂ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펄펄 끓는 기름과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쏟아져내렸다.


"뜨거워!!!!"

"내려가!! 내려가라고!!!"

"끼아아악!!!"


얼굴이 진득하게 녹아버린 병사가 짐승같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그밖에도 화살에 꿰뚤리고 돌덩이에 머리가 터져버린 병사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다리에 두손 두발이 묶인 병사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더없이 고통스럽게 기다릴뿐.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숨겨놓은 병사들이 있었구나···!’


분명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경포성의 수성병력은 많아봐야 3천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 5천, 아니 분명 그 이상이었다.


숨겨 놓은 병사들이 수천은 되었던 것이다.


'눈속임이었나.'


화포 덕에 전의를 상실한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장 방심한 틈을 노려 한번에 쏟아 붓기 위해 화포에 크게 당한 척 연기한 것이었다.


거기에 패천의 앞뒤 돌아보지 않는 급한 성격까지 합세하니 그야말로 경포성주의 계책 안에서 놀아난 꼴이 되어 버렸다.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다리 앞에서 주저하며 망설이는 병사들이 보였다.


앞서 사다리를 올랐던 선두의 병사들이 궤멸당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 연쇄작용하여 제1군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군의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져 버렸다.


옆에서 권 장군이 쯧쯧 혀를 찼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소이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 결국 매화봉을 들었다.


"후퇴한다."


출병하고 치른 열 네번의 전투.


그 첫번째 후퇴였다.



****



"젠장할!! 다 이긴 전투를 어찌 후퇴시킨 것이오!!"


패천이 분개하여 소리쳤다. 거대한 덩치에 핏물까지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귀 같았다.


"조금만 더하면..."


"진정 다 이긴 전투라고 생각하십니까?"


"압도적인 숫적 차이로 성벽을 포위했소이다!! 그것이 다 이긴 전투가 아니면 뭐란 말이요!!"


"앞뒤 없이 달려들어 선두가 궤멸 당하고 그로인해 1군 전체의 전열이 흐트러졌습니다. 거기다 성벽 뒤에는 우리가 몰랐던 수천의 적병들이 더 있는 상황이죠."


"그건..!"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지 않아도 뻔하지 않습니까?"


"물론 경포성은 함락할수 있었겠죠. 장군께서 말했다시피 압도적인 숫적 차이로 밀어붙히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 피해는 막심했을 겁니다. 우리가 사전에 계획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승리라는 것은 상대적인 겁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력을 쏟아부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한들 그 이상의 전력을 소모했다면 그건 실패한 승리입니다."


"실패한 승리는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그래서 후퇴를 지시했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속에 쌓여있던 말들이 속사포처럼 터져나왔다. 분명 경포성주의 계책이 뛰어난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천 장군의 패착까지 부정할수는 없었다.


패천은 분을 참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나같이 맞는 말인 것을.


그저 얌전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찌할까, 고민하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쳤다. 돌아보니 이제는 주둔군의 장군이 된 권 노인이었다.


"나를 보내주시게."


"주둔군은 고작 육천이 아닙니까. 적은 피를 입었다고는 하나 최소 4천입니다."


"방금 그러지 않으셨는가.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육천이면 충분하네."


"포탄이 부족해 화포의 지원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화약은 있겠지?"


"화약은 있습니다."


"그거면 되었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름진 노장의 얼굴.


하지만 눈동자에 서린 확신 만큼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습니다. 즉시 출병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



경포성의 성벽 위는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친 것처럼 처참했다.


아직 채 꺼지지 않은 불길과 위태롭게 흩날리는 연기구름, 파이고 부서진 성벽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알수 없는 붉은색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는데 언뜻보면 고깃덩이 같기도 했다.


"이게 뭐야?"


경포성주 원보와 함께 성벽 위를 거닐던 측근 부관이 눈쌀을 찌푸리며 덩어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기겁을 하며 던져버렸다.


"이 씨발!!"


그건 육편이 되어 터져버린 인간의 살점이었다.


평생을 장수로 살아왔고 왜란도 겪어보았지만 이토록 처참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화포라는건 정말이지 무서운 무기구나, 중얼거리며 황급히 경포성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번 한번은 어떻게 밀어냈다지만 다음은 또 어떻게 버틸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미 각오한 바일세."


"아무래도 이번에는 군단 전체를 이끌고 오겠지요? 가망이...있겠습니까?"


"바뀌는건 없네. 우리는 그저 전하와 백성들을 위해 최대한 오래버티면 그만이야."


"...물론입니다."


말과는 달리 부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는 상관이 원망스러웠다. 어찌되든 이길수 없는 싸움이 아닌가.


병법에 따르면 공성을 위해서는 수성 전력의 열배가 필요하다 했다.


명진공의 군단은 열배는 무슨, 스무배가 넘었다.


병법에서도 안되는다는걸 상관은 고집을 부리며 우겨부치고 있으니 부관으로서는 마음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포성주 원보는 그저 전황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피해 상황은 어떤가?"


"총 이천 육백 팔십명 중 사망 육백 팔십 두명, 중상 사백 이십 세명입니다. 경상자는 따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성벽의 상태는?"


"좌측 성벽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곧바로 복구 작업에 들어갔으나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여 한계가 있습니다."


"성문만 건재하면 되니 그쪽으로 최대한 집중하게."


알겠습니다, 하고 부관이 막 대답하려 할때였다.


- 쿵-!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났다. 무언가 부딫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부관이 무슨 소린가 싶어 귀를 기울이는 순간.


- 쿵-! 쿵-!


또힌번 울려퍼지는 소리.


"분명 어디서 들어본 소리..."


별안간 부관의 고개가 훽 돌아갔다. 성벽 아래를 살펴보던 그의 두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는 완전히 부릅 떠졌다.


- 쿵!! 쿵!! 쿵!!


언덕 너머에 세워진 명진공 군단의 끝도없이 이어진 막사들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 쿵!! 쿵!! 쿵!!


그리고 그때.


일렁이던 물결이 새까만 파도가 되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경포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의 정체는 북소리였다.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


"서, 성주님!!"


부관이 다급한 얼굴로 자신의 상관을 돌아보았다. 경포성주 원보 역시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빨리...!”


후퇴한지 고작 한시간여쯤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새 전열을 갖추고 진군을 시작하고 있었다.


원보는 이를 아득 물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최소한 서너 시간의 여유는 있을줄 알았다.


“전군 전투준비!! 전투준비!!”


황급히 달려나가는 부관의 외침이 귓가를 따라 메아리쳤다.


원보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돌아섰다.


'빨리오든 늦게오든 막아서면 그뿐...!'


그의 걸음 걸음 뒤로 남겨진 발자국이 이내 희미하게 지워져 흩어졌다.


작가의말

좋은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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