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 드래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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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현
작품등록일 :
2022.05.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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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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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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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의심을 샀을 때 해결하는 방법

DUMMY

하지윤이 ‘우진혁’이라는 이름을 들은 건 입학식 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루드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인 소나기가 내렸던 2월의 어느 날, 이정훈 학장의 호출로 학장실을 잠시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학장은 입학식 때 할 선서 내용을 상의하고 싶다면서 하지윤을 불렀다. 하지윤은 어차피 선서 내용은 거기서 거기일 텐데 상의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정훈 학장이 쓸데 없는 이유로 사람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기에 순순히 학장실로 불려갔다.


“그럼 선서 내용은 이대로 진행하는 건가요?”

“네.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윤 생도가 수석이니 마음이 편하네요.”


하지윤이 예상했던 것처럼 선서 내용에 대한 상의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끝났다. 애초에 선서라는 것이 상투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기에 크게 건드릴 것이 없었다.


허나 용무를 마치고 하지윤이 문고리를 돌리려는 찰나, 이정훈 학장이 하지윤의 발목을 잡았다.


“지윤 생도, 잠깐 물어볼 게 있습니다.”

“네? 아,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윤 생도는 실기 시험의 레갸르의 상자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렸죠?”

“그렇죠. 저희는 할머님 때부터 마물 사냥의 스페셜리스트이니 그 정도는 해야죠.”


귀걸이로 변한 미스틸테인을 만지작거리는 하지윤. 그녀의 할머니와 아버지인 하수희, 하진현도 마물 사냥의 전문가였다. 당장 하수희가 쓰러트린 1급 마물만 열 마리가 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하지윤도 마물을 공략하는 데는 또래의 사람들 보다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윤으로 말하자면 미노타우로스나 오크킹 같이 유명한 마물들의 약점은 전부 다 꿰고 있었다. 오크킹은 날붙이에 대한 방어력은 높았지만 마법에 약했고, 미노타우로스는 버서커 상태에 진입하기 전에 쓰러트리는 것이 대표적인 공략법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지윤양에게 물을게요. 이능도 없고, 평균 이하의 마나를 가진 사람이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릴 방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지윤은 일말의 고민도 않고 이정훈 학장의 물음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5급 마물은 격투기에 능한 평범한 사람들도 노력한다면 충분히 처치할 수 있어요. 4급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져요.”

“흔히 영웅의 영역이라고들 하죠.”

“예. 하지만 어느 정도는 타협이 가능해요. 이능이나 마나가 없더라도 좋은 무기를 갖고 침착하게 마물의 빈틈을 노린다면 4급 마물을 쓰러트리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에요.”

“3급은 다른가요?”

“맞아요. 3급 마물부터는 타협이 불가능해요. ‘절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윤은 담담히 말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의 지식은 일반인들이 접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정훈 학장은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몇 년간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니 범재도 못한 사람이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하지윤은 이정훈 학장이 어째서 이리도 당연한 것을 묻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는 3급보다 높은 준2급 마물이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겠죠.”

“그러니까 지윤양 말은 절대 불가능 하다는 말이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에?”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하지윤. 대화의 행방이 어디로 향하는지 갈피를 못 잡은 모습이다.


“실은 이번에 레갸르의 상자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지원생은 이능 검사에서 이능이 발견되지도 않았고, 마나 테스트에서도 50점을 넘지 못했죠.”


하지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처음에는 학장이 농담을 하는 건가 싶었다만, 이정훈 학장이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방금 지윤 생도에게 물어본 겁니다. 제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혹시나 마물 사냥의 스페셜리스트는 방법이 있나 싶어서요.”

“.. 없어요. 레갸르의 상자에서는 무기도 보급품으로 사용해야 하니 변수가 더더욱 없을 텐데요?”

“맞아요. 저희도 그렇기에 저희도 의아했죠. 영상 자료가 남아 있다면 좋겠지만 폐기한 후라 아쉽게도 확인할 방법도 없었죠.”

“그러면 답은 간단해요. 레갸르의 상자가 잘못된 거죠. 그게 아니라면 앞뒤가 맞질 않아요.”


가장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해답이었다. 레갸르의 상자 테스트에서 오류가 발생했다고 가정한다면 퍼즐조각이 맞는다. 이능 검사나 마나 테스트는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극히 낮았다. 그러니 남은 것은 레갸르의 상자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담당 교수에게 물었지만 이상은 없다고 하더라구요. 참 의문입니다.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정밀 검사를 부탁했으니 결과를 지켜 봐야죠.”

“오류가 난 게 분명해요. 마법도 이능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린다니.. 그건 상식이 아니라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답이 되셨다면 이제 가보겠습니다 학장님.”


하지윤은 이정훈 학장의 의문에 답을 내렸다. 테스트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 하지윤의 판단이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됨을 느낀 하지윤은 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요. 아무튼 이 생도도 입학하게 될 것 같으니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 그렇군요. 이름이 뭔가요?”

“우진혁 생도입니다.”

“참고할게요.”


우진혁. 범재보다 못한 둔재의 능력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렸다는 사람의 이름을 하지윤은 머릿속 한 구석에 넣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오류가 발생해 운 좋게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렸다고 기록된 거겠지.


하지윤은 우진혁이란 둔재를 입학시키는 이정훈 학장의 뜻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만 불만까지 내보일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그 정도 능력으로 입학한다면 머지 않아 도태될 것이니까.





****





하지윤(1등)

아마네 시즈쿠(412등)

우진혁(1,500등)


아카데미 섬의 전투 실습 부지의 스크린이 켜지며 팀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하지윤은 금새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름의 옆에는 1등이라 적혀 있었다. 입학 시험의 등수였다. 어차피 자신이 1등이라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므로, 다른 멤버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이 한 명, 아는 사람이 한 명.


“우진혁..”


언젠가 들었던 이름을 읊조리는 하지윤. 그녀가 이 이름을 들은 것은 정확히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루드벤 아카데미의 이정훈 학장에게, 두 번째는 입학식 날 아카데미의 직원에게 들었다.


하지윤은 솔직히 말하자면 우진혁이라는 남자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 남자는 2월에 어느 비 오는 날, 아카데미 섬의 골목길에서 만난 불량한 문신 남이었다.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맞붙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계속해서 깻잎 한 장 차이로 하지윤의 이능과 미스틸테인을 사용한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더해서 마지막에는 미스틸테인이 저주에 걸렸다는 둥, 영문 모를 말을 남기고 떠났다.


헌데 그 남자가 우진혁이었다니.


-“혹시 우진혁 생도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입학식 날에 아카데미 직원과 문신 남이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미스틸테인에 걸린 저주에 대해 물어보려고 붙잡고 있을 때 우연치 않게 듣게 되었다.


도중에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우진혁이라고 인정했다. 즉, 그 남자가 이정훈 학장이 말했던 ‘이능도 없고 마나도 부족한 둔재’ 라는 뜻이다.


‘..그런 둔재가 내 공격을 한 번이라도 피할 수 있을 리가.’


하지윤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비 내리는 날 봤던 우진혁의 움직임은 도저히 인간의 근육으로 보일 수 있는 민첩함과 유연함이 아니었다. 필시 마나나 이능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나 테스트나 이능 검사기에서 오류가 난 걸까? 이능 검사기가 이능의 이름을 착각할 일은 있어도 이능의 유무를 틀리지는 않을 텐데..’


모르겠다.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총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녀의 머리로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학장님의 면담도 거절했죠.’


평범한 생도라면 학장의 부름에 당연히 응할 것이다. 하지만 우진혁은 그 뜻을 명백하게 거절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의문투성이였다. 마물이나 학업에 관련된 문제라면 손쉽게 해결할 하지윤이었다. 허나 우진혁이라는 문제는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간극에서 오는 차이가 하지윤을 무척이나 괴롭게 만들었다.


‘앗..’


그렇게 고민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하지윤은 어느새 100명의 인파 속에서 우진혁을 찾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맞겠죠.’





****





루드벤 아카데미에 고고한 학처럼 군림하는 하지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점점 다가왔다. 또 나옹나옹 때문에 한 소리 하려나. 나 진짜 입 밖으로 꺼낸 적 한 번도 없는데.


하지윤이 한 발 한 발 움직일수록 그녀를 둘러싸던 인파가 갈라졌다. 그들의 눈이 나에게로 향하는 하지윤에게 쏠렸다.


“저기요.”

“우진혁.”

“.. 알아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1학년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하.. 하지윤이 먼저 말을 걸었어!”

-“하지윤이 1학년한테 말 거는 거 처음 아니야?”

-“대박.. 근데 저 사람.. 그 사람 아닌가?”

-“아 그 소문?”


자그마한 웅성거림이 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집중시켰다. 혈통주의자인 하지윤이 교수나 선배가 아닌 동급생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처음이었기에, 생도들은 이 진귀한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봤다.


옆에 있던 베텔라도 ‘진혁, 하지윤이랑 친한 사이였어?’ 라며 물어왔다. 적당히 고개를 저어주고 주위를 둘러봤다.


점점 시선이 모이고 있다. 마치 무대 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는다. 하지윤이 뭘 묻고 싶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1년 동안 전투 실습을 같이 치를 예정이니 까칠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뭔데?”

“당신이 마나 양도 적고 이능도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맞아. 그러니까 천오백 등이지.”


스크린을 가리켰다. 이름의 옆에는 입학 시험의 등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런 거로 거짓말할 필요가 있나?”

“그럼 비 내리던 그 날 제 미스틸테인을 어떻게 피한 거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나와 하지윤 사이에 잠시간 정적이 흐른다. 이걸 답해주는 건 금제 위반이다. 하지윤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진지함이 깃들어 있다. 어떻게든 답을 듣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비밀인데. 왜 내 밑천을 너한테 알려줘야 하지?”

“.. 그렇게 나오시는 군요.”


하지윤은 머리도 좋지만 감각도 예리한 사람이다. 어설픈 거짓말로는 하지윤이 만족할만한 대답이 못될 것이다. 그러니 사실이 첨가된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절의 의미가 담긴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영리한 하지윤도 내가 답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 들었을 것이다.


“저희는 1년 동안 팀이 될 사이가 아닌가요? 팀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 서로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참으로 하지윤 다운 논리적인 접근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나를 압박하려 든다면, 비논리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나옹나옹.”

“흐앗!”


이어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하지윤의 손바닥이 내 입술로 날아 들었다. 하지윤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양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이익.. 그렇게.. 그렇게 나오신다는 거죠..! 정말 당신은 악랄하게 짝이 없네요!”


내가 한 건 일종의 협박이다. 더 이상 캐물으려 한다면 네놈이 감추고 싶어하는 민낯을 들추겠다는 협박 말이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새끼손가락을 슬며시 들었다. 만약 이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하지윤이 한 번에 어린이 세트 30개를 구매할 정도로 나옹나옹 피규어를 갖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아,알았어요. 안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당신도 말하지 말아요..”


하지윤은 토마토처럼 변한 얼굴로 잠시 고민하더니 순순히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한 손으로 새끼손가락을 건다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여러모로 껄끄러운 사람이다. 하지윤이라는 인간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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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마령 22.06.13 28 1 12쪽
23 23화 저주 22.06.12 35 1 12쪽
22 22화 전투 실습 (3) 22.06.12 33 1 13쪽
21 21화 전투 실습 (2) 22.06.11 38 1 13쪽
20 20화 전투 실습 (1) +1 22.06.11 38 1 14쪽
19 19화 껄끄러운 사람 22.06.10 43 1 13쪽
» 18화 의심을 샀을 때 해결하는 방법 22.06.09 42 1 13쪽
17 17화 사건의 전조 22.06.06 47 1 13쪽
16 16화 심봤다 22.06.05 51 1 13쪽
15 15화 스토커가 붙어서 22.06.04 50 1 13쪽
14 14화 재회의 맛 22.06.02 53 1 15쪽
13 13화 심층세계 +2 22.05.31 58 3 13쪽
12 12화 하지윤 +1 22.05.28 58 1 12쪽
11 11화 합격 +1 22.05.27 60 1 13쪽
10 10화 불합격과 합격 그 어딘가 +1 22.05.24 62 2 13쪽
9 9화 못 먹어도 고 +1 22.05.23 65 3 14쪽
8 8화 길랑이를 줍다 +1 22.05.20 69 3 13쪽
7 7화 천향산의 호랑이 (3) +2 22.05.20 73 2 12쪽
6 6화 천향산의 호랑이 (2) +1 22.05.19 85 2 12쪽
5 5화 천향산의 호랑이 (1) +1 22.05.18 101 3 14쪽
4 4화 형세역전 +1 22.05.17 113 5 13쪽
3 3화 벌 준비를 하다 +2 22.05.16 139 7 13쪽
2 2화 금제와 맹약 +1 22.05.15 166 10 14쪽
1 1화 회귀하다 +2 22.05.14 249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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