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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노예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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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5.16 00:06
최근연재일 :
2022.07.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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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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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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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잊혀진 이름, 레볼리스(16)

DUMMY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욜이 비장하게 말했다.


욜 뒤로 보이는 레볼리스 영주성은 평소보다 휑했다.


성에 있어야 할 기본적인 기자재들은 모두 남아있었지만, 레볼리스 일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모든 물품들이 사라져 있었다. 토벌군에게 점령 당해 욕 보이기 전에 욜이 미리미리 잘 정리 한 덕분이었다.


영주성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용인들도 많이 줄어있었다.


영주성을 벗어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자들은 여전히 영주성에 남았다.

그들은 레볼리스 일가 대신 그레고리만 데 로푸타 자작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로푸타 일가를 모시며 살아갈 것이다.


사용주가 레볼리스 였기에 영주성에 거하던 많은 사용인들은 자발적으로 영주성을 떠났다.


허나, 욜에겐 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사용인들 중 레볼리스 일가와 가장 오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이자 가장 깊은 충성을 바쳐온 자. 영주성의 행정을 총괄하는 집사장.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는 변경백 아르칸의 오랜 친우이자 노예해방전선의 핵심인물.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욜이기에 레볼리스가 사라지는 레지스탕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레볼리스가 사라진 이후의 모든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기로 결정했다.

레볼리스를 위해, 노예해방전선을 위해.


욜과 마찬가지로 기사와 병사들에게도 떠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레볼리스 정규군은 토벌군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외적으로부터 제국의 영토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 온 유서 깊은 군대였다. 그 근본에 레볼리스 일가에 대한 충의가 있을지언정, 레볼리스가 없어진다 하여 그 업을 내팽겨칠 수는 없는 자리였다.


레볼리스에 대한 충의가 깊은 자들이 많았기에, 자신의 업과 명예를 포기하면서 까지 항전의 의사를 불태운 기사들이 더러 있었다. 아니, 많이 있었다. 하지만 충성의 당사자인 레볼리스가 항전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업을 계속 지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토벌군이 도착하는 오늘, 스타라슈는 모든 병력을 국경 방어에 투입했다. 제국의 국경 바깥을 경계하고 있는 그들이 국경 안에서 진입하는 토벌군과 마주할 일은 없는 것이다.


”뒤는 계획대로 부탁합니다. 욜“

”믿고 맡겨주십시오.“


누가 아들 아니랄까봐 떠나갈 때 하는 말도 어쩜 아르칸과 똑같은지.

제 안위보다 계획을 먼저 생각하는 부자를 보며 욜은 쓴웃음을 삼켰다.


”저는 10년 후, 반드시 살아 돌아옵니다.“


아니, 다른 것은 있었다.

아르칸이 죽음을 각오하고 걸음을 옮겼다면,

아르칸의 죽음을 딛은 덕분에 스타라슈를 삶을 각오하고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욜은 그것이 아르칸의 유산이라 생각했다.


”나갈까요“

”예, 마지막으로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전령을 통해 목숨의 보장을 받은 스타라슈지만 그 표정은 비장했다.

오늘, 그는 변경백의 소영주에서 모든 것을 잃고 노예병이 될 예정이었다.


”10년 후에 보도록 합시다.“


스타라슈가 욜을 향해 웃어보였다. 마치 아르칸처럼.


걸어나가는 스타라슈의 어깨 너머로 영주성의 입구가 보였다.

영주성의 입구 밖으로, 2만의 군세가 영주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2만의 군세를 향해 혼자 걸어가는 스타라슈의 발걸음은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


2만의 토벌군 군세가 마침내 레지스탕에 도착했다.

토벌군이라 하나 명백한 제국군, 같은 제국의 국민을 약탈 할 리는 없었으나 혹여나 토벌군에게 해를 입을까 레지스탕 변경에서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모든 주민들이 집에 틀어박혔다.


레지스탕의 변경부터 영주성에 이르는 길까지.

모든 관문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으며 관문을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고는 소문이 자자한 레지스탕 정규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레지스탕이 제국의 변경이라 하나, 명백한 제국의 땅.

넓은 대로는 잘 정비되어있었다. 넓은 대로를 따라 걷는 2만의 토벌군은 빠른속도로 레볼리스 영주성으로 향했다.


전쟁을 각오하고 레지스탕을 향하며 내심 긴장하고 있던 병사들은 서서히 긴장이 풀려감을 느꼈다. 압도적인 2만의 군세와 저항 없는 레지스탕을 보며 그들은 이미 승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토벌군의 행렬은 마치 개선군과 같은 위세가 되어 레볼리스를 향하고 있었다.


군세의 선두에 있는 그레고리만은 한껏 도취 되어있었다.

한달간의 행군은 따분하고 귀찮았으나, 그 과실이 지나치게 달콤했다.

이 땅이, 이제 나의 것이다.

영지귀족의 영광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마침내, 레지스탕의 영주성이 눈앞에 보였다.

레볼리스 영주성이 아니라 로푸타 영주성이 될 그곳이.


***


레볼리스 영주성 또한 레지스탕의 여느 관문과 같이 활짝 열려있었다.

이전까지의 관문과 다른 점이라면 영주성 정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백기의 존재였다.

명백한 투항의 표시.


백기의 존재에 아랑곳 않고 그레고리만은 토벌군에게 포위를 명했다.

2만의 군세가 횡진을 펼쳐 레볼리스 영주성을 포위했다.이제 그레고리만의 허락이 없다면 영주성에서는 쥐새끼 한 마리 살아서 나가지 못하리라.


포위가 끝나자 영주성에서 두 명의 인원이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그레고리만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앞에서 걸어나오는 황인과 그 뒤를 보좌하는 흑인을 본 후였다.

그레고리만은 유색인종을 좋아했다. 유색인종이야 말로 백인인 자신을 빛나게 하는 존재니까.


하지만 저 둘을 보자마자 그레고리만은 강렬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황인의 걸음걸이는 2만의 군세 앞에서도 더없이 당당했고, 그 뒤를 보좌하는 흑인의 걸음걸이는 예법을 익힌 귀족처럼 고고했다. 망해버린 황인 귀족 주제에 당당히 걸어나오다니. 흑인 주제에, 백인 귀족들이 걷는 기품있는 걸음을 흉내 내다니.


항상 제 앞에 굽실거리던 유색 인종만 봐오던 그레고리만에게는 너무도 불쾌한 경험이었다.


횡진으로 펼친 2만 군세의 압력에 아랑곳 않고 둘은 계속해서 걸어왔다.

그 방향은 정확하게 그레고리만을 향해서였다.


군의 총 사령관을 향해 걸어오는 둘을 기사 몇이 막아섰다.

단 둘이라고는 하나, 총사령관의 앞에 제압하지 않은 적의 접근을 허용할 수는 없어서였다.


”그냥 둬라.“


그레고리만의 한마디에 기사들은 둘의 무장 상태만 확인하고 물러섰다.

둘 다 일체의 병장기를 소지하지 않았기에 기사들은 총사령관의 명을 따랐다.


자신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황군을 보며 그레고리만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만 단위의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형태, 난 이 군의 총사령관 그레고리만이다.

뭐가 무서워서 겨우 둘밖에 안되는 적을 제압하고 앞에 둔단 말인가.


백인의 자긍심으로 저 당당한 척 하는 유색인종들 보다 더 당당해보이고 싶은 그레고리만의 치기였다.


제압되지 않은 스타라슈와 욜이 그레고리만의 앞에 도착했다.


”무릎을 꿇어라“


- 털썩


그레고리만의 말이 떨어지자 스타라슈와 욜은 무릎을 꿇었다.

항전을 포기한 시점에 이미 각오한 처우였다.


-찌릿


순간 그레고리만을 찾아오는 쾌감.

미리 제압하지 않고 오도록 한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천한 피를 타고난 주제에 당당한 척 하는 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굴복시키는 이 쾌감을 어찌 검문하는 기사들한테 양보한단 말인가.


”네가 레볼리스의 마지막 생존자 스타라슈 반 레볼리스인가?“

”예. 그레고리만 ‘데’ 로푸타 자작님“


위계상 백작위의 ‘반’의 칭호를 가진 스타라슈가 남·자작위 ‘데’ 칭호를 가진 그레고리만의 입지를 생각하면 지금 대화는 어긋나있었다. 그렇기에 스타라슈는 ‘데’의 호칭을 강조해서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레고리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신은 이 강대한 토벌군의 총사령관이며 곧 변경백으로 영전하여 그레고리만 ‘반’ 로푸타가 될 예정인 것을. 아니, 그레고리만은 스스로를 ‘반’에 그칠 인물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영광의 호칭 ‘폰’ 그것이 그레고리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 콰직


”소영주님!“


그레고리만의 발이 가차없이 스타라슈의 얼굴을 짓밟았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용서해준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지 않나? 개가 짖는다고 내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지만 교육 받지 못해 사고를 쳤다면 체벌을 받아야지. 딱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진 발길질이었다.


”호오?“


적지 않은 힘으로 짓밟았거늘 스타라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니 눈조차 감지 않은 채 그레고리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전적인 눈빛.

하, 저런 녀석이야말로 길들이는 재미가 있는 법인데.

저런 눈빛을 수도 없이 꺾어 본 그레고리만은 그때 느꼈던 쾌감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레고리만은 더 이상 '체벌'을 가하지 않고 참았다,


원로원의 ‘부탁’이 있으니, 참아야 한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런 눈빛을 길들이는 것은 재밌었지만, 길들여진 녀석들은 모두 죽어버렸으니.

‘폰’의 이름을 가지기 전까지는 조금 더 원로원의 비위를 맞춰줘야겠지.


하지만 정작 그레고리만은 몰랐다.

스타라슈의 인내심이 조금만 부족했다면.

영지민에 대한 의무감을 덜어놓을 수 있는 귀족이었다면,

방금 목이 달아난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타라슈의 얼굴에 발을 올린 그 자세 그대로 크라운이 황가의 칙서를 펼쳤다.

칙서에는 무성의한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오늘부로 레볼리스 가문에 내려진 제국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회수한다. 크라운 폰 데시트“


의무를 다해 제국을 지켜온 역사가 무색하게, 성의 없는 문장 하나로 데시트 제국의 유서깊은 가문 레볼리스 일가가 사라졌다.


”끌고 가라.“

”예.“


욜을 한번 쳐다본 스타라슈는 순순히 기사들에게 끌려갔다.

일련의 기사들은 스타라슈를 끌고 순식간에 후방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애초에 그레고리만의 권속이 아닌 원로원의 권속들이었다.


기사들은 스타라슈를 끌고 온 레지스탕을 돌며, 레볼리스의 죄를 고하고 그럼에도 마지막 핏줄을 살려준 그레고리만과 황가의 자비를 선전 할 것이다.

그 이후에야 마경으로 향하리라.


스타라슈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레고리만은 욜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뭐냐?“

”레지스탕의 집사장입니다.“

”호오?“


욜을 바라보는 그레고리만의 눈빛은,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일단 그 꼴같잖은 걸음걸이부터 교정 시켜야겠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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