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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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나는구름
작품등록일 :
2022.05.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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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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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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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뎅 공방전(1)

DUMMY

#구르뎅인근 프란샤군 참호 6월 5일


프란샤군 병사들은 있는 힘껏 곡괭이와 삽을 이용해서 참호를 팠다.

참호를 깊이 팔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다는 믿음이 있어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땅을 파고 마대자루에 흙을 담아 벽을 세웠다. 애써 파낸 벽이 무너지지 않게 기둥을 박고 나무판자로 벽을 보강했다.

올라가서 총을 쏠 사격발판도 만들었다.


며칠을 작업한 끝에 겨우 참호의 모양새를 만들어냈지만 당장 비라도 오면 피할 곳도 없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지나온 르만군의 참호들은 벽을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보강을 하고 곳곳에 지하에 철제 기둥과 나무판자로 튼튼하게 보강된 거주구역을 만들어 두곤 했었다.

이에 반해 프란샤군의 참호는 마대를 적당히 쌓고 나무판자로 지붕을 만들고 마대를 올린 것이 거주구역이라 할 만한 것이었고, 당장은 그마저도 없었다.

여름 날씨답게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다.


프란샤군 병사중 한명이 삽질을 하다말고 허리를 펴고 머리에 땀을 닦았다.

참호를 파느라 힘들어 헐떡거리지만 공기가 매캐한 것이 숨쉬기가 힘들었다.

구르뎅시 주변의 포도밭에 사계청소를 한다는 명목으로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피난을 가고 없었지만 여름의 포도밭은 여전히 푸르렀고, 싱싱한 포도송이를 만들어 냈었다. 한참 포도송이가 익어가던 포도밭은 기름까지 부어 불을 지른 탓에 새카만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구르뎅시 인근에 위치한 슈발롬 요새는 지난 전투에 파괴된 동쪽벽 부분을 완전히 수리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콘크리트로 보강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무너져 내린 벽 쪽엔 흙을 채운 마대자루를 쌓아서 임시로 벽을 만들고 사격진지를 구축했다. 기관총도 몇 정 설치해서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사격하도록 만들었다.


#구르뎅 동쪽 4km지점


서쪽으로 후퇴하던 프란샤군 167사단은 추격해오는 르만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포로가 되거나 죽었지만 남은 병력은 있었고, 구르뎅으로 후퇴하며 르만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소른강 양쪽은 다행이도 포도밭이나 숲이 울창한 덕분에 적은 병력으로도 르만군을 저지할 수 있었고, 그들이 구르뎅 근처까지 올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후퇴 길이 불바다가 되고 있다.

참호선을 가리는 포도밭들을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러버린 탓에 167사단의 패잔병들이 움직일 곳이 많이 없어져 버렸다.

소른강의 얕은 강변을 따라 움직이던지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숲을 벗어나 움직인다는 것은 르만군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167사단의 장병들은 도대체 불을 질러 사계청소를 하겠다는 생각을 누가 했는지 아군이지만 정말 빌어먹을 놈이라 생각했다.


프란샤군의 버건디 소령은 지휘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지휘관이라고 해봐야 대위 한명에 기타 장교 3명, 부사관이 3명이다. 지금 그가 지휘하는 병력은 원 소속은 다 제각각인 패잔병들을 수습한 300명 남짓이 전부였다.


“아군이 사계청소를 위해 불을 지른 모양이다. 당장 여기서 더 서쪽으로 후퇴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어. 지금 이곳에서 르만군을 최대한 저지하고 불이 꺼지면 생존 병력을 추슬러 다시 구르뎅으로 향한다.”

“소령님······. 강변을 따라 가면 불길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른강의 남쪽은 적의 대부대가 숲을 점령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강을 따라 움직이면 놈들의 사격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곳에서 싸워야 한다.”

“모두가 많이 지쳤습니다. 다들 굶주리고 있고, 탄약도 거의 떨어져 갑니다. 이대로 싸우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귀관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후퇴로도 막혔고, 전투를 지속할 역량도 부족하니 르만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싸우면서 후퇴한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제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무립니다.”

“무슨 소린가!! 저 잔학무도한 르만놈들에게 항복하느니 명예롭게 싸우다 죽는 것이 프란샤인의 긍지를 드높이는 일이 아닌가? 한번만 더 항복을 입에 올리면 즉결처분하겠다.”


버건디 소령은 입에 게거품을 물며 권총을 뽑아들고 항복을 말하는 자는 쏴죽이겠다며 설쳐댔다. 명예로운 죽음을 입에 올리는 버건디 소령을 보는 병사들이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따위 명예는 높은 분들이나 챙기시고 우선은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프란샤군 병사 줄리앙은 주변의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여차하면 싸우는 척만 하다가 달아나 르만군에게 항복할 심산이다.


슈웅. 쾅. 슈웅. 쾅.


중거리 박격포로 생각되는 르만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확한 목표를 정해서 날아오는 것은 아니고 대충 이쯤에 프란샤군이 있지 않겠나 싶은 곳에 때리고 보는 폭격이다. 숲이 우거진 곳이다 보니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영 무작위는 아닌 것이 지형지물을 고려해서 르만군의 지휘관에게 방어선을 구축하라면 어디로 하겠냐 했을 때 나라면 여기로 하겠다라고 하는 곳을 정해 때리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의 판단은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포격이 잦아들자 이내 르만군 정찰대의 모습이 보인다.

포격이 통 효과가 없지는 않은 것이 나무를 잘라 대충 만든 방어진지가 포격에 부서진 곳이 허다했다. 겨우 몸을 숨기고 있던 프란샤군 병사들이 사격명령이 내려오기도 전에 르만군 정찰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만! 그만! 쏘지 마. 이 멍청이들아! 사격중지!”


프란샤군 장교 하나가 권총을 빼어들고 병사들의 사격을 중지시켰다. 정찰대를 어설프게 건드려서 위치만 노출시켰다.


장교가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

줄리앙과 그 동료들은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금슬금 위치를 이탈해서 장교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움직였다.

흙무더기를 넘어 장교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그들은 전력으로 달려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거기 정지. 병사들. 어디로 가는 길인가?”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들의 왼쪽 머리위에서 저승사자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버건디 소령이 권총을 빼어들고 몇 명의 병사와 함께 비탈을 내려오고 있었다.


“병사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나? 여기가 네놈들의 방어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줄리앙과 그 동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버버거리고 있자 버건디 소령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줄리앙의 머리에 권총을 가져다대고 물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병사.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인가?”

“그, 그게······.”

“전시 탈영은 즉결처분으로 총살이다. 셋을 셀 동안 대답하지 못하면 네놈들은 총살이다. 하나. 둘.”


버건디 소령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숫자를 세며 권총을 줄리앙의 머리에 밀착해 나갈 때.

줄리앙의 동료들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순히 죽어줄 수는 없었다. 저 망할 놈의 소령 놈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주고 죽어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탕!


버건디 소령의 머리에서 피가 확 튀었다. 총알이 박히는 충격으로 몸이 휘청하면서 넘어갔다.

줄리앙의 동료들은 어리둥절했다.

총알은 소령이 이끌고 온 병사들 중에서 날아왔다.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병사가 총구를 내리고 머리통이 박살나 쓰러진 버건디 앞으로 다가서더니 침을 탁 뱉었다.


“씨발놈. 뒈지려면 혼자 뒈지지 왜 우리까지 죽이니 살리니 하면서 죽을 길로 몰아넣는 거냐. 니놈들 같은 귀족나리 놈들 때문에 우리만 개죽음이지. 카악 퉤.”


주변의 병사들이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쾌하다는 표정이다. 다들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수렴이 덥수룩한 병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살길을 찾아서 갑시다. 누구 흰 천조각 가진 사람 없소? 르만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우리가 살길인 듯하오.”


누군가 용케도 챙겨놨던 여분의 흰 속옷을 총에 매달아 한명이 높이 들고 나머지는 총을 거꾸로 든 채 르만군쪽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구르뎅인근 프란샤군 참호 6월 6일 오전 10시 25분


간밤에 비가 왔다.

급히 만든 참호에는 배수로가 제대로 완비되지 않아 통로에 물이 찼다.

병사들은 비를 피할 곳도 없어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사격발판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직 여름이라 그나마 견딜 만 했지만 밤새 빗속에서 선잠을 잔 병사들은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침에 물인지 스프인지 희멀건 한 무언가를 마시고 건빵을 씹기는 했지만 여전히 몸은 춥고 배는 고팠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조금 전부터 르만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흙탕물이 튀고 돌조각이 날아다녔다.

땅이 젖어서 흙먼지가 날아다니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재수 없게 참호 안에 포탄이 떨어지면 몇 명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사람의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게 변했다.


르만군의 중포공격이 멈췄다.

참호 한참 뒤편의 텐트에서 자고 온 장교들이 비교적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나타나 병사들을 닦달해서 전투준비를 시켰다.

포격이 끝나고 한참 뒤에 공격을 해오던 르만군의 공격패턴은 이번 전장에서는 달라졌다.

중포의 공격이 끝나면 근거리에서 다량의 포탄을 쏟아내고 바로 이어 병사들이 들이닥치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 르만군의 신무기가 나타나 다량의 박격포탄을 참호 안으로 쏟아낼 차례다.


슈슈슈슝. 슈슈슈슝.


수백 대의 피리를 한꺼번에 부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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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혼돈의 프란샤군 22.08.01 141 4 10쪽
42 겁 많은 군단장의 신년행사 22.07.25 148 4 10쪽
41 11군단 헌병대 22.07.18 172 5 10쪽
40 프란샤군의 보급문제 22.07.11 185 4 10쪽
39 새해파티 22.07.04 194 5 9쪽
38 친절한 피에르 22.06.27 193 7 10쪽
37 인민해방전선 22.06.20 196 5 10쪽
36 포상휴가 22.06.17 216 8 10쪽
35 서부전선 사령부 22.06.16 199 7 10쪽
34 회랑지대 전투(2) 22.06.15 197 8 10쪽
33 회랑지대 전투(1) 22.06.14 214 8 10쪽
32 구르뎅 공방전(4) 22.06.13 205 8 11쪽
31 구르뎅 공방전(3) 22.06.10 217 8 11쪽
30 구르뎅 공방전(2) 22.06.09 226 13 11쪽
» 구르뎅 공방전(1) 22.06.08 214 12 10쪽
28 차단된 보급로 22.06.07 224 10 10쪽
27 베이스 캠프 22.06.06 232 10 11쪽
26 낚시 22.06.04 240 12 10쪽
25 사라진 르만군 22.06.03 229 11 11쪽
24 구르뎅의 참변 22.06.02 240 10 10쪽
23 구르뎅 탈출 22.06.01 252 9 10쪽
22 슈발롬 요새 전투(2) 22.05.31 243 8 13쪽
21 슈발롬 요새 전투 22.05.30 248 8 15쪽
20 구르뎅시 22.05.29 248 7 13쪽
19 기만작전 22.05.28 27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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