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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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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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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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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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린의 왕자, 섀넌 무어(3)

DUMMY

세우타 남동쪽 무너진 성벽, 그리고 중앙 천막.

레온일행은 그 곳으로 다시 불려온 것이다.


“아, 쫓아낼 때는 언제고, 왜 자꾸 귀찮게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거야?”


그들을 내려다보는 섀넌 무어.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뽀로퉁해 보였다.


“응? 표정은 왜 그래? 내가 뭐 말실수했나?”


“흥, 이제 그 허튼 소리는 집어치우고, 나한테 뭘 원하는지나 똑바로 얘기해보라고!”


딱딱하고 건조했던 오전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한결 풀려있었다. 왕자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한 꺼풀 내려놓은듯한 모습으로.


묘하게 달라진 천막의 분위기를 감지한 레온이 입을 열었다.


“음, 이제 상황이 마련된건가?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여기 이 자리에서 나, 리스본의 레온 메이슨이 세우타 총독의 대리인으로 제안한다.”


레온과 섀넌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랄프.

그가 토미를 돌아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야, 근데 언제부터 우리가 총독의 대리인이였냐?”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는 가만히 있는게 나을 거 같아요.”

“그치? 나도 그래.”


두 사람을 바라보며 눈을 흘기는 세라노.


그런 그들과는 상관없이 레온과 섀넌의 대화는 이어졌다.


“정확히 뭘 제안하는 거지?”


“영구적인 평화 협정”


“평화협정? 우리가 왜 거기에 응해야 하지?”


“너희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유목민족도 아니고 천막만 짓고 여기저기 옮겨 사는 게 아니라, 제대로된 땅에 정착해 농사도 짓고 사람답게 사는 거. 그걸 보장해 주는 거지.”


“정착할 땅을 보장해주는 건가?”


“땅? 그건 너희가 알아서 찾아야···. 아니, 아니다. 내가 그것도 보장해줄게.”


섀넌의 눈빛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요구 조건은?”


“조건은 세우타와 그 주변에서 무력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 상단을 습격한다든지, 교역소를 불태운다든지 머 이런 것만 안하면 돼.”


“그럼 세우타 측에서도 우리를 토벌하려하거나 침공하는 일도 없는거야?”


“그렇지. 어차피 너희들이 자꾸 싸움을 걸어오니까 총독도 대응한거지, 그게 아니면 다른 일로 바쁜 총독이 굳이 너희까지 신경 쓸 이유도 없어.”


“흠, 서로간의 무력 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부족민의 안전과 정착할 땅까지 보장해준다?”


섀넌 입장에서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지금껏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동원되고 희생된 부족민들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제안이었다.


레온이 일깨워준 대로···.

그동안의 그녀는 개인적 감정만을 앞세워 부족민을 몰아붙인 것이다. 피폐해져버린 부족민의 실상에 완전히 등을 돌린 셈이었다.


아무 죄 없는 자그마한 아이.

그 아이의 눈동자에 서려있던 공포.

그 눈빛이 그녀의 마음을 꿰뚫었고 지난 잘못을 깨닫게 했으며 변하게 한 것이다.


부족민을 삶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개인적인 복수심 따위는 잠시 접어 두자고 마음먹은 그녀였다.


잠시 좌우에 선 오랜 동료들을 바라보는 그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녀의 말이 끝맺음을 하는 순간,

천막 안에서는 나직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앉아있는 레온 일행 쪽에서도.

그리고 그 반대편 자신의 수하들 입에서도.


평화는 결국 부족민들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그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섀넌.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 말을 잇는 그녀였다.


“근데 너 아까부터 자꾸 총독, 총독 거리는데···. 너 진짜 총독의 대리인이 맞긴한거야? 어떻게 부하가 총독을 그렇게 부르지?”


“총독을 총독이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아니, 총독님이라든지, 총독 각하라든지. 그 쪽에서 정확히 뭐라 부르는지 몰라도 적어도 존칭은 쓰는거 아냐?”


“아하, 듣고 보니 그러네.”


“아하? 야! 레온, 너. 너희 총독 이름이 뭐야?”



**



밤이 내려앉은 세우타 남쪽 성벽 마을.

별과 달빛, 그리고 군데군데 세워진 횃불이

드리워진 어둠을 밀어내며.


중앙 천막 앞의 자그마한 광장에서 전 부족민이 모인 연회가 모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연회라고 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모여 앉아 각자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조촐한 자리였다.


활력없이 반복되던 주민들의 일상에 모처럼 열린 연회는 몹시도 즐거운 일탈이었다. 더구나 은연중 들리는 소문에, 세우타 총독부와 부족 간에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는 이야기마저 들려왔다.


너무나 반가운 소식. 더 이상 전쟁의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가까운 가족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광장에 모여 앉은 그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났다.


레온은 그 날의 연회 중 가장 인기 많았던 음식 앞에 접시를 받쳐들고 서 있었다.


토마토와 당근, 적양파 따위를 기름에 볶고 버터와 마늘 몇 쪽을 고기와 함께 익혀낸 뒤 좁쌀처럼 쪄낸 밀가루를 곁들여 먹는 요리.


북아프리카식 쿠스쿠스 요리였다.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안으로 밀어넣는 레온.


“맛이 어떤가요?”


어느새 섀넌 무어가 다가와 있었다.


평소와 달리 은은한 갈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

별빛을 담은 듯 그녀의 얼굴이 청초하면서 부드럽게 반짝였다.


“응? 이거? 맛있는데? 너도 와서 먹어봐.”


“그거 내가 만든 요리야.”


“그래? 요리도 할 줄 알아? 싸움만 하는 줄 알았는데···.”


“흥, 그거 말고 더 할 말은 없어?”


레온을 마주한 그녀의 표정에 어딘가 모르게

기대와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응? 없는데?”


레온의 말에 금세 뽀로퉁해진듯한 그녀.


“됐어. 내가 너한테 뭘 기대하겠어. 그보다···.

좀 걸을까?”


레온의 대답을 듣기도 전 그녀는 앞서 나가고 있었다. 접시를 내려놓고 호다닥 따라붙는 레온 메이슨.


잔잔히 부는 사람이 실어 나르는 서로의 향을 느끼며 두 사람은 천막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들 몇 명이 장난감 칼을 가지고 드잡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인기척에 놀이를 멈춘 아이들이 섀넌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다.


아이들의 눈빛에 담긴 마음은 역시나.

두려움과 떨림이었다.


아이들의 속내를 일부러 모른척하며

부드럽게 다가간 섀넌이 무릎을 굽혀 내민 손에는

벌꿀로 만든 사탕 몇 알이 놓여있었다.


동그레진 눈으로 벌꿀사탕과 섀넌을 번갈아보던 아이 하나가 용기를 내 묻는다.


“먹어도 돼요?”


다정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섀넌.


얼른 사탕을 집어 달아나던 아이 중 하나가 멈춰 섰다. 그리고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섀넌 왕자님.”


굽혔던 무릎을 펴고 일어난 섀넌의 얼굴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어때? 부족민의 마음을 들여다본 소감이?”


“나쁘지는 않아, 근데 아직 중요한게 남았잖아.”


그날 오후에 있었던 천막 안 대담에서 모든 걸 털어놓았던 레온이었다.


자신들은 총독의 사절단이 아님을.

그저 총독부에서 발행한 마린 왕조 토벌 공문 한 장만 챙겨온 사설 함대의 일원일 뿐임을.


그의 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던 수하들을 말린 건

섀넌이었다.


갑작스레 자신들을 찾아온 자.

불과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부족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심경마저 변화시킨 자.


레온을 믿고 싶어서였다.

이제 기댈 수 있는 건 레온뿐이었기에···.


둘만의 산책을 이어가던 섀넌이 다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계획이 있어?”


“내가 여기에 무슨 계획을 세우고 왔겠냐? 와서보니 알겠더라. 무엇이 문제고, 뭐가 필요한지.”


“그럼? 여기 올 때처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총독과 협상하러 갈거야?”


“아니, 이번에는 방법이 있어.”


“어떤?”


나란히 걷던 레온이 섀넌의 앞에 마주 섰다.

두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레온.


“네가 필요해.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갈거야.”


내쉬는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두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눈을 살짝 내려 뜬 섀넌이 이내 몸을 빼내며 말을 이었다.


“제발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레온?”


“총독부의 의뢰 문서를 보면 마린의 왕자를 생포해오라는 말이 있어. 그러니 너도 함께 가야지. 너와 나, 그리고 세우타 총독이 모인 자리에서부터 협상은 시작되는 거야.”


“만일 잘 안되면? 난 그대로 체포되는거 아냐?”


“그렇게 두진 않을거야. 그 건 내가 못 봐.”


“······.”


잠시 말없이 레온을 바라보던 섀넌이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그냥 무턱대고 찾아가서 우리 요구 조건을 다 들어 달라고 말할거야?”


“우리?”


“아니! 우리 부족의 요구 조건!”


“아, 너희 부족. 사실 특별할거 없는 협상이야. 서로가 가진 패가 너무 확연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 그냥 처음부터 다 오픈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거지.”


“저쪽과 우리 쪽의 요구조건을 처음부터 다?”


“응. 너희 요구조건도 특별할 게 없어. 부족이 정착해 살 수 있는 비옥한 땅을 달라는 것, 그 구역에서 자치권을 인정해 달라는 거. 그거잖아?”


“그래, 맞아.”


“그 대신, 너희는 앞으로 어떠한 무력 분쟁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리고 땅을 제공받았으면 그에 합당한 세금도 내야 할테고. 그건 인정하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섀넌.


“좋아. 총독의 입장에서도 그건 나쁠 것 없는 제안이야. 세우타 치안대라고 도시 밖의 모든 구역을 감시할 수는 없거든. 특히 너희처럼 작은 규모로 움직이며 상단을 습격하는 세력은 큰 골칫거리야. 토벌하려고 시도해도 늘상 실패만 하고.”


“응, 그래서?”


“근데 그런 너희가 스스로 평화 협정을 하러 온다고 하면 총독도 몹시 반길거야. 인구 대부분이 도심지에만 몰리면서 주변에 놀고 있는 땅도 많고. 마린 왕조의 남은 세력이 편입되면 덩달아 세금 수입도 늘고, 세우타로 올라오는 상단이 습격받는 일이 없다면 육상 교역도 더 활성화될 테니깐.”


“네 말대로라면 서로 바라는바와 요구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니까 그냥 찾아가서 협상만 하면 된다는 소리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려.”


얼굴에 물음표가 띄운 섀넌에게 답하는 레온.


“그전에 보여줘야지. 만일 협상이 뒤틀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리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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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치안대를 박살내다(1) 22.06.28 16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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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3) 22.06.06 246 7 12쪽
24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2) 22.06.05 250 8 11쪽
23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1) 22.06.04 253 7 11쪽
» 마린의 왕자, 섀넌 무어(3) 22.06.02 254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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