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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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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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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벌레 (8)

DUMMY

25.


위잉- 위잉-


벌레 가득한 도시에서 모습을 드러낸 구식 안드로이드.


드미트리는 눈앞의 로봇이, 그의 작은형이 이끄는 안드로이드 부대가 아니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숙자마냥 거적데기를 걸친 데에다가, 한 손에는 지팡이, 또 다른 손에는 은색 오르골을 든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한편 안드로이드는 천천히 드미트리의 앞으로 걸어와, 무미건조한 기계음으로 말했다.


- 무사하구나. 이옐럽 주 드니르. 내가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제... 제 이름은 이옐럽... 이 아니라 드미트리입니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닌지...”


철컥-


드미트리의 질문에 안드로이드가 들고 있던 은색 오르골을 열었다. 오르골의 정체는 이원의 우주선에 두 개나 있는 아티팩트, [드림 캐처]였다. 다만 바닥에 적힌 글자는 이원의 것과 달리 ‘편안함’과 ‘외로움’이 아니라 ‘우월감’이었다.


‘뭐... 뭐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음악을 연주하는 [드림 캐처]. 드미트리의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점점 고양돼 가는 가운데, 안드로이드가 말을 이었다.


- 드미트리 아시모프는 과거의 너에 대한 이름일 뿐이다. 그 이름 속에 현재의 너는 어디 있는가? 출하된 돼지나 소에 찍어 놓는 도장처럼, 그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만 붙여진 이름일 뿐. 장차 위대하게 될 자에겐 새 이름이 필요한 법이다.


“... 제가 위대하게 된단 말씀이십니까?”


- 그렇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내 ‘예언’에 따르면 너는 장차 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이 혼란스런 우주를 통일하고 황제가 될 자다. 그런 너에게 적합한 이름이 바로 새벽에 눈뜨는 자, 이옐럽 주 드니르이니라.


“... 제가 우주를 통일하고 황제가 된다고요? 아무것도 없는 제가 말입니까?”


- 그렇다. 그 사이사이 수많은 ‘예언’이 있지만, 그 ‘예언’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기엔 지금 네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구나.


말을 듣자마자 휘청이는 드미트리. 실제로 벌레들에게 도망치느라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그는, 정신조작 아티팩트 [드림 캐처]의 영향까지 더해져 의식이 점점 몽롱해져 가고 있었다. 몸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드미트리는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 누구십니까...?”


- 나는 너처럼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길을 닦아주는 존재. 이른바 [수도자]이니.


“수도... 자... 님... 저는...”


- 지금은 일단 쉬거라. 인간의 육체는 연약하고... 이야기할 시간은 많으니까.


털썩-


순간 쓰러지는 드미트리. 벌레와 반란으로 폐허가 된 행성에서, [수도자]는 ‘이옐럽 주 드니르’를 업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한편 그 시각.


“유희성대의 매출 회복을 위하여, 모두 건배합시다!”


“위하여!”


전왕의 우주선엔 우주단위 환락가 유희성대에서 입김 좀 분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막투... 머시기? 아무튼 그 마약중독자 집에서 여태껏 유희성대에서 돌았던 것의 배는 되는 ‘버그’가 발견됐다며?”


“그래. 이제 남은 ‘버그’는 전부 다 태워버렸으니, 이제는 사라졌던 매출이 돌아오는 일들만 남았다고!”


파티장 이곳저곳에서 상연연합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가운데, 정작 이 파티를 주최한 전왕은 왠지 모르게 심기 불편한 얼굴로 이원과 마주하고 있었다.


“일을 맡긴 지 하루도 안 돼서 잡아오다니... 그냥 막돼먹은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처리 능력은 괜찮은 녀석이었군.”


“아하하.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그렇다고 의뢰비를 깎아드릴 순 없습니다. 하하.”


“...”


전왕이 눈에 힘을 주고 노려봤지만, 신경도 안 쓰는 이원. 전왕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건방진 놈. 주제도 모르고 내 딸을 달라 할 때부터 느꼈지만,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입 싹 닫고 내쫓아버리고 싶지만, 집까지 초대한 이상 체면때문에라도 그럴 수 없는 노릇. 전왕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그래. 일단 우리 유희성대에서 ‘버그’를 퇴출시킨 은인이긴 하니까, 이전에 말했던 대로 원하는 걸 얘기해 보게. 또 마가렛을 달라는 허무맹랑한 소리 같은 것 아니면 최대한 들어줄 테니.”


“하하. 그렇다면 사양 않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곳 유희성대의 ‘기록’을 원합니다.”


“... 기록?”


“예. 돈 빌린 채무 내역, 약이나 술 사간 거래 내역, 얼마나 질펀하게 놀았는지 녹화한 영상 기록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전왕도 눈치가 빠른 사람인만큼, 이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적당히 누군가의 약점이 될 만한 걸 넘겨달라는 의미였다.


‘그럼 그렇지. 약점 잡고 협박하면서 돈이나 뜯어내겠다? 3류 용병이나 할 법한 짓이군. 능력이 아깝다, 능력이 아까워. 이 놈아.’


가소롭다는 듯 웃은 전왕. 그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어렵지 않지. 누구에 대한 기록을 원하는가?”


“아. 혹시 이 사람이 유희성대에 들른 적 있습니까?”


그리 말하고서는 홀로그램으로 사진을 하나 띄우는 이원. 그 순간, ‘그래, 대체 누구를 협박하려는 건지 한 번 들어나 보자.’하던 표정으로 지켜보던 전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영웅?”


이원이 띄운 사진은 우주 최대의 국가형 기업 도미니티카의, 후계 경쟁에서 명실공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영웅이었기 때문. 협박한다고 해서 협박이 되는 남자가 아니었다.


“아. 혹시 있습니까?”


“어... 없네! 설령 있다 해도 못 주고!”


“좋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이 사람은요?”


허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원이 띄우는 사진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전왕의 얼굴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을 뿐더러.


“없네...”


“없고요...”


“어... 없습니다...”


그의 말도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원이 비춰주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협박하려 한다 해서 협박이 될 리가 없는, 우주단위 거물들이었기 때문.


‘워프게이트 사업의 이정현, 마법병단 대장 이영화, 이영원, 이설화... 전부 도미니티카의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잖아... 설마...’


‘이제야 눈치를 챈 건가. 이래서 사채업 하는 놈들은 돈 보는 눈밖에 없어서 문제야.’


한편 전왕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이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말 원했던 사람’의 프로필을 띄웠다.


[ 이성길 ( 31세 ) ]

[ 도미니티카와 우주정거장 AC-04, 05, 06, 07 과의 교역을 담당 ]


“이 인간 기록은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인간은 왠지 여기 온 적 있을 것 같은데.”


“...”


이성길의 사진이 떠오른 순간, 그래도 없다고는 확실히 이야기하던 전왕의 입이 멈췄다.


‘그럼 그렇지. 이 녀석이 여기 안 왔을 리가 없지.’


이성길은 이원의 평가와 다른 형제들의 평가가 확연히 다른 케이스였다. 다른 형제들은 도미니티카 교역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이성길을 후계 경쟁의 No.3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원의 기준에서 그는 고작 No.6. 자기보다 한 단계 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이성길 씨. 왕이 될 자라면, 괜히 꼬리 잡힐 일들은 하고 다니면 안 되지.’


문란한 사생활 때문.


물론 도미니티카 현 회장도 부인을 11명이나 둔만큼 여자관계는 크게 문제가 안 됐지만, 마약이나 약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했다.


‘스스로의 능력’을 평가하는 도미니티카 후계 경쟁에서, 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은 상당한 마이너스 점수가 되기 때문. 언제라도 약에 휘둘려 제 발로 내려올 여지가 있는 사람은 지금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회장 자리에 올라가기 힘들었다.


한편 아직까지도 말을 못 하는 전왕에게, 이원이 대답을 재촉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온 적 있군요?”


“이... 있긴 하지만... 이 남자 정보는... 유희성대 전체가 걸린 일이라...”


“정보를 지금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마음이 내키실 때 주십시오. 정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면 안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의외로 쉽게 물러나는 이원. 전왕이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이원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왕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아는 자는 무조건 죽는다는 거.”


“... 예? 그게 무슨...”


“이성길이 더 왕에 가까워지고, 이제 그만 놀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다음번에 유희성대에 방문할 때 자기 우주선을 타고 올지, 아니면 함대를 이끌고 올 지 생각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


상당히 그럴듯한 소리였다. 유희성대의 4개의 축이라 불리는 전왕 본인도, 훗날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은 다 죽이면서 그 자리에 올라왔으니까.


‘문제는 이성길을 버리고 이 남자랑 손을 잡는 게 맞냐는 건데-’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허나 이게 썩은 동아줄인지 튼튼한 동아줄인지 너무 고민했다가는... 호랑이가 나무를 다 베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보여지기라도 한 듯, 속내를 읽히고 크게 움찔하는 전왕.


“귀... 귀공은 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저 말입니까? 흠...”


전왕의 질문에 이원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해적이었고, 지금은 용병회사 대표이사고, 미래에는 도미니티카를 넘어 이 우주의 첫 황제가 될 사람.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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