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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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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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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회(2).

DUMMY

75. 기회(2).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풀썸 활동이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종료되어서 한가한 편입니다. 바쁜 건 대표님과 타이푼이죠.”


풀썸과 타이푼의 합동 공연이 있었던 날부터 3일 뒤, 거북이 엔터 김재신 대표와 타이푼이 찾아왔다.


“활동을 일찍 마무리하신다고요?”


힐끔 나를 쳐다본 안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옆에 있는 김 팀장이 애들 무리하는 것 못 보겠다고 해서요.”


아니, 대표님? 대표님도 동의하신 거 아닙니까?


데뷔 전 계획은 원래 3주였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인기와 팬들의 뜨거운 사랑에 일주일 늘려 한 달로 수정했다.


따지고 보면 원래 계획대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이런 결정은 이번에도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합동 무대를 준비하는 풀썸을 보는데 문득 체력의 한계선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풀썸 멤버들과 안 대표에게 전달했다.


찬성했던 안 대표와 달리 팬들과의 약속이라며 반대했던 풀썸.

그런 멤버들에게 그녀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팬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나서야 풀썸도 동의했다.


“김 팀장 말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도 좋지만, 계속 물 들어온다고 노를 저으면 돈은 버는지 몰라도 노가 부러지고, 배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이번 물에서는 충분히 갈 곳까지 갔으니 쉴 때가 되었답니다.”


내가 한 말을 다른 사람 입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으니 상당히 부끄러웠다.


“확실히.. AG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군요.. 타이푼에게 제대로 된 물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풀썸과 합동 무대를 꾸몄던 아티스트 중, 가장 큰 수혜자는 타이푼이었다.


타이푼의 노래들이 역주행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동안 타이푼과 인연이 없었던 예능 섭외도 쏟아지고 있었다.


“갚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잊지는 않으셔야 합니다.”


안 대표의 답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은혜를 언급하면 보통 어떤 조건을 제시하거나, 뭘 은혜 운운하냐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안 대표의 말에는 대표적인 이 두 가지 대신,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거북이 엔터의 김재신이 AG 엔터의 안하리 대표에게 무엇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확률적으로 말하자면 제로에 가깝게 없다.


내가 AG 엔터 직원이라는 것과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빼고, ‘지금’의 객관적인 사실만 따졌을 때, 자금도 거북이보다 AG가 훨씬 넉넉하다. 소속 아티스트도 풀썸 뿐이지만, 풀썸이 지니는 가치는 거북이 엔터 소속 모두를 합친 것보다 크다.


김재신 대표의 아버지이자 전 거북이 엔터 대표의 인맥은 쓸모없고, 너무 정도만 걸으려고 했던 김재신 대표의 인맥도 한계가 있다.


김재신 대표가 은혜를 갚은 거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확률이 더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란 참 재밌는 존재다.


매일 하나씩 과자를 주다가 어느 날 두 개를 주면, 다음날 하나를 줬을 때 만족하지 않는다.


은혜를 입기 전에는 발등에 입을 맞출 것처럼 행동하고, 은혜를 입고 나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고마워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자기가 처신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입었던 사실을 잊어간다.


오죽하면 ‘은혜 갚은 까치’라는 동화가 있고, ‘물어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라는 속담이 있겠는가.


물론, 내 생각일 뿐이고,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119에 신고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일을 한 사람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고, 의인이라 칭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김재신 대표가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기대하는 것보다 그가 은혜를 잊을지언정 AG 엔터 하면 긴장부터 하게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 대표의 말은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그럼요!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함께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재신 대표도 안 대표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김 팀장. 혹시 김 대표님께 하고 싶은 말 없어?”


혹시 상태창 같은 것이 보이십니까?


“대표님끼리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입니다.”


“아닙니다! 직함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럼.. 혹시 대표님. 타이푼이 더 높게 올라가기 바랍니까? 아니면, 거북이가 성장하기를 바랍니까?”


거북이 엔터와 엮이고, 타이푼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거북이 엔터는 정도를 걷고 있거나, 자금력부터 소속 아티스트까지 내부가 탄탄하지 못하고.


타이푼은 멤버들도 열심히 하고, 팀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지만, 6년 차를 보내고 있다.


선택의 시기.


거북이 엔터도, 타이푼도 선택의 시기가 온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AG 엔터로 오면서 각오했습니다.”


“지금은 타이푼 하나만 생각하면서 몇 년 뒤를 본다면 다른 분들은 그분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타이푼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이 말은 타이푼 앞으로 들어가는 자금과 인력도 늘어난다는 말이었다.


자금력이 넉넉하지 않은 거북이 엔터가 타이푼에 집중하면서 소속 아티스트들까지 케어할 능력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대로 지금 있는 아티스트들을 성장시키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팀 타이푼의 노를 꺾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타이푼은 6년 차 아이돌이었다.


이번에 얻은 인기와 인지도를 기반으로 성장하려 해도, 연습 때 보여주던 멤버들의 몸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단지, 멤버들의 열정에 가려져 있었을 뿐.


“후.. 쉽지 않은 선택이군요..”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쉽지 않은 선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 팀장. 둘 다 잡을 방법이 있는 거 아니까 말해.”


안 대표의 말처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뭔가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역주행이다 뭐다 하면서 인지도 확 올랐다고 바로 앨범 준비를 하면 안 됩니다.”


기대치가 최고인 대중들을 어지간한 앨범으로는 만족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거북이 엔터도 어지간한 앨범으로는 불안감을 느낄 것이고, 풀썸의 연습을 경험한 타이푼 멤버들은 더 몸을 혹사할 것이다.


“지금 예능 섭외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은 것 몇 개 정해서 출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노래하고 춤추는 예능이 아닌, 토크나 간단한 연기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예능이면 좋겠네요.”


“개인 활동..”


“네. 6년 차에 아이돌이 1년 차 아이돌처럼 활동하는 것은 힘들어도, 6년 차 아이돌이기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죠.”


“그럼.. 팀은..”


“풀썸과 기존 아이돌의 방식을 섞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은 뒤 데뷔했던 풀썸과 그룹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은 뒤 개인 활동하는 대다수 아이돌의 방식을 섞으라는 말이었다.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면서 타이푼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멤버들의 체력과 건강, 그리고 꾸준한 연예계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성장시키라는 거군요.”


“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확신이 없죠.”


시간, 자금, 노력만 투자하면 모두가 성공하는 연예계가 아니었다.


“그럼..”


“곧 쏟아져 나올 겁니다.”


스타스 엔터를 비롯한 서명에 동참했던 기획사들은 지금 소속 아티스트들로부터 줄줄이 소송에 걸렸다.


그리고 AG 엔터가 풀썸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려지면서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이 새 둥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거북이는..”


“네. 인지도 있는 아티스트를 영입할 자금이 없죠.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제안이요..?”


아니, 진짜 대표님.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뭔가요?

상태창이라도 있어요?

아니면 독심술?


“AG 엔터에서 거북이 엔터에 투자하겠습니다.”


“투, 투자요?!”


“AG 엔터는 당분간 풀썸에 집중할 겁니다. 하지만.. 인성이며, 재능이며.. 아까운 몇몇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 사람들을 영입하면 거북이 엔터 자체의 인지도는 물론, 자금도 원만하게 흐를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 투자라고 해서 AG가 지분을 가진다거나 거북이 엔터의 운영에 간섭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건이..”


“네.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안 대표가 돈이 많아도 AG 엔터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자 없이 투자금 일부를 6개월에 한 번씩 회수하겠습니다. 금액은 거북이의 상황에 따라 알아서 지급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진짜 조건인데.. 풀썸이 거북이 엔터의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 풀썸을 1순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활동을 하는 이슬이에게 도움이 될 누군가일 수도 있고, 다시 오튜브 영상을 올리게 될 다연이에게 도움이 될 누군가일 수 있다.


그리고 데뷔 전 개인 활동을 했던 이슬이나 다연이와 달리 이제부터 개인 활동을 시작할 쌍둥이와 미사에게 도움이 될 누군가가 있을 수 있었다.


“그건 당연히..!”


“아니요. 당연하지 않아요.”


김재신의 말을 끊었던 안 대표가 말을 이었다.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은혜를 잊는 순간 당연한 것이 아닌 귀찮은 일이 되는 겁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던 김재신 대표가 돌아가고 안 대표가 피식 웃었다.


“난 족쇄까지 채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김 대표가 지금과 같은 마음을 유지한다면 족쇄가 아니라 날개일 겁니다.”


거북이 엔터에 대한 AG 엔터의 투자.


비록 남의 돈이지만 곳간이 넉넉해진 김재신 대표가 개인의 욕심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처럼 아티스트들을 생각하고 회사를 생각한다면 날개를 달고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날아다니겠지만, 그 반대라면 ‘돈’이라는 완벽한 족쇄를 스스로 착용하게 될 것이다.


“거북이에 대해서는 김 팀장이 알아서 해. 혹시라도 회사 자금으로 안 되면 말하고.”


“네.”


“내일 미사 녹화지?”


“네. 저와 이나가 같이 갈 겁니다.”


“소녀소녀 일만 알려졌으면 편해졌겠지만, 타이푼 일까지 있으니 분명 은근히 들러붙는 것들이 있을 거야.”


아름아름 소녀소녀가 풀썸을 이용하려다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졌음에도 분명히 또 다른 소녀소녀가 되기 위해 발악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녹화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소녀소녀 때와 조금 달랐다.


소녀소녀의 일은 스타스 엔터와 소녀소녀 멤버의 의견이 맞아서 벌어진 일이라면, 미사 출연하는 예능 출연진은 선생님 역할의 두 명을 제외하고 전부 외국인이었다.


즉, 진짜 소녀소녀 멤버 같은 것들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지 파악하는 것.


출연진들을 따라온 직원을 견제하면서 이용당하고 있는 외국인 아이돌을 파악하는 것이 내일 나의 임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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