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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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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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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차라리 김무명이 나았다.

DUMMY

4. 차라리 김무명이 나았다.


“대표까지 참여하는 회의라 그런지 꽤 오래 걸렸군요.”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원들이 AG 엔터 장점 중 하나로 뽑은 것이 짧은 회의 시간이었던 것만큼 AG 엔터의 모든 회의는 굵고 짧게 끝난다.


조금 전 회의도 유정이의 의견을 중심으로 곡과 곡이 나와야 진행할 수 있는 안무와 의상 같은 것을 제외하고 각 파트별로 깔끔하게 분배와 정리가 끝났다.


회의 시간은 47분.


미리 약속도 잡지 않고 찾아온 소녀소녀의 소속사인 스타스 엔터 대표 최무진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다.


“AG의 모든 회의는 한 시간을 넘기지 않습니다.”


최무진의 맞은편이 아닌 원래 본인의 자리에 앉은 안 대표가 태클 걸어온 최무진 대표의 발을 지르밟아버렸다.


최무진 대표의 말속에는 ‘중요한 회의가 있었나 봅니다?’나, ‘꽤 오래 기다렸으니 그 점 고려해 달라.’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 아니라,


‘감히 나를 기다리게 해?’ 같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최무진의 도발을 안 대표는 ‘대표가 참석하는 회의도 한 시간 안에 끝내니까 너와도 한 시간이 한계이니 할 말이나 빨리하고 가라.’라는 뜻을 담아 첫마디로 던졌다.


“이거이거.. AG 엔터 대표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는데.. 궁금해했던 사람은 나뿐인가 보군요.”


보이콧 바다를 향해 배를 출항시키기 직전 닻을 내린 거북이 엔터를 제외하고 스타스 엔터를 포함해 함께 바다로 향했던 기획사들은 빠르게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중, 가장 피해가 많은 곳이 바로 소속 아티스트들의 출연 정지와 계약 해지, 소송, 투자자의 압박과 눈치, 스타스 엔터 덕분에 보이콧에 서명했던 기획사의 항의에 몸살을 앓고 있는 스타스 엔터였다.


궁금은 했을 것이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자신이 AG 엔터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 우리가 스타스 엔터로 찾아갔어야 했으며, 방송 출연에 힘들어하는 아이돌은 소녀소녀가 아닌 풀썸이어야 했으니까.


“제가 왜 대표님을 궁금해해야 하죠?”


사실, 안 대표도 최무진을 궁금해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얼마만큼 밟아 줘야 하지?’라는 의미의 궁금함이었지만.


“지금 뭐라고..”


“제가 대표님을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보이콧? 요즘 시대에 그런 식으로 보이콧 하는데,. 있던 궁금증마저 사라지던데요?”


안 대표는 다리를 꼬며 차고 있지도 않은 손목 위의 시계를 두드렸다.


“허.. 그렇게 나온다면.. 뭐.. 나도 예의는 차릴 필요 없겠지.”


차린.. 예의가 있었던가.. 흠..


“뭐가 그렇게 안 대표를 건방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연예계를 너무 쉽게 보면 안 돼. 안 대표의 지금과 같은 태도와 거북이와의 유착이면 AG도 얼마 못 가겠군.”


뭔 말이야?


최무진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나와 달리 안 대표의 입가에는 가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 그러니까 최 대표님.. 요즘은 그런 식으로 공수표를 날리면 안 된다니까요?”


오! 최무진 표정 확 바뀌었는데?


음? 우리 안 대표 표정도 바뀌..었는데.. 좀.. 무섭게?


“이봐요. 스타스 엔터 최무진 대표님. 궁지에 물린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고 다 살아서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살기 위해 고양이를 콱! 하고 물어버린 쥐의 최후는 어떨까요?”


자.. 생각을 해보자.


궁지에 몰린 쥐는 최무진 대표다.

그리고 고양이는 안 대표 또는, AG 엔터.


진짜 쥐처럼 이빨로 물 수 없으니까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 무언가는 최무진이 언급했던 거북이 엔터와의 유착일 가능성이 컸다.


그걸 안 대표는 개소리하지 말라고 한 거고..


“김 팀장. 생각하지 마. 답 알려 줄게.”


감사!


안 대표의 시원한 설명이 이어졌다.


안 대표가 상황 판단 능력이 좋고, 말 속에 숨겨진 가시를 찾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내가 최무진 대표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이유에는 안 대표나 최무진 대표가 생각하는 ‘유착’이란 단어와 내가 생각했던 ‘유착’의 의미가 달랐다는 것이 컸다.


만약 AG와 거북이가 협력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다면 나도 두 대표와 같은 의미를 먼저 생각했을 테지만, 거북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보니 ‘유착’을 사전적 의미로만 생각해버렸다.


어떤 이유로 AG와 거북이 엔터가 만났고, 돈이 포함된 거래가 있었다.

그 거래의 결과가 풀썸과 타이푼의 합동 무대이며, 또 어떤 이유로 거북이 엔터의 출연 정지 처분이 풀렸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안 대표의 건방진 태도다.


신생 기획사의 젊은 대표가 건방진 태도로 한 기획사와 한 아이돌의 미래를 두고 거래했다.


지금은 풀썸의 인기로 콧대 높을 줄 모르나, 이런 것이 알려지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듯 기레기들은 불나방이 죽는 모습을 보고도 그 또한 불나방이기에 불 속으로 날아들 것이다.


진실이든, 거짓이듯 상관없다.


수군거림은 따라다닐 것이고,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AG 엔터의 이름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그러니까 물리기 전에 한발 뒤로 물러나라.


“음..물린다고 아플 것 같진 않지만.. 물리는 건 짜증 나니까 친절하게 문다고 예고까지 해 주신 궁지에 몰린 쥐의 이빨을 하나씩 뽑아야겠는데요?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찾아와 저런 태도를 보이나 싶었는데.. 양아치들도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협박 안 합니다. 최 대표님. 어디 90년대 양아치들 방식을 들고 와서 어깨에 힘을 주십니까?”


“허? 그래? AG의 뜻은 잘 알았어. 그럼 나도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최무진 대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대표님.”


최무진 대표를 따라 일어난 안 대표가 그를 불렀다.


“머릿속에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입꼬리는 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건방이라..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최 대표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 뒷일을 꾸미든, 작업하든 정보가 필요하겠죠?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겁니다. 첫째.”


안 대표의 입에서 ‘정보’라는 단어보다 ‘사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 그래서? 거북이처럼 꼬지 말고 배를 까 뒤집어 보이면 살려는 주겠다?”


안 대표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거북이는 처음이라 AG가 작은 도움을 줬을 뿐입니다. 하찮은 종이에 서명한 회사들.. 살아남든, 사라지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딴 식으로 운영되는 회사에.. 그딴 식으로 운영하는 오너.. 당장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이 년이!”


“금방 제가 했던 말도 퍼뜨리세요. 뒤에서 까 든, 기사가 나든 상관없습니다.”


“쯧쯧.. 뭘 믿고 까부는지.. 곧 후회하게 될 거야.”


문을 향해 돌아선 최무진 대표를 향해 안 대표가 웃었다.


“뭘 믿냐고? 난 나를 믿어. 내 사람들을 믿고, 내가 가진 것들을 믿어.”


“괘 감성적이군. 곧 다시 보자고.”


“그러죠. 뭐든 기대할게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무진 대표는 안 대표의 마지막 말을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


다음 날, 스타스 엔터 대표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스타스 엔터가.. 돈으로 기자를 사서 AG 엔터를 공격한다는 기사가 포털에 걸리고 있습니다..”


“똑바로 본 거 맞아? AG가 아닌 우리?”


“네..”


“씨X!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최무진 대표는 휴대폰 꺼내 가장 먼저 정보를 넘겼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기자! 어떻게 된 거야?!”


- 하.. 씨X..


“..뭐?!”


-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돈 오백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대표님도 AG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으니까 그냥 바짝 엎드려 비세요..


“뭔 개소리야! 똑바로 말 안 해?!”


- 하.. 어차피 시골로 내려가는 거.. 그간의 정이 있으니.. 주신 정보를 다른 기자들에게 넘겼습니다. 마지막 기자까지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조용히 만나고 싶어 하는 제보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만났죠.


정상적인 기자라면 은밀하게 만나고자 하는 제보자를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레기들은 은밀할수록 특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고, 김무진 대표와 통화하는 김 기자 또한 기레기들 중 한 명이었다.


- 네.. 제보를 받았습니다.. 확실한 증거와 함께요. 대표님과 제가 만나는 사진, 대표님에게 제가 돈을 받는 사진, 제가 기자들을 만나고 돈을 건네는 사진, 그리고 대표님이 직접 써 주신 기사의 내용까지.. 전부 다요.


“잠깐! 무슨 사진? 너와 내가 만나는 사진?”


- 무슨 일을 꾸미기 전에 주변부터 좀 확실히 하셔야겠습니다.. 뭐.. 같이 당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제보자 그러더군요. 다른 기자들도 다 자기 같은 사람 만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저와는 다른 제안을 하고 있을 거라고..


“제안이라..”


- 선금 백에 기사 올라가면 이 백, 포털 메인에 걸리면 삼 백. 대표님의 조건이었죠? 스타스 엔터와 대표님의 비리를 기사로 쓰는 조건으로 그쪽이 내 건 조건이.. 하.. 문화 상품권 한 장이었습니다..


“씨X! 말이야 방귀야!”


최무진 대표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금을 빼고도 기사 하나만 잘 써서 포털 메인에 걸리면 오 백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정의감의 불타는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아니, 정의감이 철철 넘치는 기자라도, 대상이 같은 엔터이고, 내용도 비슷한 고발성 기사라면 문화 상품권 한 장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오 백이라는 돈을 선택했어야 했다.


- 아무리 돈에 환장한 기레기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겁니다...


“무섭다니?”


김 기자의 입에서 답이 나왔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아 최무진 대표가 되물었다.


- 따라다니고.. 감시하고.. 사진 찍고.. 도가 튼 이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앞에 나타나기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그것들은 문화 상품권 한 장이라도 받았지.. 기자 명찰 반납하고 한 20년 휴가라고 생각하고 쉬면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 있고···. 어떤 스타일의 야동을 주로 보는지 정도는 잊어 준답니다..


반쯤 넋이 나간 최무진 대표는 통화를 종료하고 바로 AG 엔터 번호를 눌렀다.


- 조만간 보자 더니, 이번에도 최 대표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너.. 뭐야..?”


- 제 선물이 마음이 드십니까? 이런 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 준비해 봤는데.. 하루 만에 준비한 거라 부족함이 많습니다.


“사찰이라니! 범죄야!”


- 아이고.. 제가 뭘 했다고 사찰이니 범죄니 하시는 겁니까? 저는 거래 사진을 찍은 직원에게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제안했을 뿐이고.. 도리에 어긋나는 짓에 눈 감을 수 없어서 제보했을 뿐입니다. 왜요? 문화 상품권 한 장도 대표님에게 큰돈입니까? 아! 설마.. 숟가락 개수나 야동 따위의 말을 그대로 믿으셨던 건 아니죠? 도둑이 제 발 저렸나 봅니다?


최무진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은 그의 귀에서 멀어져가는 만큼 너머로 들리는 안하리의 웃음소리도 점점 작아져 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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