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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최근연재일 :
2022.11.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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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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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어쩌면 S극이 더 S극을 원할지도 모른다.

DUMMY

106. 어쩌면 S극이 더 S극을 원할지도 모른다.


정지영 작가가 단 한 장면만 보고 창조해낸 인물, 동팔.


정확히 말하면 동팔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5화에 등장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창작물 속 인물은 사라질 예정이었으나, 그 장면 하나가 사라질 인물에게 ‘동팔’이란 이름을 부여했고, 대사는 없을지라도 ‘스토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남주연 중 한 명의 채무를 받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친구인 여주연 중 한 명을 알게 된 동팔은 그녀에게 그릇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협박이나 사기, 성적인 폭력성이 아닌, 스토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따라갔는지 모를 동팔은 어둠 속에서 그녀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 돌아섰다.


“더 무섭네요.”


“그렇지?”


가로등 뒤에 숨은 동팔의 눈동자와 실루엣이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에 잠깐 드러나는 장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폭이나 불법 사채 업자의 모습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다.


“보이는 공포도 무섭지만, 보이는 순간 ‘대처’라는 선택지가 생겨.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포는 ‘대처’라는 선택지를 생각도 못 해. 두 가지의 끝이 똑같고, 그 끝이 죽임을 당하는 거라면, 둘 중 고통스러운 것은 전자가 될 거야.”


“알고 있던 공포요?”


“응. 대처는 대항이 되고, 대항하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테니까.”


“아.. 그럼 후자는요?”


“보이지 않는 공포의 끝이 죽음이라면, 어쩌면 죽는 과정에서 고통을 덜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영혼은 원망으로 물들 거야.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자신이어야 했는지조차 몰랐고, ‘대처’한 번 못했으니까.”


“뭔가.. 심오하네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속에서 동팔이 그릇된 사랑이든, 집착이든, 본성이 드러나든, 스토커 하는 여주의 목숨을 위협하는 장면은 없다.


목숨은커녕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여주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여주의 동선 중 가장 어두운 곳에서 여주를 지켜보기만 할 뿐.


그래서 더 두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만약 김 팀장이 민수 데려가면 역시 악역 전문으로 키울 거야?”


“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는 아니니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들은 이미지가 한쪽으로 굳어지는 것을 꺼렸다.


가장 쉬운 예로, 이슬이를 딸처럼 생각하고 연기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던 최태후 배우가 있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사극’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온갖 사극과 관련된 수식어가 붙기 전 그의 인터뷰 속에는,


[ 사극을 통해 연기를 이어갈 수 있고, 사랑받는 것은 영광이고 기쁨이지만, 사극 이외의 영역으로 도전할 기회가 줄어들어 아쉽다. ]


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배우보다 ‘확실성’이 보장된 배우들을 선호하게 됐다.


신인과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주가 되는 퓨전 사극을 이끌어갈 사극 연기에 능통한 배우.


알콩달콩, 사랄라, 아기자기, 사랑스러움을 한방에 깨버릴 수 있는 소름 돋는 악역.


심각한 표정,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대사만 가득한 세상의 깨알 같은 웃음을 줄 수 있는 감초.


심지어 이런 조연들을 먼저 확정하고 조연에게 맞는 주연을 찾는 제작사도 있다.


“민수는 악역 전문이 싫어서 거절하는 거야?”


“그걸.. 모르겠습니다. 풀썸 세 번째 타이틀이 나가면 활동 끝날 때까지 풀썸에 집중해야 해서 오늘 진지하게 대화를 좀 나눠 보려고요.”


세 번째 타이틀곡이 나가면 풀썸은 편곡 버전이 포함된 5곡의 무대에, 네 번째 타이틀곡의 점검까지 들어간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풀썸 멤버들의 연습실 불을 당당히 꺼버릴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AG가 데려가. 다른 곳도 나쁘다는 건 아닌데.. 든든한 기둥이 없어.”


계약하려는 기획사의 기둥이 있고, 없고는 아티스트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기둥이 없다는 것은 회사의 기획력이 떨어진다거나, 자금이 부족하다거나 등등을 이유가 70% 이상이었고,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떨어지는 기획력으로 아티스트들을 뺑뺑이 돌리는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80% 이상이었다.


반면, 기둥이 있다는 것은 일단, 기둥이 무너지지 않는 한 자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자금의 여유는 운영의 여유로 이어진다.


‘오디션에 꼭 합격해야 해!’와 ‘이번 오디션은 경험이라고 생각해’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풀썸으로 잘나가는 AG 엔터의 제안도 거절한 민수였다.


그런 민수가 어떤 이유로 든든한 기둥이 없는 기획사에 들어가 ‘넌 우리 회사의 기둥이야’, ‘오디션 꼭 합격해야 해’, ‘너의 능력을 보여줘’ 따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배우라는 삶만 망가지는 것이 아닌, ‘민수’라는 존재의 인생이 망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AG도 민수의 배역을 위해 뭐든 할 텐데요?”


“AG와 김 팀장의 결정이라면 민수에게 꼭 필요한 배역이겠지. 그리고 ‘뭐든’의 범위도 민수의 한계 안 일 테고.”


“정 작가님도 AG와 계약하시죠? AG를 이렇게 잘 알고 있으신데.”


“안돼. 김 PD 울어.”


“하하하하”


잠시 뒤, 의상팀에게 의상을 반납하고 나오는 민수를 만났다.


“시간은 늦었지만, 잠시 괜찮겠어요?”


“네.”


세트장에서 멀지 않은 카페.


“음.. 민수 씨의 거절을 듣기 전에 솔직한 제 뜻을 먼저 밝힐까 합니다. 결론이 거절이라도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거든요.”


‘생각해 봤어요?’

‘네.’

‘AG로 올래요?’

‘죄송합니다.’

‘그래요. 응원할게요.’


이런 대화로 민수와의 인연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네.”


“일단, 만약 민수 씨가 AG 엔터와 계약한다면 AG는 민수 씨를 악역계의 최태후 배우님으로 만들 겁니다.”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예상했던 말이었는지 민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연기 트레이닝은 물론, 민수 씨가 원하는 분야의 트레이닝 선생님을 지원할 겁니다.”


나에게 고정된 민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산 전까지 생활비가 필요하면 AG 엔터에서 지급합니다. 이 부분은 민수 씨만의 혜택이 아니라 풀썸 멤버 중 한 명도 정산 전까지 지원받았습니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소 기획사나 대형 기획사 반열에 오른 곳이나 똑같네요.”


지금 민수의 표정은 내가 박채아 사건으로 무죄를 받기 전 표정과 같았다.


“김 팀장님께서는 얼마나 솔직히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솔직함’의 가면을 쓰고 있으니 저도 거절했던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게요. 저는 배우가 싫어요. 이번 드라마에서 잠깐 연기했던 이유는 단역의 출연료가 스텝 알바비보다 높았기 때문이에요. 연기가 싫지만.. 돈은 필요하거든요.”


민수에게는 이미 배우와 소속사의 경험이 있었다.


16살 민수는 친구와 함께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된다.


친구와 달리 짧게 맛본 연기에 매력을 느낀 민수는 청소년 역할의 단역 생활을 하던 중, 한 기획사와 정식 계약하고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는다.


“최태후 배우님이 제 목표이자 라이벌이 되겠군요.”


재밌게도 민수의 입에서 김건우의 이름이 나왔다.


지금은 감옥에 가 있는 김건우는 민수가 16살이던 시절에는 조연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회사와 매니저는 늘 민수에게 ‘김건우처럼’을 강요하고 비교했었다.


“선생님 지원요? 지원이란 이름의 빚이 아니고요?”


회사는 민수의 부족한 연기력을 위해 연기 수업을 받게 했고, 트레이너 고용 비용은 모두 민수의 이름으로 올라갔다.


“AG 엔터는 그런 걸 싫어한다고 들었고, 행동으로도 보여줬으니 생활비 지원이란 명목으로 제 동생을 이용하지 않겠지만, 그 또한 제가 갚아야 하는 빚이 되겠죠. ”


민수와 한 살 차이나는 동생 민영은 그녀 때문에 하교 시간이면 경찰이 학교 주변을 순찰할 정도로 미인이었다.


회사는 민수에 이어 민영도 욕심냈다.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민영을 캐스팅해 배우나 아이돌로 키웠다면 지금의 민수가 아닌 다른 민수가 되어있었을지도 몰랐다.


캐스팅이 아닌 회사 대표의 개인 술자리에 불렀다는 것.


민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회사는 18살의 민수가 감당하기 힘든 빚을 청구했다.


“어른에게 말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시네요?”


“민수 씨 눈에는 어른이 다 똑같아 보였을 테니까요.”


“맞아요. 다 같은 개새끼로 보였죠. 처음으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을 원망했어요.”


학교를 자퇴한 민수는 2년간 미친 듯이 일만 했다.


“2년간 모은 돈을 들고 회사로 찾아가 대표 얼굴에 뿌렸어요. 동생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요. 전 작가님이 제 과거를 알고 그런 대본을 썼는 줄 알았어요.”


“아.. 그런 의도는..”


“네. 아닐 겁니다. 제 과거를 아는 사람은 저와 동생, 그 회사 사람들뿐인데 저도 누군가에게 말한 적 없고, 동생도 말할 애가 아니고, 회사는 그날 이후 우리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바닥에 떨어진 돈을 본 대표는 웃으면서 꺼지라더군요. 자기도 양심이 있으니 여기까지 하겠다면서요.”


“양..심?”


“그 말을 듣고 나오는데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미쳤는지 동생도 부담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동생 대학 등록금만 마련해 놓고 20살이 되자마자 군대로 도망쳤습니다. 도망치지 않으면 동생까지 미워질 것 같았거든요.. 당시에는..”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민수가 마련한다는 학비도 동생의 학비였고,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는 집세를 포함해 각종 세금과 생활비였다.


“그런 경험이 있으면서 드라마 스텝으로 들어온 이유는..”


“요즘은 노가다도 자격증 하나 정도는 있어야 예전 일당을 받을 수 있더군요. 소개소 끼지 않으면 일도 괜찮은 일도 없고요. 우연히 채용 공고를 봤고 일당도 높고, 주급이 가능하다 해서 지원했을 뿐입니다.”


오로지 동생과 돈을 위해 살아가는 민수였다.


“당장이 문제인데, 그때와 똑같은 말들이 마음에도 귀에도 들리지 않더군요.”


그럴 수밖에. 오늘 흙이라도 퍼먹지 않으면 죽을 판인데 언제일지도 모를 희망을 품는 건 사치다.


품었던 희망에서 절망을 경험한 뒤라면 더욱더.


“더 대화를 나누기 전에 우선 오해는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수는 민수고, 그의 오해 속에는 안 대표와 풀썸, AG 에터가 포함되어있어서 일단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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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정채연(2). +3 22.11.22 260 11 11쪽
161 정채연(1). +6 22.11.20 353 11 10쪽
160 분위기. +6 22.11.19 337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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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여전히 존재한다. +8 22.11.17 364 14 11쪽
157 AG가 승제 편으로 보낸 바람 씨앗. +8 22.11.16 367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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