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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야금야금 씹어먹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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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최근연재일 :
2022.12.06 23: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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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11.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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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오른손은 닦고, 왼손은 가공한다

DUMMY

146. 오른손은 닦고, 왼손은 가공한다.


“좀 의외네요.”


“의외?”


“회사가 그룹의 컨셉을 정하면, 그 컨셉에 맞는 인물이나 목소리를 데뷔조로 뽑는 건 흔해요. 데뷔조가 정해지면 컨셉과 곡에 맞춰 멤버들을 트레이닝 시키죠.”


다연이의 말대로 데뷔조가 결성되면, 그때부터는 멤버 개인의 역량보다 팀이 더 강조된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다기보다, 성공을 위해, 팀을 위해, 회사를 위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숨기고 팀을 위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노래하는 목소리와 말하는 목소리가 다르다,

그룹으로 노래할 때와 솔로의 목소리가 다르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였다.


“트레이너의 실력이 부족할수록, 트레이너의 경험과 역량이 부족할수록, 회사가 급할수록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단순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펙아티스트 정도의 회사의 트레이너가 채연 언니 문제를 ‘성대에 문제 있음’이라는 결과만 내놓고 끝냈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다연이는 말은, 대형 기획사인 펙아티스트의 트레이너라면, 트레이너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을 텐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채연 씨를 포기하면 자신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안 대표와 최 부장은 정치가적인 부분이 강하다.

나는 도구 같은 존재에서 AG 엔터로 와서는 행동 대장 같았다가, 조금씩 안 대표에게 물들고 있다.


우리 중, 엔터 판에게 가장 오래 일한 곽 실장은, 오래 일을 했다 뿐이지, ‘진짜 일’은 AG 엔터와 계약하고 처음 해봤다.


이경우나 서이나 매니저의 본격적인 매니저 활동은 풀썸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기획사들과는 생각부터가 다른 AG 엔터 소속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달리, 유일하게 다른 기획사, 그것도 아이돌을 관리해 본 적 있는 박빛나 매니저의 입에서 다연이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자신의 자리?”


“네. 중소 기획사의 트레이너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더 큰 곳으로 스카웃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그들의 최고 가치는 회사가 원하는 상품에 맞게 연습생이나 데뷔조 멤버들을 다듬는 겁니다. 연습생의 목 상태가 좋지 않다? 연습생 본인의 관리 부실이고, 자신의 트레이닝을 따라오지 못하는 연습생 잘못으로 생각하죠. 10명의 연습생 중 9명은 목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왜 문제가 생겼지?’ 보다 ‘저 애는 날리고.’를 먼저 생각합니다.”


박빛나는 아직도 멍해 있는 정채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대형 기획사의 트레이너는, 대형 기획사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증명된 것과 다름없는 사람이죠. 연습생들에게 트레이너는 큰 산이죠. 찍히면 끝입니다. NO를 당당하게 외칠 수도 없죠. 이제 막 연습생으로 들어온 애들은 물을 마셔도 되는지 물어보고 마실 정도입니다. 거기에 자신에게 트레이닝 받은 연습생이 데뷔해서 인기라도 얻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네. 그때부터는 실력 있는 트레이너가 아닌, 회사에 존재하는 세력 중 하나가 되는 겁니다. 트레이너가 채연 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 명에게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다른 연습생들은 불만을 품을 것이고, 이 불만은 세력을 흔들 겁니다. 흔들리는 세력보다 채연 씨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움직인다고 치죠. 그런데.. 해결하지 못한다면? 해결해도 채연 씨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리가 위태해지지.”


“대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쌓인 연습생들의 불만과 실패는 계약 해지 또는 재계약 불발로 이어진다.


그동안 벌어 놓았던 돈으로 트레이닝 학원이나 센터를 운영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예전과 달리 기획사의 자체 트레이닝 시스템이 발달한 요즘에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


다른 기획사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자존심도 하나의 문제였을 겁니다. 펙아티스트 트레이너가 한 명의 연습생 때문에 잘리고 학원을 차렸다? 대형 기획사의 트레이너로 어깨에 힘깨나 주고 다녔던 자신이 한번 실패했다고 급도 안되는 기획사 사람들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자본과 권력을 맛본 사람은 못 하죠.”


이런 이유로 펙아티스트 트레이너는 정채연을 포기했다.


성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선택과 책임을 회사로 돌렸다.


회사에서 어떻게든 해보라고 했다면 자신의 세력인 연습생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만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원인을 자신이 아닌 회사로 돌릴 수 있다.


펙아티스트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풀썸을 목표로 하면서 시간을 자금을 투입해 정채연의 문제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가 없는 연습생의 더 나은 실력을 원했다.


고쳐보려고 했다가 실패한다는 가능성이 사라졌다.


정채연도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배우 파트로 이동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형 기획사의 결정.


이후 정채연의 성대 문제가 거론되어도 대형 기획사에서도 해결 못 한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해결될지도 모를 정채연 문제를 놓아버리면서 트레이너는 안정된 직장도, 트레이너로서의 경력도, 자신의 입지와 세력도, 자존심도 지켰다.


“여전히 아이돌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곳이 많습니다. 아이돌이 상품이라면, 연습생은 부품이죠. 중소 기획사는 문제가 있는 부품을 버리기도 하지만, 고쳐 쓰거나 그냥 쓰기도 합니다. 일단은 공장이 가동되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형은 다릅니다. 이미 상품화되었다면 모르겠지만, 부품은 그냥 버리죠.”


“대처할 부품이 넘쳐나니까.”


안 대표의 말에 박빛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네..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박 매니저 말에 느낀 점이 많았어. 솔직히 내 생각 범위에 트레이너는 없었거든.”


“대표님 범위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AG의 트레이너들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안 대표의 반성보다 최 부장의 말에 나는 한 표를 주고 싶다.


“흠.. 일단 OK. 김 팀장이 채연 씨..”


“네.”


“그래.”


다연이의 작업실을 나가는 안 대표의 뒷모습.


그녀가 어깨가 살짝 내려간 이유를 알 것 같다.


상태창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안 대표는 똑똑하다.

그런데, 똑똑한 것만큼 노력도 한다.


그런 안 대표가 다연이의 의문에 바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자책.


회사의 대표인 자신이 잊고 있었다는 자책.

AG가 잘 되고 있다고 소홀히 생각했다는 자책.


안 대표를 따라 최 부장이 나가고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작업실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작업실의 주인인 다연도 같이 나가는 걸 보니, 내가 안 대표의 뒷모습을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것 같았다.


아이돌이란 꿈을 향해 달려가던 자신의 발목을 잡은 성대 문제가 너무도 간단히 해결되었기 때문일까.


사회의, 사람들의 더러운 이면을 보았기 때문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정채연.


그녀에게 다가가던 발을 내 감이 잡았다.


AG 엔터도 확장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언젠가 안 대표도 확장을 넌지시 말했다.


승제가 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제 한 명만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AG 엔터가 풀썸 다음 앨범과 승제 앨범을 준비한다고 자금이 부족한가?


가요계는 아이돌 판과 가수 판으로 나눈다.


트로트 열풍이 불고 나서는 트로트 판까지 생겼다.


아이돌 판은 풀썸, 트로트 판은 승제. 그럼 가수 판은?


나의 감은 답이 저기 있다는 듯 잡았던 발목을 놓아주었다.


“채연 씨.”


“..네..”


“혼자 도도하게 빛나는 별이 되어보지 않을래요?”


정채연이 아이돌을 준비했다고 꼭 아이돌일 필요는 없다.


잠깐 펙아티스트 배우 파트에 몸담았다고 배우가 될 필요도 없다.


풀썸 덕분에 듣는 귀가 좋아졌는지는 몰라도 기본기는 탄탄했다.


문제였던 고음도 다연이가 한 번에 해결했다.


물론, 고음 부부에서는 자세를 신경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으로 된 곡은 없다.


오히려 자기만의 고음 내는 자세가 라이브의 증거인 세상이라 꼭 고쳐야 하는 단점도 아니다.


무엇보다 민가영 이후 솔로 여가수로 성공한 예가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솔로 가수를 목표로 트레이닝 받고 데뷔하는 사람보다, 아이돌의 개인 활동이나, 해체 후 새 출발, 오디션 출신, 트로트 신드롬 이후에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솔로 가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만약 정채연이 솔로로 성공한다면? 아니, 성공하게 만든다면?


“별이요..?”


더 확실히 내려놓고, 잊기 위해 유학을 생각했던 정채연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떠나기 전이다.


끈질기게 남아있던 미련이 그녀를 흔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떨렸다.


“솔직히 말할게요.”


“네..”


“미련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마련한 자리가 이렇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


“하지만, 미사 같은 운명이 또 있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사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계기로 AG 엔터와 계약해 풀썸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풀썸의 멤버를 생각하며 미사에게 부스를 내어 준 것이 아닌 듯, 채연 씨도 AG 엔터와의 계약을 생각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닙니다.”


“네.. 알고 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고요.”


“채연 씨의 노래를 듣고, 다연이의 방식으로 고음을 내는 방식을 채연 씨가 알게 되었을 때도, 대표님이 나가시고 이 공간에 둘만 남았을 때도 채연 씨의 유학을 말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는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기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숙인 고개를 당당히 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했으니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짧은 시간 내 머릿속에서 터져 나왔던 생각들을 정채연에게 전했다.


“아이돌은 풀썸, 트로트는 최승제, 솔로 가수는 채연 씨. AG는 채연 씨 머리 위에 왕관을 씌울 겁니다.”


“제..가 가능 할까요..?”


지금은 두 개의 충격으로 흔들리는 정채연이지만, 옥상에서도, 나를 찾아와 만났을 때도 당당했던 그녀였다.


비쥬얼 하나로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 살아남아 데뷔조 이야기까지 나왔던 정채연이다.


AG 엔터를 상대하는 카드로 펙아티스트 대표가 꺼냈던 카드다.


최승제가 알고 보니 보석이었다면, 정채연은 가공 중이던 원석이었다.


“채연 씨가 바란다면 가능합니다. AG는 그 앞에 ‘유일한’, ‘새로운’, ‘절대’ 같은 수식어를 붙게 할 거고요.”


순간, 정채연의 눈빛이 변했다.


열정, 희망, 의지, 믿음 같은 눈빛이 아니라 그녀의 상황을 모르면 거리를 둘 만큼 독하게 변했다.


“제가 복수를 생각 해도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펙아티스트가 채연 씨를 올려다보게 하는 것이 복수라면 기꺼이 창과 방패가 되어 드리죠.”


정채연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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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계획은 있다. +3 22.12.06 285 14 10쪽
163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맞이하는 자세. +2 22.11.23 401 14 13쪽
162 정채연(2). +3 22.11.22 336 15 11쪽
161 정채연(1). +6 22.11.20 420 15 10쪽
160 분위기. +6 22.11.19 395 13 13쪽
159 이런 우연도 있다. +6 22.11.18 401 15 12쪽
158 여전히 존재한다. +8 22.11.17 412 17 11쪽
157 AG가 승제 편으로 보낸 바람 씨앗. +8 22.11.16 414 15 12쪽
156 최승제. +6 22.11.15 408 17 10쪽
155 각자의 자리. +8 22.11.13 498 14 10쪽
154 안 대표에게 줄 선물. +8 22.11.12 461 15 12쪽
153 응? +6 22.11.11 484 15 11쪽
152 더러움은 색을 가리지 않는다. +7 22.11.10 479 16 11쪽
151 안하리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 +6 22.11.09 486 17 11쪽
150 네. 잘 들었습니다. +8 22.11.08 477 16 12쪽
149 어쩌다 미국행. +6 22.11.04 541 15 11쪽
148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를 얻다. +6 22.11.03 526 15 10쪽
147 처음 본 안 대표의 약한 모습. +6 22.11.02 546 17 10쪽
» 오른손은 닦고, 왼손은 가공한다 +8 22.11.01 561 15 11쪽
145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6 22.10.30 656 17 12쪽
144 감사, 그리고 고마움 +6 22.10.29 634 16 11쪽
143 겉에 묻은 때를 벗기고. +6 22.10.28 590 15 11쪽
142 때는 꼼꼼히 벗겨야 한다. +6 22.10.27 605 16 10쪽
141 일단 닦아야겠네. +6 22.10.26 625 15 11쪽
140 돌을 살펴보니. +6 22.10.25 637 17 11쪽
139 돌을 올려놓다. +10 22.10.23 692 18 12쪽
138 이럴 때를 대비해 키운 건 아니지만. +7 22.10.22 654 17 12쪽
137 휴가의 끝에서 주운 돌멩이 하나. +5 22.10.21 641 17 11쪽
136 휴가인데 왜 이러고 있는 건지.. +7 22.10.20 663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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