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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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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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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과 다시 들어오는 태클

DUMMY

36. 헛발질과 다시 들어오는 태클


류명국 PD는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초조해져 갔다.


발연기만 아니면 된다는 작가의 말에 류명국 PD는 자신 있었다.


사실, 류명국 PD는 온갖 접대를 받는 와중에도 짧게나마 엘리샤의 연기력을 확인했었다.

배우 명가인 빅 엔터에서 연습생 생활하며 연기 수업도 꾸준히 받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쁘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솔직히 ‘잘한다.’와 ‘못한다.’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못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류명국 PD는 슬쩍 들어오는 봉투의 두툼함에 작가에게 들었던 ‘최유비’의 설정과 작가가 처음 생각했던 성격 등을 흘렸고, 오디션 대본의 중요 포인트와 이어지는 자유 연기에서 어떤 연기를 하면 좋을지도 친절하게 알려 줬다.


아마, 여기서 빅 엔터나 엘리샤, 류명국 PD가 하하 호호하며 좋게 끝났다면, 강주열 작가가 국장을 찾아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최유비 역은 엘리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류명국 PD가 살짝 술에 취해 최유비라는 극 중 인물에 대해 더 흘렸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해커 최유비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16화 동안 몇 번 등장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숨은 협력자로서 15화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인물이고, 15화에서는 엔딩까지 맡고 있었다.


가장 길게 나오는 신이, 주인공에게 의뢰를 받는 장면, 의뢰받은 내용을 달성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 마지막 15화 엔딩으로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는 장면 정도였다.


‘아쉽다..’


자신이 흘린 정보를 들은 엘리샤의 중얼거림.


단순한 중얼거림이었지만 류명국 PD에게는 돈의 무게까지 더해져 심각하게 들렸다.


‘뭐가 아쉬워?’


이렇게 묻지 말았어야 했다.


드라마에 사랑이 없다, 시놉시스를 읽고 나중에는 스파이와 사랑에 빠질 줄 알았다, 주인공이 외로워 보인다. 밝은 성격의 최유비가 틈틈이 주인공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등등.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엘리샤가 하는 말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지 모를 류명국 PD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는 엘리샤가 했던 말에 대해 어떤 답도 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온 뒤 확인한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더 발견한 류명국 PD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자기 생각인 것처럼 강주열 작가에게 엘리샤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오늘, 그 결과가 7번째 배우가 오디션을 마치고 나가고, 8번째 배우가 아닌 SBC 드라마국 국장이 들어오면서 나타나고 있었다.


“구, 국장님?”


“네. 류 PD님. 내년을 첫 드라마의 첫 오디션인데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또 신인들 보는 눈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자리하나 마련해 줄 수 있나요?”


SBC 드라마국 국장 이환은 방송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초고속 진급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짧은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메인 PD를 지나 CP까지, 빠르게 진급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의 안목이 한몫했으며, 이는 이환 국장도 인정하는 거였다.


눈여겨본 인물을 꽂는다.

드라마가 뜬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이환 국장의 공식이었고, 능력 있는 PD들이 종편이나 케이블로 빠져나가는 이 시점에 SBC가 엄청난 연봉과 권한을 주며 데리고 온 이유이기도 했다.


국장의 말에 오디션의 진행을 맡고 있던 곽오균 조연출이 의자를 들고 와 강주열 작가의 자리 옆에 놓았다.


“곽 PD님도 진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같이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저.. 말씀입니까?”


“오디션 심사를 보는 것. 이것도 엄청난 경험이 됩니다. 곽 PD님도 조만간 입봉하셔야지요. 아! 이런.. 제가 주제넘었나요?”


이환 국장이 미안한 듯 류명국 PD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지만, 류명국 PD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곽 PD도 입봉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맞습니다. 제가 먼저 챙겼어야 하는데. 하하.. 곽 PD도 FD 아무에게나 맡기고 내 옆에 앉아.”


이때부터 류명국 PD는 예상했다.


엘리샤가 캐스팅되든, 안 되든, 자신은 이 드라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을.


류명국 PD의 예상에 확신이라도 주듯, 심사표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 그에게 엘리샤가 들어 올 때까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엘리샤입니다!”


전해 들은 것과 달리 두 명이 더 심사위원석에 있는 것을 본 엘리샤는 잠시 당황했지만, 정보에 없던 두 명 모두 웃고 있는 모습에 안심하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지정 연기 시작해 주세요.”


곽오균 PD의 말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다를 꼬는 엘리샤.


그 모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류명국 PD였다.


강주열 작가가 생각했던 최유비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리고 자신이 힌트를 줬던 모습과도 완벽히 다른 연기.


“그러니까. 저에게 뉴월드 그룹을 조사해 달라?”


“역시.. 어렵습니까?”


강주열 작가가 했던 상대역 대사를 곽오균 PD가 참여하고 나서는 그가 하고 있었다.


“그쪽도 뉴월드는 뚫기 힘들다는 거 알고 있네요.”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피식 웃은 엘리샤가 다리를 바꿔 꼬았다.


“그쪽이 힘들다는 거지. 제가 힘들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가능하다는 겁니까?”


꼬았던 다리를 풀고 앉은 채로 상체를 기울인 엘리샤.


“어디까지 원해요?”


“회, 회장 일가의 모든 것.”


숙인 상체 탓에 살짝 보였던 가슴골 때문에 곽오균 PD가 대사를 더듬는 것으로 지정 연기가 끝났다.


싸해진 분위기를 읽지 못한 엘리샤는 자신의 연기에 만족이라도 한 듯 어깨를 당당히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자유 연기..”


“곽 PD님 잠시만요. 엘리샤 님. 엘리샤 님이 생각하는 최유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주열 작가의 질문에,


‘수많은 사람을 심사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아. 지정 연기, 자유 연기 보는 것이 끝이지. 영 아니다 싶으면 지정 연기로 끝내는 예도 있어.’


라고, 며칠 전 PD가 했던 말이 떠오른 엘리샤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유비는 해커들 사이에서 유명한 해커죠.”


방송국 측에서 뿌렸던 시놉시스와 오디션 대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본을 쓴 작가와 관계자 몇몇만 아는 설정이 엘리샤의 입에서 나왔다.


그것도 ‘유명한 해커일 것 같았다.’, ‘유명한 해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 아니라, 확신에 가득 찬 ‘해커죠.’였다.


“유명하다는 것을 자신도 알죠. 그런 사람이라면 좀 더 당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오늘 입고 오신 옷도 그런 의미입니까?”


“네!”


“자유 연기 보죠.”


**


엘리샤의 이름 다음으로 이슬이의 이름이 불렀다.


“재밌는 짓을 했네..”


“엘리샤는 그 배역이 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저를 방해하고 싶은 걸까요?”


엘리샤 다음으로 자기 이름이 불린 이유가 빅 엔터의 장난질이라는 것을 이슬이도 눈치챈 것 같았다.


가나다순으로 진행된 오디션이었다.


같은 ‘ㅇ’으로 시작하는 이름이라 엘리샤 다음에 이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대기하는 동안 ‘오나경’이란 배우 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슬이도 나도 엘리샤, 오나경, 그리고 그다음이 우리라고 확신했다.


엘리샤 다음에 불린 이슬이의 이름.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불릴 거라 예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당황한 오나경까지.


누군가의 장난질이었고, 그 누군가는 빅 엔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둘 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상민 실장 다가오네요.”


오디션장으로 들어가려는 엘리샤에게 귓속말을 남긴 이상민 실장이 엘리샤가 들어가자마자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이슬이와 어떻게 아는 사이야?”


“그게 그쪽과 무슨 상관이죠?”


“하.. 이슬이 너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같이 있는 거야?”


미간을 좁힌 이슬이가 나서려는 순간, 내가 이슬이 앞을 가로막았다.


엘리샤를 이슬이가 상대했다면, 이상민 실장은 내 상대였다.


“이상민 실장님. 제 이름은 알아요?”


“이름?”


“모르시죠? 이름도 모르면서 왜 반발이시죠? 피에스타의 엘리샤가 반말 찍찍하는 걸 누구에게 배웠나 했더니 이상민 실장님이었군요?”


“이 새끼..”


“이씨 성에 이름이 새끼가 아니라. 김무명입니다. 윤이슬의 매니저이자 AG 엔터에서 팀장을 맡고 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빅 엔터에 있었던 이슬이가 모를 것 같아요? 아! 당연히 AG 엔터 대표님도 알고 계시죠. 그분이 직접 저를 스카웃했으니까. 그게 뭐요?”


이슬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엘리샤에게 했던 귓속말이 대충 어떤 내용이었을지 알 것 같다.


긴장하지 말고 잘해라 따위가 아니라 나를 건드려 이슬이를 흔들어 놓겠다. 정도였을 것 같다.


“넌..”


“문 실장이 말 안 해 줬어요? 피에스타 쇼케이스때 문 실장 만났는데.. 아. 아직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급은 아닌가?”


“하? 참나.. 그래. 너라는 리스크를 안고 갈 정도면 AG 엔터도 알만하다. 이슬이 매니저니까 눈치챘지? 저 안에 들어가면 이슬이가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어때? 그냥 돌아가는 게? PD님께는 내가 잘 말해 놓을게”


대기실에서 엘리샤의 입을 통해 나오려던 내용이 이상민 실장의 입에서 나왔다.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AG 엔터를 우습게 여기고, 이슬이를 흔들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끝까지 반말이네.. 문태영 씨는 적어도 예의는 지켰는데 말이지.. 네가 반말했으니까 나도 한다? 과연 AG 엔터가 나라는 리스크만 안게 되었을까? 내가 입 다물고 있는 내용이 뭘까? 그리고 빅 엔터가 이슬이를 방해하는 이유가 뭘까? 나를 발견한 순간 그런 생각은 안 들었어? 그런 생각도 못 했고.. 대놓고 말하는 걸 보니.. 문 실장은 물론이고 나가용 본부장에게도 보고 안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응?”


AG 엔터가 나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거짓이었던 건 빅 엔터였고, 진실이었던 건 나였다.

거기에 더해, 엘리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슬이까지 더해졌으니 리스크라는 말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이점을 가지도 있는 거였다.


적절한 순간에 터뜨리면 피에스타는 물론, 빅 엔터까지 휘청일 수 있는 무기.

이 무기를 휘두르고 방어까지 할 수 있는 힘이 AG 엔터 안 대표에게는 있었다.


이상민 실장의 행동을 보며, 나는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었다.


나가용 본부장이 이슬이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


당장 알 수 없는 나가용 본부장의 오해는 잠시 접어두고 눈앞에 이상민 실장에게 집중했다.


“내가 문 실장에게 했던 말이 있어. 건드리지 말라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나불거리지 않겠다고. 그런데.. 건드렸네? 네가 나를, 네가 이슬이를, 네가 AG 엔터를? 어떻게 할까? 아직 대기실에는 많은 배우와 엔터 사람이 있는데, 입 한번 털어봐?”


“털어? 털어봐! 누가 믿어 줄 것 같아? 빅 엔터는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슬이 부모님이 도와줄 거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이야. 서로 물고 뜯으면 좋다고 이슬이 집에 가둘 사람들인데? 어떻게? 막장으로 한번 가봐?”


나가용이 착각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슬이 집안을 알면서도 방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루시올렛입니다.


내일은 휴재 예정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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