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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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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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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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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겼으면 다시 빼앗는 것이 이치.

DUMMY

44. 뺏겼으면 다시 빼앗는 것이 이치.


일주일째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씩 비슷한 연기를 보며 조금씩 지쳐가던 한혜연 감독이 마지막 날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살아났다.


“혜연아. 이제 두 명 남았는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어?”


이번 영화 제작에 있어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투자자이자, 한혜연 감독의 남편이 물었다.


한혜연 감독은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데뷔작에서는 여자 감독이라는 이유로 온갖 것들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에는 영화와 관계없거나, 본질을 흐리는 요구를 절대 수용하지 않는 탓에 투자처를 구하거나 배우를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랜 친구의 노트북에서 정말 괜찮은 시나리오를 발견한 한혜연 감독은 친구를 설득해 제작 준비에 들어갔지만, 자금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그때 기회만 노리고 있던 남편 ‘HY 투자’의 대표 민철우가 나섰다.


보수적인 영화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한혜연 감독은 남편의 제안이 고마우면서도, 어떤 말들이 나올지 뻔해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나리오가 마음에 무척 들었던 한혜연 감독은 남편과 손을 잡았다.


투자에 성공하고 제작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혜연 감독이 예상했던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뻣뻣하게 나가더니 결국 남편 돈으로 영화 찍는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더니 과연 남편에게도 그러는지 지켜보겠다. 등.


영화계의 반응이 좋지 않아 배우 섭외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던 한혜연은 숨은 진주들을 찾기 시작했다.


영화인들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한혜연 감독이 찾은 숨은 진주들은 천만 배우에 등극했으며, HY 투자는 돈방석에 앉았다.


돈, 인맥, 관계 등을 먼저 생각하는 보수적인 영화인들이 생각과 재미를 먼저 생각하는 대중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천만 감독이 된 한혜연은 운이 좋았다는 영화계의 비판을 보란 듯이 지워버리며 그다음 영화에서도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여자 신인급 감독에서 천만 감독이 된 그녀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함께하고 싶다는 투자자들과 배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혜연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이번 영화에서도 HY 투자가 가장 많은 투자금액을 제시하고 세부 조건도 좋았기에 계약했을 뿐이었고,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배우들에게도 공정한 경쟁을 예고했다.


“안 감독으로 부르라니까..”


“뭐 어때. 지금은 둘 뿐인데.”


“하긴.. 당신이 공과 사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뭐라고 물었어?”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냐고.”


“오디션 대본을 준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비슷한 연기를 하는 건지.. 비슷한 연기를 하니까 비교하기는 쉽더라. 박채아가 지금까지는 제일 나았던 것 같아.”


“박채아를 쓰면.. 대역의 부담이 크겠던데?”


한혜연 감독이 준비 중인 영환 ‘10년 뒤’는,


화목했던 한 가정이 이유도 없이 어떤 조직에 의해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죽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주인공이 10년 뒤 조직에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설정된 배경 자체가 총과 칼의 소지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 필수인 곳이어서, 조직과 맞서기 위해서는 액션 연기가 필수였다.


비슷한 연기를 했던 다른 배우 중에서 박채아가 가장 낫다는 평가를 했음에도 한혜연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박채아가 소화할 수 있는 액션 연기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었다.


박채아의 오디션 연기가 끝나고 한혜연은 다른 오디션 배우들에게 했던 것처럼 몇몇 장면을 말해주고 대역이 필요한 장면과 가능한 장면을 구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거기서 박채아는 오디션에서 보여준 연기력에 비해 대역이 필요하다는 장면을 다른 배우들보다 많이 뽑았다.


“그렇긴 한데.. 남은 두 명을 생각하면 박채아가 가장 유력해. 촬영 전까지 최대한 준비해 달라고 하고 안되면 카메라에 신경을 더 써야지.”


“남은 두 명.. 강보아는 발음이.. A급 배우가 된 게 신기하네.”


“예쁘잖아. 남자들이 좋아하는 얼굴 상. 촬영장에서 한번 웃어주면 밤샘에도 다들 웃고 있다더라.”


“난 우리 혜연이가..”


“그만!”


“흠.. 마지막이 윤이슬이네?”


한혜연이 윤이슬의 프로필을 툭툭 두드렸다.


“외모는 압도적이지. 그런데 한복 이미지가 강하다고 할까..”


“신인인 건 괜찮고?”


“내가 어디 그런 거 가려? 최태후와 조남일 수상 소감 안 들어왔어?”


“아! 연기는 괜찮겠네.. 그럼 왜?”


“이제 20살이야. 며칠 전까지는 19살. 설정과 딱 맞기는 하지.. 그런데..”


“아..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기에는 좀 힘들겠네.. 연기 경험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CF 하나와 단역 하나가 전부이니..”


강보아의 오디션은 두 사람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윤이슬이 하얀 롱패딩을 입고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떤 연기를 준비했을지 기대되네요. 준비되면 시작해도 좋아요.”


박채아로 마음을 굳히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한혜연은 강보아에게도 했던 오디션 전 질문들을 생략하고 윤이슬이게 연기를 주문했다.


‘네.’라는 답과 함께 롱패딩을 벗는 순간 한혜연의 지루했던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오디션에서 가장 많이 봤던 의상이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이었다.


한혜연이 박채아에게 높은 점수를 줬던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배우들과 달리 핫팬츠에 크롭티를 입었다는 거였다.


윤이슬도 박채아와 같은 핫팬츠에 크롭티.


하지만 묘하게 섹시했던 박채아와 달리 윤이슬에게는 짧은 옷을 입었음에도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박채아는 그 차이점을 살짝 다른 옷의 형태와 옷이 가리지 않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살짝 보이는 가슴골과 매끈한 복부, 선명한 쇄골이 박채아를 섹시하다고 느꼈던 원인이었다면,


윤이슬은 한혜연 감독의 시선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11자 복근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하체와 다리 라인에서도 박채아와 달리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 한혜연이었다.


이어지는 윤이슬의 연기가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라면 연기보다 의상이나 의상을 입을 윤이슬의 겉모습에 더 눈이 갔겠지만, 윤이슬의 연기를 본 순간부터는 의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짓밟기라도 하는 듯 오른쪽 발로 바닥을 꾹꾹 누르는 윤이슬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있었다.


“이유가 뭐야?”


어금니를 꽉 깨문 대사에서도, 아래로 향해있는 윤이슬의 눈빛에서도 ‘분노’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유가 뭐야?”


같은 대사지만 조금 달랐다.


무언가를 누르는 발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연기에서 윤이슬이 밟고 있는 것이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윤이슬이 머리채를 잡아 올리는 시늉을 했다.


“이유가 뭐냐고..”


“허..”


한혜연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윤이슬의 표정과 눈빛 어디에도 조금 전에 보여줬던 ‘분노’와 ‘슬픔’은 없었다.


두 눈에서 시작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보여주는 감정은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윤이슬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이 점점 웃기 시작하더니 너무나도 애교 있고 사랑스럽게 변했다.

이와 동시에 한쪽 입꼬리만 천천히 올라갔다.


“미친..”


HY 투자 대표 민철우의 입에서 연기를 방해하는 거친 말이 나왔음에도 윤이슬은 연기를 이어갔고, 한혜연은 그런 그녀에게 집중했다.


“아니, 그냥 말하지 마. 이유를 듣는다고 엄마.. 아빠..”


민철우 대표가 놀랐던 그 표정에서 눈물만 다시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은 채 몸이 굳어버린 언니가..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닦은 손이 얼굴에서 거두어지자 윤이슬의 표정이 싹 바뀌어있었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의 윤이슬이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가 뾰족한 무언가를 꺼냈다.


허공을 향해 뾰족한 물건을 찌르는 윤이슬.


한 손으로 잡은 것이 머리채라면 뾰족한 물건이 찌르고 있는 곳은 목이 있는 부분이었다.


“잘 가. 곧 따라갈 놈들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거야.”


한혜연은 전율했다.


윤이슬이 표현이 잔인해서가 아니었다.


잠깐씩 찡그리는 윤이슬의 얼굴 위로 검붉은 피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


긴 숨을 내쉰 윤이슬이 자신을 도와준 가상의 인물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하듯 허공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고 일어났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이슬 씨. 이런 질문이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한혜연이 테이블 위에 있던 모든 자료를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혹시..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나요..?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잃어 봤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거라면 없습니다. 친가나 외가 쪽 조부모님 모두 계시지 않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부모님 두 분 모두 건강하십니다. 형제, 자매는 없고요.”


“질문이 심했다면 다시 한번 죄송해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연기에 놀라서..”


“감사합니다.”


“한 감독님. 저는 아직도 소름이 가시질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윤이슬 씨. 혹시 시간 괜찮나요? 몇 가지 더 질문하고 싶은데..”


“밖에서 기다리는 매니저 언니에게 말 만 전해주신다면 괜찮습니다. 저보다 더 긴장하고 있거든요.”


윤이슬의 마음 씀씀이와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예뻐 보이는 한혜연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볼게요. 배경이 되는 사회는 총이나 칼 같은 무기들이 합법에 가까워요. 윤이슬 씨 이전에 오디션 봤던 배우 중에서 장난감 총이나 칼을 준비해온 배우가 없는 것도 아니었죠. 하지만 윤이슬 씨는 총도 칼도 아닌 송곳 같은 거였어요. 이유가 있나요?”


“총과 칼이..”


“그럼..”


“그것은..”


민철우 대표는 오늘 처음 만난 배우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부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이슬 배우님의 매니저 박빛나라고 합니다. 저기.. 혹시 우리 배우님..”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확정된 것 같으니까 매니저님께 먼저 알려 드려도 되겠네요. 솔직히 장르가 장르인지가 천만은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윤이슬 배우님과 함께라면 천만을 기대할 만하네요.”


“그, 그럼..”


“회사 차원에서도 기사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저녁 7시.


한혜연 감독이 대표로 있는 연 필름 측이 내보낸,


[ 한혜연 감독의 차기작 ‘10년 뒤’, 윤이슬 주연 배우 확정! ]


이란, 기사에 AG 엔터 홍보팀이,


[ 윤이슬 ‘한혜연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 ]


이란, 기사로 화답하면서 다시 한번 윤이슬이란 이름이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우와 함께 축제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AG 엔터와 달리, 빅 엔터에서는 한겨울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본부장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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