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씹어먹는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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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올렛
작품등록일 :
2022.05.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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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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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될 것을.

DUMMY

52. 결국, 이렇게 될 것을.


AG 엔터가 힘이 없다.

이슬이의 장점이 외모뿐이다..

박빛나, 이경우 매니저가 정글 엔터의 실장 같은 사람이다.

한혜연이 감독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녹음기를 숨기지 않았다.

내가 멍청해서 일이 터지고도 허둥거린다. 등등.


이런 조건들이 전부 갖춰졌더라면 한혜연 감독과 작품을 이용해 AG 엔터와 이슬을 밟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바를 이뤘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갖추더라도 실패하는 일이 허다하다.


계획이 성공했더라도 강찬 같은 사람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강찬은 처음부터 그림을 잘못 그렸다.


약점을 잡고 무기를 휘두르며 이용하고, 밟고 쓰러뜨려 올라서려고 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나도 강찬의 ‘단역’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고, AG 엔터와 안하리라는 무기를 휘두른 적 있으며, 빅 엔터를 밟고 무너뜨리고 싶고 이슬이를 포함한 풀썸 멤버들을 정상으로 올리고 싶으니까.


단역에서 벗어나 배우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자신을 갉고 닦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면, 메소드 연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닌, 꼬리 흔드는 개를 연기했어야 했다.


이슬이이와 AG 엔터의 두 매니저가 했던 일을 강찬이 해야 했다.


강찬은 누구보다 촬영장에 먼저 나와 준비해야 했고,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에 관한 것들을 배우며 연기에 대한 열망을 알림과 동시에 인맥을 쌓았어야 했다.


강찬의 매니저는 배우의 매니저인지 스텝인지 모를 정도로 뛰어다니며 강찬을 어필해야 했다.


그것이 비록 본심이 아니라 성공만을 위한 것일지라도.


그랬다면 적어도 다음 작품에서는 조연 이상을 맡지 않았을까 싶다.


“단역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좋아. 네 계획이 성공해서 좋은 작품을 만났다고 치자. 이슬이와 연애설이니.. 메소드 연기니.. 이런 것들만 관심 있는 사람들 덕분에 방송 출연 몇 번 하고 거기서 사람 좋은 척하면 적어도 비중 있는 조연.. 아니 제작사가 유명세를 더 이용하려고 하면 주, 조연급으로 발탁되겠네. 그럼? 그다음은 주연이 되기 위해 또 같잖은 계획을 세우고? 또 누군가를 이용해 올라서고?”


“그래! X발! 밟지 않으면 밟히는 세상이야! 밟힌 것들이 잘못이지!”


한동안 강찬은 울분을 토했다.


구구절절하지만.. 글쎄..


이등병 때 괴롭힘을 당했으니, 병장이 되고 똑같이 이등병을 괴롭혔다는 말처럼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 그래서? 한혜연 감독이 그때 그 감독이야? 아니면 이슬이가 널 이용하고 차버린 신인 여배우야? 지금의 배우들과 스텝들이 널 무시하던 사람들이야? 왜 다른 곳에서 뺨 맞고 여기 와서 화풀이 하고 있어? 당시의 사람들에게 성공으로 복수하고 싶다고? 지랄도 가지가지다. 하.. 차라리 무슨 일마다 나라 탓하는 사람들이 낫다.”


“파하하하하”


자신을 붙잡고 있던 매니저를 밀치며 미친 듯이 웃는 강찬.


“하하하하.. 하..하.. 기사까지 났으니 나 이제 완전 X 됐네?”


강찬이 넘어져 있는 매니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 우리 이제 어떡하냐? 우리 회사는 누가 저렇게 나서 주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지? 큭큭큭 어쩌긴 뭘 어째. 혼자 X 될 수는 없지..”


순간 눈빛을 빛낸 강찬이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손에 쥐었다.


“이 영화 주연 배우 윤이슬.. 연기는 참 잘하더라..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특히 송곳 액션은 대단했어.. 나 같은 단.역은 대역을 썼을 텐데.. 직접 다 하더라고. 대단해.. 그래서 주연인가? 그런데.. 말이야.. 신인은..”


강찬의 눈빛이 변했다.


유명한 배우가 살인자 연기를 하면서 보였던 눈빛, TV나 영화 속에서나 봤던 그 눈빛이었다.


“신인다워야지!”


강찬의 신세 한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역 주제에’라는 말과 비슷한 정도 등장했던,


신인은 신인다워야지.


너는 신인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신인 주제에 왜 네 맘대로 해석해?

신인은 선배보다 잘나면 안 돼.


강찬에게 이렇게 말했던 사람과 볼펜을 높게 치켜들고 이슬이에게 달려드는 강찬은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혼자 안 죽어 X발!”


“꺄아악!”

“미친!”


스텝들의 비명과 경악의 소리가 울렸다.


자기 연민에 빠져 같잖은 머리만 굴리던 강찬을 막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탁.


차게 식은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던 이슬이에게 볼펜이 닿기 전, 내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법원에서 보자.”


퍽!


스텝의 비명만큼이나 큰 소리와 함께 강찬의 몸이 허물어졌다.


“찬아! 너 이 새끼! 신고할 거야!”


쓰러진 강찬에게 달려가는 매니저의 앞을 막고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신고? 해! 제발 해! 더러운 입으로 말했던 그 여론! 강찬의 이름이 기사에 나오면 얼마나 사람들이 반응해 줄지 궁금하거든. 그전에 올라운드 간판이 걸려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현장에서 강찬과 매니저를 상대하는 동안 최리 부장이 올라운드 엔터를 엔터 판에서 지우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의리있게 독박 쓰는 사람이 없더라고.”


최국현과 그의 가족들은 수감되기 전, 조금이라도 죄를 덜어보고자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는 개싸움을 벌렸다.


결국, 경찰이나 검찰도 찾아내지 못했던 죄까지 드러나며 형량만 늘었지만.


“회사가 보호해 줄 거란 생각, 폭력을 쓰려 했던 사람은 강찬이란 생각 때문에 괜찮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강찬의 말대로 밟지 않으면 밟히는 세상이란 건 맞거든. 내가 덜 밟히려면 같이 밟혀줄 사람이 필요한데.. 올라운드와 강찬에게는 딱 너야.”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박빛나 매니저가 적절한 타이밍에 신고한 덕분에 경찰이 딱 맞게 도착했다.


경찰관 두 명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매니저의 귀에 속삭였다.


“같이 물고 뜯어야 너도 덜 아파.”


똑똑한 사람이라면 같이 물고 뜯는 순간 더 상황이 안 좋아질 것을 알겠지만, 강찬의 매니저라면 자신만 살기 위해 올라운드와 강찬을 물고 뜯을 것 같았다.


그럼 뭐.. 최국현과 그의 가족들 꼴 나는 거지.


그날 저녁, 안 그래도 강찬 때문에 늦어진 점심 회식이 내가 경찰서에 다녀오는 덕분에 저녁 회식으로 바뀌었다.


모두의 앞에 잔이 놓인 것을 확인한 조감독이 신호를 보내자 한혜연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식을 준비해 주신 AG 엔터 측 대표로 김무명 팀장님께서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혜연 감독의 손짓에 일어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단역들이 모여있는 자리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김 팀장님 고개를 드세요. 죄송하다니 그게 무슨..”


허리를 편 내 눈에 두 가지 표정으로 나누어진 단역 배우들의 얼굴이 보였다.


“오늘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이슬이나 우리 AG 엔터 식구들을 위해 나설 겁니다. 사람 하나를 경찰서로 보냈다는 것도 후회 없습니다. 똑같이 일어 또 벌어져 누군가를 고소해야 한다면 저는 오늘과 똑같이 할 것입니다. 제가 사과한 이유는 당시 제 입에서 나왔던 말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찬을 상대하면서 나는 ‘단역 배우’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단역 배우’라는 말들은 온통 부정적이었던 것은 물론, ‘단역 배우’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배려도 없었다.


나는 오로지 강찬을 타킷으로 둔 말이지만, 그 자리에 단역이 강찬 혼자만 있었던 아니었다.


강찬을 상대하는 내내 눈앞에서 설치는 강찬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강찬의 분노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찬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족이나 소중한 누군가가 아니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하필이면 ‘단역 배우’ 자체가 그의 분노 스위치였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나는 한 번 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세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다.


40대 중반의 대머리 남자가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입에 털어 넣었다.


“솔직히.. 상처이긴 했습니다.”


나는 고개조차 끄덕일 수 없었다.


“20대 초반에 연극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단역 배우로만 활동했죠.”


송지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배우가 연기를 시작한 곳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연극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훌륭한 배우를 꿈꾸며 시작한 연기였지만 누구나 그렇듯 송지석도 한계를 느꼈다.


“지금은 외모가 별로라도 연기력이 좋으면 인정받는 시대죠. 하지만 제가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딱 봐도.. 뭐.. 생긴 건 별로잖아요? 주로 양아치, 한량 같은 역을 맡았죠. 조폭 역할이 양아치나 한량보다 낫다면 나았을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송지석은 꿋꿋하게 배우 생활을 이어갔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조금 더 하면 언젠가..


시간은 송지석에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고, 노력도 송지석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배우와 가수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시대가 오면서 송지석이 설 자리는 점점 적어졌다.


“후회 없다고 하셨죠? 저도 지금의 제 모습이 후회스럽지 않습니다. 그 배우와 같은 유혹을 이겨냈다는 것도.. 더러운 손길을 뿌리쳤던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내 나름의 노력이겠지만요..”


송지석 배우의 노력을 모르고 있던 내가 아니어서 더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저은 송지석이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는 겁니다. 내가 했던 노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심지어는 그놈의 심정이 잠깐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꼈죠. 아.. 저 사람이 우리에게 미안해하고 있구나.. 라고요.”


“송 형이 말한 대로예요.”


옆에 있던 남자가 송지석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을 받았다.


“솔직히는 저는 속으로 욕도 했습니다. 하하하. 저도 김 팀장님이 저희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촬영장에서 나는 강찬을 상대하기 위해 미안한 감정을 숨겨야만 했다.

혹시라도 배우들과 눈이 마주치면 표정에서 드러날까 봐 일부러 단역 배우들이 모여있는 곳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하하 송 형. 김 팀장님은 모르겠다는 표정인데요?”


“이래도 연기 생활만 몇 년입니다. 김 팀장님 말대로 단역이라 눈치가 늘죠.”


“그, 그건..”


“농담입니다. 농담. 단역 배우라는 말을 할 때마다 김 팀장은 주먹을 쥐더군요.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우리 쪽만 보지 않았어요. 김 팀장님이 단역 배우들을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리와 눈이 여러 번 마주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요?”


“감사합니다..”


이 말 말고는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 감독님! 단역 주제에 시간을 많이 빼었습니다! 하하하하”


“그래요! 단역 주제에 말이 많았네요! 크크”


놀릴 의도가 가득한 배우들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요! 단역 주제에! 그리고 매니저 주제에! 감독과 주연 배우를 기다리게 하고 말이지! 자자! AG 엔터 김무명 팀장의 벌주로 회식을 시작합시다!”


한혜연 감독의 농담에 모두가 웃으며 술잔을 채웠고, 송지석이 맥주잔에 따라준 소주를 내가 원샷하는 것으로 회식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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