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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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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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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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ONOR CLUB




DUMMY

1화


#7월말/폭염속 강남


-꺄아악!


오전 8시. 강남역 사거리.

모든 것들이 며칠 전부터 보아오던 것처럼 익숙한 모습들이었다.

늘 높게 그 자리에 서 있는 화려한 건물들과

그 사이로 난 좁은 길 위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그런 아침이었다.


언제나처럼 빽빽이 붙어 출근하는 사람들 속으로

한 나체의 여자가 사람들 속을 헤치며 힘없이 걷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을 헤치며 걷는다기보다는

그녀가 가까이 오면 사람들이 몸을 피해 그녀에게 길을 터주는 모습이었다.


길게 늘어뜨려져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린 치렁치렁한 머리와

오전임에도 찌는듯한 더위 탓에

벌거벗은 여자의 온몸은 땀방울이 맺히기 무섭게

아스팔트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서울 중심의 빌딩 숲 한복판에서

그런 여자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무척 충격이었다.


얼굴까지 가려버린 앞머리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긴 머리의 여자는

몸 이곳저곳 퍼렇게 잔뜩 멍이 들어 있었다.


양 무릎은 살갗이 벗겨져 피가 맺혀 있었는데

마치 오랜시간동안

거친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양쪽 사타구니 안쪽 허벅지에서 시작해 발등까지에는

붉은 피가 흐르다 말라버린 것처럼

검은 핏자국이 문신처럼 굳어있었다.


그녀는 초점 없이 겨우 눈만 가느다랗게 뜬 채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지만

그녀의 한 손에는 날카로운 흉기가 들려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보이는 그녀의 힘겨운 모습과는 달리

흉기를 쥔 그녀의 손은 굵은 힘줄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흉기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 끝에서는 붉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 위를 천천히, 천천히 걷고 있었다.


좌우 양쪽 차선으로 바쁘게 달리던 많은 차량들이

그녀의 앞에서 순간 놀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여기저기서 욕설과 함께 크락숀이 울렸고

강남역 한복판은 그녀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여자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저마다 그녀에게서 조금씩 떨어져서는

그녀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들을까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머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정말 왜 저래? 창피하지도 않나?


놀란 사람들이 그녀 주위를 둘러싸고 제각각 한마디씩 하고 있던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찰차는 횡단보도 중간쯤 걷고 있던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급하게 멈춰 섰다. 곧이어 두 명의 경찰관이 차에서 나와 신속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 경찰차 뒷좌석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경찰은 어딘가와 계속 무전을 주고받으며 곧 그 자리를 떠났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처럼 또다시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치장


강남역에서 떠돌던 벌거벗은 여자는 파출소 안에서 파란 모포로 벌거벗은 몸을 가리고 유치장 한쪽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양 무릎을 두 손으로 엇갈려 쥐고는 무릎 사이로 머리를 처박은 채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파출소로 끌려온 여자는 끌려온 직후부터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양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벌써 몇 시간째인지 얼굴을 들지 않았다.


-모발하고 혈액 보낸 건, 아직인가?


여자를 유심히 살피던 차반장이 옆에 같이 있던 정호에게 물었다.


-아, 네. 반장님. 국과수가 워낙 일이 많이 밀려서 당장 검사 결과를 받아보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반장님도 아시다시피 거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몇 달 못 버티고 다들 나가버리는 바람에 하국장이나 권국장만 피보고 있잖아요? 뭐 새로 사람을 채용한다는 얘기도 없고, 그렇다고 요새 젊은 애들이 그런 일 뭐가 좋아서 지원하겠어요? 죽은 사람 배 갈라 열어보고 손 집어넣어서 만지작 거리고...,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저한테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런 일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꺼에요. 여하튼 급한 거 먼저 끝내고 연락해 준다니까 도리없죠 뭐, 기다리는 수 밖에.


정호는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다. 차반장은 벌써 며칠째 모텔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조사중이었다. 피의자는 인적이 드문 지방 모텔에 투숙한 후 다량의 마약을 흡인한 채 환각 상태에서 모텔 여주인을 살해하고 3~40개로 된 모텔방을 한층 한층 차례차례 돌며 투숙객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모텔 주인을 포함해 그에게 살해된 사람이 4명이나 되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차반장이 강력계 중에서도 마약사범을 전담하기 때문에 피의자에게 누구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마약사범이 투약 중 형사들의 급습으로 검거되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연쇄살인에 관여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욱 형사들을 곤혹스럽게 한 건 그 피의자가 20대의 젊은 여자라는 것이었다. 살해된 사람들은 모텔 여주인을 제외하고는 30대에서 60대까지의 남성들이었는데 도대체 연약한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들을 살해할 수 있었는지 수사는 더이상 한 발짝도 진척이 되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있었다. 피의자는 여전히 입을 닫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음, CCTV엔 명성호텔 사거리에서부터 찍힌 것 같은데, 호텔 내부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찍힌게 없고, 이거 난감하네.


차반장은 여자의 온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몰골을 보아하니 약도 심하게 한 것 같은데, 국과수에서 빨리 결과를 보내줘야 퇴근을 하지. 이건 뭐 집에 못 들어간 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군.


차반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중에도 그의 시선은 여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봐요? 이봐요 아가씨? 정신 좀 차려봐요! 고개 좀 들어봐요 아가씨? 내 말 들려요?


차반장은 유치장의 쇠창살을 세게 잡고 흔들며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까지 아무 미동도 없던 여자는 몸을 조금 움찔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천천히 들어 차반장을 쳐다봤다.


-물, 물 좀 주세요.


여자는 힘겹게 입을 열더니 물을 달라고 했다. 차반장은 몸을 돌려 뒤쪽에 있던 정수기에서 서둘러 찬물을 한 컵 받아 창살 사이로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힘겹게 손을 뻗어 물컵을 받더니 천천히 입술을 적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파출소 안은 물을 마시는 여자의 목 넘김 소리로만 가득찼다. 파출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여자를 주시했다. 물을 다 마신 여자는 컵을 쥔 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짧게 –후-하고 한숨을 토했다.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린 듯 했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차반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물을 마신 여자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파출소 벽에 삐딱하게 걸려있던 달력에 시선을 멈췄다. 무표정하게 달력을 보던 여자가 차반장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죠?


말하는 것이 힘겨운 듯 여자는 말을 한번에 다 하지 못했다.


-24일이요.


차반장은 주머니 안에 있던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요? 아가씨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던거에요?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여자는 차반장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 새끼는 죽었나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거친 말에 차반장은 순간 당황했다. 차반장은 여자의 말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누구를 말하는 거죠?


차반장은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에 있던 전화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얘기해 보세요. 내가 도와줄게요.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아가씨를 도울 수 있을 거에요.


차반장은 침착하게 여자의 대답을 유도했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은 하지 않고 한참을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9층이요. 9층에 있던 그 버러지 같은 새끼들 말이에요.


침묵을 깨고 여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9층? 명성호텔 말인가요?


차반장은 아침에 보았던 CCTV가 떠올라 여자가 명성호텔 9층을 얘기하는 거라 짐작했다.


-네.


긴 호흡으로 여자가 짧게 대답했다.


-아가씨, 명성호텔 사거리에서 찍힌 카메라에는 아가씨 모습이 발견됐지만 명성호텔 내부에서 아가씨 모습을 찍힌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아가씨가 어제 명성호텔에 있었다는 건가요?


차반장의 말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무표정하게 차반장을 쳐다보았다.


-어젯밤 8시부터 그곳에 있었어요. 903호 말이에요. 땀냄새로 가득했던 그 방이요. 버러지 같은 놈들이 날 둘러쌌죠. 새벽이 올 때까지 말이에요.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여자는 차반장을 쳐다보고 있었고 여자의 두 어깨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반장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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