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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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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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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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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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HONOR CLUB




DUMMY

# 특수부


경찰청 산하 별정 조직인 특수부는 상시로 운영되는 부서는 아니었다. 특수부라는 큰 틀은 유지하되 사회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가 새로 생겼다가 사건이 종결되면 다시 없어지는 구조였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특수부를 구성하는 인력은 상황에 맞게 교체되곤 했다.


-크흠, 지창식만 빼고 공지를 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요?


특수부장 원태인은 쇳가루가 한가득 들어 있는 듯한 목소리로 파수꾼을 담당하는 강태호에게 물었다.


-강남역 사건 때문입니다.


-강남역? 어떤 사건이죠?


-나체로 강남역을 활보하다가 연행된 여자가 있었습니다. 모발에서는 러시아제 신종 마약이 검출 되었구요.


-그래서요?


-여자 이름이, 지경원입니다. 지창식의 딸이죠.


원부장은 아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지창식을 제외하고 공지를 할 만한 이유라도 된다는 건가요?


-러시아제 신종 마약은 묵호를 관리하는 동우파에 의해 국내로 유통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동우파는 똠방파와 더불어 국내 마약 유통시장의 80프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국내 마약 루트는 이 두 조직이 모조리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겁니다. 여기, 이걸 보십시오.


태호는 원부장에게 사진을 몇 장 보여 주었다.


-묵호의 파수꾼들이 보내온 사진입니다. 여기, 이 사람이 호란그룹의 총수 구진호 회장입니다. 구회장이 두 조직의 보스와 수시로 만나는 장면이 여러 파수꾼들의 사진에 동시에 찍혔습니다. 구회장이 두 조직의 자금줄이라고 의심할 만한 명백한 정황사진 입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원부장은 안경테를 손으로 잡아 조금 올리더니 책상 위의 사진을 집어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크흠, 이 사진만 가지고는, 이것 외에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네. 아직까지는 구회장이 두 조직의 자금줄이라는 심증만 있을 뿐,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책상위의 사진을 훝어 보던 원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유수의 기업 총수들과 전현직 장관들의 사조직인 HONOR CLUB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전현직 장관은 물론이고 교육계와 종교계를 가리지 않고 HONOR CLUB의 멤버들은 이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저희 특수부가 HONOR CLUB의 존재를 파악해 전담 수사반을 두고 조사를 시작한 지도 이제 8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눈에 띨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해, 저희 팀 모두 고통스럽게 지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원부장은 HONOR CLUB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태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 마약수사반에서 붙잡아 두고 있는 지창식의 딸, 지경원이 바로 그 단서입니다.


원부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HONOR CLUB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경찰청 내에서도 극소수였다. HONOR CLUB의 존재가 암암리에 소문으로 떠돈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신망이 있는 다수의 은퇴한 리더들이 모여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로만 알려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퇴임한 전임 장관들이나 새로 임명된 고위 공무원들까지 그 조직의 멤버라는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그들이 이제 이권에도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지, 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생겨났다. 경찰과 검찰은 힘을 합쳐 그들을 견제할 필요를 느꼈다. 힘이 강대한 이익집단이 생겨나는 것은, 이미 힘을 가진 경찰과 검찰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은 조직 내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HONOR CLUB을 전담 수사하는 특수팀을 꾸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인력과 물량이 총동원돼 그들의 흔적을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HONOR CLUB의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나중이 되어서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지경원이 차반장에게 놀라운 진술을 했습니다.


-대체, 어떤 진술이었습니까?


-지경원은 사설 감옥에 상당 기간 갇혀 지내면서 모진 학대와 성적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지경원은 사실 연예인 지망생이었습니다. 불러주는 곳 하나 없는 연예인 지망생들은 여러 방송국을 기웃거리며 오디션을 보는 게 일이었죠. 오디션에 합격해야 배역을 따낼 수 있었고, 배역을 따내야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날도 지경원은 방송국 대기실에서 오디션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헤븐이라는 술집의 정은수 실장을 만나게 됩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정은수에게 지경원은 그만 유혹당하고 말았죠.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정은수를 찾아갔지만,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정은수는 큰 배역을 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경원이 자신을 찾아온 첫날, 어딘지 알 수 없는 사설 감옥으로 보내버립니다. 그곳에서 가혹한 폭력에 길들여진 지경원은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리로 된 창 밖으로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경원은 황홀한 듯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들을 관찰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관찰자들은 감옥을 정기적으로 찾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부장이 갑자기 손을 절래절래 흔들었다.


-크흠, 그만, 잠깐만 쉽시다. 도무지,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군요.


원부장은 태호의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사설 감옥이나 학대, 이런 끔찍한 단어들은 영상 창작자들의 진실 추적이라는 야바위판의 단골 소재가 아니었던가!


-거기서 지경원은 HONOR CLUB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태호는 차분하게 HONOR CLUB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사설 감옥의 주인이 HONOR CLUB의 멤버라는 얘기는 그곳 관리인으로부터 지경원이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아마 지경원과 오랜 시간 같이 지내 경계심이 소홀해진 관리인이 실수로 내뱉은 말인 것 같습니다.


-크흠, 그 사설 감옥의 주인이 HONOR CLUB의 멤버라는 건, 그곳 관리인에게 직접 들었다는 지경원씨의 진술밖에 없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물증이라도 있습니까?


태호의 모든 추측은 오직 지경원의 진술에 의지한 것이다. 원부장은 그보다 더 실질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옥에서 지내던 지경원은 어느 날 승합차에 태워져 명성호텔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감옥으로 찾아왔던 관찰자들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고, 관찰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되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이태석이라는 남자가 자신을 데리고 9층, 903호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강간을 당하던 중, 테이블 위에 있던 가위를 집어 이태석의 몸을 수십차례 찔렀다고 진술했습니다.


강태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강태호는 지경원이 감내해야 했을 참혹한 린치가 떠올라 말을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경원의 진술과는 달리 명성호텔 내부의 어떤 CCTV에도 그날의 영상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지경원이 진술한 903호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였고 수십차례 찔렀다고 자백한 이태석의 시신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지경원씨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겁니까?


-대신, 지경원의 모발에서 X150이라는 러시아제 신종 마약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지경원이 납치된 날부터 놈들이 계속해서 주사한 걸로 보입니다.


원부장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냈다.


-마약에 중독되면 환청이나 환상을 경험한다고 하던데, 그 부분에 대한 의견은 없습니까?


-지경원의 진술은 환청이나 환상이 절대로 아닙니다.


태호는 힘을 주어 주장했다.


-지경원이 찔렀다는 이태석은 호란그룹 구회장의 개인 변호사입니다. 구회장의 대학 동창이기도 하구요. 지경원이 강남역에서 연행되던 그 날 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이태석의 행방을 포착한 파수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태석은,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책상을 두드리던 원부장은 더 이상 손가락을 두드리지 않았다.


-지경원의 모발에서 발견된 X150은 러시아제 신종 마약입니다. 바로 동우파가 관리하는 물건이죠.


원부장은 책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사진을 다시 집어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동우파라, 태호씨의 말 그대로 라면 동우파의 자금줄이 호란그룹의 구회장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그럼, 지창식에게 작전 지시를 하지 않은 이유도?


-네, 맞습니다. 지창식은 이번 작전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의 딸이 너무 참혹하게 망가졌으니까요!


원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회장도 HONOR CLUB의 멤버이겠군요.


-구회장 뿐이 아닙니다. 그날 관찰자들 중에 지경원이 아는 얼굴도 있었습니다. 현직 국방부 장관인 최영준 장관입니다.


원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강태호의 설명을 들을 수가 없을 만큼 원부장은 심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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