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29)
75.
눈 감은 병준이,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숨은 고르지만,
감은 눈거풀 뒤 눈동자는,
이리저리 쉴새없이 움직인다.
간호사가 닥터에게 묻는다.
"또 약 넣는 겁니까?
벌써 5대 짼데요 . . .
이 이상은 위험합니다."
"괜찮아.
우린 필요한 기억만 알아내면 되는 거니까.
그 뒤에는 죽어도 상관없어.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또다른 주사를 준비하는 달그락 소리에,
병준의 눈동자는 더욱 격렬히 움직인다.
기괴한 잡음이 커지며,
기다란 섬광이,
병준을 덮친다.
76.
지금 지구의 모습과 같은,
자연 파괴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죽어서 해변으로 밀려오는 물고기들.
썩어 말라가는 강물.
그곳을 계속 채우는 폐수와 쓰레기.
석양을 배경으로,
높은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들과 함께,
닥터의 비장한 연설이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문명에 이별을 고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안이한 생각을 후회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져 버렸기에,
이 별 또한,
우리를 버렸습니다."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며,
연설이 이어진다.
"이 별은 더 이상,
우리의 별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기엔,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별을 떠납니다."
이 모든 자멸의 장면에서 멀어져가면,
대기권을 벗어나,
조용히 자전하는 붉은 행성,
[화성]이 있다.
화성의 저 먼 뒤로,
푸르게 빛나는 지구의 모습이,
자그만 점으로 나타난다.
"정든 고향을 떠나,
모든 것이 새로운,
저 원시의 별로 이주합니다.
우리의 계획이 성공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문명의 모든 기록과 유산과 전통을 가지고,
우리 [시스템]은,
남겨진 여러분들에게,
우리 문명의 존속이란 희망을 남기며,
스스로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실험]에 자원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남겨진 여러분들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77.
병준의 눈앞을 감싸는 밝은 빛 속에,
아수라가 서있다.
하얀옷에 감싸인,
그 옛날,
[아리안]의 모습이다.
조용히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얼굴로,
병준을 바라보고 있다.
병준의 목소리가 원망하고 애원한다.
"아리안 . . .
난 널 믿었어 . . .
나와 함께 간다고 했잖아 . . .
[방주]에 네 자리도 만들었어.
왜 . . .
나와 함게 가지 않는 거야 . . . ?"
아수라의 모습이,
빛 저 너머로 천천히 사라지며,
말한다.
"당신을 볼때면,
나는 미소를 지어요.
난 아직도 당신을 걱정해요.
나는 울어요.
모든 것이,
내가 가야할 길로 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죠.
나는 원하던 걸 가지고 있어요.
내가 알고있던,
당신의 모습이죠.
내가 사랑했던.
하지만,
아직도 당신은 나를 슬프게 해요.
당신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거라 말했죠.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저 너머로는,
영원히 다다를 수 없어요.
하지만,
난 아직 당신을 걱정해요.
당신이,
조용히 미소지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수라가 저 멀리 빛속으로 사라진다.
"당신이 미소지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 . .
당신이 날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지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 . ."
암흑 속에 떠 있는 화성의 중심에서,
한줄기 빛이 치솟더니,
이내 빛은,
화성의 온세상을 휩싸안는다.
다시 펼쳐지는,
아무 것도 없는 암흑의 공간에,
1975년 8월 21일 지구를 떠나,
화성을 향한 긴 여정을 마치려는,
탐사선 [바이킹]이,
모습을 드러낸다.
묵묵히 나아가는 항로의 바로 저 끝에,
더욱 붉은 색으로 변한,
화성이 나타난다.
1976년 7월 20일.
탐사선 [바이킹]은,
[지구문명] 역사상 최초로,
화성 표면에 착륙한다.
아수라가 말했다.
"이곳에 남겨진 우리들을 잊지 말아요."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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