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격(武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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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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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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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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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DUMMY

무녀가 급히 칠성칼을 뽑아들었을 때 다시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안그래? 누이?"


몸이 꺾여 쓰러진 마희 뒤로 천관이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법경이 너!!"

"법경이라니 천관님이시지. 아직도 위계질서를 배워야 할 만큼 모지리더냐!!"


천관이 무녀의 손에 들린 칠성칼을 조각내며 다가왔다.

무녀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을 듯 눈에 힘을 주었다.


"어쭈, 네 년이 눈깔에 힘을 주면 뭘 어쩌겠다는게냐?"

"법경이 너 이놈!"


천관이 순식간에 무녀 앞으로 다가와 무녀의 코 앞에 자신의 턱을 치올려며 말했다.


"그 주둥이 조심하렸다. 도대체가 너는 나의 인내심을 너무도 자극하는구나. 내 분명 더는 봐주지 않겠다 했으렸다?"

"봐주지 않아? 누가 누굴 봐주지 않아? 네가? 나를? 헛"


무녀가 실성이라도 한 듯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당돌한 무녀의 반응에 천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네년과 피만 안섞였어도 이미 오래전 네년은 지옥불에 내 손으로 빠뜨렸을 것이다."

"지옥불? 내가 할 말이다. 법경이 네놈이 내 동생만 아니었으면 이미 내 손에 지옥으로 보냈을 것이다."


천관이 무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홍선경! 오늘이 네년 제삿날이자. 너와의 사사로운 인연이 끝이 나는 날이다!"

"제삿날? 아주 자주 듣던 소리구나!"


무녀의 대꾸에 천관이 아주 짧게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제삿날? 그 말을 내가 먼저 했더냐? 내가 먼저 살생을 시작했더냐?"

"그래, 네 놈 인생 불쌍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닥치는대로 맘대로 죽여도 좋다 누가 그러더냐? 장군님께서 그래도 좋다시더냐? 부처님께서 그리해도 괜찮다시더냐?"

"입 닥치거라. 내 그래도 네년은 형제로 생각해 수십년을 참고 봐줬느니라."

"봐줘?"

"여덟 살 어린 아이였느니라!"

"그래서 그 여덟살 아이가 죽었느냐? 그 아이가 그날 죽인 무녀 수가 자그마치 스물이 넘는다!"

"그럼 죽이려는 데 아무 잘 못도 없이 순순히 죽었어야 하느냐?"

"그런말이 아니지 않느냐. 네 놈 능력이면 죽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들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었다."

"어린 아이였다!"

"어리다 하여 모든 것이 용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을 모시는 제자다!"

"그리 잘난 너는! 몰랐다하면 다 용서되는 것인 줄 아느냐?"

"그래서. 그래서 너를. 너를 지키고자 하였던 것 아니냐. 누이로 누이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그 죄로 너를 보살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느냐?"


천관의 눈동자가 누그러지자 무녀가 천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법경아. 그만 하여라. 이제 이세상에 피붙이는 너와 나 둘이다. 더는 죄짓지 말아야 한다. 나와 신께 죄 지음을 고하고 벌을 받자."

"왜!!!!! 나는 잘 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벌을 받아?"


천관의 모습이 스물 몇 살 정도로 애띤 청년이 되었다.

무녀가 그런 천관의 볼에 손을 댔다.


"법경아. 너 불쌍한 것 내가 다 안다. 너 억울 한 것 내가 다 안다. 누이가 다 짊어 질 테니. 그만 하자구나."

"네가 뭘 짊어져? 나 여덟에 어미가 죽이려고 이모들과 작당하였을 적에 너 어디에 있었느냐? 수경원에서 수련하느라 몰랐지 않느냐? 내가 네게 달려갔을 때 너 아무것도 모르고 웃었다. 그 이후로 몇번을 어미에 의해 죽을 뻔했다. 그때마다 넌 몰랐다. 나는 무엇을 그리 잘못하여 어미가 번번히 나를 죽이려 들어?"

"그래. 그래. 네 말이 다 옳다! 네 말이 다 맞다! 어머니의 잘못이다. 또 그런 계략을 모른 아둔한 이 누이의 잘못이다."

"스물 둘에 처음 네가 어미의 흉측한 계략을 눈치 채고 내게 달려왔을 땐, 슬프도록 기뻤다. 따스했다. 언제나 누이는 내게 따스했다. 유일하게 나를 보듬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아니다. 지금의 너는 나의 앞길을 막고 나의 고통을 이해하질 못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막는 것이고 알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지 말고 함께 해. 누나가. 내 편 해줘."


동생의 말에 무녀가 주르룩 눈물을 흘렸다.


"아아 불쌍한 내 동생. 내 아우. 이를 어째."


무녀의 눈물에 천관도 두 눈이 눈물로 그득해졌다.

무녀가 천관을 끌어안고 깍지를 꼈다.


"누이는 언제나 네 편이다. 옴마니반메훔."


무녀가 불교의 기도문이자 모든 죄악이 소멸되고 공덕이 생겨난다는 뜻의 옴마니반메훔을 외치자 천관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두 눈에 독기가 돌았다.


"이 미련한 년이 끝내!!!!!"


천관이 무녀를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자 무녀가 공중에 붕 떠올랐다.

천관의 상투관에 달린 황금 방울이 귀를 찢을 듯 흔들리며 노란 빛을 내자 무녀의 몸에서 양기가 빠졌다.

이내 무녀의 두 눈은 영혼을 잃고 쾡해졌으며 피부는 가죽에 간신히 달라붙을 정도로 매말랐고 풍성하고 윤기나던 검은 머리는 순식간에 파뿌리처럼 하얗고 푸석 해졌다.


"아···아···아···"


무녀는 꺼칠한 소리만을 가까스로 냈다.

분노에 사로잡힌 천관은 그것도 모자라다는 듯 닥치는 대로 신당을 휘저었다.

그 바람에 신당 안에 있던 마희들도 산산히 찢겨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네 소원대로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여라.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입닥치고 기도나 하란 말이다!"


천관이 무녀를 향해 독설을 내뿜고 복도로 들어서자 어린 소녀 둘이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천관이 잠시 입꼬리를 실룩 거렸다.

한 아이가 탱화 앞을 가로 막고 섰다.


"신녀님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괴롭히지 마십시오!"


아이의 말에 천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옛날 자신의 어미가 자신을 죽이려던 어느 날, 수십 번째 도전이었던 그 어느 날, 누이가 달려와 어미에게 했던 말이었다.

'법경이는 아무런 죄가 없으니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러고도 어미입니까?'

어미는 언제나처럼 천관에게 졌고, 어미와 동생의 싸움을 지켜봐야했던 누이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다.

천관은 아이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곁에 있던 다른 아이는 나서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굳어져 벌벌 떨기만 했다.


"힘이 없으면 나대지 마라! 마음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관은 작은 나무 상자를 펼쳐 탱화를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흔들었다.

손가락을 타고 물결 같은 바람이 일더니 탱화를 한장씩 떼어냈다.

탱화 속 산신과 사천왕이 그대로 천관의 작은 나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상자 안으로 들어서며 진묵의 낙관이 떨어져 나갔다.

상자를 탁 소리가 나게 닫은 천관이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둘 다 고개를 숙였다.

숙인 얼굴 아래로 굵은 눈물 방울이 뚝뚝 복도 위로 떨어졌다.


"겨우 울기밖에 못하는 년들. 쯧."


천관은 혀를 차고 안개처럼 사라졌다.

아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당으로 뛰어들어갔다가 피칠갑을 한 방안에 한번, 귀신처럼 변해버린 신녀의 모습에 두 번 기함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신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진평 무녀 신당]


"그 아이는 절 죽이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아이의 유일한 약점은 저일 것입니다."

"그 아이··· 천관의 누이시요?"


겸주 유사의 질문에 무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홍선경이라고 합니다. 선대 천관의 딸이자 현 천관인 홍법경의 누이입니다."

"천관에게 누이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만."

"예, 무녀들은 모두 가족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누이이고 모두가 이모이고 어미입니다. 그러나 천관은 다릅니다. 천관의 대를 잇는 것은 천관이 직접 낳은 자식들 뿐이지요."

"천관에게 딸이 없기에 아들이 천관이 된 것이 아닙니까?"

"선대 천관 아니 저희 어머니에게는 네명이 딸들이 있습니다. 그중 막내딸이 저입니다. 저와 법경이만 현 천관만 아버지가 같고 나머지 언니들은 아버지가 다 다르지요."

"딸이 넷이나 되는데 어찌 막내 아들이 아니 아들은 본래 천관이 될 수 없질 않습니까?"

"집안의 부끄러운 이야기라 전부를 들려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리 되었습니다."

"그럼 천관은 어찌하여 아비가 같은 누이를 죽이려 하는 것이오?"

"죽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무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게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진묵 대사의 탱화 없이는 위험에 처하는 걸 뻔히 알며 탱화를 없애고 진기를 빼앗아 갔습니다. 죽이려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라 설명해야 합니까?"

"법경이라 아니라면 탱화도 필요가 없겠지요. 일찍이 진묵 대사께서는 이년을 불쌍히 여겨 동생으로부터 보호해주실 요량으로 탱화를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갇혀 지내기는 해도 동생의 업장을 소멸하는 기도라도 올리며 살아왔구요. 지난번처럼 막을 수 있을 일들은 막아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 형제를 구한 것도 같은 의미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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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 43장 : 세자 22.08.07 49 1 9쪽
42 제 42장 : 비극 22.08.05 46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6 1 9쪽
»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2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3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5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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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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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5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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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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