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킬러, 그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폐인인댸스
작품등록일 :
2022.05.23 13:46
최근연재일 :
2022.07.17 13:04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548
추천수 :
1
글자수 :
168,826

작성
22.06.05 11:19
조회
57
추천
0
글자
13쪽

12화 균열

DUMMY

큰일 났네... 그 장면 봤으면 어쩌지...


둑 아랫길이었고, 어두운 나무그늘이었으니 어쩌면 못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봤을 가능성도 있다. 유나연이 누군지는 몰라도 어쩐지 느낌이 별로다.


그런 얘기를 왜 단톡방에서 하는 건데?


"그게 너 맞냐? 나연이는 맞다고 확신하던데."

"아... 그 그게 하 한강이었대? 며칠 전에?"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강변이었다더라. 며칠 전에. 너 같은 애가 흔하지도 않은데, 잘못 볼 수가 없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건 칭찬이야 비난이야?

그런데 계속 부인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 그 그게 그때였나 보다. 며칠 전에 치 친척 아저씨 만나가지구... 그 그때 봤나보네..."

"친척? 누구?

"어? 어 그... 있어... 외가 쪽... 친척..."


내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간다. 친척을 들먹이다니 이런 바보 같은.


"난 너 친척 어지간히 다 아는데... 친척을 한강공원에서 만나?"


"아 맞다! 그 그때가 아니라 다른 아저씬가 보다. 내 내가 밥먹구 소화가 잘 안돼서 걸으러 갔거든? 그 그때 어떤 아저씨가 나보고 모델 알바해볼 생각 없냐구 명함 주고 그랬거든? 근데 내가 싫다 그랬단 말이야? 근데 그 아저씨가 계속 따라오면서 진짜 해 볼 생각없냐구 막... 그 그랬었어. 그래, 그때 걔가 날 봤나 보다."


"..."


해일이 물끄러미 내 눈을 들여다본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눈빛이 언뜻 비친다.


차갑고 냉담한.


내가 정상인일 때 가지고 있던 눈빛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의 냉담함. 차가움.


"왜 그래? 정말인데..."


한동안 음료수 컵만 만지작거리던 해일이 입을 열었다.


"술 한잔할래? 오랜만에."

"어... 그 그래..."


S벅을 나와서 근처 이자카야로 갔다. 특이하게 와인과 사케를 같이 파는 곳이다.


"저녁 안 먹었지? 안주로 배 채워."


해일은 사케를 시키고 안주로 닭고기 샐러드와 전복 냉채, 그리고 소고기 스시를 시켰다. 초밥 위에 소고기를 얹는 건 처음 봤다.


음식은 맛 있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해일은 안주는 손도 안대고 연거푸 술잔만 비웠다.

얜 왜 이리 폼을 잡는 거야?


"안주 안 먹어? 맛 있는데..."

"연주야, 미안한데, 나연이 불렀다. 올 때 다 됐어."


"어? 왜?"


"나연이 말 한 번 들어보려고. 거짓말 했단 봐라. 이 계집애 내가 혼구멍을 내 줄거다."


"...굳이 걔까지 부를 필요가 있어?"


나도 사케 잔을 든다.


아니 걜 왜 부르지? 날 망신 주려고 이러나?


오분도 안 돼서 우리 테이블로 어떤 여자가 왔다.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에 청자켓을 걸쳤는데 큰 키에 화사하고 예쁜 얼굴이다. 날 보더니 활짝 웃으며 고개를 까딱한다.


"어머, 연주야 오랜만이다. 몸은 이제 괜찮아?"

"어 으응..."


나연은 천연덕스럽게 해일이 옆에 앉는다. 마치 해일의 옆자리만 비어있어서 할 수없이 거기 앉는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왔어?"


해일이 몸을 옆으로 살짝 민다.

살짝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작전에 차질이 생겼다는 얼굴이다. 나와 나연을 나란히 앉혀놓고 심문해야 하는데 마치 둘이서 나를 추궁하는 모양새다.


나연의 사케가 나왔을 때 나는 한 잔을 더 부탁했다.


우리는 잠시 신변잡기 이야기를 건성으로 나누다가 해일이가 세번째 잔을 입에 털어넣고 진지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오늘 나연이를 부른 건 말야. 연주가 할 말이 있어서야. 그렇지 연주야?"

"어?"


"나연이 왔으니까 연주가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줘. 나연이 오해 안하게. 안 그럼 우리과 전체가 오해하게 생겼거든."


"아, 아니, 뭐 그런 걸로 오해를 해..."


나연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 해일을 옆에서 째려보고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아련한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아하, 저 기집애 해일이를 좋아하는구나.


야 뭐야 니들?


"그래 연주야. 그거 별거 아니지? 그날 밤에 어떤 아저씨랑 같이 있었던 거 말야."


나연이 짐짓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면서 나에게 말한다.


"아 아니 같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아저씨가 명함 주면서 따라왔었던 거야."

"명함? 왜?"


"나더러 모델 알바 하지 않겠냐구 그 무슨 모델 에이젼시라던데. 피팅모델 이런 거겠지?"

"모델 에이전시? 아니 그 밤중에 한강 산책로에서 모델 에이전시가 명함을 줘?"


"그러니까 별일도 다 있어 그치? 어 맞다 그거 내가 받아서 넣어뒀거든?"


나는 아까 낮에 넣어놨던 명함을 백에서 찾아본다.

한구석에 있다.


"여기 있어."


나연이 냉큼 받아서 살펴본다. 그러더니 입을 삐죽이면서 김빠진 목소리를 낸다.


"흥, 그 아저씨도 웃기네."

"완전 미친 자식이잖아!"


해일이 소리친다. 해일이 얼굴이 아까와는 비교 안되게 밝아졌다.


휴... 이걸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이번엔 내가 앙갚음할 차례다.


"근데, 나연이 넌 왜 단톡방에다 말한 거야?"

"어?"


에이전시 명함을 해일과 돌려보며 시시덕대던 나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니? 쌍년.


"나한테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냐?"

"물어봤지."


나연이 술잔을 탁 내려놓고 눈을 치켜뜬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눈빛이다.


"잘 있냐고도 물어봤고. 답이 있어야 말이지."

"아..."


카톡을 확인해보니 나연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이걸 읽지 않았구나...


"그래도, 내 대답을 먼저 들어보는 게 순서 아니니? 내 프라이버시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어?"


"별거 아니잖아? 그냥 에이전시에서 명함 준 거잖아?"


"어... 그 그야 그렇지..."


"우리 다 네 근황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아니? 사고 나서 수술까지 했다고 하지, 퇴원했다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잠수타고 있지. 네 근황 궁금해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지 안다면 그런 말 못하지."


"아..."


"네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만큼 주변 사람에게도 신경 좀 쓰지 그래?"


"..."


나는 해일을 쳐다본다. 해일은 내 눈길을 슬쩍 피한다.


아 씨... 그런 말은 해일이 나한테 미리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말문이 막혀 사케잔을 비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세 잔째.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연이 명함을 들고 헤실헤실 웃으며 내가 여기다 전화해 볼까? 이러니 해일이 따라 웃으면서 그래 함 해바라 너 해도 될 듯? 이러고 있다.


미친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사케 잔술을 두 잔이나 마셨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너무 취기가 갑자기 오른다.


아 나 생리중이구나. 생리중에 술 마시면 빨리 취한다더니.


얼굴에 열이 올라 괴롭다. 차가운 수건 같은 것 없나? 나는 주방으로 간다.


주방에서 차가운 수건을 얻어서 화장실로 향했다.

얼굴에 수건을 얹고 한동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찬물을 틀어놓고 손과 팔에 끼얹으니 열이 좀 식는 것 같다.


최성구는 지금 뭐 할까?


퇴근했을까?


나는 충동적으로, 순전히 변덕으로 가득 차서, 최성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 안녕하세요

- 뭐 하세요?


순식간에 사라지는 1.


그런데 일분이 지나도, 일분 삼십 초가 지나도 답이 없다.


뭐야 읽씹이야?


이 사람은 또 왜 이래?


2분 지났을 때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가 그닥 보고싶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나연과 해일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둘은 내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키스 삼매경에 빠져 황홀한 언덕을 오르고있다.

나연이 밀어부치는 모양새고 해일은 엉거주춤한 자세였지만.


해일이 쟤는 이러려고 나연이 불러냈나?


뭐, 솔직히 둘이 잘 어울린다.


나는 취한척하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둘은 화들짝 놀라 떨어진다.


왜 좀 더 즐겨보시지요 두 분.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 화면에 카톡 알림이 주르륵 뜬다.

최성구다.


최성구 - 안녕하세요!!

- 방금 집에 도착했는데 연주씨 톡 보고 심쿵 했습니다 (꾸벅꾸벅)

- 연주씨는 뭐 하세요?


나 -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술 마실래요?


최성구 - 거기가 어딥니까! 득달같이 달려갑니다


"넌 술 먹다 말고 웬 카톡질이냐?"


해일이 아무일 없다는 듯 말간 표정으로 묻는다.

나는 해일을 노려본다.


"카톡질? 넌 연애질이고?"


"뭐, 내가 뭘?"


"응 나도 연애질 한 번 해볼까 싶어서."


"너 왜 그래?"


"아니 하던 거 계속 하라고. 나 신경쓰지말고."


"연주 너 괜찮아?"


나연이 해일을 거들고 나선다.


"아 둘이 하던 거 계속해. 난 상관 말고."


"너 취한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마셔. 술도 약한 애가."


술잔을 들어올리는 내 손목을 해일이 붙잡는다.


"야 유나연."

"어?"

"너 해일이 좋아하지?"

"어 어?"

"너네들 오늘부터 1일 해..."

"야, 서연주 그만해라. 그만 일어나자.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


해일이가 일어선다. 나연은 앉아서 해일을 올려다본다. 지금 뭐 하는 거냐는 표정이다.


"연주야 너 많이 취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것 같은데 일어나자. 내가 바래다줄게."


해일이 달래듯이 말한다.


"아 싫어. 나 여기서 누구 기다려야 되거든."

"뭐? 누구?"

"그런 사람 있어. 나연이랑 같이 나가든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연이랑 왜 나가."

"그럼 나가지 말고 여기서 하던 거나 계속해 나 귀찮게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 나는 테이블에 엎드렸다.

갑자기 기진맥진이다. 사케 두 잔에 이렇게 취할 수가 있나 싶다.


술집 안의 소음이 가뭇하게 멀어져 어렴풋한 웅얼거림만 남을 때쯤 전화벨이 나를 깨운다.

비몽사몽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귀에 댄다.


"엽... 세요..."


"연주 씨?"


바로 옆에서 남자 음성이 들렸다.


"누구시죠?"


해일의 목소리도 들린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최성구다!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최성구를 본다. 눈앞이 흐릿해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흐릿한 실루엣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최성구가 맞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달려 왔는지 검은 양복바지에 소매를 걷어올린 하늘색 와이셔츠 차림이다.


못 본 사이 키가 더 자랐는지 병원에서 봤을 때보다 더 커 보인다.


"아, 성구 씨..."


벌떡 일어났는데 핑그르르 세상이 회전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최성구의 팔이 내 등을 두르고있다.


"조심하세요, 연주 씨."

"야, 서연주, 너 뭐하는 거냐?"

"어?"


해일이 나를 무섭게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구 씨 여기 앉아요 여기..."


나는 내 옆자리를 탁탁 두드린다.


"안녕하세요, 최성구라고 합니다."

"두 사람 어떤 사이예요?"

"해일이 넌 애가 예의가 없어... 예의가..."

"아, 저, 얼마전에 병원에서..."


"응 내 남자친구!"


내가 최성구 말을 자르고 소리친다.


좌중을 흐르는 정적.


겸연쩍게 웃는 최성구,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이해일, 자못 흥미롭다는 듯 해일과 나와 최성구를 번갈아보는 유나연.


침묵을 깬 건 나연이었다.


"근데 권오중 많이 닮으셨어요."

"무슨! 브랜든 프레이져지. 리즈시절."


내가 받아쳤다.


"아 맞다, 브랜든 프레이져를 더 닮으셨어요. 완전 권오중 상위호환이야."


나연이 깔깔댄다. 기분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웃음이다.


아니 네가 왜 기분이 좋은건데?


해일이 얼굴은 흙빛이다.


"잠깐 나 좀 볼래?"


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툭 건드린다.


"어 왜?..."

"잠.깐.보.자."


해일이 한 자 한 자 힘 주어 발음한다.


"그래... 잠깐만요 성구 씨..."


해일이 내 팔을 거칠게 잡고 술집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너 왜 이래?"


밖으로 나오자 해일이 내 어깨를 잡아 돌려 세워놓고 말한다.


"내가 뭐."

"저 놈은 누구야?"

"말했잖아..."

"저 놈이 네 남자친구야? 나 농담 할 기분 아니다."

"나도 농담 아닌데..."

"미쳤어?"

"..."


"너 사고 뒤로 진짜 이상해졌어. 내가 알던 서연주가 아닌 것 같아."


"..."


이상해졌겠지. 안 이상하다면 그게 이상하지.


"연주야, 오늘은 그만하고 집에 들어가자. 집에 가서 푹 자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최성구랑 헤어지기 싫다. 어떻게 만났는데.


"너 진짜... 진짜... 미친거야? 어!"


해일이 내 어깨를 쥐고 흔든다. 머리가 흔들린다. 아프다.


"너,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나 한테 왜 이래? 네 남자친구한테!"


"이 이러지마..."


나는 주저앉는다.


데쟈뷰. 해일과 차도일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싸이코킬러, 그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화 22.07.17 74 0 13쪽
29 28화 22.07.07 38 0 11쪽
28 27화 해일 22.07.04 35 0 12쪽
27 26화 응징 22.07.03 40 0 11쪽
26 25화 뭘 원해? (4) 22.06.26 48 0 11쪽
25 24화 뭘 원해? (3) 22.06.24 46 0 13쪽
24 23화 뭘 원해? (2) 22.06.22 46 0 13쪽
23 22화 뭘 원해? (1) 22.06.20 42 0 13쪽
22 21화 테니스 클럽 (4) 22.06.19 39 0 16쪽
21 20화 테니스 클럽 (3) 22.06.19 46 0 14쪽
20 19화 테니스 클럽 (2) 22.06.17 42 0 13쪽
19 18화 테니스 클럽 (1) 22.06.16 50 0 13쪽
18 17화 새로운 관계는 22.06.15 57 0 15쪽
17 16화 그래도... 괜찮아 22.06.13 79 0 14쪽
16 15화 그래도 인생은 22.06.11 57 0 13쪽
15 14화 관계의 의미 22.06.11 42 0 13쪽
14 13화 균열 22.06.06 45 0 13쪽
» 12화 균열 22.06.05 58 0 13쪽
12 11화 혼돈 22.06.04 35 0 12쪽
11 10화 혼돈 22.06.03 33 0 13쪽
10 9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1 45 0 13쪽
9 8화 연주의 엄마, 아빠 22.05.30 43 0 13쪽
8 7화 H 22.05.28 49 0 13쪽
7 6화 최성구, H 22.05.27 39 0 12쪽
6 5화 차도일 22.05.26 47 0 13쪽
5 4화 차도일 22.05.25 51 0 13쪽
4 3화 서연주 22.05.24 66 0 13쪽
3 2화 서연주 22.05.23 75 1 12쪽
2 1화 그녀 22.05.23 81 0 10쪽
1 프롤로그 22.05.23 101 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