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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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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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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버킷 리스트

DUMMY

네오비의 휴가 동안 수연은 더 바빠졌다. 얼굴 없는 가수로의 첫 앨범 준비 때문이었다.


회사 입장에선 앨범에 실릴 곡이 완전히 다 나와 있는 상태에서 발매 준비하는 건 처음이었다. 보통의 앨범 발매는 곡을 고르고 컨셉을 잡는 등 일정이 약간씩 겹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준기는 적극적으로 수연의 앨범에 실릴 10곡의 순서, 적절한 컨셉, 뮤직비디오 등의 다양한 기획을 제안했다.


데뷔 수년만의 첫 장기 휴가인데, 휴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열일 중인 준기에게 수연은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내 인생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이뤄질 참인데, 그깟 장기 휴가가 문제야? 휴가는 또 가면 되지만, 이 일은 기한이 정해져 있잖아.”


준기는 앨범 관련 회의 중에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는 수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며 웃었다.


아유, 저 표정.


절대 수연이 이길 수 없는 준기의 표정이었다. 순수하고 올곧은, 단 하나의 이유만이 빛나는 저 표정.


저 표정 때문에 처음으로 준기의 곡을 노래했고, 결국엔 여기까지 와버렸다.


회사에서의 제 입장도 애매해졌다. 수연은 네오비의 공식 통역사이자, 팀 내에서는 해외 투어 관련 업무를 하는 사원이었는데, 이제는 회사에서 관리해야 하는, 심지어 첫 데뷔를 준비시켜야 하는 가수가 된 것이었다.


-세상에, 우리 회사 사원으로 일하다가 가수 데뷔라니! 사원인데 가수가 된 건 아마 수연씨가 처음일거야!


팀원들이 수연의 데뷔를 알게 되고 놀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원으로서 일을 하다가 가수로서 앨범 관련 미팅에 달려오길 여러 번이었다. 물론 회사에 이 일이 파다하게 퍼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며칠 사이 수연은 회사에서 가장 핫한, 가장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그것대로 당연히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면한 앨범 준비가 제일 걱정이었다.


“준기가 제안했던 첫번째 컨셉으로 가는 걸로 확정하면 되겠는데.”


“맞아요, 그게 제일 어울려요.”


“전체적으로 보랏빛 톤으로 해서...”


회의실 안에서 준기와 스텝들 간에 의견이 계속 오가는데, 당사자인 수연은 안절부절했다.


얼굴 없는 가수니까, 음원만 발매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런 미팅만 벌써 수 번 째였고, 미팅 때마다 방송이며 활동을 하는 게 더 좋겠다는 말도 수 십 번 들었다.


회사에서는 준기가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을 다 맡은 신예 솔로 여가수의 데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게 당연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계약서를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작성할 수 있도록 준기가 도왔는데, 데뷔를 도와주는 많은 스텝들은 포기를 몰랐다.


“걱정마. 얼굴 안나오게 이렇게 그림자 드리운 느낌으로 찍을 거야. 신비로운 분위기로.”


준기는 신이 나서 자꾸만 떠들고 수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 과정이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신중하게 결정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준기의 노래들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테니, 그걸 공개하는 게 제 책임이다.


어차피 결론이 똑같다면 지금처럼 회의 마다 어리둥절하거나 망설일 게 아니라 좀 더 열심히 나서야 했다.


수연이 큰 결심을 할 찰나, 노크 소리에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하진이 두 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나타났다.


“제가 늦었나요? 간식 준비해왔는데.”


아, 반가운 우리 오빠!


복잡한 감정에 지친 수연은 하진이 반가워서 너무 밝게 웃다가, 다급하게 헛기침을 하며 제 표정을 관리했다.


하진도 수연을 보고 환하게 웃다가 혹여나 과할까봐 입술을 움직이며 작게 웃었다.


“어, 우리 진형! 아우 사랑이 넘치네.”


고맙게도 준기가 나서서 분위기를 바꾸어주었다.


“그럼, 아우 사랑 당연히 넘치지. 거기다 우리 통역사님 첫 앨범인데 뭐든 도와야죠.”


뒷 말은 안해도 될 뻔 했나, 싶어 수연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사람들은 그저 간식이 와서 살피고 좋아할 뿐 하진과 수연을 주목하지는 않았다.


수연은 간식을 나눠주며 웃는 하진을 보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데뷔하고 첫 장기휴가를 준기와 하진은 수연의 앨범에 신경쓰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미안한 거 말고, 고마운 것만.


하진의 말이 떠올라 수연은 고마움만 가득 표현하기로 했다.


“간식 정말 고마워요.”


수연이 하진의 곁으로 와 간식을 함께 나눠주며 말하자, 하진이 수연을 마주보고 눈부시게 웃었다.


오늘따라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 보였다. 저 반듯한 이마도, 그림같은 눈썹도, 오똑한 코도, 쌍커풀이 없고 큰 눈도, 웃어서 휘어진 입가도 너무 잘생겼다.


가끔은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외모를 가진 하진이었다. 거기다 하진은 그냥 잘생긴 게 아니라 엄청 반듯하게 잘생겼다!


늘 등을 곧게 펴고 있는 자세도 그 반듯한 잘생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요즘 수연은 사람 마음이 이다지도 계속 깊어질 수 있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사랑하는데, 더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신기하다.


그런 수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진이 사람들 몰래 수연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놓았다.


수연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고, 얼굴에는 복숭아빛 홍조가 졌다.


“어, 수연씨, 얼굴 빨개졌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스텝의 말에 수연의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아니, 아니예요. 그냥 좀 더워서요.”


“어우, 에어컨 더 세게 틀어야겠네.”


영문을 모르는 스텝은 에어컨의 온도를 낮추었고, 준기가 은근하게 미소지었다.




——



“아니, 그림자를 찍는데 의상이나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게...”


앨범 자켓 찰영을 진행하는 스튜디오 안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수연에게 브러쉬를 들이대는 한실장. 그 앞에서 항의하던 수연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실장이 눈을 크게 뜨고 수연을 심각하고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수연의 팀장인 재이가 수연의 회사에서의 역할과 데뷔 앨범 가수로의 역할을 잘 분리해주었고, 그 덕에 수연은 지금 연가를 내고 앨범 자켓 찰영 현장에 와 있었다.


-지난 제시 하트와의 스캔들로 저는 벌써 한 달 반을 쉬었는데요...


-그건 회사 차원에서 휴가로 처리한 거니까 본인 본래 연차하고는 상관없어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배려해주는 건가, 생각하는 수연을 향해 재이가 말했었다.


-그런 노래를 공개 안하는 건 반칙이지. 노래 들은 사람들은 모두 다 동의한다고. 그러니 앞으로 앨범 관련 스케줄은 반차나 연차를 쓰는 식으로 처리해요. 나한테 반나절 전에만 알려주면 되고.


목소리는 담담한데, 그 안에는 따뜻함이 가득 담겼다.


또 감사하단 말이 나오기 전에 왠지 목이 메였다.


-팀장님...


-우리 팀 바쁘니까 앨범 관련 스케줄 얼른 소화하고 완전히 복귀해요. 알았죠?


알고 있다. 수연의 데뷔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걸 이해해주고 하는 말일 것이었다.


재이의 배려가 새삼 떠올라 감사함이 충만해진 수연은 그냥 한실장의 눈빛에 지기로 했다.


“알았어요, 실장님,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 가만히 잘 할게요.”


“정말이지? 너, 딴소리 하기 없기다?”


수연이 항복하자 한실장은 신이 났다. 이제야 편안하게 컨셉에 맞춰 준비한 스타일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됐다.


“이 고집쟁이. 그래,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데뷔인데 이 정도는 하게 해줘야지.”


한실장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늘 제게 다 맞춰주신 대모인 한실장의 마음을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수연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미소지었다.


“네, 실컷 하세요. 저 예쁘게 해주세요.”


오늘이 처음이다. 수연이 한실장에게 실컷 제 마음대로 하라고 한 것이. 이 아이는 제게 마음을 열고도 단 한번도 한실장이 흡족할만큼 의지해주지 않았었다.


부모님의 사고 후 입원을 했을 때도, 회사 생활을 하다 차사고로 공황이 왔을 때도, 종종 아팠을 때도 전부.


그런데 오늘은 왠지 실컷 하라는 말이 온전히 열린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 같아 듣기 좋았다.


하진과 연애하면서 수연은 좀 더 솔직하고, 또 타인에게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실장이 웃으며 수연의 머리칼을 한번 매만졌다.


“여기, 메이크업부터 합시다!”




——




“와아, 진짜 여신이 따로 없네!”


스타일링을 다 끝낸 수연을 보며 스텝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수연은 웨이브를 준 긴 머리의 가발을 쓰고, 한 쪽 어깨는 그대로 드러내고 한 쪽 어깨만 레이스를 부풀린 카키색 드레스를 입었다. 수연의 하얀 피부와 복숭아빛 볼을 강조한 화장도 드레스와 잘 어울렸다.


도톰하게 강조된 입술은 부풀어 오른 봉숭아 꽃잎같이 예뻤다. 무엇보다 드러난 이마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옆선이 앨범 자켓인 그림자의 컨셉을 소화하기에 완벽했다.


“이거 여신 컨셉으로 바꿔야 되겠는데?”


준기가 찰영장 안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수연이 반가워 손을 마구 흔드는데, 그 뒤로 하진과 윤석, 연준, 지형과 수민, 형국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다들...”


세상에, 휴가중인데. 모두가.


“첫 찰영인데 당연히 다 와야지.”


연준의 말에 이어 형국이 가까이 확 다가와 수연의 손을 잡았다.


“누나! 오늘 너무 예쁜 거 아니야!”


형국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었다.


어... 이럴 정도는 아닌데?


어리둥절한 수연을 지형과 수민이 둘러쌌다.


“와, 사진 찍자, 이건 남겨야 해. 진짜 너무 예쁘다!”


조금 떨어져 선 하진은 자신을 대신해 멤버들이 수연을 챙겨주니 고맙고 다행이었다.


옆에 가서 눈이 부시게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너무 가슴이 두근거려서 지금은 곁에 가기 어려웠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수연을 발견하자마자 하진은 심장이 울렁댔다.


원래 예쁜데 오늘은 더 예뻤다. 청초함이 최대치를 찍은 느낌이었다.


화장을 곱게 하고 드레스까지 입은 모습에 설렘이 그득 차올랐고 귓가에 열도 났다. 그래서 가까이 가면 들킬 것만 같았다. 이 열기 어린 마음을.


“흠, 형은 가까이 안 가는 게 좋겠다.”


곁에서 연준이 속삭였다.


“그, 그래? 티 나?”


하진이 조용히 묻는데 연준이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어, 완전!”


하진이 들킬까봐 긴장해 두 손을 모아 잡는데, 윤석이 하진의 옆에 와서 어깨에 손을 둘렀다.


“형은 이대로 나랑 있어. 형 귀 완전 새빨개져 가지고 안되겠어. 절대 수연이 옆에 가면 안돼. 알았지?”


조용히 웃으며 양 옆을 에워싼 동생들 사이에서 하진은 수연에게서 눈을 못 뗐다.


저렇게 예쁜데, 가까이 다가가서 예쁘다고 말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속상했다.


수연이 세 멤버와 얘기하다가, 뒤에 선 하진과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 바람에 하진은 이제 얼굴까지 시뻘개졌다. 그걸 발견한 연준이 급히 하진이 쓴 캡모자를 꾹 깊게 누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수연아, 형 보고 웃지 말아라...”


하진은 모자를 깊게 쓰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찰영장인데, 얼굴의 홍조 하나 제대로 통제 못하는 바보...


그런데 수연이 다른 멤버들과 함께 걸어왔다.


“와줘서 고마워요.”


꼭 하진을 마주 하고 싶었으니까.


그런 수연을 보며 하진을 양쪽에서 둘러싼 연준과 윤석이 웃었다.


“응, 안오면 섭하지, 우리가.”


“그래, 수연이 오늘 너무 예쁘다. 통역사나 쉐프로 만족하면 안되겠는데?”


윤석과 연준이 말을 하며 시간을 벌어주었고, 하진이 겨우 모자를 뒤집어 쓴 채로 말했다.


“진짜... 예쁘네.”


그 모습이 너무 수줍고 귀여워서 수연의 얼굴에 완연한 미소가 흘렀다.


“네, 오늘 나 예쁘게 찰영 잘할게요!”


데뷔 앨범을 향해 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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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81. 모순의 현실 22.07.31 18 1 11쪽
80 80. 인기의 양면 22.07.30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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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 선택의 기로 22.07.28 17 1 11쪽
77 77. 돌이킬 수 없는 22.07.27 16 1 12쪽
76 76. 썸타는 사이 22.07.26 20 1 13쪽
» 75. 버킷 리스트 22.07.25 18 1 12쪽
74 74. 둘이 참 닮았네요 22.07.24 17 1 12쪽
73 73. 뜻밖의 이유 22.07.23 21 1 13쪽
72 72. 믿을 수 없는 사람 22.07.22 23 1 12쪽
71 71. 전환 22.07.21 19 1 12쪽
70 70. 결심의 정체 22.07.20 1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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