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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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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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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7. 참고 또 참다보면

DUMMY

새 앨범 준비에 여념이 없는 네오비는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안무연습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번 앨범의 주제는 ‘사랑, 우정, 연민, 배려 등의 소중한 마음들’이었고, 타이틀 곡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감정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었다. 가벼운 팝으로 시작해 살짝 레트로적인 느낌으로 변형되는 타이틀곡의 안무는 역대급으로 까다로웠다. 모두가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턴을 하던 하진의 발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형, 괜찮아?”


“어어. 미안. 균형을 잃어서 미끄러졌네.”


하진의 팔을 잡고 형국이 그를 일으켰다. 그 순간 어깨가 지끈거리는 통증이 왔다.


“윽.”


하진의 작은 신음 소리와 찌푸리는 미간을 형국이 놓칠 리가 없었다.


“형, 어깨 괜찮아?”


멤버들이 다 모여들었고, 하진은 난감했다. 첫 방송이 2주 앞인데 이래서야.


“형! 이리 와서 앉아봐.”


별명이 안무팀장인 윤석이 단호하게 말하며 연습실 한 켠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하진이 형국을 따라 의자에 앉자 윤석이 어깨를 조심히 만져보았다.


!


하진은 강한 통증에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 어깨 부상 때와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형아, 영민형 불러. 수민이는 아이싱 할 거 가져오고.”


“나, 그 정도 아니야.”


만류하는 하진을 보며 윤석과 연준이 인상을 썼다.


“무리하면 첫방 무대 아예 못 설 수도 있는 거 알지?”


틀린 말도 아니라서 하진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팬들에게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 후배 가수로 데뷔한 수연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 무리하는 스스로를 인지하고 있었다. 수연의 마지막 방송과 자신들의 첫 방송이 겹쳤다고 해서 더 들떠 있었다.


평상심을 잃은 댓가가 너무 컸다. 바보같이.


보고싶다.


수연이 네 웃는 얼굴. 나를 보며 아무 걱정 없이 웃는 얼굴이.




----




며칠 후 수연은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 준비중이었다. 두 번의 리허설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겨우 긴장을 풀려던 찰나였다.


“리허설 멋졌어요. 특히 마지막에 고음치는 애드립이.”


언제 온 건지 무대 아래 신태양이 서 있었다. 수연이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하자 태양이 한걸음 다가왔다.


“편하게 지내자고 했잖아요. 그런 인사는 너무 공적인데.”


수연은 이번에는 가까이 다가온 태양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이런 때에 가장 필요한 건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는 정면 돌파라는 걸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식당에서 그렇게 마주친 것도 마음에 걸렸는데. 왕민혁 그 녀석이 장난기가 워낙 심해서... 이번엔 자기 누나한테 된통 혼나서 다시 그런 짓은 안할 거예요.”


“... 공적인 사이니, 공적인 인사가 적절하잖아요.”


태양은 그 때의 일을 꺼내는데, 수연은 다른 말로 대답했다. 태양이 가만히 수연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무 경계하네요. 나 그 정도로 경계할 사이 말고 좀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고 싶은데.”


“경계가 아니고 예의입니다, 선배님.”


와, 철벽.


신태양은 남자 가수들 사이에 떠돌던 수연의 철벽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확인 중이었다. 잘 웃고 예의 바르지만 절대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신인 가수. 게다가 곁에서 한실장이 눈을 부릅뜨고 지킨다고 했던가.


“태양씨, 연수 모니터링 해야 해서요.”


아니나 다를까. 한실장이 다가와 수연을 데리고 갔다.


이상하게 애인 있는 여자에게 찝쩍거린 양아치 같은 기분이 들어서 태양은 불쾌했다. 신인가수 한연수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고, 또 가수 한연수를 직접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나와 리허설 무대를 모니터링 해주고 인사를 한 것 뿐인데.


쥬디스에게는 한달음에 마음을 연 것 같았는데, 나는 왜? 남자라서? 내가 뭐 작업을 건 것도 아니고, 이성적 호감을 표현한 것도 아니고, 너무 오버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괜히 더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다, 선후배가 아니라, 사실은 호감인건가?


복잡한 제 마음을 잘 모르겠다. 태양이 생각에 잠긴 채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수연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급하게 태양에게 말했다.


“너도 빨리 준비해야지.”


“어, 알았어.”


인사를 하고 매니저를 따라 걸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태양이었다.


내향적이면서도 용기내서 대기실을 돌던 후배가수 한연수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경계가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고 되뇌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감은 절대 남자의 것이 아니라 부인하며 남자가 아니라 선배로서의 호감이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




“언니, 이거 정말 귀여워요!”


“그치? 좋아할 줄 알았어.”


방송이 모두 끝나고 수연의 대기실에 들른 쥬디스가 수연에게 팔찌를 건네 주었다. 수연은 팔찌에 달린 음표 모양의 장식을 보고 연신 감탄 중이었다.


“자, 나도 있어.”


쥬디스가 제 팔목을 내밀어 똑같은 팔찌를 한 걸 보여주었다. 수연이 방송의 피로가 날아갈 듯 환하게 쥬디스를 보며 웃었다.


“와, 우리 커플 팔찌예요?”


어우, 얘는 왜 이렇게 귀엽지.


어릴 때는 남동생 민혁이 시끄러워서 짜증이 많이 났고, 더 커서는 연습생 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거기다 오랜 연습생 생활 후 가수가 되어서는 성실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멤버들을 끌고 다니며 가수활동을 해왔다.


그래서 쥬디스에겐 사람과의 순수한 호감이 오가고, 즐겁게 웃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쥬디스는 수연을 보면 그저 귀여워서 자꾸만 뭐든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말은 예쁘게 나오질 않았지만, 속마음은 그랬다.


“커플은 무슨. 내가 즐겨찾는 공방에 주문했다가, 예쁘길래 하나 더 산 김에 너 주는 거지.”


“어쨌든 내 생각난 거잖아요. 고마워요, 언니. 커플 팔찌 매일 하고 다닐게요.”


심술궂게 말해도 찰떡 같이 속마음을 아는 건지, 내내 기분을 좋게 하는 말만 하는 수연이었다.


쥬디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관계 가뭄 속에서 살던 지난날들, 이제는 안녕, 이라고.


“근데 너 얼굴 너무 새하얗다. 많이 피곤한 거 아니야?”


“이제 퇴근하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커플 팔찌 받아서 기분 좋아졌으니까 더 괜찮아요.”


어디서 기분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훈련이라도 받은걸까. 수연의 입에서는 마법처럼 쥬디스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이 술술 나온다.


“쥬디야, 너도 퇴근해야지? 연수도 그래야 퇴근하지?”


한실장이 두 사람이 알콩달콩 대화 나누는 시간을 한참 견디다 못해 말했다.


“아.”


쥬디스가 깨달음의 탄성을 내뱉는데, 수연이 쥬디스의 손을 잡았다.


“언니, 다음에는 내가 예쁜 거 선물할게요. 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나중에 우리 그 식당에 가서 다시 밥도 먹어요. 다음에는 더 여유롭게요.”


이것 봐, 얘가 나를 자꾸 홀린다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한실장이 쥬디스를 잡은 수연의 손을 잡아 뗐다.


“알겠으니까, 이만 퇴근합시다, 제발?”


“네.”


명랑하게 대답한 수연이 쥬디스에게 손인사를 하며 나갔다. 주인이 나가버린 대기실에서 쥬디스는 제 팔목에 있는 팔찌를 매만졌다.


“정말 누구 홀리는 데 타고났어, 타고나.”


혼잣말을 하며 섰는데, 매니저가 쥬디스를 찾아와 대기실 문 앞에서 소리쳤다.


“아이고, 넌 왜 자꾸 사라져? 퇴근하자! 얼른!”


매니저를 보고 표정이 무표정하게 싹 변한 쥬디스가 주인 없는 대기실을 나섰다.




----




퇴근길, 수연은 오늘은 너무 늦게 마쳐서 얼굴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하진의 문자에 실망했다.


생방송도 잘 마쳤고, 얼굴을 못 본지 며칠 째라서 오늘은 꼭 보고 싶었는데.


휴대전화를 확인한 수연의 얼굴이 울상인 걸 백미러로 본 한실장이 물었다.


“하진이 늦게 마친대?”


“네... 오늘도 얼굴 보기 어렵겠대요...”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것도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얼굴이라도 보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새 앨범 준비로... 정말 바쁜가봐요... 잠은 제대로 자는 건지...”


“네가 걱정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너도 만만치 않잖아.”


한실장이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넘겨보려 하지만 수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실장님, 제가 어깨를 좀 다쳐서, 수연이 당분간 안 만나려고 해요. 안 그래도 활동 떄문에 바쁘고 힘들텐데, 제 걱정까지 더하고 싶지 않아서요... 한실장님께서 잘 살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한실장은 하진에게서 온 문자를 떠올리며 저도 한숨을 쉬었다. 수연이 이 빡빡한 스케줄을 견디고 있는 힘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하진이었다.


하진을 만나고 오면 수연은 피곤해도 묘한 생기가 있었다. 바빠도 나름 남자친구의 모니터링을 받았다고 자랑도 하고, 새 안무 영상을 보여줬는데 너무 멋지다고 자랑도 했다.


생전 하진에 대한 자랑은 안하던 수연이었는데. 그래서 한실장은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수연이 버티는 힘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진의 어깨가 얼른 나아야 할텐데.


새 앨범 방송을 앞두고 준비할 게 많을 하진의 마음도 힘들 것이었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한실장은 수연은 스케줄이 무사히 끝나 퇴근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진에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하진의 마음이 덜 힘들 것 같아서.




---



그렇게 수연이 스케줄이 꽉 찬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하진을 못 본 날들이 쌓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 시간 비는데, 네오비 찰영장으로 가볼래?”


한실장의 말에 수연이 반색했다.


“진짜요?”


“응, 콜라보 제안이 너무 많아서 준기랑 의논도 해야 할 것 같고.”


“아.”


본래는 이 앨범 활동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들 때문에 수연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른 활동은 그렇다치더라도, 콜라보 제안들은 제 선에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프로듀서인, 가수로서의 자신을 만든 준기와 꼭 얘기를 나눠야 했다.


“아, 영민씨 문자 왔는데, 너 와도 괜찮을 것 같대. 오늘 거기서 종일 찰영이고 대부분이 회사 스텝들이래.”


“네. 좋아요.”


한참 보지 못한 하진도 만날 수 있다. 멤버들도 보고, 준기와 이 제안들에 대해 의논할 수도 있다. 이런 행운 같은 시간을 어떻게 마다하겠는가.


“여기서 30분이면 도착하겠다.”


한실장의 말에 수연은 더 기대가 부풀었다.




----




“어? 저기, 설마 누나?”


찰영을 막 마치고 움직이던 정국이 스튜디오 문 앞에 들어오는 실루엣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형국의 말에 어깨에 아이싱을 하고 있던 하진도 고개를 돌렸다.


수연이, 스텝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하진은 너무 반가워 저도 모르게 웃다가 어깨에 아이싱을 깨닫고는 다급하게 풀어 가방 속에 숨겼다.


수연이 찰영을 쉬고 있는 하진과 형국, 찰영 중인 다른 멤버들을 발견하고는 팔을 들어 크게 흔들며 인사를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매우 들뜨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와, 누나 기분 째지네. 형 봐서 좋은가 보다.”


하진도 웃으며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들어 수연을 향해 흔들었다.


가장 보고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얼굴, 꿈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 수연을 볼 수 있다니. 한편으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수연이 자신을 걱정할 일이 생길까봐 불안했다.


하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더 환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수연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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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 절대 잊지 못할 순간(완결) 22.08.25 19 1 12쪽
98 98. 감사 22.08.24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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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6. 지금 여기 22.08.17 15 1 11쪽
95 95. 꼭 해야 할 일 22.08.16 15 1 11쪽
94 94. 아파도 사랑해서 22.08.13 18 1 12쪽
93 93. 결국 들켜버린 22.08.12 15 1 13쪽
92 92. 마지막을 앞두고 22.08.11 14 1 13쪽
91 91. 걱정과 의심과 궁금증 22.08.10 16 1 12쪽
90 90. 혼자가 아니니까 22.08.09 13 1 13쪽
89 89.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22.08.08 14 1 12쪽
88 88. 배신감을 느끼는 여자 22.08.07 14 1 13쪽
» 87. 참고 또 참다보면 22.08.06 17 1 12쪽
86 86. 고마운 마음들 22.08.05 13 1 15쪽
85 85. 진심이 통할 때 22.08.04 14 1 12쪽
84 84.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 22.08.03 14 1 12쪽
83 83. 둘 다 지지 않아 22.08.02 15 1 13쪽
82 82. 후배와 선배 22.08.01 16 1 11쪽
81 81. 모순의 현실 22.07.31 16 1 11쪽
80 80. 인기의 양면 22.07.3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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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 돌이킬 수 없는 22.07.27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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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 전환 22.07.21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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