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모든 순간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연재수 :
99 회
조회수 :
3,166
추천수 :
116
글자수 :
549,943

작성
22.08.17 06:00
조회
18
추천
1
글자
11쪽

96. 지금 여기

DUMMY

"수술이 한시가 급한데... 이걸 하고 있는 게 말이 돼?"


집에서 도시락을 싸느라 한창 집중하고 있는 수연의 곁에서 연주가 겨우 화를 참고 말했다. 갑자기 퇴원한다고 해서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는 걸로 생각했는데, 혈전이 신경을 압박해 두통이 심하고 거기다 되도록 빨리 수술해야 한단다. 그런데 수연은 집에서 네오비를 위해 7인분의 도시락을 싸고 있으니 연주는 답답해 속이 타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하는 거잖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더니 연주와 지수를 위한 도시락을 완성해 두 손 위에 올려 내미는 수연이었다. 연주는 도시락에 씌인 제 이름을 보고 눈물이 났다.


"도대체, 왜 그래.... 어쩌려고 그래..."


연주가 울어버리자 수연이 도시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연주를 안았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래."


"... 흐윽..."


한실장님 말로는 위험한 수술이랬는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바보야...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키니 눈물만 계속 흘렀다.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의연한데, 기댈 어깨가 되어야 할 자신이 이렇게 울음 바람이라니. 그런데도 눈물이 참아지질 않았다.


울고 있는 연주의 등을 수연이 토닥토닥 두드렸다.


"후회... 후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후회, 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고 아파서 연주는 수연을 꼭 안았다. 수연의 눈에도 습기가 어렸다.




----




“아, 오늘은 정말 피곤하다...”


리허설을 마치고 모니터링까지 끝낸 네오비가 대기실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조금 다르게 구성된 세트에서 두 곡의 퍼포먼스를 해야 해서 더 신경을 썼다.


빡빡한 스케줄과 격한 안무가 가져오는 피로가 누적되어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그나마 팬들의 환호와 반응 덕분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대기실로 오자마자 맴버들이 너도나도 물을 들이켰다. 형국이 생수 한 병을 다 마시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하진에게 물었다.


"누나, 이제 회사도 그만두고 스케줄도 널널할텐데... 우리 무대 보러 안 와?"


준기와 하진 외엔 리아의 입원 사실을 몰랐다. 리아가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음, 아직 좀 바쁜가봐. 여러 가지로."


하진이 둘러대는데 곁에서 준기가 씁쓸하게 한숨을 쉬더니 일부러 휴대전화를 꺼내 딴 짓을 했다.


"곧 신태양 선배님이랑 준비한 듀엣곡 싱글 나온다며? 그래서 그런가..."


지형이 머리를 긁적이자 곁에서 수민이 지형에게 기댔다.


"콜라보 제안이 그렇게 많았다면서 그거 하나만 해도 괜찮아?"


"뭐, 일단은."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준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응답하자, 연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준기를 바라보았다.


"콜라보 제안 많다고 제일 좋아하던 게 형 아니었어? 어째... 지금은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준기가 제 얼굴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연이 너무 무리한 것 같아서."


"그건 그렇지. 데뷔앨범이 1위 찍은 가수가 어디 흔해? 한 달 활동기동안 남들은 몇 달하는 스케줄을 몰아서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공식 팬클럽이 생겨도 수연의 첫 팬클럽 회장은 자신이라고 우기는 형국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윤석이 그런 형국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살포시 쓸었다.


그 때, 영민이 급하게 대기실 문을 열었다.


"얘들아! 수연씨가 도시락 싸왔어!"


"네?"


앉아 있던 멤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진은 뛰듯이 대기실 문 앞으로 갔다.


"오빠, 안녕."


수연이 싱긋 웃으며 하진을 보고 인사했다.




----




"와, 누나... 이건 너무 거하잖아... 언제 다 한거야?"


형국이 수연이 가져온 도시락 뚜껑을 하나씩 열며 감탄했다. 지수와 연주, 네오비 멤버들과 쥬디스의 도시락을 싸던 수연은 도저히 스텝들의 도시락까지 만들 자신이 없어서 근처 유명 도시락집에서 따로 배달을 시켰다.


"연수씨,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스텝들도 다들 기분이 좋아서 가수 한연수에게 인사했다.


아, 맞다. 여기선 가수 한연수가 더 익숙하지, 라고 생각하는 수연의 손을 잡은 건 하진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자 하진이 고맙고도 애틋한 눈빛을 담고 수연에게 속삭였다.


"검사는?"


"응, 거의 다 끝나서 잠깐 외출이요."


두 사람이 속삭이는 걸 본 지형과 수민이 소리를 질렀다.


"어우, 역시 듀엣같이 한 사람들은 친한가봐."


연준과 윤석은 도시락을 먹으며 감동의 몸짓으로 울먹였다.


“와, 나 집밥 너무 오랜만이야, 수연아... 완전 맛있다.”


수연이 웃는데 준기가 곁에 앉더니 물었다.


“얼굴... 창백한데.”


“아, 나 괜찮은데.”


하진과 준기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피하며 수연이 도시락을 들이밀었다.


“얼른 먹어봐요. 나 진짜 열심히 만들었단 말예요.”


하진과 준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젓가락을 들었고, 그제야 수연이 안도했다.


생방송 스케줄이 있는 날은 원래 네오비 맴버들이 적게 먹는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수연의 도시락은 모두 싹싹 깨끗하게 비웠다. 형국은 누나의 도시락으로 나는 오늘 레전드 무대를 찍을 것 같다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준기가 자신을 제8의 멤버라고 했던가. 이렇게 같이 한 공간에서 웃고 있으니, 의사에게서 들었던 말도 곧 있을 수술도 다 꿈 같이 느껴졌다. 하진의 소원은 수연이 편안한 거라고 했는데, 수연은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지금이라고 여겨졌다.


하진의 옆에서 가족과 같은 이 사람들과 웃고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수연이 생각에서 깨어나 입술을 깨물었다.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다.


“어, 괜찮아?”


하진이 수연을 살피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멤버들 모두가 걱정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하진이 곁에 있는 담요를 수연에게 둘렀다.


“추운가봐. 괜히 아이스 커피로 줬네.”


하진은 제 목소리가 떨릴까봐 잠시 주먹을 쥐었다가 말했다. 그래야 수연의 뜻에 거스르지 않을 것 같아서.


“어, 누나, 어디 안 좋아? 감기 기운 있나?”


“미안... 좀 그런가봐... 미안해요, 이제 나 갈게요... 무대 잘해요.”


수연이 형국을 바라보았다가 하진의 손을 잡았다. 수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진이 수연을 조심히 일으켰고, 준기도 같이 옆에 섰다.


“데려다주고 올게.”


“어... 무리해서 어떡해... 괜히 우리 때문에.”


모두의 걱정어린 시선이 수연에게 꽂혀있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수연이 있는 힘껏 활짝 웃었다.


“내가 하고싶어서 한 일인 걸요. 나 방송으로 꼭 볼게요. 파이팅.”


주먹을 쥐는 수연을 보고 멤버들도 애써 웃어주었다. 하진과 준기가 수연을 데리고 대기실을 나서는데, 뒤에서 지형이 외쳤다.


“우리는 걱정하지마!”


수연이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다 괜찮으니까.”


지형이 손을 흔들었고, 수연도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제일 듣고 싶은 말이었다.


대기실에서 나오자 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하진과 준기가 부축한 수연을 보더니 다가와 수연의 손을 잡았다.


“너...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보니 괜찮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사실은 안 괜찮은 걸 다 알고 있었는데.


수연이 하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따 봐요.”


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수연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수연은 준기에게도 눈인사를 한 뒤에 한실장과 함께 복도를 걸어나갔다.


“.... 하아...”


하진의 깊은 한숨이 준기의 가슴까지 울렸다. 준기도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지금 여기 왔다 다시 돌아간 수연의 마음이 어떤 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냥 함께 있을 때 웃었던 그 얼굴만이 떠올랐다.




----




그로부터 한 달 뒤, 한국에서 새 앨범 활동기를 끝낸 네오비는 월드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오늘 오후 미국으로 출국해 유럽까지 다 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두 달이 걸린다. 월드 투어가 끝나면 잠시 휴식 후 멤버들은 처음으로 솔로 활동들을 시작할테고, 하진은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비행기 타려면 4시에는 움직여야 해.”


영민의 말에 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캡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병원 주차장의 밴에서 내려서며 마스크까지 썼다.


“잘... 다녀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영민의 안쓰런 말에 하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홀로 움직였다. 한 달 전, 생방송을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던 날에도 이 길을 지나갔었는데.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생방송을 마치고 도착한 병원에선 이미 수연이 수술중이었다. 심한 두통으로 응급실로 오자마자 검사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한실장과 서대표 앞에서 하진은 망연자실했다. 단순히 검사가 조금 더 남았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그렇게만 말했는데.


-오늘 너 스케줄 마치고 오면 수술한다고 얘기한다고... 했었는데.


한실장이 울먹였다. 하진은 수술실 앞 수술시간을 알려주는 모니터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참 많았다. 운명이,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이다지도 한 사람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몰아줄 필요는 없지 않냐고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냐고 울기도 했다. 그래도 이만큼 했으니까 더는 그전만큼 아프고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진은 그 믿음에 답을 얻지 못했다.


-어디가... 얼마나...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는 하진을 보고 서대표가 어깨를 감싸며 의자에 앉혔다.


-위험한 부위에 큰 혈전이 두 개가 있고,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두통이 왔던 거라고 했어. 지금은 그걸 제거하는 수술중이고.


서대표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물이 그득 고여있었다. 1위를 한 트로피를 수연은 서대표와 한실장에게 선물이라며 가져왔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의 의미를 꺾지 않았고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온 아이에게, 이런 고통이 왜 자꾸 찾아오는지. 서대표는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 수연에게 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세 사람은 아침까지 수술실 밖을 지켰고, 수연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번보다 더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가 깨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연은... 아직 깨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탄 하진이 거울을 보며 모자를 고쳐 썼다. 수술 후 아직도 자고 있는 수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든 순간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99. 절대 잊지 못할 순간(완결) 22.08.25 29 1 12쪽
98 98. 감사 22.08.24 20 1 11쪽
97 97. 의미 22.08.18 18 1 12쪽
» 96. 지금 여기 22.08.17 19 1 11쪽
95 95. 꼭 해야 할 일 22.08.16 20 1 11쪽
94 94. 아파도 사랑해서 22.08.13 24 1 12쪽
93 93. 결국 들켜버린 22.08.12 18 1 13쪽
92 92. 마지막을 앞두고 22.08.11 18 1 13쪽
91 91. 걱정과 의심과 궁금증 22.08.10 26 1 12쪽
90 90. 혼자가 아니니까 22.08.09 18 1 13쪽
89 89.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22.08.08 20 1 12쪽
88 88. 배신감을 느끼는 여자 22.08.07 26 1 13쪽
87 87. 참고 또 참다보면 22.08.06 29 1 12쪽
86 86. 고마운 마음들 22.08.05 22 1 15쪽
85 85. 진심이 통할 때 22.08.04 18 1 12쪽
84 84.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 22.08.03 29 1 12쪽
83 83. 둘 다 지지 않아 22.08.02 20 1 13쪽
82 82. 후배와 선배 22.08.01 21 1 11쪽
81 81. 모순의 현실 22.07.31 30 1 11쪽
80 80. 인기의 양면 22.07.30 25 1 12쪽
79 79. 새로운 가족 22.07.29 18 1 13쪽
78 78. 선택의 기로 22.07.28 21 1 11쪽
77 77. 돌이킬 수 없는 22.07.27 26 1 12쪽
76 76. 썸타는 사이 22.07.26 32 1 13쪽
75 75. 버킷 리스트 22.07.25 28 1 12쪽
74 74. 둘이 참 닮았네요 22.07.24 25 1 12쪽
73 73. 뜻밖의 이유 22.07.23 26 1 13쪽
72 72. 믿을 수 없는 사람 22.07.22 28 1 12쪽
71 71. 전환 22.07.21 24 1 12쪽
70 70. 결심의 정체 22.07.20 24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