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모든 순간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연재수 :
99 회
조회수 :
3,162
추천수 :
116
글자수 :
549,943

작성
22.08.18 06:00
조회
17
추천
1
글자
12쪽

97. 의미

DUMMY

하진은 한 달 동안 매일 갔던 길을 지나 수연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한 달 전, 수술 후 의식불명인 수연 곁에서 하진이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있을 때, 눈물 범벅인 연주가 조심스럽게 편지 하나를 내밀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건 싫다고 했던 내 말 기억해요?

오빠는 그런 나에게 나 때문에 불행하지 않다고 했어요.

힘들어도 내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어요.

나는, 누구에게도 오빠 옆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그 날, 확실하게 알았어요.

오빠가 내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되어버렸다는 걸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내 삶도, 오빠도, 우리의 삶도.

그러니 오빠는 일상을 지키면서 삶을 살아줘요.

가수 네오비의 역할도 하고, 인간 김하진으로서도 살아줘요.

사랑해요. 그 누구보다 더.


눈물을 흘린 건지, 편지 곳곳에 번진 자국이 있었다. 하진은 그 편지를 다 읽어내리고 나서야 수연의 손을 잡고 울 수 있었다.


강하고 아름다운 수연은, 살아달라고 하진에게 말했다. 그래서 하진은 삶을 지키고 있었다. 가수로서도, 자신으로서도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하진이 숨을 한번 삼키고 손을 들어 병실에 노크를 한 뒤 들어갔다.


“왔어?”


한실장의 인사에 하진이 목례로 인사했다. 한실장은 지난 한 달 내내 수연의 옆에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뒤 지수와 연주, 네오비 멤버들, 쥬디스까지 다 병문안을 와서 울고 말았는데 그 때마다 의연하게 수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 볕이 좋아서 햇볕 쐬라고 커튼을 열고 있었어.”


“네, 그러네요.”


하진이 천천히 걸어 수연의 침대 옆에 섰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수연의 하얀 얼굴에 비추었다. 행여나 눈이 부실까 싶어 하진이 손을 들어 수연의 얼굴 앞을 살짝 가려주었다.


“언제나, 볼 때마다, 그냥... 잠들어 있는 것 같아요. 금방이라도 깰 사람처럼.”


하진의 말에 한실장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수연이 눈부실까 얼굴을 가린 하진의 손을 보고 한실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밝게 말했다.


“곧 비행기 시간이지 않아?”


“네, 얼굴만이라도 보고 가려고 왔어요.”


“그래.”


하진은 앨범 활동기 한 달 동안 스케줄이 늦게 마쳐도 늘 수연을 보러 병원에 왔다. 수연의 손을 잡고 작게 속삭이며 얘기를 하기도 했고, 가끔은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이제 두 달 간의 워드 투어 동안은 이렇게 마주하지도 못하게 될텐데, 하진이 잘 견딜 수 있을지 한실장은 걱정이 됐다.


한실장이 침대 옆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하진에게 건냈다.


“이거 받아.”


“아.”


이전에 투어를 떠나기 전 수연이 주었던 일기장, 그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일기장이었다.


“전에도 준 적이 있다고 하더라. 혹시 모르니까 나보고 갖고 있다가 너 투어 떠날 때 주라고 했었어.”


“네.”


받아든 일기장을 손으로 살짝 쓸었다. 수연의 사랑과 염려가 그득히 담긴 일기장에 하진은 울 것 같았다. 아무리 참아도 울음은 갑자기 불연듯이 터졌다.


“이 애가 제일 잘했던 게 살아내는 거더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의미를 찾아내서 삶을 살아가는 거 말이야.”


“......”


눈물이 묻어난 한실장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하진도 살아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수연이 걱정말고... 건강히 다치지 말고 투어 잘 다녀와. 수연이는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 네.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실장에게 인사하는데 목이 메였다. 하진이 살짝 몸을 숙여 수연의 볼에 입을 맞추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다녀올게... 사랑해...”




----




네오비의 월드 투어는 계속된 매진과 뜨거운 현지 팬들의 반응으로 각종 신기록을 세우며 계속 됐다. 모두가 수연을 걱정해 우울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가수 네오비에 충실했다. 그런 이유로 가수가 되고 가장 힘든 콘서트들이 이어졌지만, 신기록도 이어지고 있었다.


멤버들이 이미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기에, 회사에서는 대외적으로는 투어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외부 인터뷰 및 방송 출연을 최소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런 멤버들을 곁에서 보는 영민도 안쓰럽고 괴로웠다.


“오늘 안무 연습은 그 정도 해... 충분한 것 같아.”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멤버들 모두가 연습에 지나치게 몰두했다. 그래야만 수연에 대한 걱정을 좀 잊을 수 있어서 그런가 보다.


영민의 만류에 다들 연습을 멈추고 안무실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 늘 시끌벅적한 안무 연습시간이 음악과 꼭 필요한 말 이외엔 없는 조용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떠오른 지형이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도시락 싸서 온 날 수연이한테 내가 그랬어!”


수연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으려 애쓰던 멤버들이었기에 놀라 다들 지형을 쳐다보았다. 지형이 하진을 비롯해 모두와 한번씩 시선을 맞추더니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다 괜찮을 거라고!”


하진이 그 말에 여리게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지형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 말에 수연은 꽤나 기뻐보였었다.


“그러니까! 수연이가 우리 걱정하지 말게 지내야 하는 거잖아!”


수민이 울먹이며 다가와 지형을 껴안았다. 형국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다. 준기와 연준은 울음을 참으며 안무실 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긴 침묵이 흘렀고, 고요함을 깨뜨린 건 하진이었다.


“그래, 우리는 살아낼거야... 수연이처럼 강하게 견뎌낼거야.”


하진의 말에 모두가 눈물을 머금은 채로 끄덕였다. 영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




파리에서의 마지막 콘서트가 끝나고 멤버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하진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 수연이 준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새삼스러운 게 너무 많다. 잠깐이라도 하진 오빠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지수와 연주 언니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잠시 걷는 동안의 맑은 하늘도, 늘 유쾌하고 고마운 형국이의 칭찬도, 잔소리 많지만 사랑도 많은 한실장님의 존재도, 날 위해 곡을 써준 준기오빠도... 모두가 다 새삼스럽고 그래서 다 감사하다. 오늘은 무엇보다 다정하고 상냥하지만 작은 것에 질투하는 남자친구의 귀여움도 감사하다.


짧은 일기를 읽던 하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일기장을 가슴에 안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이 아프면서도 충만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런 사랑을 주는 네가 의식이 없다. 그리고 나는 내 곁에서 너를 돌볼 수 없고, 내 직업 때문에 너를 직접 보지도 못한 게 한 달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네가 말한 지키겠다는 말을 나는 믿고 있다. 믿고 있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 너를 보고 싶어서.


하진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끝이 없고 마르지도 않았다. 그걸 알게 해 준 게 바로 수연과의 사랑이다.


똑똑.


노크 소리에 하진은 손으로 빨리 눈물을 닦아 냈다. 현관 앞에서 거울을 보고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형, 맥주... 한 잔 할래?”


샤워를 하고 바로 온 건지 머리가 젖은 준기가 맥주 두 캔을 들고 서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샤워를 하고 하진이 나오자 이미 준기는 제 몫의 맥주캔을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미안, 참기가 어려워서.”


하진도 준기의 맞은 편에 앉으며 맥주캔을 땄다.


“괜찮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니 수연의 수술 이후 늘 두통이 있는 머리가 약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준기가 하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 수연이 두 번째 앨범에 들어갈 곡들... 다 완성했어.”


“......”


하진이 맥주 마시기를 멈추고 준기를 바라보았다.


“총 12곡이야. 이번엔 형국이랑 듀엣곡, 우리 모두와 부르는 곡도 하나 넣었고.”


언제 그 많은 걸 다 한 걸까. 하진은 준기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만 같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이가 깨면, 나는 이걸 해달라고 부탁할거야.”


가수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부담은 줄 수 없으니 사직을 하겠다던 수연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수연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게... 형이 군대 가기 전에 할 마지막 작업이길 바라거든, 나는.”


준기의 말에 하진이 여리게 미소지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너무 큰데 표현할 수가 없었다. 수연이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할 것 같았다.


“그래... 나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




다음날 파리에서 출국 전, 유명 토크쇼의 스케줄이 네오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방송 출연을 정리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프랑스 공영 채널에서 15년 가까이 된 토크쇼였다.


리허설을 하면서도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웃고 유쾌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연예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제 감정에 관계없이 늘 웃고 바르게 해야 하는 지금일 것이다.


원만하게 리허설이 진행된 후 본방송 녹화가 시작되었다. 녹화도 매우 원활하게 진행되고 거의 끝날 시간이 되었다. 호스트가 갑자기 예정되지 않은 질문을 했다.


[네오비도 가슴 아프고 괴로운 일들이 분명 있을텐데, 그럴 땐 어떻게 견디나요?]


“......”


멤버들 모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본래 리허설 때와 똑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예상못한 상황이라 그렇기도 했고, 그 질문이 수연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더 대답하기 힘들었다. 리더인 연준이 뭐라 답하려고 하는데, 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의미요.”


통역사가 통역을 하자 호스트가 또 물었다.


[어떤 의미를 말하는 건가요?]


“여러 의미들이요. 삶의 의미들. 사랑, 우정, 멤버들, 팬들, 콘서트, 오늘 무사히 이 쇼에 출연한 것에 대한 감사, 여기 오면서 창밖으로 보았던 파란 하늘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 삶을 포기하면 안되요. 살아내야 할 의미들이 있으니까요.”


통역사가 하진의 답을 통역하자 호스트와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멤버들 모두가 하진이 말에 담긴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침대에서 계속 뒤척이던 하진은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오늘은 수면제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실장과 대화를 나눴던 휴대전화 메시지 창을 다시 확인했다. 수연은 오늘도 잘 있으니 걱정말라는 메시지가 끝이었다.


수연이 보고 싶었다. 같이 대화를 나누고, 얼굴을 쓸어주고, 손을 잡고 싶었다. 너무 그리워서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오늘 나는 방송에서 의미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내게 가장 큰 의미인 네가 너무 그리워서 죽을 것 같아...


하진이 심장을 손으로 쾅쾅 쳤다. 그러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았으니까.


어떡하지, 수연아... 보고싶어... 보고싶어... 제발 깨어나서... 나를 봐주면 안될까... 나 네가 말한대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 보고싶어서 너무...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우는 고통으로 하진은 흐느꼈다. 어두운 호텔방 침대 위에서 가슴을 치며 계속 흐느꼈다.


그 때 침대에 놓여있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려왔다. 지잉지잉지잉. 여러 번 진동이 울리고 나서야 하진은 전화가 온 걸 알았다.


하진이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전화를 급히 받았다.


“여보세...”


“오... 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든 순간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99. 절대 잊지 못할 순간(완결) 22.08.25 28 1 12쪽
98 98. 감사 22.08.24 19 1 11쪽
» 97. 의미 22.08.18 18 1 12쪽
96 96. 지금 여기 22.08.17 18 1 11쪽
95 95. 꼭 해야 할 일 22.08.16 19 1 11쪽
94 94. 아파도 사랑해서 22.08.13 24 1 12쪽
93 93. 결국 들켜버린 22.08.12 18 1 13쪽
92 92. 마지막을 앞두고 22.08.11 18 1 13쪽
91 91. 걱정과 의심과 궁금증 22.08.10 26 1 12쪽
90 90. 혼자가 아니니까 22.08.09 18 1 13쪽
89 89.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22.08.08 20 1 12쪽
88 88. 배신감을 느끼는 여자 22.08.07 26 1 13쪽
87 87. 참고 또 참다보면 22.08.06 29 1 12쪽
86 86. 고마운 마음들 22.08.05 22 1 15쪽
85 85. 진심이 통할 때 22.08.04 18 1 12쪽
84 84.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 22.08.03 29 1 12쪽
83 83. 둘 다 지지 않아 22.08.02 20 1 13쪽
82 82. 후배와 선배 22.08.01 21 1 11쪽
81 81. 모순의 현실 22.07.31 30 1 11쪽
80 80. 인기의 양면 22.07.30 25 1 12쪽
79 79. 새로운 가족 22.07.29 18 1 13쪽
78 78. 선택의 기로 22.07.28 21 1 11쪽
77 77. 돌이킬 수 없는 22.07.27 26 1 12쪽
76 76. 썸타는 사이 22.07.26 32 1 13쪽
75 75. 버킷 리스트 22.07.25 28 1 12쪽
74 74. 둘이 참 닮았네요 22.07.24 25 1 12쪽
73 73. 뜻밖의 이유 22.07.23 26 1 13쪽
72 72. 믿을 수 없는 사람 22.07.22 28 1 12쪽
71 71. 전환 22.07.21 24 1 12쪽
70 70. 결심의 정체 22.07.20 24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