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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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연재수 :
9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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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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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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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6. 상처 받지 않는 방법 1

DUMMY

찰영이 다 끝난 시간은 12시가 넘어 버렸다. 하진은 아무 일도 아닌 척 애를 썼지만 맴버들은 여느 때보다 가라앉은 하진을 모두들 눈치챘다.


지하주차장의 밴으로 가는 길에 형국과 수민이 일부러 하진의 양 곁에서 어깨 동무를 했다. 하진이 맴버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웃어보였다.


“잠깐만.”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한실장이 영민과 맴버들을 향해 걸어왔다. 하진이 눈을 크게 떴다.


“진이는 나랑 가.”


한실장의 말에 영민이 놀라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형국과 수민은 하진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풀었다.


“의논할 일이 있어요.”


“지금 바로요?”


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민의 얼굴에 근심이 잔뜩 어렸다. 무슨 일인지 전혀 듣지 못한 일이었다.


“다녀올게요.”


하진이 모두에게 인사하고 한실장 쪽으로 걸어가자 한실장도 목례를 하더니 두 사람이 같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멤버들과 영민 모두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 시간에.”








병원 주차장에 세운 한실장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진은 주머니에서 모자를 꺼내 썼다. 운전석에서 내린 한실장이 하진에게 마스크를 건냈다.


하진은 머뭇거리다가 손으로 마스크를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마스크를 건네받은 하진을 가만히 보던 한실장은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하진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며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내려 VIP실 앞에 섰다. 한실장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고 그녀의 눈짓에 따라 들어갔다.


“왔어?... 누구...!”


서대표가 한실장을 향해 인사를 하다 하진을 발견했다. 하진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수연은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앉아있었고 그 곁에 서대표가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 잠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얼굴은 어제 마주한 얼굴보다 훨씬 창백했다. 사람 얼굴이 그 이상 하얘질 순 없을 듯 했다. 그런 수연을 보자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수연도 하진을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하진은 저를 향해 다가선 서대표의 놀란 얼굴을 마주했다. 서대표는 한실장과 하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진이를 왜 데리고 와?”


“영민씨한테 전화 좀 해.”


“어?”


“잠깐 나가요.”


한실장이 손을 끌고 문으로 향하자 서대표가 얼굴을 찌푸렸다.


“지수야? 무슨 일인데?”


“나가서 얘기해요.”


탁.


두 사람이 나가고 닫히는 문소리가 조용한 병실에 크게 울렸다. 하진은 발을 옮기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수연은 저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였다.


“싫으면... 여기 서 있을게요.”


먼저 말을 꺼낸 건 처음의 위로를 준 그 목소리였다. 그제야 수연이 고개를 움직여 하진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근데... 너무 걱정되서......”


더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수연이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어떻게 왔을까 생각하니, 그 모든 순간이 심장을 움켜잡는 듯 고통을 줬다.


그가 너무 처연해서 수연은 슬펐다. 아픈 건 나 혼자로 충분한데, 내가 뭐라고 당신이 괴로울까.


“내가... 말했잖아요. 혹시 거절 같아도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미안해요.”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그래서 더 아팠다. 하진이 용기를 내서 발을 움직였다. 천천히 조심히 수연에게 다가가 침대 옆에 섰다.


비오는 날의 그 모습이 그대로 재연된 듯 했다.


“많이... 아팠어요?”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마주할 때마다 언제나 낯선 위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건 항상 따뜻한 진심이었다.


“...... 출근하는 길에 구급차를 봤어요.”


두 번이나 보았었다. 어찌할바를 몰라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떨던 작은 어깨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휩싸인 모습을. 아무도 곁에 없는 상황에서 혼자 그 일을 또 겪었을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니 목이 메였다. 병원 최고층에 입원한 이유도 구급차 소리 때문이 분명했다.


수연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날따라 굳이... 학교 앞에 데리러 온다고 하셨어요.”


수연이 두 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다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진은 아무 말없이 제 손을 보고 있는 수연을 보고 섰다.


“다 왔다고, 길에 선 네가 보인다고 전화를 하셨죠. 난 손을 흔들었어요.”


“......”


“전화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하진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눈 앞에서...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두 분이 송이 차와.... 부딪혔어요.”


하진은 수연을 안았다. 수연의 눈물이 하진의 셔츠에 물들었다.


“두 분이... 형체를 알 수 없는 차 안에....... 문이.... 구급차 소리가... 계속... 계속... 들렸어요...”


하진의 큰 손이 수연의 머리칼을 쓸고 등을 더욱 당겨 안았다.


“괜찮아... 애써 얘기하지 않아도 되요...”


비 속에서 어디로든 데려다준다던 목소리가 그렇게 수연을 도닥였다. 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하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수연을 어떻게 해버릴 것만 같아 무서워서 자꾸만 더 당겨 안았다.






“옆에 있을게요. 좀 자요.”


비오는 날의 첫 만남만큼이나 안쓰러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눈물 속에서 어떻게 헤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수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흔들림 없이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더 괴로웠지만 하진은 티내지 않고 의연하려 애썼다.


하진이 수연의 손을 꼭 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앞머리를 살짝 넘겨주었다. 울음에 지친 눈동자는 여전히 맑고 슬펐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걱정하는 뜻이라는 걸 잘 알았다.


“내 걱정마요. 힘만 센 게 아니라 체력도 좋으니까.”


그 말에 수연이 미소지었다.


“자장가 불러줘야 하나?”


하진이 미소 짓더니 작고 부드러운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순간마다 네가... 언젠가 마주할 수 있다면...”


수연이 눈을 감았다. 하진은 수연이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위로의 노래를 불렀다.








병실에 서대표와 한실장이 돌아온 건 수연이 잠들고도 한참 후였다. 조심스런 노크 소리에 하진이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가 있을게. 서대표가 진이 좀 데려다줘.”


한실장이 다가와 자고 있는 수연을 내려다보고 이불을 여몄다.


“......”


하진은 수연을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걱정마. 연락해줄게.”


애틋하게 수연을 바라보고 선 하진을 향해 한실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대표가 한숨을 쉬며 병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하진이 한실장에게 목례를 하고 그를 따랐다. 병실 문을 닫기 전까지 몇 번이나 수연을 돌아보았다.


병실 밖에 나오자 서대표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자 써.”


하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점퍼 주머니에서 캐모자와 마스크를 꺼내 썼다. 서대표가 다시 한숨을 쉬고 걸어가자 하진은 뒤를 따라 걸었다.


주차장에 있는 서대표의 차에 오른 직후, 마스크를 벗고 안전벨트를 메는 하진을 보지도 않은 채 서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20대 초반에 서울 와서 음악한다고 돈 없을 적에, 수연이 아버지를 처음 만났어. 자기도 고학생이면서 나 불러내 밥 사주고 용돈주고 그랬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던 걸 수연의 아버지 정진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알게 된 뒤 정진은 자주 만나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며 챙겨주었다. 자신도 보육원 출신의 돈 없는 대학생이었으면서. 세상 없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정진은 같은 보육원 출신의 수연의 엄마 유정과 연애했고 둘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했지만 올곧고 능력있는 정진은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기업가가 되었다. 수연의 엄마는 임신 후 몸이 약해져 일을 그만두었다.


수연이 태어났을 때 서대표는 정진만큼이나 기뻤다.


“형이 결혼하고 저 녀석 태어났을 때 종교도 없으면서 대부가 된다 했어.”


그만큼이나 아끼는 딸 같은 조카였다. 피는 하나도 섞이질 않았지만 친딸 같은.


“니들 데리고 기존 아이돌과 다른 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회사 차릴 때 선뜻 통장에 있는 전재산을 빌려준 사람이었다.”


정진은 서대표가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바르고 착한 사람이었다. 수연이 고등학교 3학년때 유정이 암에 걸린 걸 알았고 항암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정진은 일을 그만두었다. 사고가 난 건 투병생활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2년간 투병 후 겨우 암을 이겨냈는데...... 음주운전으로 그렇게 두 사람이 한꺼번에 갈 줄은 몰랐다.”


문장이 끝날 때마다 그의 그리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사고를 눈 앞에서 봤으니... 무서웠다, 저 녀석마저 잃을까봐.”


수연의 눈물만큼이나 서대표의 떨리는 목소리도 아팠다.


“우리집에 들어와 같이 지내자 했지만 괜찮다고 고집을 피웠어. 결국 너네 숙소 렌트하면서 혹시나 해서 개인자금으로 사둔 집으로 억지로 이사시켰고... 부모 없는 집에서 매일을 혼자 보내느니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수연이었다. 누구에게 기대거나 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지나칠 정도로 혼자 하려하는. 그리고 그런 자신의 결정에 대해선 타협이나 양보가 어려운 그런 사람.


“그래서 나를 돕겠다고 인턴에 지원한다 했을 때 그러라고 했어. 재이팀에 들어가고 싶다 한 것도 그러라고 했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밖으로 나오는 게...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나았으니까.”


그리고 뭐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열심인 사림이었으니.


“진아.”


“네.”


서대표가 고개를 돌려 하진을 바라보았다.


“우선, 고맙다.”


“......”


서대표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저 애 혼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오게 해줘서. 그래서 고맙다.”


“......”


단 한번도 자신 때문에 수연이 그랬으리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돌아보면 비오는 첫 만남부터 하진은 그녀를 잊은 적 없어서 첫 눈에 반한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이후에도 매번 먼저 다가가고 손을 내민 건 자신이었는데.


서대표가 한숨을 또 쉬더니 손으로 이마를 비볐다.


“하지만 그애 대부로서도, 회사 대표로서도, 이 이상은 모르겠구나.”


하진은 숨을 멈추었다. 마주한 현실이 너무 벅차서 자신과 수연에 대한 서대표의 감정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바보 같이.


“나는... 너도 그애도 상처받지 않길 바래. 그래서, 어떤 게 더 옳은 건지 모르겠다.”


“......”


하진은 아무 대답도 하질 못했다. 좋아하는 마음 단 하나 뿐이었다. 수연이 웃고, 행복하길 바랬다. 그거 외엔 다른 여러 상황들을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서대표가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하진은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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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데이트의 기술 22.06.01 59 1 13쪽
20 20. 모든 순간의 위로 22.05.30 65 1 14쪽
19 19. 속좁은 남자 22.05.29 58 1 14쪽
18 18. 다시 봄날로 22.05.28 62 1 13쪽
17 17. 상처 받지 않는 방법 2 +1 22.05.27 67 2 13쪽
» 16. 상처 받지 않는 방법 1 22.05.26 6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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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봄날 같은 연애 1 22.05.25 70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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