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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향기송
작품등록일 :
2022.05.25 23:01
최근연재일 :
2022.08.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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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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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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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7. 두려운 것도 미안한 것도

DUMMY

“이쪽으로 쭉 가다가 왼쪽 스텝 출입구로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수연은 직원이 준 패용을 목에 걸고 그가 말한대로 걸었다.


콘서트가 한창 진행 중인 체육관은 열기가 엄청났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겨우 지나자, 갑자기 함성소리가 커졌다.


수연은 자연스럽게 길을 찾던 시선을 들었고, 아주 멀리 무대가 보였다.


아.


일곱남자가 무대에 등장해 새 앨범의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수연은 영상이 아닌 실제로 그들의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멀리서도 충분히 하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얼굴을 본 지 일주일이 넘은 날이었다. 수연은 감격스럽고 또 먹먹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가 음악이 시작되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일곱 남자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좀 다른 팝펑크 장르의 곡은 가볍고 즐거운 음악이었다.


음악만큼이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아~"


수만의 사람들이 그들만을 보고 환호했다. 그제야 수연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팬덤을 직면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벅차고 또 묘한 기분이었다.


노래가 끝난 일곱 남자가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공연장 전체가 들썩였다. 그들이 받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감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진은 언제나처럼 팬들을 부르며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인사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잠을 두시간 겨우 잤다고 들었는데, 누구도 그렇게 보이질 않았다.


군중 속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는 건 색달랐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모두 정말 즐겁게 보였다. 그래서 고맙고 다행이었다.


수연은 어느새 제게 주어진 일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무대에 빠져들었다.


두번째 발라드곡을 부를 땐 심장이 말랑말랑해져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세번째 댄스곡을 시작했고 팬들의 함성이 더 높아졌다. 간주가 지나고 제 파트를 부르며 점프를 하던 하진이 착지하며 넘어졌다.


팬들의 비명소리가 잠시 군중들 사이를 훑고 지나갔고, 수연은 눈도 깜빡일 수가 없었다.


수민이 하진을 일으켰고 하진은 본래 대형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까지 춤을 췄다.


곡이 끝나고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일곱 남자는 손을 하염없이 흔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수연은 그들의 모습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어? 출발한 지 두 시간? 차가 밀리나? 아직 도착안했는데, 어, 왔다. 네, 왔어요.”


매니저 영민이 전화를 서둘러 끊고 직원의 안내로 온 수연과 인사를 나누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우리가 금방 이동을 해야해서.”


수연이 내민 서류를 영민이 살펴보았다. 수연은 아직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곧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걸어나왔다.


“어?”


높아진 목소리에 수연이 시선을 옮기자 스텝들 사이로 형국이 저를 발견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이 작게 목례했고 형국이 그녀에게 다가오려다 연준에게 붙잡혔다.


“형, 허리 진짜 괜찮아?”


“등이 쓸려서 벌겋던데... 멍들겠다. 이따 마사지 제대로 하고...”


다른 멤버들과 하진도 이야기를 하며 걸어나왔다. 그리고 멈춘 형국과 연준의 눈짓에 수연을 발견했다.


수연이 하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이거, 이대로 진행하죠.”


“아, 네.”


영민의 목소리에 수연은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받아들었다.


“근데,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네?”


서류를 챙기며 의아한 수연에게 영민이 덧붙였다.


“두시간도 채 못 잔 우리 애들보다 안 좋아요, 안색이.”


영민의 말에 수연은 그저 어색하게 섰다.


“수고했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연이 목례하자 영민은 지나간 멤버들의 뒤를 살피고 빨리 따라갔다.


눈맞춤으로 인사도 못한 채로 멤버들은 이미 사라진 채였다.


낯선 사람들 속 서류를 들고 덩그러니 섰던 수연은 그들이 지나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바쁘게 지나는 사람들만이 남아있었다.




----



스케줄을 다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숙소 엘리베이터에 오른 형국이 닫힘 버튼을 누르고는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 본 거지? 본거야, 그치!”


영민과 얘기하던 새하얀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너무 창백해서, 아팠던 예전이 떠올라 걱정이 됐다.


콘서트가 끝나고 곧바로 사인회로 이동했고, 매니저들이 계속 동행해 있는 바람에 아무도 수연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일 때문에 왔다고 했잖아. 못 봤을 거야.”


윤석의 말에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진도 생각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보낸 문자에 수연은 늘 그렇듯 힘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나온 순간이 가슴에 맺혔다.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형, 진짜 등 괜찮아?”


“응, 걱정마.”


수민이 하진을 걱정했다. 정말 심하게 넘어졌는데. 등으로 넘어져서 허리를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진은 자켓을 입고 있었는데도 등이 시뻘갰고 피부도 약간 벗겨졌다.


“먼저 들어가.”


모두가 내리고 하진이 홀로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누나, 봤음 어떡해?”


형국은 걱정으로 얼굴이 노래졌다. 지형과 수민이 형국의 등을 두드리며 숙소 현관문으로 이끌었다.


모두가, 그 장면만은 보지 않았길 바랬다. 수연의 새하얀 얼굴빛에 모두가 마음이 쓰였다.




----



수연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던 하진 앞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


열린 문으로 나온 수연이 말할 틈도 없이, 하진이 들어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뒤에서 현관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연은 천천히 제 손을 하진의 등에 대었다, 혹시나 아픈 곳을 스치울까봐 조심히, 또 조심히. 그리고 그 손길에 하진은 알게 되었다.


봤구나.


하진이 안았던 팔을 풀고 수연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보다 더 파리한 기색에 심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애써 웃는 얼굴을 하진이 가만히 손으로 감쌌다.


“너무 수고해서, 여기 오게 한 게 미안해요.”


일주일 내내 잠도 못하고 스케줄을 했는데, 내 걱정에 쉬지도 못하고 여기로 뛰어오게 해서 미안해요...


수연의 다음 말이 기어이 하진의 아픈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런 말이 어딨어? 보고싶어서 왔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 견디고 있다. 하진의 다른 손이 수연의 보드라운 머리칼을 매만졌다.


“미안해.”


“... 오빠는 미안한 거 없어요...”


“미안해.”


하진이 사과하며 수연의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수연이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


“나 다친 데 없어. 앞으로도 다치지 않을게. 미안해.”


하진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하진의 양 손 안에 든 수연의 두 손이 눈물을 참으려는 의지에 떨리고 있었다.


하진이 양손을 들어 수연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건데.”


“......”


“그렇게... 격렬하게 춤을 추니까 다칠 수도 있는 건데.”


“......”


하진은 눈물 어린 목소리가 아파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단 한번도 그렇게... 상상조차 해 본 적도 없었어요, 나.”


눈물어린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진을 바라보았다.


“...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수연의 볼을 감싼 하진의 손가락에 눈물이 계속해서 묻어났다.


“무서웠어요...”


하진의 자책하며 수연을 끌어안았다. 이런데도, 사람들 속에 내버려뒀다. 이런 마음인데도 곧바로 보듬어주질 못했다.


네가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줄 알면서도, 나는...


품 속의 여린 어깨의 흐느낌 때문에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다른 어떤 일로 아파도, 자신만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미안해...”


또 발작이 찾아올까봐 수연의 흐느낌을 꽉 붙잡았다.


저 때문에 생긴 두려움과 아픔이 겨우 다시 세상으로 나온 수연을 빼앗을까 겁이 났다.


두려운 것도, 미안한 것도 다 사랑인 줄 알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수연을 안고 있던 하진은 흐느낌이 줄자 몸을 떼고 수연의 얼굴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눈시울이 빨간 수연이 하진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


하진이 수연을 데리고 소파에 나란히 앉은 뒤 수연의 손을 잡았다.


“... 우리, 서로 미안하단 말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어렵다, 그치.”


“......”


자상하고 깊은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진정이 됐다.


그제야 사실 이런 자신 때문에 힘든 건 눈 앞에 있는 하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잖아도 고된 스케줄로 힘든 사람에게 걱정을 지워주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수연이 어떤 생각인 줄 간파한 하진이 손을 매만지며 나즈막히 말했다.


“춤추며 점프하는 데 바닥에 붙여진 스티커가 찢어지면서 미끄러졌어.”


“......”


“진짜 안 다쳤어.”


“......”


“조심, 또 조심할게. 그리고 나 알잖아?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은 거.”


수연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수연은 이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우리 공연 보며 즐거운 게 좋아. 보면서 마음 졸이고 내내 걱정하는 건 원치 않아.”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조심할 거란 걸 안다.


그런데 미래는 늘 불확실해서 그게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온다. 하지만, 경험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 걱정하고 초조해하는 게 확실한 현재의 행복도 빼앗아버린다는 걸.


하진은 수연을 안았다. 네 그런 슬픈 눈은, 너무 괴로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 뿐이라서 더 고통스러워.


“오빠.”


“응.”


수연은 천천히 그의 넓은 등에 손을 댔다.


“사랑해요.”




----




“수연이, 보고 싶다.”


뉴저지 스타디움에서의 두번째 콘서트가 무사히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자신들만 남자 지형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떠들썩했던 모두가 놀라 조용해졌다.


형국이 괜히 하진의 눈치를 보았다.


그 팬션에서의 시간 이후에 얼굴을 못 본지 거의 두 달이나 되었다.


자신들끼리 있을 땐 수연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준기가 가진 수연의 노래를 함께 듣기도 했다.


예쁜 여동생이 생긴 느낌이었다. 형국은 영어를 가르쳐준단 이유로 수연과 따로 연락을 하고 지냈고, 그 덕분에 여러 번 다른 멤버들과 통화를 함께 했었다.


“형은 언제 통화해?”


지형이 하진에게 물었고, 하진도 별 위화감 없이 대답했다.


“좀 있다 하려고.”


“그럼 나중에 우리도 영상 통화하게 해 줘.”


형국이 반색하고 하진을 살폈다. 영상통화를 진즉 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진에게 거슬릴까봐 실제로는 단 한번도 한 적은 없었다.


“알았어. 물어볼게. 내일쯤 하던지.”


“진짜?”


들뜬 형국의 물음에 하진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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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연준의 마음 1 22.06.19 42 1 10쪽
38 38. 이래서... 그랬구나 22.06.18 44 1 11쪽
» 37. 두려운 것도 미안한 것도 22.06.17 47 1 11쪽
36 36. 제 8의 맴버가 되다 2 22.06.16 46 1 12쪽
35 35. 제 8의 맴버가 되다 1 22.06.15 46 1 13쪽
34 34. 선물의 노래 3 22.06.14 43 1 13쪽
33 33. 선물의 노래 2 22.06.13 42 1 14쪽
32 32. 선물의 노래 1 22.06.12 56 1 15쪽
31 31. 고마워, 사랑하게 해 줘서 22.06.11 49 1 12쪽
30 30. 재회의 키스 22.06.10 56 1 11쪽
29 29. 가족이니까 22.06.09 49 1 13쪽
28 28. 고백 22.06.08 48 1 11쪽
27 27. 내 모든 걸 다해서 당신을 행복하게 22.06.07 50 1 11쪽
26 26. 다시 처음처럼 2 22.06.06 52 1 13쪽
25 25. 다시 처음처럼 1 22.06.05 49 1 13쪽
24 24. 호칭의 문제 22.06.04 52 1 13쪽
23 23. 외유내강의 여자 2 22.06.03 49 1 11쪽
22 22. 불편보다 불안이 괴로워서 2 22.06.02 55 1 12쪽
21 21. 데이트의 기술 22.06.01 59 1 13쪽
20 20. 모든 순간의 위로 22.05.30 65 1 14쪽
19 19. 속좁은 남자 22.05.29 58 1 14쪽
18 18. 다시 봄날로 22.05.28 62 1 13쪽
17 17. 상처 받지 않는 방법 2 +1 22.05.27 67 2 13쪽
16 16. 상처 받지 않는 방법 1 22.05.26 66 2 11쪽
15 15. 봄날 같은 연애의 끝 22.05.25 73 2 14쪽
14 14. 봄날 같은 연애 2 22.05.25 66 2 14쪽
13 13. 봄날 같은 연애 1 22.05.25 70 2 16쪽
12 12. 짝사랑에서 드디어 탈출하다 22.05.25 72 2 13쪽
11 11. 절실한 건 단 한 사람 +1 22.05.25 67 2 13쪽
10 10. 첫 데이트(?) 22.05.25 6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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