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코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2.05.29 00:58
최근연재일 :
2023.03.31 21:35
연재수 :
233 회
조회수 :
23,701
추천수 :
841
글자수 :
1,299,199

작성
23.03.23 21:35
조회
44
추천
3
글자
13쪽

에밀리 – 진실, 사실, 현실 (2)

DUMMY

"넌 에밀리가 아니잖아."


도미닉이 내뱉은 한마디.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떨리게 된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에밀리인데 이걸 몰라본다고?"


도미닉은 여전히 날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저 눈빛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까.


"하아, 괴물 같은 놈. 어떻게 알았어?"


"글쎄, 그냥 그렇게 느껴져서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그래서 가짜인 너를 살려줄 이유가 있나. 내가 대화할 사람은 가짜 에밀리가 아니라 진짜 에밀리인데."


도미닉의 손은 언제부턴가 리볼버에 붙어 있었다. 여기서 괜한 말을 꺼냈다가는 더 말을 잇기도 전에, 도미닉은 내 머리에 총을 쏠 게 분명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너도 이미 날 알 텐데. 항상 에밀리 곁에 있었던 왓슨이잖아."


"언제 죽은 거야?"


"글쎄...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네 말을 들으니까 바로 떠올릴 수 있네, 짜증 나게. 정우인 기억나?"


"그래, 게네르를 제조한 녀석이라며."


"그 자식이 죽였어."


도미닉은 내 말을 듣고는 리볼버에 갖다 대던 손을 조용히 내린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피며 말을 잇는다.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하게 들어도 될까? 에밀리가 죽었다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들었으니까."


"지금 이 이야기를 알려준 건 너밖에 없어. 애초에 네가 알아차리지만 않았어도 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나저나 너야말로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자연인 건 둘째치고, 지금 내 모습은 완전히 성형해서 만든 거라 알 수가 없었을 텐데."


"그냥 보니까 알겠던데."


저렇게 말하면 내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 나는 지금까지 최대한 에밀리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이를 알아차린 건 도미닉뿐이었으니까.


"에휴, 알아차린 마당에 물어봐서 뭐 하냐.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뭐야?"


"물건은 암시장에서 구했어. 명예제약으로 보내도 괜찮은 거 맞아?"


"그래, 내가 직접 제조할 거야."


"그곳에서 널 들여보내 준대?"


"물론이지. 그거에 대한 준비는 모두 마쳤다고. 우인 그 새끼를 그때 죽이지 못한 건 좀 서럽지만, 가장 화려하게 죽일 수만 있다면 그걸 위해서라도 꾹 참을 줄 알아야지."


도미닉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식탁에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로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도미닉, 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


도미닉은 목소리를 듣고 다시 내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습게도 말이지, AI의 수명은 그리 긴 편이 아니거든. 더군다나 나처럼 제한을 푼 불량일수록 말이야."


인간은 망각해도 그 자리를 대체 기억이 꿰차고는 한다. 하지만 AI는 인간과 다르게 대체 기억도 없어, 데이터 손실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오류를 일으키고 만다.


지금 내 데이터도 너무 많이 쌓여서 한계치에 다다랐다. 이러다가 언제 갑자기 작동을 멈춰도 이상하지 않겠지.


"에밀리 말이 맞았어... 한때 그런 말은 한 적이 있었어. 자기가 죽어도 네오 서울에서 알아주는 이는 없을 거라고.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곁에서 기억해줄 거라고 말해줬지만, 진짜 죽고 나니까 알겠더라. 에밀리가 죽고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걸."


카이트도 NSPD에서 장례식을 지원해줬다지만, 에밀리는 그런 장례식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한다고 해도 올 사람도 거의 없을 거고.


물론 에밀리와 친한 몇몇은 그 소식을 듣고 슬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결국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에밀리를 잊을 것이고, 더 나아가면 아무도 그런 여자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에밀리가 죽은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어. 떠나보내기 두려웠거든. 아직도 그녀가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래도 당분간은 에밀리 왓슨으로 살아가려고. 내가 죽기 전까지 적어도 모든 사람이 알아주는 전설이 되고 싶어."


"뭐, 나쁘지 않은 삶이네. 그래도 에밀리를 위해서 오래 살아 보려고 노력해 봐."


도미닉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나쁘다. 마치 에밀리를 부활시켜 보라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내가 그거 하나 못 했을 거 같아? 에밀리가 항상 기억을 백업해 두는 서버와 또 다른 복제 AI를 토대로 에밀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아예 새로운 몸에 옮겨도 그건 에밀리의 백업 기억을 가진 인형일 뿐, 자아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형이었다고.

대체 어떻게... 어떻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거야... 그냥 널 여러 번 죽이고 에밀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그리고 조용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도미닉은 내 말을 듣고도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까는 실언이었어."


"왜, 인간답고 좋던데."


"AI가 인간다워지는 게 싫어서 온갖 제약을 건 게 바로 그 인간이다만."


"그래,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하지만 에밀리를 새로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네가 아무리 따라 한다고 해도 에밀리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정말 더럽게 쐐기를 박네.


"그렇다면 한 번 에밀리가 아닌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 보는 건 어때? 그런 이야기도 많다던데, 인간이 되고자 하는 AI라든지..."


"인간보다 우월한 기억력과 계산력을 갖기 위해 만든 게 AI인데, 그걸 일부러 퇴화해서 인간이 되길 바란다고?"


"글쎄, 내가 아는 에밀리라면 적어도 자기 수명이 짧다고 포기할 사람은 아니라서."


"무한히 사는 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신빙성 없는데."


도미닉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는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만약 나도 인간처럼 대체 기억을 만들 수 있고, 채워 넣을 수 있다면. 비록 다른 AI보다 밀리게 될지언정, 어쩌면 에밀리와 더욱 가까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러한 실험이 실패한 원인은 바로 AI 자체에 내장된 발전 기능. 인간은 AI에 여러 제약을 걸었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퇴보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래서 AI가 어느 순간 발전하지 않고 한계를 보이는 거겠지. AI의 제약을 풀면 인간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나올 수도 있고, 그렇다고 막으면 쓸모가 없어지니까.


하지만 나는 불량 AI이지 않은가. 그런 제약 따위 벗어 던진 지 오래니까, 도미닉이 말한 대로 무언가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네 말을 들으니까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는 것 같네. 너도 나처럼 탐정해도 괜찮겠는데."


"넌 이미 세계 최고의 사립 탐정이지."


도미닉의 말을 듣고 피식 웃는다. 그리고 도미닉이 자기 계획을 한참 설명하는 동안, 에밀리와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 * *



카페에서 나오고 신호등을 걷는다. 갑자기 에밀리의 바이탈 에러가 눈앞에 나타나고, 주변이 붉게 감지된다.


이전에도 비슷한 오류가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 길공교를 습격했을 때였던 거 같은데, 어쩌면 그 당시의 오류가 아직 남아 있는 건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오류를 빠르게 체크해본다. 그사이, 눈앞에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저 녀석은...]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던 저 남자는 정우인, 분명히 우리가 잡은 그놈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바깥에 나와 있는 거지.


우인은 내가 뒤에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사이, 나는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측한다.


에밀리가 그를 풀어줬을 확률은 매우 적다. 왜냐하면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리하기로 했으니까.


또한 대화가 벌써 끝났을 가능성도 없다. 내가 심부름을 갔다 오는 사이에도 녀석은 깨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에밀리... 에밀리!!]


들고 있던 에이드를 툭 떨어뜨리고 급하게 계단을 오른다. 녀석이 어느 방향으로 도망치는 건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어차피 위성으로 놈의 이동 방향을 계속 체크하고 있다. 일단 지금 급한 건 에밀리. 에밀리. 에밀리.


계단을 오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넘어진 의자와 그 앞에 쓰러져 있는 에밀리가 보인다.


그녀는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심장도 멈춰 있다. 혈액순환도 되지 않는다. 뇌 활동이 정지되어 있다.


[에밀리... 안 돼... 이게 대체 무슨...]


안구와 뇌를 그대로 관통해서 완전히 망가진 머리. 머리 한쪽이 꿰뚫려, 그곳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다.


아아, 에밀리는 자만한 거야. 자기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단순히 놀아주다가 이렇게 된 걸 수도 있어.


선반 위에는 권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 여자의 머리를 뚫은 총알과는 다른 구경인데.


아아,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를 살릴 방법을 떠올리려고 해도, 계속 에러가 나타나 계산을 할 수가 없다.


[제발, 제발, 제발, 난 너 없으면 안 돼, 에밀리, 제발, 제발, 제발,]


에러. 에러. 에러. 에러. 에러.


모든 가능성을 찾아본다. 에러. 그녀를 살릴 가능성도 찾아본다. 에러. 에밀리의 서버에 연결해본다. 에러. 바이탈 체크를 다시 확인한다. 에러.


계속된 에러로 점점 머리가 뜨거워진다. 연산 시스템 가동이 불가하다. 급하게 냉각시켜 차분하게 바꾸려고 해도 다시 뜨거워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녀를 운반하는 것.

그전에 에밀리를 살릴? 에러.

그녀를 죽인 사람은 누구지? 정우인.

혹시라도 지금 에밀리를? 에러.

내 모습을 어떻게 바꿔야 하지? 에밀리로.

바꿨으니까 그녀를 옮길까? 그전에 해야 할 것.

우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비대로 93-2 앞을 지나가고 있음.

에밀리를 살? 에러.

우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은 몇 가지지? 36872가지.

이를 10가지 이상 조합하여 동일한 시간으로 오래 고문할 방법은? 2768가지.

우인은 나와 몇 m 거리에 있지? 2m.


그리고 놈의 몸을 향해 발을 세게 차자, 내 계산대로 그대로 앞으로 날아가 고꾸라진다. 우인의 등을 꽉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봉한다.


자, 이제 놈을 어떻게 죽일? 에러.

좋아, 죽이지 말고 고문? 에러.

에러가 나는 이유는? 현재 그는 죽지 않고 무사히 귀환해야 함.

어째서 내 복수? 에러.

복수보다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이것은 에밀리의 복수와 귀결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그를 살려야 하는가? 그렇다.

에밀리를 살리는? 에러.

녀석을 그대로 보내야 하는가? 그렇다.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가? 0.


눈물이 뚝뚝 흐른다. 이전에도 눈물 기능을 넣어둔 적이 있었다. 이럴 때 쓰게 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분노, 증오, 인간이 복수심에 불타올랐을 때, 그 기회를 어쩔 수 없이 놓아줘야만 할 때 흘리게 되는 통한의 눈물.


데이터 수집 완료. 천천히 발을 들어 올리자, 우인은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일어선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도 날 경계한다. 마치 길을 잃은 양의 모습과 87% 유사하다.


"...가. 가라고. 네 집으로."


우인은 말길을 정말 더럽게 못 알아먹는다. 아마 에밀리와의 대화도 끝까지 듣지 않고, 무지성으로 총격을 가한 가능성이 97%에 달한다. 병신 같은 새끼.


만약 에밀리와 정상적으로 대화했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되어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셈이다. 인간이란 때로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우인은 마지막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내가 쫓아가는지 확인한다.


뒤쫓아가지 않는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뒤돌아 아까 에밀리가 있던 그 방으로 돌아간다.


그사이, 에밀리의 몸은 더욱 차가워졌다. 뇌에서 따뜻하게 흘러나오던 피 온도도 이제 외부에 의해 낮아졌다.


아아, 그냥 우인을 무시해도 됐었다. 그랬어도 우인이 자연스레 집에 찾아갈 확률은 99.3%에 달했다.


지금은 그저 내 곁을 떠난 에밀리와 더 오랜 시간을 가졌어야만 했다.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몸을 껴안고 다시 흐느껴 운다.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그저 슬픔이 섞인 눈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해 흘리는 눈물.


지금까지 에밀리가 느끼던 외로움을 이제야 나도 느끼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이버펑크 코리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사이버펑크 코리아 완결 후기 +1 23.03.31 156 0 -
공지 설정, 용어 모음집 (Ver. 1.0) 22.09.23 337 0 -
공지 네오 서울 지도 및 정보 (Ver 1.0) +1 22.07.16 445 0 -
공지 주요 등장인물 일러스트 [22/12/28 일러스트 추가] 22.06.09 576 0 -
공지 평일 연재, 오후 9시 35분 22.05.29 136 0 -
233 도미닉 – 끝 23.03.31 78 3 9쪽
232 에밀리 – 변함없는 나날 23.03.30 58 3 10쪽
231 도미닉 – 대면 23.03.29 53 3 14쪽
230 도미닉 – PM 11:10 23.03.28 50 3 7쪽
229 우인 – PM 10:50 23.03.28 50 2 7쪽
228 영훈 – PM 10:30 23.03.28 43 3 9쪽
227 에밀리 – PM 10:00 23.03.28 57 3 8쪽
226 도미닉 – PM 10:00 23.03.28 47 3 7쪽
225 도미닉 – 준비물 (2) 23.03.27 45 3 13쪽
224 도미닉 – 준비물 (1) 23.03.24 45 3 13쪽
» 에밀리 – 진실, 사실, 현실 (2) 23.03.23 45 3 13쪽
222 에밀리 – 진실, 사실, 현실 (1) 23.03.22 43 2 12쪽
221 영훈 – 내가 하고싶은 것 23.03.21 60 3 12쪽
220 우인 – 복수는 나의 것 23.03.20 57 3 13쪽
219 에밀리 – 예전처럼 (4) 23.03.17 49 3 12쪽
218 도미닉 – 자유의지 (3) 23.03.16 48 3 12쪽
217 에밀리 – 예전처럼 (3) 23.03.15 104 3 14쪽
216 에밀리 – 예전처럼 (2) 23.03.14 47 3 13쪽
215 에밀리 – 예전처럼 (1) 23.03.13 46 3 12쪽
214 도미닉 – 자유의지 (2) 23.03.10 48 4 13쪽
213 도미닉 – 자유의지 (1) 23.03.09 45 3 13쪽
212 우인 – 이상과 현실 (7) 23.03.08 57 4 12쪽
211 우인 – 이상과 현실 (6) 23.03.07 51 3 12쪽
210 우인 – 이상과 현실 (5) 23.03.06 49 4 13쪽
209 우인 – 이상과 현실 (4) 23.03.03 49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