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구원자의 SOS (2).

4.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위치가 오르는 것을 즐겼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각자 소속된 집단에서 승진을 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고,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됐다.
“위로 올라가는 건 열심히 노력하는 이가 아니라, 올라가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놈들이야.”
세상의 현실을.
그리고 세상에서 그런 계급에 가장 목숨을 거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 군대였다.
진급을 위해서 뭐든 하는 자들이 모인 곳.
방형주, 그도 그랬다.
그는 진급을 위해 뭐든 다 했다.
나라도 팔아먹었다. 중국 공산당 극비 정보를 팔아치운 대가로 적잖은 돈을 받았다.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돈으로 윗분들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서였지.
해서 그는 동기들 중 가장 빨리 대령이라는, 별을 코앞에 둘 수 있었다.
그 별을 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죽을 줄 알았는데.’
그가 잡았던 인맥이 비리로 검찰에 잡히면서 하루아침에 썩은 줄이 되어버린 것이다.
별에 닿기는커녕 이제 목이 잘릴 상황.
그리고 그 날이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의 상관인 제7기동전단 전단장인 박이수 준장이 부산에 위치한 해군작전사령부로 갔으니까.
방형주 대령이 잡고 있던 줄을 정리하기 위해서.
[세상 곳곳에 괴물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포칼립스가 터졌을 때, 세상이 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을 때 방형주는 생각했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제주해군기지를 관리하는 제주기지전대의 전대장이 바로 그였으니까.
심지어 상관조차 부산으로 가서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으니까.
한순간에 별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쥐게 된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기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한 가지 고민을 했다.
중국과 미국, 둘 중 어디와 손을 잡을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런 때는 가까이 있는 이가 최고의 아군이고.’
중국을 골랐고, 그 결단에 중국 공산당 역시 기꺼이 방형주의 선택을 밀어줬다.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해줬다.
‘기다리면 돼. 그럼 중국이 상황을 정리하고 한국 쪽에도 지원 목적으로 군대를 보낼 테니까. 내가 다리가 되어주는 거고.’
이때까지만 해도 방형주 대령의 눈앞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거대한 괴물이라고 해봐야 전함 한 척이면 죽이고도 남으니까.’
제아무리 대단한 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군대의 화력에 비할 바는 못 했으니까.
해서 바로 움직였다.
각 지역에 무장한 군인들을 보냈다.
그러나 대지진이 일어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빌어먹을.’
대지진과 함께 몰려온 해일에 정박 중이던 함선들이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
그걸 수습하느라 다른 걸 할 정신이 없었고, 그 때문이었다.
‘이 구원자란 놈.’
자기를 미래에서 회귀한 구원자랍시고 유튜브 방송으로 설치는 놈을 놔둔 것은.
‘일단은 공항을 지키고 있어서 놔뒀는데.’
또한 당장 그 구원자란 놈 덕분에 제주국제공항이 몬스터나 무법자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무리해서 구원자란 놈을 잡을 이유는 없었다.
- 공지대로 팬미팅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구원자의 구독자 이벤트를 보는 순간 방형주 대령의 생각은 바뀌었다.
‘이대로 놔두면 위험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보일 뿐.
당연히 방형주 대령은 놈을 처리하려고 했다.
모든 병력을 보내서라도.
아무리 전함을 잃고, 해일에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해군기지에 모인 화력은 상식을 벗어났으니까.
사람 하나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분명 그랬다.
- 방형주 사령관님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방형주 대령은 계산기를 다시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꽂혔으니까.
‘내가 사령관이라고?’
5.
“방형주 사령관님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아니, 세계는 더 처참한 위기를 마주했을 겁니다. 그분이 미래에 보여준 업적은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정호영의 말에 채팅창이 어수선해졌다.
- 이거 진짜야?
ㄴ 진짜겠냐? 또 개소리하는 거지!
ㄴ 회귀자잖아! 미래에 정말 방형주 사령관이 세상을 구했을 수도 있지!
ㄴ 일단 찾아보니까 방형주 대령이라고 있네! 제주해군기지전대 전대장임1
ㄴ 오! 이거 개연성 높아지는데?
ㄴ 개연성 같은 소리하네! 인터넷 검색해도 나오는 걸 가지고 회귀자란 놈이 개구라 치는 거지!
정호영이 한 말의 진위 유무를 놓고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 구원자 님을 못 믿음? 여기까지 보여줬는데?
ㄴ 비행기로 오우거 꼬라박아서 공항 활주로 박살내고, 이 시국에 팬미팅한 게 구원자임?
ㄴ 구원자 님이 헌터랑 시체바라기 공략법 알려준 건?
ㄴ 헌터는 웹소설 좀 보면 다 떠올리는 거고, 시체바라기란 놈만 눈알이 약점이냐? 오우거도 눈깔이 약점이야!
ㄴ 지진 나는 것도 예언하셨거든?
ㄴ 내일 지진난다고 말하고 지진나면 나도 구원자겠네?
ㄴ 담배 위험하다고 말했어!
ㄴ 흠, 확실히 담배가 위험하긴 하지. 이걸로 금연한 사람한테는 구원자이긴 하겠네.
정호영이 보여준 것들을 그대로 믿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 지금 유튜브에 구원자 검색해봐라. 자칭 구원자만 한 수십만 명이 넘게 나온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종말을 예언하는 예언자 노릇을 하는 건 정호영만이 아니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이 되기 전부터 종말론자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절망에 빠진 자들만 믿는다.’
그런 와중에 구원자를 믿는 건 정말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자들뿐이었다.
‘방형주 같은 놈이 내 말을 믿을 리 없지.’
지금 이 시점에서 구원이 필요 없는 자들, 오히려 지금 이 세상을 기회로 여기는 이들에게 정호영은 그냥 정신 나간 미친놈일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정호영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하지만 이용 가치는 있지.’
구원자라는 자가 미래의 사령관이라고 말해주는 걸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것.
‘위로 가려고 나라를 팔아먹은 인간이라면 더더욱.’
특히 방형주에게 사령관이란 단어는 달콤하다, 수준의 단어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을 폭발시킬 만한 단어였지.
하물며 그냥 사령관이 아니라 나라를 구한 사령관이다?
‘이쯤 되면 방형주는 내가 회귀자이길 원하겠지. 간절하게.’
진위 유무를 떠나 방형주 대령 입장에서 정호영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였다.
가뜩이나 몬스터와 헌터가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굳이 고민거리를 더 만들 필요는 없을 터.
그때였다.
[방형주 님이 1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ㄴ ????
ㄴ 미래의 사령관님이신가?
ㄴ 진짜야?
채팅창에 거액의 후원 메시지가 떴고, 그 메시지에 채팅창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 구원자 님! 방형주 님이 10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방송 촬영 중이던 박윤준 역시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필요한 게 뭐냐고 하시는데요?”
물론 여기서 적잖은 이들은 생각했다.
- 저거 진짜임?
ㄴ 봑튜브 전적 생각하면 주작일 가능성이 크지.
ㄴ 여기서도 주작할 정도로 부왁이가 주작에 도가 트긴 했지.
ㄴ 주작 아니더라도 누가 장난치는 걸 수도 있잖아?
ㄴ 장난질에 백만 원을 태움?
ㄴ 어차피 이제 화폐 쓰레기 될 텐데 무슨 소용이야?
ㄴ ㅇㅇ 디지털 화폐는 똥도 못 닦음!
진위 유무가 확실치 않다고.
‘가짜라도 상관없다. 내 대답이 어떤 식으로든 방형주의 귀에 들어갈 테니까.’
그러나 정호영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기에 정호영은 바로 대답했다.
“한라산 백록담에 외뿔소가 있습니다. 놈의 뿔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을.
- 그게 뭐지?
- 진짜 구원자인가? 처음 듣는 몬스터 이름을 말하네?
ㄴ 그야 지어낸 거니까!
ㄴ 저걸 믿는 놈들이 있다는 게 충격이다.
그 말에 채팅창이 다시 어수선해졌다.
그러나 정호영은 그런 반응은 아무래도 좋았다.
‘외뿔소는 5레벨 몬스터, 방형주가 가진 전력으로는 절대 못 잡는다.’
정호영이 원하는 건 방형주 대령이 외뿔소를 잡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거였으니까.
물론 방형주 대령이 사냥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었다.
정호영을 위해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외뿔소를 언급한 건 그 때문이었다.
“놈의 뿔은 만병통치약입니다. 그 어떤 병도, 심지어 말기암조차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가장 바라는 게 뭔지 알았으니까.
장담컨대 어떤 식으로든 외뿔소를 잡기 위해 적잖은 역량을 투입할 터.
때문에 정호영은 확신했다.
“놈은 매우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제가 가서 직접 잡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놈은 매우 잡기 힘든 몬스터입니다.”
이런 경고 따윈 먹히지 않을 거라고.
‘전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들이 값비싼 희생으로 얻을 건 하나뿐이라고.
- 외뿔소? 이건 또 뭐야?
ㄴ 다른 게 누가 올린 거 아니야?
ㄴ 올라온 거 없어! 검색해보니까 그냥 소만 검색됨!
ㄴ 진짜 회귀자인가?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걸 아는 거지?
ㄴ 진짜겠냐? 구라지!
ㄴ 만병통치약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ㄴ 한라산 크기가 얼마인데 거기 있는 소를 어떻게 찾음? 그냥 지르고 보네.
ㄴ 그래도 진짜면?
ㄴ 진짜면 회귀자일지도?
정호영이 진짜 회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라고.
“그럼 방형주 사령관님, 다시 한 번 제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 때처럼 도움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정호영이 인사를 남겼다.
거기까지였다.
“어, 구원자님. 다른 건요?”
정호영은 그 외의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총이나 탄약은 필요 없으신가요?”
박윤준의 말마따나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 보급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아는 탓이었다.
그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어차피 줄 리가 없지.’
그러니까 방형주 대령이 고작 이 정도 호의를 가지고 그 중요한 것을 줄 리가 없다는 것을.
해서 애초에 기대를 안 했다.
얻을 수 있는 건 얻었으니까.
“그러니 방형주 사령관님은 신경 쓰지 마시고, 이곳 제주국제공항 쪽은 제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부로 정호영의 상관은 방형주 대령이 됐으니까.
“무법자들과 약탈자들로부터 이곳을 지켜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그에 대한 책임은 방형주 대령이 짊어지게 될 테니까.
“그럼 오늘 구독자 이벤트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정호영은 알았다.
“이제 당분간 구독자 이벤트나, 팬미팅은 없을 겁니다.”
‘이제 쇼는 끝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니, 불가능할 겁니다. 이 시간부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곳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그 말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ㄴ 헛소리라도 구원자가 하면 적중률 장난 아니거든?
ㄴ 들어놔서 손해 볼 건 없지!
이제까지 정호영이 내뱉은 것들은 결과적으로 예언이 되었으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몬스터는 홀에서 나옵니다. 홀을 제거하지 않으면 몬스터는 쉬지 않고 계속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이미 나온 몬스터들을 통해 주변 정보를 습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어진 그 말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 뭐야? 누구나 아는 개소리를 왜 지껄여?
- 이게 회귀자의 예언?
-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 회귀자 특) 그냥 남들 다 아는 거 대단한 것처럼 꾸며서 지껄임.
딱히 예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 반응에 정호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부로 1레벨 몬스터인 고블린과 오크, 코볼트와 같이 도구를 쓸 수 있는 몬스터들은 조건부로 2레벨 이상의 몬스터로 규정해야 합니다.”
- 이건 또 뭔 개소리야?
- 고블린, 오크 놈들은 예비군이 총만 들어도 죽일 수 있는 놈들인데 뭘 2레벨이야?
그는 경고할 뿐이었다.
“몬스터 중 영리한 개체는 총을 쓰는 법을 습득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동료들에게 알려줄 겁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전쟁이 얼마나 힘든 전쟁인지를.
“그러니 다시 말씀드립니다. 몬스터를 처리한 후에는 꼭 홀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그리고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담배 냄새가 인간 냄새라는 것을 몬스터들이 학습했으니까요.”
그 경고를 끝으로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다.
- 뭐야 이렇게 끝이야?
- 고블린이 총이라니 ㅋㅋㅋ 소설을 쓴다, 소설을 써 ㅋㅋㅋ
- 이제 밑천 드러났네. 설마 이거 보고도 회귀자라고 믿는 흑우 새끼는 없지?
그 방송 내용에 대부분은 코웃음을 쳤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일.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모두는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투투투!
- 고블린이 총을 쏜다!
구원자가 했던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것을.
그 사실에 모두가 당혹감을 느꼈다.
당연했다.
- 끝장이야! 괴물이 총까지 쏘면 어떻게 하라고!
상상하지 못 했던 절망감이 엄습했으니까.
제주국제공항의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보고 받은 임지혁 중위는 어느 때보다 굳은 표정으로 정호영에게 말했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그 질문에 정호영은 대답했다.
“지금은 지켜봐야 합니다. 이 시간부로 몬스터들 사이에서 균형이 무너질 테니까요.”
“예?”
“말한 대로입니다. 총을 든 고블린은 칼을 든 오크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총을 든 고블린, 오크 무리는 트롤 무리보다 강합니다. ”
기다리라고.
“몬스터들이 알아서 더 큰 괴물들을 처리해줄 겁니다.”
그럼 기회가 올 거라고.
“그럼 우리는 전리품만 챙기면 됩니다.”
- 작가의말
....아포칼립스 난이도를 너무 높인 거 같군요.... 어쩔 수 없네요. 주인공에게 좀 퍼주는 수밖에...
ps. 12시 26분 기준으로 후반부에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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