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지만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드라마, 판타지

in세인
작품등록일 :
2022.06.01 09:27
최근연재일 :
2022.06.27 06:45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808
추천수 :
104
글자수 :
271,404

작성
22.06.16 18:00
조회
9
추천
1
글자
9쪽

이기적인 사랑 <5>

DUMMY

의사는 한 손을 펼쳤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다가 눈을 뜨며 주먹을 쥐었다. 그때 주변의 공기가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을 다친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수현은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마침 수현의 옆에는 간호사가 있었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간호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스스로 일어선 수현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병원 복도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었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수현은 자신의 곁에 있던 간호사를 건들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의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 능력으로 시간을 멈췄어요. 못 믿겠다면 한 번 만져보세요. 그렇다고 민감한 부분까지 만지지 마시고요. 그건 범죄니깐요.”


의사의 말대로 수현은 간호사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 사람을 만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네킹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힘을 줘서 밀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남자는 대체 뭐지?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알았다.


“어때요? 이제 좀 믿으시겠어요?”


의사의 물음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파악이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술이나 트릭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수현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죽었나요?”


“네? 그게 무슨.”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움직이면 엄청 아팠어요. 그런데 지금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보고 당신이 천사라는 건 알겠어요. 천사가 저한테 온 이유는 제가 죽었고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아닌가요?”


진지하게 말하는 수현의 물음에 천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수현 씨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천사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이 상황이 혼란스러울 테니. 질문에 답변할게요. 당신은 죽지 않았어요. 저는 당신을 천국을 데려가기 위해 오지 않았어요. 제가 온 이유는 당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어요.”


“저를 도와주러 왔다고요?”


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보경,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려주려고 왔어요. 수현 씨의 전생 이름이 동건이고, 보경 씨의 전생 이름이 유라인 건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어요. 전생의 기억이 조금 돌아왔거든요.”


“그러면 얘기가 좀 빠르겠네요. 28년 전 당신은 2년간 이승을 떠돌고 있었어요. 죽고 나서도 유라가 걱정돼서 그녀 곁을 맴돌고 있었죠. 그러는 동안 영혼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던 도중 저의 도움으로 환생했어요. 돈 때문에 힘들어하던 유라를 위해 다음 생에서는 돈 걱정이 없이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면서요. 분명 그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하지만. 악마 녀석이 쓸데없는 일을 저질렀더군요.”


악마는 수현과 보경.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도록 보경의 전학 서류를 조작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한 학년이 어긋나는 상황이 벌어졌고, 사소해 보이는 그 작은 사건으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안타까워요. 원래 두 사람의 운명은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내다가 성인이 돼서 연애를 시작하고 연인 관계로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행복하게 살 운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악마 녀석 때문에 망쳐버렸으니.”


천사는 마치 자기 일처럼 속상해하고 있었다. 천사의 능력 정도면 운명을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을까 하고 수현이 묻자 천사는 아쉽지만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운명의 변화는 세상의 혼돈을 일으켜요. 더군다나 당신 같은 경우 약 20년 전부터 그 운명이 조금씩 바뀌었죠. 바뀐 운명을 하루아침 뚝딱하고 바꿀 순 없답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어요. 하지만.”


의사는 수현에게 A3 크기의 갈색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수현은 봉투를 건네받았다.


“이게 도움이 될 거예요. 오해하고 있는 보경 씨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것도.”


의사는 끈처럼 생긴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목걸이의 양 끝에는 네모난 모양에 그림과 글이 적혀 있었다. 한쪽은 성모상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죽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불의 고통을 면하리라.’


“이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있으면 악마의 공격을 일시적으로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할 거예요. 그리고 공격받는 순간 저한테 신호가 오고 제가 도와주러 갈 수도 있죠.”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를 왜 도와주시는 거죠?”


천사는 허공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두 사람을 보며 운명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만큼 두 사람의 행복을 바랬거든요. 대가는 가혹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런데 악마 녀석이 제가 만든 기적을 망쳐버렸더군요. 전 악마 따위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변화된 운명을 바로 잡고 일어날 운명을 지키고 싶어요. 뒷일은 제가 책임질 테니. 부디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요. 그럼,”


의사는 온화한 목소리로 수현의 물음에 대답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묘한 그 기분에 수현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병실로 돌아온 수현은 의사가 건네준 서류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곱게 접힌 신문이 나왔다. 날짜를 보니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신문이었다. 신문을 훑어보던 수현 사망 사고 소식에 눈길이 멈췄다. 내용은 이러했다.


추운 겨울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는 현장이 있었다. 비계 상부 작업 도중 비계발판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작업자 한 명이 12M 아래로 추락하였고 머리를 크게 다쳤다. 다친 작업자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뇌출혈로 인해 2시간 만에 사망하였다. 안전관리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사망 사고 소식을 접할 때가 많은데 눈시울 붉어질 만큼 안타까운 소식이 많았다.


“어?”


사고 내용을 읽어나가던 도중 수현은 깜짝 놀랐다.


사망한 작업자의 이름이 이동건인 것이다.


“뭐지? 설마. 전생의 내 이야기인 건가.”


수현은 서둘러 뒷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동건은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그에게는 아내 성유라와 딸아이가 있었다. 유라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에 쓰러졌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가족을 잃은 슬픈 사건 속에서도 공사 측 관계자는 작업자의 과실로 사망한 사고라며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을 거부했다고 했다.


“이럴 수가.”


이게 사실이라면 동건은 유라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며 그녀를 떠난 것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는 어쩔 수 없이 그녀 곁을 떠난 것이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수현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보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현은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오해를 풀고 싶었다. 수현은 그녀가 있을 만한 장소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집에 가봤지만, 그녀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그녀와 처음 만났던 상가 옥상에도 가봤지만, 역시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 순간 수현의 머릿속에 번뜩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의 할머니가 계신 수목장이 떠올렸다. 아마 그곳이라면 보경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서둘러 수목장을 찾았다. 도착한 수목장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이 오고 오간 이가 없었는지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수현은 저번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새하얀 눈을 밟으며 걸음을 옮겼다.


완만한 경사길을 걸어가자 수많은 소나무 중 유달리 키 작은 소나무가 보였다. 그 소나무에는 그녀의 할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다.


“찾았다.”


도착한 그곳에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수현은 그녀가 이곳에 올 거라 확신했다. 힘들고 지칠 때는 누구나 쉬어갈 곳이 필요하다. 보경은 할머니에 대한 오해가 풀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한 그녀에게 이곳은 유일한 쉼터였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 반드시 그녀는 나타날 것이다.


다만, 너무 추웠다.


수현은 급하게 나오느라 양말도 신지 않고, 겉옷도 걸치지 않고 나와버렸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이대로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혹시나 엇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수현은 천사에게 받은 자료를 나무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오해를 풀기를 바라며 준비한 편지도 함께 걸어두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한부지만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에필로그 22.06.27 12 0 9쪽
44 시한부 사랑 <6> 22.06.26 8 0 10쪽
43 시한부 사랑 <5> 22.06.24 7 0 11쪽
42 시한부 사랑 <4> 22.06.23 7 0 14쪽
41 시한부 사랑 <3> 22.06.22 7 0 11쪽
40 시한부 사랑 <2> 22.06.22 10 0 11쪽
39 시한부 사랑 <1> 22.06.21 13 0 14쪽
38 이기적인 사랑 <8> 22.06.18 10 0 9쪽
37 이기적인 사랑 <7> 22.06.17 8 0 14쪽
36 이기적인 사랑 <6> 22.06.17 10 0 11쪽
» 이기적인 사랑 <5> 22.06.16 10 1 9쪽
34 이기적인 사랑 <4> 22.06.16 10 1 14쪽
33 이기적인 사랑 <3> 22.06.15 9 0 12쪽
32 이기적인 사랑 <2> 22.06.15 9 0 15쪽
31 이기적인 사랑 <1> 22.06.14 11 0 9쪽
30 나만의 흔적 <5> 22.06.14 9 0 16쪽
29 나만의 흔적 <4> 22.06.14 9 0 12쪽
28 나만의 흔적 <3> 22.06.14 9 0 14쪽
27 나만의 흔적 <2> 22.06.13 10 0 13쪽
26 나만의 흔적 <1> 22.06.13 11 0 10쪽
25 두 사람 <8> 22.06.12 10 1 20쪽
24 두 사람 <7> 22.06.12 12 1 12쪽
23 두 사람 <6> 22.06.11 10 1 15쪽
22 두 사람 <5> 22.06.11 10 1 12쪽
21 두 사람 <4> 22.06.10 11 1 22쪽
20 두 사람 <3> 22.06.10 10 0 16쪽
19 두 사람 <2> 22.06.09 10 0 14쪽
18 두 사람 <1> 22.06.09 12 1 9쪽
17 호스피스 <3> 22.06.08 10 0 17쪽
16 호스피스 <2> 22.06.08 10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