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기 없는 게임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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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딱지
작품등록일 :
2022.06.0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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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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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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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비밀스런 회동

DUMMY

바깥에서 비가 내리는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지는 빗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비 내리는 음악이 귀에 익어갈 때 쯤, 레르가 입을 열었다.


“탑에서 죽은 괴물들은 보충 되지 않아.”


고요한 밤을 뚫고 잔잔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 탑은 죽은 자들의 탑이야.”


죽은 자? 얼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괴물들은 온갖 기괴한 형상을 취하고 있었지만 살아있는 생물에 속했다.


가렐리누가 눈쌀을 찌푸렸다.


“마법사. 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다오.”


“어려웠나? 그곳에는 죽은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후. 참 이해하기 쉽군. 보충 되지 않는 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죽은 자들은 번식을 하지 않아. 그들을 쓰러뜨리면 다시 일어나지 않고. 탑 안의 전체적인 괴물 숫자는 이미 많이 줄어들었어.”


“소문과는 다르게 괴물이 적게 남았다는 말이로군. 이제 좀 말이 통하는 소리를 하네. 마법사. 그동안 탑에 도전한 자들이 돌아오지는 못 했지만, 이미 그들로 인해 상대할 적이 줄어서 할 만 한 상황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나?”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전달 내용은 이게 끝이야.”


“알겠네. 그런 것이야 문제 될 게 없다네. 내일 새벽, 상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물. 준비 할 게 있겠는가?”


“없어요.”


가렐리누와 레르의 대화에 끼어든 목소리는 안델라 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는데 미사보가 면사의 역할을 하는 형태여서 빨간 입술만 보였다.


“오, 난 지금까지 사제님이 벙어리인 줄로 알았다네.”


- 쿵!


쇳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부터 함께 왔던 창을 든 여자가 무기를 고쳐 잡고 있었다. 크로아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이름을 듣지 못 했네. 이름이 뭐지?”


“알레이.”


그녀를 향해 물었는데 대답은 반대편에서 나왔다. 레르가 대신 말해줬다. 안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대부분의 준비는 제가 했어요. 내일 새벽, 물품을 나눠 줄 테니 가방에 여유를 두고 나와주세요.”


그리 말하고는 비가 쏟아지는 건물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가렐리누가 쓰게 웃으며 일어났다.


“꽤 차분한 사제님이시군.”


가렐리누가 나가자, 등을 쭈구리고 있어서 존재감이 너무 없던 퍼그니가 일어나 그의 뒤를 쫒아 나갔다. 창을 가진 여자 알레이는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자리에 없었다.


“이제 끝났나?”


여태껏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벨라이언이 레르를 쳐다봤다. 팔뚝이 두꺼워서 팔짱도 제대로 안껴지는 것 처럼 보였다.


레르는 한숨을 쉬며 마녀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잘 될지 모르겠어.”


“안되는 게 어딨겠어? 죄다 도끼로 두 조각을 내버릴 테니 신경 쓸 거 없다.”


“나머지는 둘이 이야기 해. 나는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이만 가보도록 하지.”


“어이. 안델라라면 멀리 가지 못 했을 거야. 워낙 느리잖나.”


벨라이언이 얼른 쫒아가 보라며 턱 짓을 했다. 곰처럼 생겨서는 눈치가 참 빨라. 크로아는 두말 않고 레르를 일별 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꿈쩍 않고 있던 벨라이언이 일어나 안쪽 주방에서 물을 한 잔 가져왔다. 뭔가 지쳐 보이는 레르의 앞에 놓아주고 그 옆 자리에 앉았다.


레르는 그가 준 물컵을 들고 목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마셨다.


“불안해.”


“준비 잘 해왔잖아? 뭐가 그리 불안해?”


“모르겠어. 하지만 알 것도 같아.”


벨라이언이 콧 숨을 푹 내뿜고 턱을 괴며 그녀를 바라봤다.


“거기 뼉다구들은 거의 다 끝장 났다구. 남아 있는 것들이야 이 구성이면 별 것도 아니야. 너무 높이 올라가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겠지?”


“그럼. 당연하지.”


“그래도 5층 까지는 반드시 올라가야 해.”


“그럼. 당연하지.”


“넌 당연하지 밖에 못하니?”


“그럼. 당연하지.”


“어휴······”


한숨 쉬는 그녀를 향해 벨라이언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이 바보 같은 곰탱이는 무식해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호탕하게 웃는 그를 따라 웃었다. 불안함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인원 구성이 괜찮잖아.”


“몇 날 며칠을 고민했어. 확실한 인선을 추려야 하니까.”


“크로아, 그 녀석도 괜찮은 전사지. 나에 비하면 그다지 강하진 않아도 말이야.”


“그래. 강하기만 해선 살아남을 수 없어. 그는 빠트리면 안되는 사람이었지.”


“거기에 놈의 옷깃만 붙잡고 다니는 우리 사제님도 좋아.”


“음··· 무슨 문제가 서로 있었던 것 같지만, 별 일은 아닐 거야.”


“하지만 남은 세 녀석은 모르겠군.”


벨라이언이 웃음기를 지웠다. 레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빈 물컵을 매만졌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적을 맞아 싸울 사람이 더 있어서 손해 볼 건 없어.”


“5층 까지면 문제 없어. 거긴 이제 뼈다귀 밖에 없다.”


레르가 빈 물컵을 매만지는 손을 벨라이언이 두터운 손으로 잡았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던 그녀의 손이 금새 안정을 되찾았다.


“걱정 할 것 없어. 다 잘 될 거다.”


그녀는 그의 손의 온기를 느끼며 웃어 보였다.


**


비가 많이 내리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많이 내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크로아는 나가자마자 북쪽 지역의 신전으로 가는 길을 통해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흰 옷을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안델라.”


비가 올줄은 몰랐어서 그녀나 크로아나 옷이 흠뻑 젖었다.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는 안델라의 눈도 젖어있었다. 비가 더욱 많이 내렸다.


“크로아.”


“무슨 일 있어? 평소 답지 않은 걸?”


“아무 일도 아니야.”


그녀는 대답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크로아가 냉큼 그녀의 옆까지 와서 함께 걸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내일 가는 길도 진창이 되어 있겠어.”


“일찍 출발하면 시간은 괜찮을 거야.”


“그런가?”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 였었는데 비가 오니 쌀쌀했다. 크로아는 입고 있던 가죽 외투를 벗어서 그녀에게 걸쳐줬다. 외투에서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안델라는 외투 사이로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여몄다.


그들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북쪽을 향해 걸었다. 크로아도, 안델라도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교차로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는 알고 있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처음 같이 시작한 사람들은 땅에 묻히고 지금은 없지만, 그 중 단 두 사람은 지금껏 살아남아서 함께 해오고 있다는 것을.


크로아는 문득 인연이라는 게 별 것 아니라 생각 들었다. 함께 해 온 시간이 그걸 증명하는 전부일 뿐이다. 안델라가 이제는 자신이 없는 원정을 불안해 한다는 것도. 크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었다. 목숨 빚도 아니었다. 그저 지난 3년간 서로 의지하며 지내게 된 거다. 안델라는 그게 불안한 것 일 테지.


점점 더 위험한 일을 하게 될 텐데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 한다. 그렇게 되면 도태되는 기분일 수도 있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원정에 참여하는 것, 일찍 결정 했나봐.”


“응. 어차피 갈 것 같았거든.”


누가 갈 것 같았길래 빨리 참여 하기로 했냐고는 묻지 않았다.


크로아는 중앙 교차로에 멈춰 서서 가만히 그녀를 보았다.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니 자잘한 흉터가 잔뜩 보였다. 피부가 꽤 좋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만 들어가자. 지금부터 좀 쉬어야 새벽에 출발 하기 편할 거야.”


크로아의 말에 안델라는 외투를 벗어 주려고 했다. 크로아는 손을 내젓고 발걸음을 옮겨 교차로의 서쪽으로 향했다. 안델라는 가죽 외투를 더 깊게 여미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교차로의 북쪽으로 움직였다.


한껏 비를 다 맞으며 여관으로 돌아온 크로아는 여급이 내주는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고 2층의 숙소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벗어서 대강 걸어두고 이제껏 착용하고 있던 장검을 빼내 침대 옆에 기대어 뒀다.


“죽은 자들···”


아마 언데드 겠지. 게임에서 많이 봤던 괴물이다. 그것과 똑같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시체가 걸어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 중에 죽은 자가 걸어 다닌 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아예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4년이 지나서 처음 보는 괴물인 셈이다. 그만큼 드물단 말이겠지. 뭘 준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성수?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제들이 쓰는 걸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최소한 벨라이언은 그 탑에 가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잘 알고 있어 보였다. 그의 덩치 때문에 미련해 보였지만 크로아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그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크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 마르지 않은 머리로 침대에 누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면 죽고 죽는 항상 반복되던 상황에 다시 놓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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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죽은 자와 산 자 +16 22.06.22 11,097 49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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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죽은 자와 산 자 +6 22.06.14 11,984 435 10쪽
12 12. 비밀스런 회동 +15 22.06.13 12,459 41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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